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스입니다.
너무 늦게 왔네요(울먹)
바빴다는 변명을 하기에도 이제 눈치가 보ㅇ...
그래도 정말 진심으로
자주 오고 싶으나 허락하지 않는 현실은 거짓이 아님을!
꼭! 알아주셨음! 하는데!
늦은 주제에 염치도 없이 분량도 소심해요(울먹)
글이 너무 안써ㅈ....
머릿속에선 이미 완결이 났는데(한숨)
이른 아침부터 초인종이 울렸다. 다급히 가방을 챙겨 매고 있던 나와는 달리, 엄마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박지민이 들어왔다. 엄마는 놀라면서도 반가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고, 엄마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던 박지민의 시선은 엄마 너머의 나에게로 꽂혔다. 그 시선 끝에 서있던 나는 어쩐지 멍멍해져버린 기분으로 가방에 달린 강아지 인형을 꼭 쥐었었다.
“남자친구 생겼냐?”
“어?”
“얼굴이 좋아 보이는데.”
“짖지 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왜 말이 안 돼.”
박지민의 등장으로 등굣길을 함께 하게 되었다. 박지민과 함께 걷는 게 무척 오랜만인 것 같은 기분이 늘 걷던 이 길을 낯설게 만들었다. 절뚝이는 박지민을 따라 내 걸음은 느려졌고, 그런 나를 위해 박지민은 불편한 다리로 걸음을 재촉했다.
“웬일이야?”
“뭐가.”
“왜 데리러 왔냐고.”
“그냥.”
“정호석은?”
“먼저 가랬어.”
오고가는 말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같이 붙어있으면 수다가 끊이질 않던 박지민의 이런 무거운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흘깃 올려다본 얼굴엔 아무 표정도 떠있지를 않았다. 과연 내가 알던 박지민의 얼굴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본적 없는 얼굴이었다.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박지민은 고개를 틀어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황급히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눈앞에 횡단보도가 나타났다. 신호는 빨간불이었다.
“인형 달았네.”
“……응.”
“안 젖었었어?”
“…하나도.”
“다행이다.”
오른쪽 팔 밑에 끼워진 목발이 바닥과 부딪치며 쇳소리를 냈다. 횡단보도 앞에 나란히 멈춰선 우리 말곤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그리 이른 아침도 아니었는데 유난히도 휑한 느낌이었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박지민의 다친 다리에 시선이 걸쳤다. 불편하지도 않은 건지, 무거워 보이는 깁스를 하고서 박지민은 잘도 걸었다. 금방 자기의 몸에 적응을 해버린 건지는 몰라도, 걸음걸이가 내 속도와 얼추 비슷했다. 다친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보던 박지민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인위적인 그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린 나와 눈을 맞춘 박지민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이거 언제 풀어?”
“10월쯤.”
“그렇게 오래 하고 있어야 돼?”
“세달 정도는 하고 있으라고 하던데. 다치기 전에도 원래 오른쪽 발목 안 좋았었잖아. 그래서 더 그러나봐.”
“답답하겠다. 윤기는 벌써 손에 붕대 풀었던데.”
“……아, 그래?”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그 이름에 입을 꾹 닫고 박지민의 눈치를 살폈다. 은근히 구겨진 미간이 기분이 상해버린 걸 알려주는 듯 했다. 입을 닫고 눈치를 살피는 나를 보던 박지민은 긴 한숨과 함께 목발을 건들었다. 깡깡 거리는 쇳소리가 몇 번 들리고 이내 기다리던 신호등의 신호가 바뀌었다. 녹색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박지민은 땅을 박차고 나갔다. 아무래도 박지민은 민윤기를 좋아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나보다 앞서 걷는 박지민의 뒤를 열심히 따랐다. 학교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박지민의 걸음 속도는 늦춰졌다. 평소와 같았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빨리 가야한다며 그를 재촉했을 텐데, 왠지 모르게 내 걸음도 박지민의 속도에 맞추어 점점 느려졌다. 어느 순간 걷다 멈춰 서버린 박지민의 등 뒤에서 덩달아 걸음을 멈춘 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낯선 적막에 귀에서는 이명이 울리는 것 같았다.
“야.”
“…응.”
“남자친구 생기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야 해.”
