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멍하니 바람빠지는 목소리를 내며 손을 들어올린 세훈이 더듬더듬 제 얼굴을 매만졌다.
축축히 젖어들어가는 얼굴을 만지는 큰 손에 눈물이 얼룩진다. 아까까지만 해도 차갑게 얼었던 손이 뜨듯미지근해진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얼굴을 엉망으로 하던 눈물줄기를 모조리 닦아낸 세훈이 다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닫힌 방문 앞에서 등을 돌렸다.
제 선택의 결과는 이런 것이었다.
과거의 제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황국(黃國) 도독주군사(都督州軍事) 오진원의 외동아들
오세훈(17)
"모든 것은 나의 작은 주인이 원하시는 대로."
[EXO/민석준면찬열경수세훈] 인연(因緣) 18
[명사] 1.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2.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
-이어지는 글입니다. 1편부터 보고 와주세요 제! 발
"무슨 일로 오신 것입니까?"
"이, 이거.."
"이것이 무엇입니까?"
눈 앞에 들이밀어진 것은 비녀였다. 영롱한 물빛을 띠고 있는 누가봐도 값이 꽤 나가 보이는 화려한 세공 장식이 박힌 비녀,
그런데 이걸 나보고 어쩌라는거지. 난 아직 결혼도 안해서 쓸데도 없는데. 결혼하면, 쓰나는건가.
왠지 모르게 답답해지는 속에 표정이 굳어졌다.
"마음에, 들지 아니하십니까?"
"아니,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허면 어찌 그런 표정을 지으십니까?"
"저에게 이것을 주시는 연유가 무엇입니까."
"아, 그것은,"
말을 이어나가려던 경수는 입술을 한번 맞부딪히더니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동그란 눈동자가 금새 진중한 빛을 띤다.
제가 왜 이런 물건을 삿는가, 곰곰히 고민하기 시작했다.
비녀는 본디 혼인식을 올린 아녀자들의 머리 장신구가 아니던가.
하지만 제 앞에 서있는 소녀는 어떠한가.
어리기만한 말간 얼굴을 하고 긴 머리를 총총 곱게도 땋아내려서는 뭔지 모를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저 소녀는.
유독 하얀 피부에 새카맣게 빛나는 그 눈동자가, 소녀가 입고 있는 고운 다홍빛 한복과 눈이 시리게 어울렸다.
진한 주홍빛 봉숭아 꽃잎과도 같은 색을 가진 긴 치맛자락 끝으로 앙증맞게 드러난 작은 발을 감싼 붉은 빛의 고운 꽃신까지.
어느 무엇 하나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 없었다.
단 하나, 그녀의 손에 들린, 제가 쥐어준 물빛 비녀만이 이질적인 빛을 띠고 있었다.
입술을 꾹 꺠물었다.
"연(緣)아, 이 물건을 왜 너에게 주는 것이냐 그리 물었더냐."
"예."
당차게도 곧바로 튀어나오는 하루 사이의 제 연인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입술에 웃음자락이 맺힌다.
손을 뻗어 제가 건넸던 비녀를 다시 되찾아 오는 손길이 꽤나 부드럽다.
제 손 안으로 돌아온 비녀를 소매자락 속으로 감춘 경수가 다시금 씨익 미소짓고는 저를 올려다보는 소녀와 시선을 마주한다.
영롱하게 빛나는 새카만 눈동자가, 아름답다.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깊은 눈동자를 계속해서 바라보다가는 숨이 막혀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하는 꽤나 멍청한 생각을 마치고 다시 입을 연다.
"지금의 그대에게 드리기에는, 그 하찮은 것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으니 잠시 무르겠습니다."
"하찮은 것이라니요. 당치도,"
"쉿, 제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싱긋 웃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가볍게 입술을 누르는 그 가벼운 손짓에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던 탓이었다.
내가 이 곳에 오기 전 마주했던 그때의 너와 너무나도 똑같은 얼굴을 하고 예의 그 다정하기 짝이없는 미소를 짓는 너의 행동에, 나는 다시 한번 막혀오는 숨을 달랜다.
"후에 다시 한번 선물하겠습니다."
"어쨰서.."
"사는 순간부터 이것이 그대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그것을 사들고 이곳까지 발걸음 하신겝니까."
저와 눈을 마주치고 쏘아붙이듯 말을 이어나가는 소녀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경수의 입술이 두어번 달싹인다.
이유, 제가 이 곳에 찾아온 이유, 제 눈 앞에 서있는 작은 소녀의 말간 얼굴을 찾아온 이유,
괜히 울것 같은 얼굴을 하고 저를 올려다보는 아이에게 울지말라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 여기는 이유.
"달리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예?"
"제가 그대를 연(緣)이라 칭한 그 순간부터 그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것을."
말을 끝마치고는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한다.
그리고는 등을 돌려 걸어가버리는 뒷모습이 퍽이나 단정하다.
도경수(18)
황국(黃國)대부호(大富戶) 황국의 큰 손 도형원의 장남
"핑계가 필요했을 뿐입니다,
그대와 다시 한번 얼굴을 맞댈 핑계가."
뒤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멍하니 양 볼을 발그레 하게 붉히고는 제 옷고름을 매만진다.
귀끝가지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서는 고개를 푹 숙여 땅을 바라본다. 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눈물을 가리느라 끌어올린 손 틈새로 가려진 입술 끝이 파르르 잘게 떨린다.
작은 몸에 어울리지 않게 큰 옷이 크게 펄럭이더니 곧바로 작은 몸이 휘청인다.
"으아!"
"그리 계시다가 나자빠지시기라도 하면, 그것은 누가 책임진답니까."
"세훈아?"
"아가씨꼐서는 강해질 필요가 있으십니다."
"또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휘청이는 몸을 단단히 받친 세훈의 표정이 사납게 굳어 있었다. 원망하는 투로 보채는 제 주인 아씨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잔뜩 일렁인다.
순간 급작스럽게 숨통이 틀어막히는 것을 느낀 세훈의 표정이 다시금 딱딱하게 굳어진다.
속이, 텁텁하다. 눈가에 열이 오르는듯 뜨듯한 기운이 몰려온다.
눌러참아왔던 눈물이 눈가로 몰리더니 그것을 참아내려는 제 주인의 의사는 깡그리 무시한 채 곧바로 흘러내린다.
추위에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눈으로 눈물을 토해낸다.
"세훈아!"
"눈물은 거두십시오."
"일어나, 이게 무슨,"
"모든 것은, 그대가 원하는 대로."
털썩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언 땅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아이의 행동에 당황한 입이 주절주절 말을 뱉어낸다.
나에게는 눈물을 멈추어라 그리 말하고는 네가 그리 눈물을 보이면 나는 어찌해.
혹시나 이것이 또 멍청한 저의 착각인가 그리 생각하기도 잠시, 손등 위로 부드럽가 맞닿아오는 그 입술이,
무언가에 잔뜩 절어 축축하기만 한 입술 탓에 바보같은 착각은 황급히 자취를 감춘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들어올려 나를 보고 싱긋이 웃어주는 그 얼룩진 얼굴에, 결국 나는 또 바보 천치마냥 울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황국(黃國) 도독주군사(都督州軍事) 오진원의 외동아들
오세훈(17)
"그대가 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