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날이 많이 풀린 건지 집으로 걷는 길은 꽤나 따스했다. 그 때문인지 거리에는 꽃 구경을 더불어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했다. 내 옆에서 함께 걸으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던 준회가 웃으며 말했다.
“손가락 멀쩡해졌네.”
“별 거 아니었대. 고치는데 10분도 안 걸렸어.”
“나 몸이 좀 가벼워진 것 같아.”
“손가락만 고친 걸.”
“그래도, 기분 탓인가.”
한껏 좋아보이는 준회의 표정에 맞춰 나도 작게 웃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무의식적으로 내 발걸음은 준회와 함께 집을 향했지만, 내 머릿속은 조금 전 들었던 상상도 못 한 이야기로 어지러웠다. OFF. 준회가 내 옆에서 사라지게 된다는 것.
나에게는 곰곰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소음, 빵빵거리는 경적소리 등이 내 머리속을 불편하고 어지럽게 만들었다.
살짝 굳은 내 표정을 본 건지 준회가 내 어깨에 제 팔을 둘러왔다.
“주인님, 어디 아파?”
“…어? 나?”
“응. 표정이 안 좋은데.”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까?”
“아냐. 전혀.”
“정말로?”
“그럼. 사실, 지금 배가 좀 고파.”
내 말에 준회가 웃으며 날 조금 더 품으로 끌어안고 말했다.
“하여튼, 우리 주인님은 곰이라니까.”
“언제는 잠을 많이 자서 곰이라며?”
“많이 먹는 것도 곰을 닮았어.”
준회의 말에 괜히 입술을 한 번 삐죽이곤 준회의 배를 팔꿈치로 아프지 않게 툭 쳤다.
“조금 더 예쁜 걸 닮았다고 해주면 안 돼?”
“예를 들면 어떤 거?”
“토끼, 강아지, 고양이, 뭐 이런 것들 있잖아.”
내 말에 날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준회가 피실 웃으며 말했다.
“그런 동물에선 주인님의 느낌이 전혀 없는 걸.”
“씨이….”
“그리고 난 그런 것들 보다,”
말을 하다 잠깐 멈춘 준회가 내 머리에 제 볼을 부볐다.
“곰 같은 주인님이 더 좋아.”
준회의 말에 피실 웃으며 아프지 않게 준회의 배를 다시 한 번 툭 쳤다. 하여튼 사탕 발린 말은 잘해, 너. 그런 내 핀잔에도 준회는 제 볼을 몇 번 더 부비며 말했다. “이번 샴푸 향기 좋다.”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준회가 말을 이었다. “앞으론 이 샴푸만 쓰자.”
준회의 말에 나는 잠깐 뜸을 들였다가, 마지못해 “…응.” 하고 답했다. 왠지 모르게 내 마음의 한 켠이 불편했다.
26
일은 많았지만 도무지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구준회가 처음으로 내 이마에 제 입술을 쪽, 하고 붙였다 떨어진 그 날 이후로 이렇게 일에 집중을 하기 어려운 건 처음이었다. 결국 내놓은 보고서는 가관이었고, 도무지 끝까지 읽을 수가 없는 수준이라 제출을 위해 뽑았던 종이들을 그대로 책상 위로 엎었다. 그런 내 옆으로 다가온 선배가 내게 커피잔을 내밀며 말을 걸었다.
“이거 마시고 해.”
“아, 선배.”
“보고서는? 표정을 보아하니 영 아닌 것 같긴 한데.”
“…미치겠어요.”
여러가지 이유로.
내 대답을 들은 선배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물었다. “오늘 마치고 맥주나 한 잔 할까?”
