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
EP.06
전학생 ep 6
그 사건이 있는 뒤로 정국이는 정말로 나의 슈퍼맨이 되 주었다. 다음날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그 앞에 정국이가 서 있었다. 정국이는 내가 나온 것을 확인하더니 내가 여긴 어쩐 일이냐고 묻기 전에 나를 앞서 걸었다. 그 뒷 꽁무니를 쫓아가면서 나를 데리러 온 것이냐고 물었지만 정국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고 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내 뒷 꽁무니 졸졸 쫓아오기에 나에게 할 말이 있냐고 물었더니 가던 길이나 가라고 손을 앞으로 훠이-훠이- 내저었다. 그렇게 우리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정국이는 잘 들어가라고 말을 해줬다. 그렇게 정국이는 매일을 나를 기다리고, 데려다주었다. 안 그래도 된다고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지만, 정국이의 고집이 여간 센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호의를 그냥 받아드리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변화가 있었다. 서로의 번호를 알고 나서는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일방적인 내 문자가 더 많았고, 대부분 나의 문자로 시작해서 나의 문자로 끝나고는 했지만, 그래도 정국이는 문자에 답장을 보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사소한 문자 하나까지도.
2015년. 4월 28일. pm.6:15
[오늘도 데려다 줘서 고마워.]
[어.]
2015년. 5월 4일. pm.8:07
[내일 수학 과제 해와, 알겠지? 안 해오면 손바닥 5대 맞는다구.]
[어.]
2015년. 5월 3일. pm.4:22
[내일 학교 안 가는 날인 거 알지?]
[어.]
[어 말고 응 이라고 대답해주면 안 돼?]
[응.]
“빨리 들어가.”
“덥지 않아?”
“더워.”
“거 봐. 이제 안 데려다 줘도 된다니까? 그때 3학년들 요새는 잠잠하잖아.”
“어차피 가는 길이야.”
“그래도...”
정국이는 항상 내가 이제는 필요 없다며, 데려다 주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마다 어차피 자신의 집과 가깝다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부담스럽다거나 싫다거나 그런 건 절대로 아니었다. 다만,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괜히 더 고생하는 건 아닐까 미안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이제는 혼자 가는 길이 어색할 지경이었다. 혼자라는 건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내 삶의 반경 한 곳에 정국이 들어와 있었다.
“빨리 들어가기나 해. 더워.”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겠다고 버티고 서 있는 정국에게 더 이상 뭐라 말하지 못하고 그냥 손을 두어번 흔들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현관문을 열려고 문고리를 잡기도 전에 문 밖으로 점점 큰 소리들이 들려왔다.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였다. 점점 더 데시벨이 커졌다. 싸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문고리에 올라갔던 손을 힘없이 내렸다. 그리고는 현관문 앞에 몸을 숙여 앉았다. 엄마와 아빠는 오빠가 그렇게 되고나서 부딪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빠는 나에게 집착하는 엄마를 탐탁치않아 했고, 엄마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아빠가 미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둘이 한 공간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주 싸웠다. 아빠가 자주 회식을 하거나 외근을 나가는 건 엄마와 부딪히기 싫어서 그런 것도 있었고.
싸우는 이유는 대부분 나 때문일 것이다. 지금 문 밖으로 새어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기만 해도 그렇다. 더 이상은 이 곳에 있기 싫었다. 몸을 일으켜서 밖으로 나왔다. 갈 곳은 없었지만, 싸움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때우다 갈 생각이었다.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그때, 우리 집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정국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뒷모습을 나는 재빠르게 쫓았다.
“전정국!”
재빠르게 뛰어가 직진하고 있는 정국이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정국이는 갑자기 어디 선가 튀어 나온 나 때문에 잠시 놀란 듯 했으나, 금방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다. 정국이는 계속 앞으로 걸었고, 그런 정국이의 앞을 가로 막은 나는 정국이의 얼굴을 보면서 뒤로 걷고 있었다.
“뭐야..”
“정국아.”
“왜.”
“나 너네집 놀러가도 돼?”
“어?”
시간을 때운 다면 아무 곳에나 가더라도 충분히 때울 수 있었지만 멀어지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생각이 났다. 정국이와 얼마만큼 친해졌는지 확인 해보고 싶었다. 정국이도 많이 변했고, 나도 많이 변했다. 정국이가 자기 집에 가는 걸 허락해준다면 나는 많이 기쁠 것 같았다.
정국이는 고민을 하는 듯하더니,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의 의미였다.
***
다행히도 정국의 집은 정말 우리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 다행이었다. 매일 데려다주는 정국이에게 조금은 덜 미안해해도 될 것 같았다.
정국이의 집은 처음의 정국이를 닮았다. 크고 화려하지만, 속은 텅 비어보였다. 집은 좋았고 넓었다. 하지만 온기가 없었다. 정국이에게 형제가 있냐고 물었더니 외동이라고 했다. 정국이의 엄마나 아빠가 계실 것 같아서 긴장하고 들어갔는데,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집을 구경하고 있는데 정국이 대뜸 물 컵 하나를 내밀었다.
“물 마셔.”
물을 마시면서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봤더니, 정국이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엄마아빠는 일 나가시고 늦게 들어와.”