뜻밖의 말이었다. 박지민은 내게 대답을 재촉했다.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나는 얼결에 대답을 했다.
“……….”
“어?”
“…응, 그럴게.”
대답을 듣고서 박지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먼저 가버렸다. 멍하니 서있던 곳에 못이 박힌 나는 교문으로 사라져 들어가는 박지민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면서, 어느새 우리 사이에 생겨버린 ‘틈’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부터 박지민이 이렇게 어려워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한숨이 늘었다.
박지민이 내 머릿속에 들어 온 건지, 아니면 가슴속까지 들어찬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Love Like Sugar
W. 독스
06
나른한 오후수업은 영 듣기가 힘들었다. 풀린 눈으로 칠판을 채워가는 하얀 글씨들을 보고 있으면 잠이 솔솔 몰려왔다. 정호석의 어깨에 기대어 때 아닌 잠투정을 했다.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얼굴을 콕콕 찌르다 샤프를 쥔 손등에 볼펜으로 낙서도 했다. 귀찮은 기색을 한껏 드러내며 내 머리를 저만치 밀어낸 정호석은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그런 시선쯤이야 별 것 아니라는 듯 나는 책상위로 엎드려 누웠다. 내 행동에 정호석은 선생님 눈치를 보며 어서 일어나라는 듯 내 몸을 일으키려했지만, 한번 드러누운 몸이 쉽게 일어날 리가 없었다.
이미 정호석은 나를 반쯤 포기한 듯싶었다. 소리 없이 한숨을 푹 내쉬고 다시 칠판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식, 어울리지 않게 범생이라니. 참았던 말이 쯧―하는 소리로 대신해 뱉어졌다. 이미 내 집중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이 쏟아지는 잠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 고민 중에 있는데 주머니 속에서 진동이 울렸다. 무음모드로 바꿔놓지 않았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허리를 곧게 펴고 책상 아래로 핸드폰을 꺼냈다. 다행이도 선생님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판서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힐끗 선생님의 동태를 파악하고 울린 알람을 확인했다.
[수업 듣고 있어?]
민윤기에게서 온 문자였다. 덕분에 확 달아난 잠에 괜히 민망해져 볼을 긁적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손을 아래로 내려 빠르게 답장했다. [응. 수업 안 들어? 이 시간에 웬 문자?] 보내진 답장에 핸드폰에서 눈을 떼고 아무 의미 없이 칠판으로 시선을 두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짧게 울리는 진동에 아차 싶어 핸드폰을 무음모드로 바꾸고 고개를 숙였다.
[너야말로 수업 안 듣고 있으면서. 답장 빠른 것 좀 봐.]
민윤기는 그 존재로 하여금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헤실헤실 웃고 있는 내가 미심쩍은지 내 쪽으로 몸을 살짝 몸을 기울이는 정호석을 피해 핸드폰을 숨겼다. ‘누구랑 문자하냐?’ 속삭이는 그 말에 별거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니 내 반응이 싱겁다며 정호석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때맞춰 누가 수군거리냐는 선생님의 불호령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았다.
답장을 바로 하지 못했다. 나와 정호석이 앉은 쪽을 의심하며 계속해서 시선을 주는 선생님 때문에 딴청을 피울 수가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핸드폰을 뺏길 수도 있겠다 싶어 조용히 주머니로 핸드폰을 도로 넣었다. 하지 못한 답장에 마음이 찝찝했다. 빨리 시간이 지나가 쉬는 시간이 왔으면 좋겠다며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억겁 같았던 시간이 지나고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렸다. 정호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큰 목소리로 ‘차렷!’ 을 외쳤다. 엎어져있던 학생들이 밍기적 거리며 일어났다. ‘경례!’ 정호석의 호령에 학생들은 반쯤 감긴 눈으로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침과 동시에 책상으로 엎어졌다.
선생님이 앞문으로 나가시는 걸 확인하자마자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사이 민윤기에게서 문자 하나가 더 와있었다. 설레는 손끝으로 화면을 터치했다. 밝아지는 화면을 따라 내 표정 또한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탄소야 이번 주말에 시간 있으면 나랑 놀래?]
“뭐야, 누구야?”