그 물음에 뭐라고 답을 할까 고민하다가, 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늦게 들어갈 것 같아. 집이랑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렇게 늦진 않을게, 조금 있다가 봐. 준회와 짧은 통화를 끝내고 맥주집 안으로 들어가자 미리 자리를 잡아둔 선배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여기.” 하고 날 부르는 선배의 손길에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잔 두 잔, 비운 잔들이 늘어갔다. 많이 마시진 않기로 했는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맥주잔을 잡아 또 한 모금을 꼴깍였다. 맞은편에서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배가 물었다.
“술 잘 못 마시잖아. 그렇게 많이 마셔도 돼?”
“별로 많이 안 마셨어요.”
“네 앞에 있는 잔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그런 선배의 말에 대답 대신 푸스스 웃자, 선배가 꽤나 진지한 얼굴로 내게 물어왔다.
“무슨 일 있지?”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요?”
“오늘 너 정신이 종일 딴 데 가있는 거 같아서.”
“…그랬나.”
“아무 것도 안 하고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었잖아.”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대답과 함께 다시 한 모금 맥주를 꼴깍이자 맥주잔이 바닥을 보였다. 언제 이렇게 다 마신 거지. 아쉬운 마음에 잔의 바닥을 바라보자 맞은 편의 선배가 피실 웃으며 내 잔을 채워주었다.
“정말 무슨 일 있는 거야?”
“…글쎄요.”
“왜, 네 휴머노이드가 또 시계를 부수기라도 해?”
다시 채워진 잔을 잡으려던 내 손길이 휴머노이드라는 말에 순간 멈칫했다. 양손으로 잔을 감싼 채로 괜히 찰랑이는 맥주만 바라보았다. 휴머노이드, 우리 준회가 시계를 부수기도 했었지…. 준회를 생각하자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좋은데, 정말 생각만 해도 좋은데,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울컥한 기분을 꾹꾹 누르곤 선배를 향해 피실 웃으며 말했다.
“이젠 시계 안 부숴요.”
“그럼 대체 무슨 일이길래 네가 이러는 거야.”
선배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아무 일도 없어요. 걱정 안 해도 돼.”
술자리는 빠르게 정리되었고 밖으로 나오자 저녁이라 그런지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다. 데려다준다는 말을 정중하게 거절하곤 혼자 집을 향해 걷는 길,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랑이는 느낌이 좋아 푸스스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벽에 기대어 선 검은 실루엣 하나에 내 시선이 멈추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준회…?”
혹시나 싶어서 불러본 내 목소리에 그 실루엣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내게로 다가왔다. 가까워지는 그 모습에서 준회의 얼굴을 확인하곤 살짝 웃자 준회 또한 날 보며 웃었다. “누나.” 그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며 준회에게로 쪼르르 걸어갔다.
“어떻게 왔어?”
“휴대폰.”
“…휴대폰?”
“주인님 휴대폰 좀 몰래 읽었어.”
“너어!”
내 핀잔에 준회가 피식 웃으며 손을 잡아왔다. 그런 준회가 밉지 않아서 잡힌 손을 조금 더 꼭 잡자 준회가 킥킥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함께 걷는 길은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바쁘게 살던 중에는 보지 못 한 풍경이었다. 이 길은 여전히 푸른 나무가 가득했고, 만개한 꽃이 가득했으며, 향긋한 내음으로 가득했다. 아무런 말이 없이도 준회와 함께 걷는다는 사실이 더욱 내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는 듯 했다. 가만히 나와 걸음을 맞춰 걷던 준회가 나즈막히 물어왔다.
“술은 왜 마셨어?”
“그냥.”
웅얼거리며 답하는 내 표정을 살피던 준회가 제 손에 잡힌 내 손등을 살살 문지르며 말했다.
“기분이 별로 안 좋아보여.”
“나?”
“응.”
“나 지금 기분 되게 좋은데.”
“그런가.”
뭔가 찜찜한 표정으로 날 힐끔, 다시 바라본 준회가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 있었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그렇구나.”
