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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태일이 컴퓨터 앞에 앉아 한손으로 얼굴을 가린채 한숨을 쉬었다.


"이 프로젝트만 성공 시킨 뒤 다시 태일이로 돌아가 조용히 원하는데로 살면 된다.

이미 몇년정부터 생각해온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모든 준비는 사실상 다 되어있다.

그러니 반년정도면.. 다 끝날것이다."


태일의 아버지가 태블릿피씨를 통해 담담하게 말했다.


반년이 회장이 가진 시간이었다.

열심히 치료를 받으면 육개월, 혹은 그 이상까지도 살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회장은 아직 아이같은 자신의 아들을 지켜야만했다.


겉으로는 호화스러운 이 바닥이 얼마나 험한지 잘 알았기에.




"너도 반년만 날 믿고 따라오거라.

많이 힘들진 않을거다.

그저 다른 거래처들에게 태형이의 존재만 확실하게 각인시키면 되니까...

이것이 끝나면 다시 평범하게 누리고싶은거 다 누리며 살수있다."



태일이 원하는것은 호의호식하며 사는것도 아니었고

태일의 아버지도도 그것을 알았지만 그 누구도 말을 이어나가지 않았다.









"그녀석은 제가 봤던 그 누구보다도 위험한 사람입니다.

조금이라도 자신이 계획했던것이 틀어지면 상대방 손톱 하나하나 뽑아

살가죽을 벗겨내고 기름에 튀겨죽일 놈입니다."


지호가 운전석에 앉아 지훈에 대해 담담히 말하자 태일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무 과장 시키지는 마세요.."


"..."



태일은 모르고있었다.

정확히는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태일은 그저 격한 거래처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대기업들은 싸이코패스 조폭 집단이라고 해도 될정도인 사람들만 모아 상대편을 위협하고 다치게했다.

그리고 지호는 회장의 뜻대로 태일을 이런일에 최대한 휘말리지 않게 해야했다.



"어쨌든 위험한 사람이니 되도록이면 제가 없을때 마찰이 일어나지 않게하세요.

그저 회장님께서 시키신 일만 하시면 됩니다."



태일은 대답없이 가까워져가는 크고 높은 빌딩에 시선을 고정했다.

처음으로 자신이 직접 지훈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차가 건물 로비앞에 세워지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태일을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태일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 당당하게 지호와 몇몇 남자들을 뒤에 세우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태일은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들에게 둘러쌓여 이런일을 하고있는데 숨이 막힐것 같았지만

아버지를 생각해 티내지않고 당당하고 담담한척 다리에 힘을 주고 걸었다.


엘레베이터가 빠른속도로 올라갔고

드디어 엘레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태일을 기다리고 있던 지훈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보였다.



"어서와요, 이태형씨."



"..반갑습니다, 표지훈씨."



지훈이 태일을 향해 싱긋 웃어주고 등을 돌렸다.

따라오세요- 라며.



태일을 안내한 남자들은 하나같이 허리를 숙이며 왔던길로 되돌아갔고

태일, 지훈, 지호만이 조용한 복도를 걸었다.

구두 소리가 메아리치는게 태일에게 심리적 부담감을 어깨위로 마구 내던지는것만 같았다.


지훈이 어느 문 앞에서 멈추자 태일과 지호도 같이 섰고

지훈이 문을 당겼다.



"Uh uh. Not you."


그때 지훈이 안으로 들어가려는 지호를 팔로 막았다.

지호가 눈썹을 움찔거렸지만 윗사람들의 일인것 만큼

수긍하고 뒷걸음질을 쳐 문 옆으로 몸을 돌렸다.


태일이 당황하여 지호에게 떨리는 눈길을 보냈지만

지호는 태일을 향해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태일과 지훈이 안으로 들어갔고

긴 복도에 지호는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방음처리된 방이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엿들으려 하면서.



태일이 예상했던것처럼 문을 열면 방이 나오는 구조가 아니었다.