옆에서 끼어드는 정호석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핸드폰을 숨겼다. 정호석은 내게서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뭐야? 누가 너랑 놀자는 거야?’ 게슴츠레한 그 눈을 피하는 내게로 손을 뻗는 정호석에게서 벗어나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책상에 엎드려있던 박지민은 소란스러운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정호석은 굳이 또 박지민을 불렀다.
“야, 박지민. 지금 김탄소 데이트 신청 받았다니까?”
“아, 무슨 데이트 신청이야!”
“맞잖아! 시간 있으면 놀자며! 그게 데이트 신청 아니면 뭐냐?”
“그냥, 그냥……!”
“그냥 뭐!”
“……….”
말문이 막혔다. 정말 데이트 신청인건가.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렇게 보인다면, 정말 데이트 신청은 아닐까. 민윤기가 내게 데이트 신청을 할 일이 뭐가 있지? 단순한 약속은 아닐까. 정말 놀 사람이 없었다거나, 주말에 혼자 있기가 싫었다거나.
순식간에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눈앞의 정호석은 분명히 그건 ‘데이트 신청’이었다면서 민윤기에게서 온 문자를 확정짓고 있었다. ‘누군데? 누가 보낸 문잔데?’ 묻는 정호석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 거렸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면서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도 같았다.
“어어? 얘 봐라?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얼굴이 이렇게 빨개져?”
“……….”
“야, 박지민. 얘 요새 진짜 이상하지 않냐?”
“그냥 둬라, 좀. 데이트 신청 받을 수도 있지, 뭐.”
“아니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대체! 난 누군지가 궁금하다는 거지! 김탄소가 우리 몰래 썸을 타고 있다는 거……, 잠깐. 박지민. 너도 좀 이상하다? 둘이 뭐 있냐? 둘이 비밀 있지!”
호들갑을 떠는 정호석을 사이에 두고 박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박지민은 뭔가를 아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걸 부정하고 싶었다. 내가 왜 박지민에게 민윤기를 숨기고 싶어 하는지, 그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렴풋하게 박지민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박지민은 진득하니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박지민 이것도 요새 수상해. 말수가 확실히 줄었어. 야, 네가 다리를 다쳤지 입을 다쳤냐? 요새 왜 이렇게 조용해?’ 쉼 없이 재잘대던 정호석은 끝내 한숨을 푹 쉬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래. 나부터가 이상하지. 그렇게 시끄럽던 두 것들 사이에서 혼자 떠들고 있으니 말 다했지.”
하소연처럼 들려오는 그 목소리가 왜 그렇게 낯설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미안했는지.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달라진 우리의 변화가 꼭 나 때문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속이 상했다. 그런 나를 아는 건지 박지민은 내 이름을 부르며 엎드려있던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야, 김탄소. 너 컵 있냐.”
“컵? 왜?”
“왜긴 왜야. 물 먹게.”
“어, 사물함에.”
“좀 빌림.”
슬리퍼 뒤축을 끌며 복도로 나가는 박지민의 등은 왜 자꾸 쳐져 보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괜히 속이 시려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직 답하지 못한 민윤기의 문자가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 거렸지만, 잠깐 미루고 싶었다. 푹 한숨을 내쉬는 나를 보던 정호석은 손을 뻗어 내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한숨이 복잡하다.”
“……뭐래.”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정호석의 손을 쳐냈지만, 정호석의 말이 사실이었다. 복잡한 속에 내쉰 한숨인데 당연히 복잡하겠지. 버석하게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고 책상위로 엎드렸다.
밀린 피로가 몰려오는 기분이었다.
*
하교 후, 헝클어진 머리를 비우기 위해 도서관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창밖으로 거무룩하게 어둠이 깔리는 걸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빈손으로 나서기가 민망해 빌려온 책이 외롭게 손에 들려있었다. 터벅 걸음으로 교문을 나서면서 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자 한숨이 복잡하다던 정호석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리고 지나갔다. 왜 이렇게 속이 복잡해졌을까. 단순무식하게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던 나였는데, 요즘 왜 이렇게 변해버린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전과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나는 민윤기를 좋아했고, 여전히 박지민은 나의 친구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좋아하던 민윤기와는 조금 더 가까워졌고, 그렇게 친하던 박지민과는 조금의 거리감과 알 듯 말 듯 알 수없는 감정이 존재함을 알아차렸다는 것. 이것들로 어떻게 내가 변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렇게 변한 나를 또 실감하고 있었다. 말수가 줄고, 한숨이 늘고. 땅을 내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인 채 걸었다.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내 바쁜 발을 내려다보면서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웠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게 편했다. 조용한 하굣길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박지민이 다리를 다치면서부터였다. 혼자 하는 하굣길에 이런저런 생각들로 든 것 없는 머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던 게 그쯤에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 즈음부터 민윤기와의 만남도 잦아졌고, 거리도 좁혀졌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박지민이 달라졌고, 다른 의미로 어려워졌다. 문제의 시발점이 거기였을까. 아니, 과연 지금의 상황을 ‘문제’라 칭해야 하는 걸까.