뭐라고 더 물으려던 준회는 말을 멈추곤 나와 잡은 손을 앞, 뒤로 흔들었다. 그런 준회의 움직임을 따라 팔을 움직이던 내가 준회를 향해 물었다. “저녁엔 뭐 했어?” 괜히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한 내 물음을 아는 건지, 준회도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으며 내 물음에 답해왔다. 영화 봤어. 주인님, 그 영화 봤어? 국제시장. 이게 꽤 유명하….
뭐라고 길게 답을 해오는 준회의 말을 들으며 간간히 고개를 끄덕였고, 또 간간히 “응.” 하는 짧은 답을 하기도 했으며, “그렇지.” 하는 맞장구와 함께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조금 전 선배와 나누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준회가 물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회사에서 속상한 일 있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준회야.
구준회.
내가 속상한 건… 다 너 때문이란 말이야.
27
요즘 들어 잠을 깊게 잘 수가 없었다. 새벽 즈음에 눈을 뜰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더듬거려 준회의 흔적을 찾았다. 나를 안고 있는 준회의 품, 그리고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준회의 숨소리, 날 감싸고 있는 준회의 팔을 느끼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행동에 준회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그래?”
귓가에 속삭이는 준회의 목소리에 나는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아니야.”
짧은 답과 함께 고개를 젓곤 다시 잠에 들기 위하여 눈을 감자, 준회가 피실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야.” 작게 웃으며 준회는 나를 품으로 조금 더 당겼다.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나는 깊은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밤 중에 준회를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28
회사에서 새롭게 진행되는 사업 때문에 평소보다 해야할 일이 두 배로 뛰게 되었다. 물 한 모금 마실 여유도 없이 종일을 바쁘게 지내는 통에 정신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수정을 위해 인쇄한 종이를 빠르게 읽어내려가던 나는 옆에서 들리는 띵동, 하는 짧은 휴대폰 알람에 자연스레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휴대폰의 상태메세지 창에는 새로운 메세지가 왔다는 표시가 깜빡이고 있었다.
“누구지….”
왠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피어올랐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확인할까 하던 중, 품에 한아름 종이를 안은 후배가 내 옆으로 종이를 내려놓았다.
“선배. 이것도요.”
“이 많은 걸 다?”
“아직 놀라긴 일러요. 이 만큼씩 아직 세 박스나 더 남아있으니까.”
“하아….”
절로 새어나오는 한숨을 푹 내쉬곤 휴대폰을 향해 뻗던 손을 거둬 양손으로 내 이마를 감쌌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오늘 퇴근할 수 있을까…. 앞이 깜깜했다.
결국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게 되었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곤 겨우 휴대폰을 확인하자, 조금 전 확인하지 못 했던 메세지 하나와 함께 두 통의 부재중 전화가 쌓여 있었다. 모두 집에서 온 전화였다. 늦는다고 미리 말을 못 했구나…. 내 걱정을 하고 있을 준회를 생각하면서 아까 미처 확인하지 못 했던 메세지를 꾹 눌렀다. 익숙한 메세지함이 뜨고, 짧게 적힌 메세지에 순간 차로 향하던 내 걸음이 멈추었다.
「휴머노이드 K, 142857의 자동 off일은 4월 31일입니다. 문의하실 사항은 ***-****으로 전화, 혹은 직접 서비스 센터로 방문해주시면 됩니다.」
잘못 읽은 건가 싶어서 다시 한 번 문자를 읽어보았다. 하지만 다시 읽어도 내용은 조금 전과 같았다. 순간적으로 다리에 힘이 풀려 휴대폰을 잡지 않은 손으로 건물 벽을 짚었다. 오전, 오후에 바빴을 때처럼 머리가 핑 도는 기분이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강제 off라는 건가? 이건 누군가가 신청을 해야하는 거라고 그랬는데, 대체 누가? 도무지 이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내 머리로 오전에 보았던 탁상용 달력의 모습이 스쳤다. 오늘 날짜 24일, 그리고 준회가 종료되기로 한 날은 31일. 그 날까지는 겨우 일주일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에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선 나는 바보 같이 멍하니 휴대폰만 바라보았다. 내 손이 조금씩 떨려왔고, 겨우 정신을 차린 나는 메세지에 적힌 번호를 꾹 눌렀다. 번호를 누르자 곧바로 서비스 센터로 전화가 걸렸지만 서비스 이용 시간이 지나 통화가 되지는 않았다.