또 다른 복도였다.

태일은 지훈을 따라 천천히 침묵속에 걸었다.


지훈의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많은 싸움을 해온것처럼 몸이 반듯하게 잡혀있었다.

태일은 지훈의 등을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쿵 하고 얼굴을 무언가에 부딛혔다.


지훈의 등이었다.


지훈이 걸음을 멈춘지 모르고 앞으로만 가다 충돌한것이었다.

지훈은 뒤를돌아 태일을 내려다보았고

태일은 민망한지 고개를 숙이고 앞머리를 정리하고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이태형씨."


"예?"


뜬금없이 자신을 부르는 지훈에 태일을 고개를 확 들었고

가까이 다가온 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저번에 자신을 노려보던 눈이 아닌 순하고 부드러운 눈이었다.

사람 인상이 저렇게 바뀔수가 있는건가.



지훈이 할말이 있는듯 당황한 태일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잘 부탁한다고요. 적어도 몇달은 계속 볼텐데."


"..예 저도요."



지훈은 그 뒤로도 불편해하는 태일을 주시하더니 다시 뒤돌아 걷기 시작했고

다시 복도는 침묵에 휩쌓였다.

하지만 다행이도 다른 문이 나왔고 지훈은 문을 두번 두드리고 열었다.



태일이 안으로 들어가자 커피를 마시고있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태일을 향해 웃어주었지만 태일은 그 웃음이 왠지 모르게 께름칙했다.


"어서와요. 처음 뵙네요, 첫째아들을 보기도전에 둘쨰아들을 먼저 보다니 의외네요."


남자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태일은 그 속에 비아냥을 느낄수 있었다.


"..처음뵙겠습니다, 이번 프로젝트 세화쪽 책임자인 이태형 이라고 합니다."


"알아요 앉으세요."




남자는 노골적으로 태일을 위아래로 흝었고

태일은 온몸에 털이 쭈뼛쭈뼛 서는게 느껴졌지만 담담한척 회장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남자는 그런 태일을 보며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



"역시 이씨네 아들다운 눈빛이네요."


남자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소문난 망나니라 그런가.."



남자는 태일을 갖고 놀고있었다.

벌써부터 세화는 자신이 밑이라는듯이 행동하는것이 보였다.



"저도 일하면서까지 그 소문난 망나니가 되고싶지는 않습니다."


태일이 따끔하게 한마디 하자 남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이태준씨 핏줄이군. 당돌해, 아주.

현명하다는 첫째아들이 더 보고싶어지네요."




태일은 동요하지 않은척 남자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미안해요. 내가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했네.

그냥 책임자를 만나보고 싶었어요.

이번 프로젝트를 맡길만 하네요, 이태형씨."









태일이 지쳐 지호에게 이런저런 투정을 하며 건물밖을 나가는것을

창문을 통해 본 남자가 제자리로 돌아와 커피잔을 들고 앉았다.


"지훈아."


"예."


"문제아라해서 방심했다."


"..."


"망나니새끼라도 이태준의 피가 섞였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지훈아."



왜냐면 놈은 망나니새끼가 아니니까요-

놈은 이태형이 아니니까요-

지훈은 마음속으로 생각을 꾹꾹 눌러담았다.

이태일이 궁금했다.

정체를 밝히기 전에 자신이 먼저 알아야했다.



"회장자리에 비밀리에 앉힐 정도면 첫째는 더 비상한 놈이라는거다.

일단 이태형을 잘 감시해라.

그리고 이태일에 대한 정보도 수집해.

이태준이 죽으면 세화는 분명 흔들릴거다.

시기를 잘 맞춰서 세화를 끌어내려야해."


"예."


"이태일이 다시 세화를 일으켜 세우려 하게 두면 안된다. 절대.

일단 프로젝트는 성공 시켜야하니 당분간 이태형은 감시만한다."


"알겠습니다."




남자의 말에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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