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4월 20일.
지난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은 벚꽃휴가라고 하는 봄철휴가가 있었어.
우리 학교는 한번 입학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교외로 나갈 수 없거든.
그래서 특별히 학교에서 철마다 금토일 이렇게 3일 외박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금요일은 오전수업만 하고 다들 각자 집에서 보낸 차를 타고 하교를 하지.
그럼 학교엔 사환들만 남아.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하시거든.
우리들은 휴가 없이 계속 일해.
교실과 특별실, 기숙사 대청소는 전문청소업체에서 담당을 하지만, 교무실청소나 게시판정리같은 건 사환들이 해야 되거든.
교무실이 일반적으로 한 교무실에 선생님이 열 분 넘게 계시는 보통 학교처럼 생긴게 아니고,
모두 1인실이라서 우리는 교사연구실이라고 불러.
그래서 일일이 교무실 안에 들어가서 기본적으로 쓸고 닦고, 선생님들이 휴가 가기 전에 우리에게 남긴 메모를 보고 부족한 건 채워넣고 넘친 건 치우고 그런 걸 하지.
열명이서 금방 할 것 같지만, 또 그렇지도 않아.
이틀동안 하루종일 일하고 녹초가 되서 잠들면, 아가씨들 도련님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일요일 오후 3시가 돼.
그럼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거지!
근데 우리라고 다 일만 하는 건 아니고 그래도 중간중간에 살짝 놀기도 하지 ㅋㅋㅋㅋㅋ
물론...전정국은 우리가 노는 시간에 공부를 해.
사환 열명 중에서 공부하려고 들어온 사환 4명 말고 나머지 6명 중에서 전정국만 꿋꿋하게 수업을 들어.
나도 몇번 수업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아가씨들이 정말 다들 너무 착하셔서 막 가르쳐주시고 했거든?
그래서 공부가 재밌긴 한데 도서관 정리를 안해도 되는 날이라거나 그렇게 한 2시간씩 시간이 빌 때 말고는 수업에 잘 못들어가...
이래서 전정국이 더 신기한거야.
보통 남자 사환들이 여자사환보다 훨씬 일이 많고 강도도 센데, 급한 일이 아니면 자기 업무를 제쳐두고 수업을 먼저 다 듣고나서 밤을 새워서라도 일을 다 해놓곤 해.
저런 애가 성공해야되는데...사환인 이상...미래는 뻔하지..
대충 그동안의 근황은 여기까지 말하고, 오늘은 이 일기를 쓰도록 한 아주 큰 일을 말해줄게.
우리학교에 전학생 아가씨가 한 분 왔어.
보통 전학은 일년에 한두명? 오는데 오랜만에 온 전학생이라서 다들 수군수군하면서도 관심을 가졌단 말이야.
나도 교실에서 소개하는 걸 봤는데 얼굴도 꽤 귀여우시고 목소리가 참 예뻤어.
전학생이 오면 그 학급 담당 사환은 가서 통성명을 해야되는 규칙이 있어서 나는 그 아가씨한테 다가갔어.
"안녕하세요. 3학년 3반 사환 한아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대답도 안해주시고 약간 쌀쌀맞은 아가씨의 태도에 약간 움찔했지만, 아직 적응을 못해서 그랬겠지 싶어서 일단 그냥 넘어갔어.
"야!"
도서관에 전정국이 있길래 어깨를 툭 치면서 인사했는데,
"일이나 해라"
"맨날 일하래..흥이다"
"오늘도 도서관이야?"
"내 담당이 도서관이니까! 바보야"
"까불지 말고 일로와서 이거 좀 봐봐"
자기 공부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대여목록이랑 출입도서내역이랑 선생님들 대여장부랑 훼손된 책 기록장부까지 다 손봤더라구.
"와...이걸 어떻게 다 했어?"
"그러니까 니가 바보라는거야."
"...?뭐뭐뭐!!"
"저번에 너가 벚꽃본다고 나갔던 날부터 나 도서관에서 일했잖아."
"그게 그럼...."
"말했잖아 시켜서 한거라고."
"아..."
"그러니까 딴 짓하지 말고 일해. 내가 미리 와서 이만큼 해놨으니까 너가 정리 다 해"
"진짜...?진짜 내가 다해...?"
"당연하지. 일단 너가 엉망으로 일해놔서 대대적으로 손봐야하는데, 우선 훼손된 책 저만큼 쌓여서 밀려있는거 다 꼼꼼히 붙여서 라벨대로 꽂아놔"
"알겠어..."
"반납된 책들이랑 잘못 꽂혀있는 책들 다 내가 꽂아놨으니까 그만큼은 너가 해야지"
"알겠어..."
날 시켜놓고 전정국은 공부를 했어.
전정국이 다른 사환들이랑 조금 다른게 딱 세가지가 있어.
하나는 아까말한 것처럼 사환임에도 불구하고 수업을 꼬박꼬박 듣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복이 풀세트로 있다는거야.
우리 학교 교복이 정말 비싸거든. 그리고 사환들에게는 교복제공 이런 게 있을리가 업잖아?
그래서 교복이나 체육복이 있는 사환들은 그 옷을 입지만 없으면 학교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생활복인 회색원피스를 입어.