불현듯 내 머리에 준회의 모습이 그려졌다.
…알고 있었구나, 구준회.
준회는
…알고 있었어.
여전히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내 발걸음은 재빨리 차로 향했다. 어지러운 생각들 중에서도 가장 내 머리를 헤집어놓은 건,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29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자 늘 그렇듯 준회가 웃으며 날 맞아주었다. “늦었네.” 하고 날 내려다보는 준회를 올려다보며 대답 대신 다른 말을 먼저 꺼냈다.
“너, 알고 있었어?”
“…어?”
“알고 있었냐고.”
“뭘?”
되묻는 준회의 표정을 빤히 바라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화를 담은 목소리로 답했다.
“알고 있으면서 뭘 묻는 거야, 너 지금.”
내 목소리에 준회가 잠깐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날 내려다보았다. 그런 준회의 침묵에 나는 왠지 모르게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아는구나, 정말로 아는 구나. 아는 거구나…. 고개를 푹 숙이는 내 행동에 준회가 당황한 듯 나를 품으로 끌어 당겼다. 그리곤 내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아왔다.
날 안아주는 준회의 행동에 더욱 눈물이 차올랐다. “왜 울어.” 나즈막한 준회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결국 눈물이 볼을 타고 쭉 흘러내렸다. 주먹으로 준회의 등을 때리며 눈물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뭐야. 대체 뭐야, 너.”
“…….”
“너 대체 뭐냐구….”
“…….”
“이렇게 네 마음대로 다 해버리면 돼? 그럼 되는 거야?”
“…….”
“이건 너무….”
이기적이잖아.
엉엉 울며 중얼거리는 내 말에 준회가 가만히 내 등을 토닥였다. “미안해, 미안해.” 준회는 다른 대답 없이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나는 그런 준회의 말에 더욱 더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준회의 티셔츠는 내 눈물로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다.
“네가….”
네가 뭐가 미안해, 준회야….
우리는 누가 누구에게 미안해야 하는 걸까.
30
여행을 가기 위해 아껴두었던 휴가를 모두 냈다. 거의 매일을 사용하던 노트북도 한 번도 켜지 않은 채로 오로지 준회와의 일주일을 계획했다. 딱히 거창한 것은 없었다. 우리는 늘 그렇듯 함께 밥을 먹었고, 티비를 보고, 영화를 보고,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으며, 간간이 데이트 아닌 데이트도 즐겼다. 그리고 밤에는… 여러가지 의미로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낸 우리였다.
평소와 같이 준회의 품에 안겨 웅얼거렸다.
“자고 싶지 않아.”
“벌써 새벽 3시가 다 됐는데?”
대답 대신 고개를 저으며 준회의 옆구리를 살살 쓸자 준회가 피실 웃으며 물었다.
“한 번 더 할까?”
“으이구.”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자 준회가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왔다. 나와 눈을 마주한 준회의 눈동자는 꼭 우주만 같다. 빨려 들어갈 것 같아. 일 분 일 초 눈에 담기도 벅찼다.
“준회야.”
“응.”
“나는 언제 이렇게 널 좋아하게 되버린 걸까.”
“안 좋아하고 버텨? 이렇게 멋있는데.”
“어련하시겠어.”
내 말에 피실 웃은 준회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왔다.
“주인님.”
“응.”
“142857.”
“어?”
“이게 뭔지 알아?”
갑작스러운 준회의 물음에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하고 묻자 준회가 내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142857은 신기한 수야.”
