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아, 화 났어?"
"누구세요?"
"I'm yours."
"아... 꺼져 제발."
미친놈이 착하게도 내 말에 저 쪽 담벼락 뒤로 숨더니, 큰 소리로 외친다.
"근데 민석아 언제까지 숨어있어야 돼?"
시발.. 루한아, 얼굴은 예쁜 루한아. 제발 내가 지금 너랑 하하호호 숨박꼭질 하자는 게 아니잖아. 어? 그냥 이대로 저 중국인을 버리고 집으로 갈까 하다가, 맹자가 주장한 성선설이 옳았는지 결국 저기 담벼락 뒤에 숨어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사슴같이 얼굴만 예쁜 중생을 거두어 가기로 결심했다.
"다섯 셀 때까지 이리와."
하나..둘..? 셋을 말하기도 전에 2초만에 내옆으로 왔다. 와우 역시 사슴같이 생겨서 달리기도 잘하나 보네. 애초에 내가 먼저 갔어도 20초면 따라 잡았을 놈을 떠올리니 한 여름에 소름이 돋았다. 몸을 부르르 떠니 걱정하는 표정으로 왜 그래? 하고 묻는다. 너 때문이잖아요. 이 한라산 백록담에서 잘 뛰어 놀게 생긴 사슴님아.
*
사슴은 집에 가는 내내 시끄럽게 종알거렸다. 무뚝뚝하게 그냥 대답없이 건성으로 고개만 몇 번 끄덕여주는 내 태도에도 이 녀석은 진심으로 행복해 했다. 그건 좀 미안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더니
"루한, 밥 뭐 먹을까?"
"밥 말고 다른 거 먹고싶어 술"
"술...치맥?"
"아니 네 입술"
시발. 미안 취소. 이딴 건 어디서 배웠는지. 5년 전 여동생이 월요일 화요일 10시 마다 티비 앞에서 입을 벌리고 보던 드라마에서 나올 법 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한테 말하고 부드럽게 뒷목을 끌어당겨 기습 키스를 시행할 것같은 그런 대사를 친다. 그래놓고 저 새끼..아니 루한은 만족한다는 웃음을 보였다. 안면파괴가 일어나는 웃음. 볼 때마다 신기했다. 사슴아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주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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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집에 도착해서 치킨과 생맥주를 주문했다. 계산은 내가 했다. 절대 고의는 아니었다. 눈 앞에 루한의 MCM 지갑이 있길래, 그냥 들고 나갔다. 푸르스름한 초록색 돈 두 장을 별도의 양심의 가책 없이 당당히 꺼내 치느님을 배달해 주신 치카엘 같은 분에게 드렸더니, 알바생이 당황하며 이거는 못 받는다고 한다. 나도 당황하며 지폐를 보니, 세종대왕님 대신 마오쩌둥님이.... 평소엔 "일인일닭" 을 주장하는 내가 오늘은 어쩐지 한 마리만 시키고싶더라. 결국 내 지갑을 꺼냈다. 잘가요 세종대왕님. 만수무강 하십쇼.
지갑에서 세종대왕 두 분을 털리고 나니, 기분이 울적했다. 눈치 있게 루한이 조용히 치킨을 세팅했다. 그래... 치느님이니까.. 치킨이라도 먹어야지... 따끈해 보이는 토실토실한 다리를 집어서 영혼 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 지갑에서 빠져나간 이 만원으로 산 치킨의 다리 한 쪽이 내 뱃속으로 채워졌다. 금새 없어지다니, 그래서 나머지 다리 하나도 내가 들었다. 다리 두 개라도 먹어야 이 만원의 공허함이 채워질 것 같았다. 그래도 안 풀렸는지. 닭 다리를 뜯다 괜히 억울한 내가 물었다.
"씨..야 너, 환전 안 해?"
"나 카드 쓰는데"
아..그렇구나 카드 쓰는구나.... 내일은 쇼핑을 해야겠다. 이번엔 MCM 지갑 말고 루한을 데리고. 나의 엠루엠. 가자 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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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라는 캔디패밀리는 안쓰고 이게 뭐하는 짓 일까요.. 이런 건 안 좋아하시려나......(소금소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