* "미안한데 기억이 정말 안 나서 이래... 언제?" "너 아까 나한테 전화 했잖아." "내가 전화를 했다고?" "기억 안 나는 척 하는 거야, 진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전화? 내가 전화를? 아저씨랑 구준회 사이에서 머리 싸매고 자아분열 일으키고 있는데 아저씨는 조용히 나한테만 들리게 한 마디를 던졌어. "지금 같이 얘기해야 될 사람은 따로 있잖아." ......왜 아저씨마저 나에게 구준회를 넘기고 떠나가는지? 또 희미한 미소를 뿌리고 사라지는 거야... 나랑 구준회를 남기고 유유히 걸어가는 아저씨 뒷모습만 보면서 멍하니 서 있으니까 구준회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뜬금포를 던짐. "놀이터 갈까, 오랜만에?" - "왜 오자고 했어? 여름이라도 밤 되면 추워서 오기 싫은데..." "그네 타고 싶어서." "...하여튼 넌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너도 타지? 아무도 없네." 준회가 자퇴하기 전부터 둘이 나란히 교복 입고 자주 왔던 놀이터라 잠깐 예전 추억에 젖어 있던 것도 잠시, 의문이 생김. 진짜 이 야밤에 단순히 그네 타러 온 거라고? 어이가 아리마셍? 멀뚱히 선 나를 그네로 끌더니 한 자리엔 자기가 앉고 한 자리엔 나를 앉힘. 그래놓고 다짜고짜 그네를 타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새삼 너무 잘 타서 놀랐음... 슝슝 뜨는데 와 님 무슨 그네 마스터. "아, 바람 시원하다." 아니 바람이 시원한 거랑 구준회가 그네를 잘 타는 건 둘째 치고ㅠㅠㅠㅠㅠㅠ 내가 그동안 봐온 구준회의 모먼트들을 합쳐보면 지금 이 상황은... 확실히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걸로 보였음. 괜히 이상한 소리나 하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딱 알지. 이 시간에 겨우 아무도 없는 놀이터로 오자고 한 걸 보면 더 빼박이고.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돼?" "뭔데?" "너 그 사람 좋아하냐." 바람이 싸하더라 그 때. 어쩌면 준회가 이 뒤로 할 말을 난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마구 밀려오기 시작했어. 한 가지, 내가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건 확실했어. 가장 소중한 친구한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구준회는 나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응, 그런 것 같아." "맞네, 역시." "...우리 다른 얘기 할까?"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어디가 좋았어?" "뭘 쪽팔리게 그런 걸 물어봐." "왜 그 사람인지 궁금해서. 왜 옆은 못 보고 멀리 있는 것만 보는데." 제발. 제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묻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었어. 자꾸만 뒷말이 예상되는 물음도 하지 말고 그런 표정도 짓지 말아달라고. 내가 설마, 하는 그 상황을 현실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망할 예수 새끼. 그렇게 아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준회야." "모처럼 서울 하늘에 별도 몇 개씩 보이길래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 "야, 이왕 여기까지 말 꺼냈으니까 속 시원하게 다 말할까?" 고개를 두어 번 내저으려다 입술을 꾹 깨물었어. 나한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이던 구준회가, 지금은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된 순간이었거든. "너 아까 나한테 전화했었다고 했지." "응." "너 아무래도 자다가 그래서 기억 안 나나 본데, 너 나한테 전화 걸자마자 뭐라고 했는지 아냐?" "...몰라." "아빠래, 아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가 그 소리 듣고 무슨 기분이었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다. 내가 너한텐 그냥 부르면 달려와주는 아빠 같은 존재인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미치겠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부르면 바로 달려와주는 건 맞아. 그런데 아빠 같은 사람으로만 남기는 싫더라." "…….""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해서 폰 켜서 통화기록 보니까 이제 이해가 됨... 아빠한테 걸었다가 3분 뒤에 준회한테 전화했던 기록이 떴어 난 야자하는 날에 아빠한테 데리러 나와달라고 부탁하는 전화를 꼭 한 통씩 남겨두거든? 그게 습관이 되는 바람에 중간에 깨선 잠결에 정말 우리 아빠한테 전화했나 보더라고 내가. 무슨 취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아빠가 안 받아서였는지 아빠 다음 단축번호 3번으로 저장돼 있는 준회한테 전화를 했었나 봐.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나 봄... 괜히 미안해져서 입만 닫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말문을 막히게 하는 질문을 꺼냈어.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난 너한테 어떤 사람이야?" "그렇게 갑자기 물어보면... 넌 그냥... 뭐라고 딱 말할 수가 없는데." "그렇지, 모르겠지. 특히 지금 넌 더." "왜 이런 것만 물어보는 거냐고." "내가 이렇게 표현도 안 하고 너한테 뭐든 툭툭 던져도 네가 나한테 제일 소중하거든? 내가 너고, 네가 나인 것처럼 자꾸 느끼게 된다고." "응. 나한테도 너 엄청 소중해." "네 말 하나하나에 자꾸 기대하게 되는 것도 돌겠더라 그거." 준회가 이 말을 하고 나서 이어지는 침묵에 눈을 질끈 감았어. "...그러니까." "……." 적어도 내 친구 구준회한테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을 것 같아서 두려워졌으니까. "나 너 좋아하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째 고민하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지랄맞은 이 타이밍에 말하는 거야." "……." "이제 눈치 좀 채줘라, 제발. 아닌 척 하기도 힘들다." "...구준회?" "너 좋아한다고, 내가." 그리고 들어버렸어. *** 연애혁명 스포당하신 분께 매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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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데 기억이 정말 안 나서 이래... 언제?"
"너 아까 나한테 전화 했잖아."
"내가 전화를 했다고?"