남자는 상하의 일체형 작업복 비슷한 회색 바지를 입고.
여자사환들 옷은 그나마 봐줄만 한데 남자애들 옷은 진짜 이상해서 남자사환들은 보통 체육복을 입더라구.
근데 전정국은 일과시간에 입는 교복을 입어. 재단에 소속된 사환이 어떻게 교복을 갖춰입는진 의문이야.
마지막 다른 점은 전정국은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는데도 절대로 필기구나 공책이 부족하지 않는다는거야.
내가 일기를 쓰는것도 아가씨들이 공책이랑 필기구를 선물로 줘서 가능한거거든?
사환들에게는 일체의 수당이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돈이 없어.
근데 전정국은 거의 하루에 볼펜 한개를 쓰고 공책 반권을 쓰는데 한번도 학용품이 부족했던 점이 없다는 것이 참 이상해.
"아..드디어 다했다...으아 몸이 찌뿌둥해"
"다했으면 따라와"
"왜? 어디가는데?"
"잔말말고 따라와"
잠자코 전정국의 뒤를 졸졸 따라가다가 남자 사환들 숙소 있는 건물 앞에서 잠깐 기다리라길래 잠시 기다리자 전정국이 뭔가 들고 나왔어
"뭐야 이게?"
"가지고 가"
하얀색쇼핑백을 받아들고 나는 숙소로 들어갔지.
사환들한테는 아침만 주기 때문에 너무 배고파서 전정국이 준 게 먹을 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숙소로 들어갔어.
"야 한아미!!!!"
"왜?"
"너 아가씨한테 밉보였어?"
"? 어느 아가씨?"
"새로 전학왔다는 너희 반 아가씨"
"아니 왜?"
"그 아가씨가 아까 화나신 표정으로 여기까지 찾아와서 우리보고 너 빨리 데려오라고 하셨어"
"알겠어 내가 가볼게"
"빨리 가봐!"
뜬금없는 부름이라서 나도 당황스러웠어.
똑똑-
"들어와"
나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갔어.
청소시간까지 10분이 남아있었고, 나는 불안함이 엄습했어.
짝-
"아앗!!!"
방에 들어오자마자 느닷없이 뺨을 맞았어.
"...."
"내가 왜 불렀는지 모르겠어?"
"...아가씨 죄송하지만 무슨 일로 부르신..."
짜악-
같은 뺨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맞으니까 어질어질했어.
"짐 정리 안해놔?"
"...아가씨 저희 사환들은 짐을 숙소로 옮길 뿐 세부적인 정리...."
짝-
세 대. 이번엔 휘청거렸어.
그도 그럴 것이 나는 160cm에 42kg정도 되는 체구를 가졌지만, 나를 때리는 아가씨는 170cm에 몸무게는 족히 65가 넘어갈법한 꽤 큰 체구를 가지셨거든.
넘어질 뻔 한 걸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어.
안그래도 먹은게 없어서 힘도 없었는데, 이게 왠 봉변인가 싶기도 했지.
"사환 주제에. 시키면 하는게 당연한건데 어디서 토를 달아?"
"..."
"당장 정리해놔. 너희의 서비스수준이 곧 이 학교 수준인 걸 염두에 두고 행동해"
그리고는 방을 나가셨어.
뺨은 퉁퉁부었는데, 짐은 어찌나 많은지, 매뉴얼에 없는 이 정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건지, 아가씨 성에 차지 않게 정리했다가 또 맞으면 어떡하지.
너무 멘붕이 와서 나는 울고 싶었어.
근데 일단 당장 5분 뒤에 기숙사 청소시간이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5분안에 정리를 해야했어.
그래서 후다닥 첫번째 캐리어부터 까서 정리를 했지.
정말 초인적인 속도로 정리를 끝내고나서 내 담당 기숙사 층으로 청소를 하러 갔어.
다들 휴가를 보내고 온 다음 날이라서 깨끗한 기숙사 환경에 만족하신 듯 별다른 요구사항이 없어서 청소가 비교적 금방 끝났어.
그래서 자투리 시간이 생겼는데, 이대로 그냥 숙소에 들어가면 혼자 베개에 얼굴 묻고 울 것 같아서 밖으로 나왔어.
사환들은 점호시간이 없어서 야간이 비교적 자유롭거든.
혼자 나와서 밤에 운동장을 걸으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었는데,
"이 시간에 밖에서 뭐하냐"
"어..어? 아..아무것도 아니야..그냥 시간이 남길래..아니 잠이 안와서..."
"무슨 일이야"
"어..?"
"말해."
"그냥...그냥,,,"
전정국한테 울면서 다 털어놨어. 전정국은 내 얘기를 끝까지 다 들어준 다음에
"우리는 사환이니까. 참아야지"
"너무 억울해.그래서 잠이 안와"
"..."
전정국이 나를 꼭 안아줬어. 그 덕에 내 눈물 콧물이 비싼 교복에 묻어버렸지 뭐야.
한참 흐느끼다가 진정되니까 전정국이 물어봤어.
"내가 준 거. 꺼내 봤어?"
"아..아니..숙소 오자마자 호출들어와서..."
"그거 공책이랑 연필이랑 볼펜이랑 지우개야"
"...아.."
"공부하자.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아"
전정국이 마지막으로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얘기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