“왜 이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걸어. 그러다 앞사람이랑 부딪치면 어쩌려고.”
한참 또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러다 별안간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고,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내 뒤를 따라 걷고 있었던 것 같은 민윤기를 볼 수 있었다. 땡글해진 내 눈을 보며 싱긋 웃던 민윤기는 천천히 내게로 걷어왔다. 그러면서 얼마나 생각을 깊이 하고 있었으면 뒤에서 따라오는 소리도 못 들었냐며 나를 나무랬다.
“여자가 겁도 없이 혼자 걸어가면서 아무 경계도 안 하면 어떡해? 그러다 누가 업어 갈라.”
“뭐야?”
“뭐긴 뭐야. 보면 몰라? 너 기다리고 있었잖아.”
걷던 걸음보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와 내 옆으로 와서 선 민윤기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깨 끝에서 전해지는 따스함에 다시금 쿵쾅대기 시작한 심장이 아직 죽지 않았다며 난리를 피워댔다. 무슨 일로 민윤기는 혼자였다. 늘 함께 있던 친구들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었는데 입을 꾹 다물었다. 엊그제 내게 진지한 눈으로 가까워지고 싶다 말하던 그때 그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와 왜 가까워지고 싶은 걸까. 다음에 해주겠다던 그때 그 말은 뭘까. 궁금증이 연쇄적으로 떠올랐지만 뒤늦게야 떠오른 박지민의 얼굴이 모든 것을 상쇄시켰다. 윤기야, 나는 왜 너를 보면 박지민이 떠오를까. 마치 연결고리가 달려 있는 듯, 너를 보면 박지민이 떠올라 가슴이 시큰거릴까. 이유를 묻는다면, 민윤기는 과연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민윤기는 내 눈동자를 빤히 보다 물었다. 나는 한껏 복잡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괜히 말 머리를 돌려보았다. ‘날 왜 기다렸어?’ 내 물음에 민윤기는 마치 어이가 없다는 듯 허― 하고 웃었다.
“왜 기다렸겠어?”
“왜 기다렸는데?”
“너랑 같이 가려고 기다렸지.”
“나랑?”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너 데려다주려고.”
민윤기는 모든 말을 빙빙 돌려서 하는 편이 아닌 듯 했다. 뭐든 하고자 하는 말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인 듯 했다. 여전히 강하고 날렵한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나를 보며 민윤기는 또 배시시 웃었다. 왜 자꾸 웃어주는지, 그렇게 웃을 때마다 내 심장이 아픈 건 알기나 하는지. 민윤기는 어째서인지 나만 보면 싱글벙글 이었다. ‘왜 자꾸 웃어.’ 그래서 괜히 한 번 퉁명스럽게 말해 봤다. 그러자 민윤기는 더 입 꼬리를 끌어 올리면서 웃었다.
“몰라. 너 보면 웃음이 나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
“여기 있잖아.”
“……….”
“가만 보면, 넌 진짜 순수한가봐. 별로 내숭을 떠는 것 같아 보이진 않는데, 하는 말들이나 반응이 되게 순수해.”
