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씨가 나를 집에 데려다줬어.
"내일 아침 7시까지 일어나서 씻고 나와."
"???"
그러고는 바로 가버려서 나는 일단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누웠지.
초여름인 날씨라 땀이 나서 씻어야 했지만, 옷갈아입을 힘도 없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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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어나보니 9시가 넘어있었어.
어떡하지?? 핸드폰을 열어보니 이미 전화가 스무통이 와있었고,
나는 정말 화장이고 뭐고 다 때려친 후에 바로 옷만 입고 지갑이랑 핸드폰만 챙겨서 내려갔어.
김태형씨가 지금까지 기다렸나봐 어떡해....
차문을 두어번 두드리고 조수석에 올라탔어.
"미안...진짜로!!!!!"
두 손을 모아서 싹싹 빌었어. 입꼬리 내려가지고 완전 미안한 표정짓고....
"나왔으면 됐다. 가자"
"근데 어디 가는 거...ㅇ야?"
"잠자코 따라와. 오른쪽 눈에 눈곱이나 좀 떼고"
....헐!!!!!!!!! 아 쪽팔려....
나는 눈곱떼기(...)부터 시작해서 화장을 했어.
"와..."
화장이 끝난 다음에 김태형씨가 탄식인지 어이없음인지 암튼 하...하더라궄ㅋㅋㅋ
"왜요?...가 아니고 왜?"
"진짜 화장은 변신이 맞구나"
"그 말은...아침에 내가.. 못생겼다는..."
시무룩해있으니까 웃으면서 장난이라고 했어.
그 모습도 어찌나 멋있는지.....ㅎㅎ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지?
"여기가 어디야?"
"너가 전정국 상처주지 않으면서 해결했으면 하길래."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
"전정국 집"
.....? 어쩌려는 속셈이지?
"빨리 들어가자. 너가 자그마치 두시간이나 늦어서 내가 약속미루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내가 미처 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전정국씨가 내 손목을 잡고 마당 안으로 들어갔어.
"태형이 왔구나~"
"안녕하셨어요?"
"그럼~ 태형이도 잘 지내지?"
"당연하죠~ 정국이는 어디있나요?"
"제 방에 있을거다. 정국아!!!!"
전정국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아니 전정국의 어머니인 분을 처음 뵀는데, 역시 전정국이 뜬금없이 잘생긴 건 아니더라구.
내가 여태껏 봐 온 중년 여성분 중에서 가장 예쁘셔. 정말 배우같아.
"내버려두세요. 준비되면 내려오겠죠. 이쪽은 정국이 어머님"
"안녕하세요...!"
"이쪽은 제 약혼녀입니다."
"어머... 태형이랑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약혼녀....? 우리 파혼...얘기를 하려고 했지만 여기서 해봤자 흠이 된다는 것은 어린아이도 알만큼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었지.
"그나저나 얘는 왜 이리 안내려와.,,? 아줌마! 정국이 빨리 내려오라고 하세요!"
"예~"
전정국이 좀처럼 2층 방에서 내려오질 않아서 가정부아주머니가 올라가셨고, 우리는 응접실에 앉아 근황이야기를 하고 있었어.
정확히 말하면 난 듣고만 있었지.
"요즘 통신쪽이 약간 하향이지만 곧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프로모션 진행중이라서 다시 원상복귀될 것 같고.."
"아직 정국아빠네 회사랑 수출 쪽 계약 덜 끝났지?"
"수출은 잘 모르겠고, 해외 지사 유통 문제는 아직 덜 마무리 됐는데 만나서 계약만 체결하면 끝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잘 됐다,"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이구. 사업 얘기만 하느라 예쁜 아가씨는 뒷전이었네. 아가씨는 아직 대학생?"
"아...네^^"
넋놓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한테 시선이 집중되서 깜짝 놀랐지 뭐야 ㅋㅋㅋㅋ
그러다가 전정국이 터덜터덜 2층에서 내려와서 이쪽을 쳐다보는데...
나랑 눈이 마주쳤어.
"...."
"정국아 인사해라. 태형이 약혼녀란다. 너도 빨리 좋은 집 딸이랑 결혼해야하는데..."
"...."
전정국도 나도 가만히 있었고, 김태형씨는 다리를 꼬았어.
"이딴 모습 보여주려고 나 부른거야?"
"이딴 모습이라니! 정국아 언행 조심해야지!"
"조심할 언행이 있어야 할 말이지. 저 둘한텐 이정도도 꽤 예의바른건데."
"너가 예의라는 말을 입에 담으니까 되게 언밸런스하네"
전정국은 다시 방으로 올라가버렸어.
"아주머니 이제 가보겠습니다. 점심은 다음에 가족끼리 모여서 먹는 걸로 하죠."
"어머..둘이 싸웠니 혹시..? 정국이가 뭐 잘못했니?"
"그런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렇게 어색하게 전정국의 집을 나섰어.
"기분이 잡쳐서 어디 돌아다니고 싶지 않다."
".....이건 결국에 전정국 상처준거잖아"
"이게 최선이었던거 알잖아"
"뭐가? 이게 어떻게 최선이야? 나를 정국이 어머니한테 보여서 다시는 전정국이 나 못건들게 하려는 거였잖아."
"맞아"
"전정국이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어. 내가 원했던 건 그쪽이 전정국을 따로 불러ㅅ.."
"왜 내 상처는 생각도 안해...?"
"..."
"내가 너를 약혼자라고 소개하면 내가 곧 받게 될 후폭풍에 대해서는 생각해봤어?"
"..."
"나는 그걸 겪고서라도 너한테서 전정국을 떨어뜨려놓겠다고 찾아간거야"
"..."
"어쩜 그렇게 너는 이기적이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신경쓰면서 정작 자기 사람의 마음 하나 헤아리질 못해?"
"...."
"입이 있으면 말을 해봐!!!!!!!!!!"
버럭 소리를 지로는 김태형씨 앞에서 말문이 턱 막혔어.
.....나 어떡하지...?
이 관계에서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던 내가 또 욕심쟁이였던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