정국은 주변을 둘러보는 내가 누군가를 찾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아.. 혼자 집에 있으면 외롭지 않아?”
가끔 엄마가 일찍 들어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혼자 있는 시간은 길었다. 엄마는 공부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간다고 했지만, 그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집에서 혼자 있는 게 얼마나 외로운 건데.
“별로.”
“난 좀 외로운데..”
손에 들고 있는 물 컵을 보면서 그 입구의 원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려가면서 말했다. 남자애들이라 잘 모르는 건가. 혼자 있으면 외롭지 않나. 속으로 생각 하면서 공감을 얻지 못해 입술이 뾰루퉁하게 나왔다.
“놀러 오든가.”
“응?”
“외롭다며. 그럼 놀라오라고, 우리 집.”
“진짜? 그래도 돼? 그래.”
처음엔 잘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물었고, 두 번째로 들었을 때는 놀라서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다가 기분이 좋아졌다. 단순히 놀러갈 곳이 생겨서가 아니라, 혼자 있지 않아도 돼서가 아니라, 정국이가 생각보다 나에게 마음을 많이 열고 있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정국이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많이 좋았다.
“리모컨 쇼파 위에 있어. tv 보고 싶으면 봐.”
“너는 뭐하게?”
“뭐라도 만들어 줄게.”
“어? 나 괜찮은데? 나 배 안고파!”
“내가 배고파서 그래.”
주방으로 들어가는 정국을 바라보다 소파에 앉아 tv를 틀었다. tv속에 나오는 것은 한 개그 프로그램이었다. 웃긴 분장을 한 개그맨들이 우스꽝스런 자세를 취하고 사람들을 웃긴다. 나도 그 사람들을 따라 웃었다. 이렇게 집에서 tv를 튼 채 웃어본 적이 얼마나 되었을까.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를 더듬다가 이내 포기했다. 너무나도 먼 과거였다. tv를 보며 웃다가 나는 우리 집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뜻밖의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꼈다.
“음...”
“깼어?”
어느새 뉘어져있는 몸을 일으켰다. tv를 보면서 웃었던 것 같은데.. tv를 보다가 잠들은 듯 했다. 정국이가 덮어준 것으로 보이는 담요를 만지작거리면서 자다 일어나서 멍한 정신을 부여잡으려 노력했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핸드폰을 찾으려 소파 위를 손으로 여기 저기 짚고 있는데, 정국이 바닥에서 핸드폰을 주어 내게 내밀었다.
“너무 잘 자기에 안 깨웠어.”
핸드폰을 건네주려 내게 다가오는 정국에게서 달콤한 내음이 났다. 그 내음에 이끌려 정국을 바라봤더니, 어느새 교복까지 갈아입고 방금 샤워를 하고 나온 듯 머리칼은 물에 젖어있었다.
잠시 그 모습에 취해 있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정국이가 저렇게 샤워하고 그럴 동안이나 깨지 못했다면, 난 대체 얼마 동안이나 잔 것일까. 빠르게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헤-! 벌써 8시가 넘었네?!”
시간을 확인하자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9시가 다 되가는 시간이었다. 2시간이 넘도록 남의 집에서 자다니. 게다가 엄마에게 말도 안하고 왔다. 그것까지 깨닫고 나니까 몸이 저절로 일으켜졌다. 소파 앞에 두었던 가방을 빠르게 메고, 순식간에 신발장으로 가서 신발을 신었다.
“야! 데려다 줄게!”
“아냐! 길 알아!”
급하게 쫓아 나오는 정국이에게 내일 보자고 인사를 하면서 문을 닫아버렸다. 마음이 바쁜데 정국이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집에 가는 게 우선이었다. 문이 닫히자, 몸을 돌려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엄마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친구 집에 놀러 갔다고 하면 잔소리를 들을테고. 9시가 다 되서 들어가면 다시는 친구 집에 못 가게 할텐데... 그렇게 딴 생각을 하면서 뛰었더니 미처 앞에 있는 사람을 못 보고 어깨가 부딪혀버렸다.
“아.. 죄송합니다.”
“네가 왜 그 집에서...”
박지수 언니였다. 언니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싶었지만, 들어 줄 시간도 없었고, 듣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래서 언니가 말을 이어가려는 걸 무시하고 계속 집으로 뛰었다. 마음이 급했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뛰었을까 헉헉- 대는 숨소리를 고르며 조심히 현관문을 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싸우다 지쳤는지 잠들어있었고, 아빠는 집에 없었다.
졸였던 마음이 순식간에 긴장이 풀렸다. 엄마가 깨지 않게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방으로 들어간 뒤, 가방을 내려놓고 침대에 앉았다. 핸드폰을 확인하니 정국이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집에 도착하면 문자해.]
문자를 보고 아까의 정국이를 떠올렸다. 항상 경계와 밀어내는 것을 반복했던 정국이 어느새 18살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정국의 앞에서만은 18살의 소녀가 되는 것은 분명했다. 정국의 앞에서는 더 이상 어른스럽지 않아도 되었다. 더 이상 과거 속에 나를 가두지 않아도 되었다. 정국이를 빨리 만났다면 나는 진즉 어른이 되지 않아도 되었을까.
[나 방금 도착했어!]
답장을 보냈다.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을 보고는 침대에 누웠다. 근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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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댓글로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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