어쩌자고 내 옆에서 저런 낯 뜨거운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어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보다 한 박자 늦게 걸음을 뗀 민윤기는 내 걸음에 맞추어 걸으려는 듯 보폭을 좁혔다. 내가 대답이 없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민윤기는 한동안 말없이 내 옆에서 걷기만 했다. 그다지 무겁지는 않은 공기가 우리 사이에 끼얹어졌고, 나와 민윤기는 꽤 어색함 없이 그 침묵을 견뎌냈다.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정호석과 박지민을 제외한 누군가와 아무런 말도 없이 어색함을 물릴 수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게 신기한 일이었다.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 나란히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에 섞인 민윤기의 숨소리에 귀가 기울여졌다. 답답한 소리였다. 슬쩍 올려다보니, 조금 구겨진 미간이 눈에 들어왔다. 기껏 날 기다렸는데, 이런 재미없는 반응이라 실망했나. 어쩌지, 좋은 티를 낼 수가 없는데. 괜히 또 소심한 성격에 민윤기를 무시하진 못하고 전전긍긍 대다 나도 모르게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내버렸다. 그 소리에 나를 내려다본 민윤기의 시선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마주쳐버린 두 눈에 쿨럭― 입에서 어색한 기침도 튀어 나왔다.
“내가 이러는 게 싫어?”
“어?”
“전에 내가 말했잖아. 너랑 가까워지고 싶다고.”
“으응.”
“내가 이러는 게 싫으냐고.”
전혀 싫을 리가 없었다. 격하게 고개를 내저었더니, 머리를 갸웃하면서 ‘그럼 왜 그러는데?’ 라고 묻는다. 뭘 왜 그러느냐 묻는지 몰라서 어벙벙하게 눈만 깜빡였다. 그랬더니 민윤기는 내 머리위로 저의 큰 손을 얹으면서 ‘대체 왜 그러는데.’ 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한숨소리가 제법 내가 뱉는 한숨 소리와 비슷하다 생각했다.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면서 서운한. 그리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한숨소리. 다가가도 다가가도 멀어지던 예전의 민윤기를 보면서 내가 내뱉던 그 한숨소리. 늘 박지민이 듣고서 혀를 차던 그 한숨소리와 참 비슷했다. 내가 착각한 건 아닌가 싶어 민윤기의 두 눈을 빤히 보았다. 나를 담고 있는 검은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많이 어두웠다.
“아니. 좋아.”
처음으로 민윤기 앞에서 ‘좋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민윤기는 내 대답을 듣고서 한참 동안이나 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대답이 뭐 잘못 됐나 싶은 생각이 들 때 즈음, 민윤기는 내 옆으로 한걸음 더 다가왔다. 꽤 많이 가까워진 거리에 내가 뒤로 한걸음 물러나려하자, 민윤기는 그러지 못하도록 내 어깨를 움켜쥐었다.
“뭐가 좋은데?”
그리고 집요하게 물었다. 그에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대답은 ‘너’ 라는 대답뿐이었고, 나는 그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왜인지는 몰라도, 용기도 자신도 없었다. 과연 내가 그를 좋아해도 되는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 내 대답에 민윤기가 멀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진득하게 따라붙는 민윤기의 시선을 피했다. 고개를 돌린 나를 여전히 바라보면서 민윤기는 다시 물었다.
“뭐가 좋은데? 어?”
입술을 꾹 다물음으로써, 대답하기 곤란한 내 처지를 표현했다. 민윤기는 그렇게 짓궂은 성격은 아닌지, 내 반응에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 했던 심장이 조금 수그러들고, 민윤기는 좀 전과 같은 한숨을 다시 내쉬었다.
“널 한 번 안아봤음 좋겠어.”
그리고 그렇게 말했다.
“박지민이랑 그렇게 많이 친해?”
그리고 계속해서 중얼 거리는데,
“……안아도 봤겠지.”
그 목소리에 어쩐지 나는 뛰던 심장이 씀뻑하게 아리는 것만 같았다.
*
민윤기는 제가 했던 말처럼,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아파트를 올려다보면서 여기에 사는 거냐는 그의 물음에 고개만 끄덕 했다. 조심히 들어가라며 흔드는 민윤기의 하얗고 곧게 뻗은 손이 눈앞에서 나풀거렸다. 아무 표정 없이 민윤기를 빤히 보고 있자, 적당히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는 더욱 더 다정해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할 말 있어?”
“……….”
할 말은 없었다. 건넬 말이라고 해봤자, 너도 조심히 잘 들어가라는 그런 시시한 것들뿐이었다. 고개를 모로 저었더니 민윤기는 그럼 왜 그러냐는 듯 어깨를 들썩였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전부터 줄곧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슬리던 게 있긴 했는데, 과연 물어봐도 될는지가 조심스러웠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긴 한데.”