“신기한 수?”
“이 수에 2를 곱해도, 3을 곱해도, 4를 곱해도 나오는 숫자는 142857, 여섯 개야.”
“어?”
“142857, 각 자리의 숫자들이 자리를 옮긴 것과 같다는 말이야.”
준회의 말에 알 듯 말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짓자, 준회가 내 표정을 보곤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크러트렸다.
“모르겠어?”
“…어려운 걸.”
“그래. 뭐, 그런 건 몰라도 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니까.”
“그럼 이 수는 갑자기 왜 얘기한 거야?”
“번호야.”
“무슨 번호?”
“내 제품 번호.”
말을 마친 준회가 내 손을 잡아왔다. 그리곤 내 손바닥 위로 제 손가락을 이용해 뭐라고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humanoid K, 142857.
준회의 말에 웃음을 살짝 지우고 준회를 바라보자, 준회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끔은 잊고 살아도 괜찮아.”
“…….”
“그래도 142857은 주인님에게 특별한 수가 되었으면 해. 오로지 나로 인해서.”
“…….”
“뭐, 내가 이 곳에 온 날을 내 생일이란 특별한 날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의미야.”
준회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꾹 다물고 준회를 바라보는데 왠지 조금씩 눈물이 차올랐다. 눈에 눈물이 조금씩 고이는 걸 바라보던 준회가 “울지마.” 하는 말과 함께 내 눈가를 문질러주었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나는 멍청해서 내 생일도, 네 생일도 잘 기억 못 해.”
“…….”
“엄마 번호는 물론이고 내 휴대폰 번호까지 가끔 잊기도 해.”
“…….”
“하지만 넌 잊지 않을게.”
목이 메이는 느낌에 잠깐 말을 멈추었다. 차오르는 눈물을 꾹 누르곤 겨우겨우 다시 말을 이었다.
“…142857, 그리고… 구준회.”
울먹이는 내 목소리에 준회가 웃으며 나를 제 품으로 당겼다. 날 가만히 쓰다듬던 준회가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당신을 만져도 돼?”
“…응.”
“당신을 안아도 돼?”
“그래.”
“입 맞추고 싶어.”
“…….”
“그래도 돼?”
…좋을대로 해.
*
30화까지 함께 달려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휴머노이드는 다음 편에서 완결이 됩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
오랜만이에요 여러분! 잘 지내고 있어요? 다들 방학은 했나? 저는 방학인데! ♡.♡ 슬프고도 아린 오늘의 분위기와 맞는 BGM을 고르고 고르다가, 고르질 못 해서 오늘은 BGM이 없어요 ㅠ.ㅠ 오늘 글은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읽어주시면 될 것 같아요! bgm 없이 한 번 읽고, 어울리는 bgm 찾아서 또 한 번 읽고, 다시 한 번 감정을 느끼며 읽고! 이건 세 번 읽으라고 제 이쁜이들께 드리는 숙제..? 라고 하면 부담스러우시겠죠..? 헤헤
메르스는 조심하고 있어요? 사람 많은 곳 가지 말고, 이번 방학은 요양이다 하는 생각으로 집에서 쉬어요 메르스 걸리면 안 돼 ㅠ_ㅠ 올 여름은 워터 파크도, 계곡도, 다들 한산할 것 같은 예감.. 원래 들고오려던 꽃신에 예상치 못한 차질이 생겨서 아무래도 다른 글을 들고오지 않을까 싶어요, 이건 뭐, 휴머노이드가 곧 끝나고 난 뒤에 다시 생각을!
오늘 글도 마음에 드셨나요? 제가 가뭄의 단비같다는 얘기 들을 때마다 참 기분이 좋아요..♡ 제 이쁜이들의 마음에 가뭄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지만, 어쩔 수 없는 거라면 제 글이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가 되길 하는 바람! 언제나 좋아합니다, 사랑도 덤으로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