"기억 안 나는 척 하는 거야, 진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전화? 내가 전화를? 아저씨랑 구준회 사이에서 머리 싸매고 자아분열 일으키고 있는데 아저씨는 조용히 나한테만 들리게 한 마디를 던졌어.
"지금 같이 얘기해야 될 사람은 따로 있잖아."
......왜 아저씨마저 나에게 구준회를 넘기고 떠나가는지?
또 희미한 미소를 뿌리고 사라지는 거야... 나랑 구준회를 남기고 유유히 걸어가는 아저씨 뒷모습만 보면서 멍하니 서 있으니까 구준회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뜬금포를 던짐.
"놀이터 갈까,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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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자고 했어? 여름이라도 밤 되면 추워서 오기 싫은데..."
"그네 타고 싶어서."
"...하여튼 넌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너도 타지? 아무도 없네."
준회가 자퇴하기 전부터 둘이 나란히 교복 입고 자주 왔던 놀이터라 잠깐 예전 추억에 젖어 있던 것도 잠시, 의문이 생김.
진짜 이 야밤에 단순히 그네 타러 온 거라고? 어이가 아리마셍? 멀뚱히 선 나를 그네로 끌더니 한 자리엔 자기가 앉고 한 자리엔 나를 앉힘.
그래놓고 다짜고짜 그네를 타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새삼 너무 잘 타서 놀랐음... 슝슝 뜨는데 와 님 무슨 그네 마스터.
"아, 바람 시원하다."
아니 바람이 시원한 거랑 구준회가 그네를 잘 타는 건 둘째 치고ㅠㅠㅠㅠㅠㅠ
내가 그동안 봐온 구준회의 모먼트들을 합쳐보면 지금 이 상황은... 확실히 나한테 할 말이 있는 걸로 보였음. 괜히 이상한 소리나 하고 앉아 있는 걸 보면 딱 알지. 이 시간에 겨우 아무도 없는 놀이터로 오자고 한 걸 보면 더 빼박이고.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돼?"
"뭔데?"
"너 그 사람 좋아하냐."
바람이 싸하더라 그 때.
어쩌면 준회가 이 뒤로 할 말을 난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알 수 없는 거부감과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마구 밀려오기 시작했어.
한 가지, 내가 솔직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건 확실했어. 가장 소중한 친구한테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구준회는 나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응, 그런 것 같아."
"맞네, 역시."
"...우리 다른 얘기 할까?"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로 어디가 좋았어?"
"뭘 쪽팔리게 그런 걸 물어봐."
"왜 그 사람인지 궁금해서. 왜 옆은 못 보고 멀리 있는 것만 보는데."
제발.
제발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묻지 말아달라고 하고 싶었어.
자꾸만 뒷말이 예상되는 물음도 하지 말고 그런 표정도 짓지 말아달라고. 내가 설마, 하는 그 상황을 현실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망할 예수 새끼. 그렇게 아니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준회야."
"모처럼 서울 하늘에 별도 몇 개씩 보이길래 다 잘 풀릴 줄 알았는데."
"……."
"야, 이왕 여기까지 말 꺼냈으니까 속 시원하게 다 말할까?"
고개를 두어 번 내저으려다 입술을 꾹 깨물었어.
나한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이던 구준회가, 지금은 가장 불편한 사람이 된 순간이었거든.
"너 아까 나한테 전화했었다고 했지."
"응."
"너 아무래도 자다가 그래서 기억 안 나나 본데, 너 나한테 전화 걸자마자 뭐라고 했는지 아냐?"
"...몰라."
"아빠래, 아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내가 그 소리 듣고 무슨 기분이었는지 넌 상상도 못 할 거다. 내가 너한텐 그냥 부르면 달려와주는 아빠 같은 존재인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미치겠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부르면 바로 달려와주는 건 맞아. 그런데 아빠 같은 사람으로만 남기는 싫더라."
"…….""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해서 폰 켜서 통화기록 보니까 이제 이해가 됨... 아빠한테 걸었다가 3분 뒤에 준회한테 전화했던 기록이 떴어
난 야자하는 날에 아빠한테 데리러 나와달라고 부탁하는 전화를 꼭 한 통씩 남겨두거든?
그게 습관이 되는 바람에 중간에 깨선 잠결에 정말 우리 아빠한테 전화했나 보더라고 내가. 무슨 취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데 아빠가 안 받아서였는지 아빠 다음 단축번호 3번으로 저장돼 있는 준회한테 전화를 했었나 봐.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그랬나 봄...
괜히 미안해져서 입만 닫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말문을 막히게 하는 질문을 꺼냈어.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난 너한테 어떤 사람이야?"
"그렇게 갑자기 물어보면... 넌 그냥... 뭐라고 딱 말할 수가 없는데."
"그렇지, 모르겠지. 특히 지금 넌 더."
"왜 이런 것만 물어보는 거냐고."
"내가 이렇게 표현도 안 하고 너한테 뭐든 툭툭 던져도 네가 나한테 제일 소중하거든? 내가 너고, 네가 나인 것처럼 자꾸 느끼게 된다고."
"응. 나한테도 너 엄청 소중해."
"네 말 하나하나에 자꾸 기대하게 되는 것도 돌겠더라 그거."
준회가 이 말을 하고 나서 이어지는 침묵에 눈을 질끈 감았어.
"...그러니까."
적어도 내 친구 구준회한테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을 것 같아서 두려워졌으니까.
"나 너 좋아하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몇 년째 고민하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지랄맞은 이 타이밍에 말하는 거야."
"이제 눈치 좀 채줘라, 제발. 아닌 척 하기도 힘들다."
"...구준회?"
"너 좋아한다고, 내가."
그리고 들어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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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혁명 스포당하신 분께 매우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