“뭔데?”
민윤기는 머뭇거리는 나를 보며 괜찮다는 눈을 찡긋했다. 입술에 일어난 껍질들을 이로 물어뜯다 조심히 벌린 입에 민윤기는 온 신경을 쏟고 있는 듯 했다.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처음은 역시 ‘있잖아’ 로 시작했다.
“나랑 왜 가까워지고 싶은지 물어봐도 돼?”
“이유?”
“응. 전엔 내가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하면 피했었잖아.”
“내가 너를 피했었다고?”
민윤기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 말에 진심이 묻어나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동안 느꼈었던 민윤기의 밀당 같은 철벽은 나 혼자만 느꼈던 것이었는지 민윤기는 모른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입술을 꾹 늘린 나를 보며 그는 피식 웃었다. ‘내가 너를 피했었다니. 말도 안 된다, 그건.’ 잔잔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린 혹시나 상처받았을 나를 위로하려는 듯 해보였다. 아니면 말고―라는 식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민윤기는 그런 나를 굳이 물고 늘어지지는 않았다.
“나는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눈 위로 아슬하게 떨어진 그의 앞머리가 우리 사이를 스쳐 지나는 바람에 흩날렸다. 예전에 비해 민윤기를 마주하고 있는 게 꽤 자연스러워 졌다. 더 이상 손을 떨지도 않았으며, 그의 눈을 피하는 일도 없었다. 여전히 다정한 민윤기는 어제만큼이나 오늘도 다정했고, 과연 그 다정함이 나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내 앞에서 다정한 미소를 띠워주었다. 어찌보면 나는 내가 원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얻어가고 있는 것과도 같았다. 조용히 입을 연 민윤기는 내 앞으로 한걸음 다가왔다. 민윤기보다 한 계단 위에 올라있던 나는 가까워진 거리에 계단 하나를 더 올랐다. 민윤기는 그런 내가 제게서 더 이상 멀어지지 않도록, 내 팔목을 붙잡았다.
“문자 답장 좀 해줘.”
“……….”
“네가 오늘 답장 안 해줘서,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있었으니까.”
“……….”
“들어가 봐. 나도 이만 가볼게.”
민윤기는 다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이번엔 제가 먼저 뒤를 돌아 내게서 멀어져갔다. 어깨에 걸쳐진 크로스백이 민윤기의 무릎과 부딪치면서 풀썩거리는 마찰음을 냈다. 한번쯤 뒤 돌아보진 않을까, 계속해서 그에게 눈을 떼지 않았지만 민윤기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내 답장을 기다렸다던 민윤기의 말이 꿈처럼 느껴졌다.
환상 같은 현실 속에서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손에 들린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타이밍 한번 멋있게 전화를 건 사람은 박지민이었다.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놓고 박지민은 말이 없었다.
“뭐야. 전화 왜 했어.”
-…어디야?
“집.”
-집이야?
“응.”
어딘지 묻던 박지민은 또 말이 없었다. 훅 짜증이 올라오려던 찰나 박지민은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허무하게 끊긴 전화에 당황할 새도 없이 민윤기에게서 문자가 왔다. [왜 아직 답장 안 해줘.] 멍했던 정신이 다시 돌아왔다. 앗차― 하며 핸드폰 위로 손가락을 놀렸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리는 사이 뒤에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주차된 자동차 틈으로 사라진 그 발끝은 하얀 붕대를 감고 있었다.
[답장이 느린 거야, 아니면 답장하기가 싫은 거야?]
그 사이를 못 참고 독촉문자를 보내는 민윤기 때문에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며 답장을 보냈다. ‘의외로 성격이 급하시네.’ 내 시큰둥한 문자에도 민윤기는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키득거리며 또 다시 답장을 보냈다. 문자는 한참동안이나 계속 오고갔다.
그때는 몰랐다.
핸드폰을 보느라 숙인 고개에 등 뒤로 태양이 타들어가며 예쁜 노을을 만들어 내고 있는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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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화양연화는
네가 내 곁에 있는 지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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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제자리 걸음인 것 같은 건 제 기분탓 만은 아니겠죠(쿨럭) 다, 다음화에서 진도 뺍니다. 저는 약간 그런 게 좋아요. 선키스 후고백 이런거(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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