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 아름이 김징어
"시발."
"아침부터 욕질이야. 여자 맞냐."
"개강 진짜 개같네."
"올, 라임ㅋ."
그러니까 오늘이 개강? 내가 벌써 2학년? 수능 샤프 받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샌애긔는 개뿔, 내가 2학년이라니...
그것도 수강신청 핵망으로 월요일 오전 수업을 듣게 된 나는 오늘이 정말 개강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며 현실 욕을 내뱉었다. 나갈 채비를 다 마치고 신발을 신던 나의 쌍둥이혈육인 김종대는 (극혐)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욕은 내 입이 한게 아니야. 내 마음이, 내 진심이 한거라고. 시발.
"끄으어...김종대...가기 싫어...학교..."
"부과대님이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부과대 : 부과대표
신발을 신었지만 현관에 앉아 발악하는 나의 손을 붙들고 끝내 일으킨다. 김종대 이 새끼는 쓸데없이 힘만 세요. 그나저나 나 부과대표구나. 아, 너무 행ㅋ벅ㅋ해ㅋ.
순간 나는 권력에 눈이 멀어 선뜻 부과대표를 하겠다고 나섰던 과거의 나를 매우 원망하며 집을 나섰다. 김종대와 나는 같은 대학교, 다른 과에 다니고 있었다. 결국 같은 공과대학이라 과동은 바로 옆이었지만. 게다가 수업은 왜 이렇게 겹치는게 많은겨. 전공 과목만 빼고 거의 같은 것 같은데? 이 학교의 수준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터덜터덜 애꿎은 길바닥에 불만을 토로하듯 발걸음을 옮겼다.
"야, 너 글대전에 또 올라왔던데."
※글대전 : 글잡대 대신 전해드립니다
"뭐시라?"
"뭐라더라, 기공 14학번 징어누나 기다려요. 내가 간다?"
※기공 : 기계공학과
"...순 또라이 아니야?"
대학교에 와선 고등학교땐 볼 수 없던 온세상 또라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나를 언제봤다고 아는 척이야. 니가 뭔데 내가 기다려야 하냐고!!! 이 와중에도 김종대는 내 옆에서 역시 김징어, 공대 아름이(※공대 아름이 : 공대에 몇 없는 여자닝겐을 일컫음)답네.라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실 글대전에 내 이야기가 올라온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무수히 많은 익명의 남자들이 나를 찾으며 남자친구의 유무를 물었고, ...그 중에 내 남자는 없었다.
"너 민석이 형 때문에 부과대 한다고 한거 아니지?"
"맞는데?"
"..."
"헷. 민석이 오빠 오늘 학교 오려나~"
민석이 오빠라 함은 나의 짝사랑 상대 되시겠다. 내가 1학년으로 들어오던, 그러니까 작년에 복학해 지금 스물 네살로 3학년에 재학중인 김민석오빠는 무려 우리 과의 학회장이었다. 사실 권력도 권력이지만 학생회 임원을 함으로써 민석오빠를 더욱 자주 만날 수 있는 꿀기회를 내가 놓칠리 없었다. 생각만해도 설레어 두 손까지 꼭 모으고 헤, 하며 웃으니 그런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던 김종대가 입이나 닫아, 침흘리겠다. 하며 턱을 올려주었다.
종대와 나는 교문에서 얼마 멀지 않는 곳에서 자취를 했다. 게다가 우리 과동도 교문과 꽤나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민석 오빠 생각에 오늘이 개같던 개강인 것도 잊고 신나게 종대를 향해 손을 흔들고 과동으로 달려들었다.
"김징어!"
"응? 변과대!!"
※과대 : 과대표
"아, 그렇게 부르지마. 부끄럽잖아."
"새끼, 답지 않게 부끄러운 척이야. 공학용 계산기로 쳐맞고싶나."
"미안."
내 사물함이 있는 4층으로 향하기 위해 엘레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다 덮는 길이의 앞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온 닝겐은 바로 변백현(21, 글잡대 기계공학과 14학번 과대표)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얘가 우리과 과대, 내가 부과대라는 말씀. 14학번들아 미안, 우리가 대표라니. 니네 이제 좟댐ㅋ. 물론 우리가 킹왕짱 세서가 아니라, 존나 일을 못할까봐 하는 말이었다, 는 구라고 변백현은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활발하니 과대에 적합하지만 부과대란 나년은 한낱 민석빠순이인걸...☆
"넌 왜 군대 안갔냐."
"...갔음 좋겠어?"
"당근."
"..."
"아니지."
그렇다. 작년 새내기 시절을 함께보냈던 마이 보이닝겐프렌즈들은 거의 입대를 하시고, 남겨진 소수의 여자들은 새로 들어오는 보칵생 옵하들과 다시 친해져야하는 고충을 겪었다.(사실 좋았다. 눈호강 개이득.) 게다가 그들이 군대에서 돌아와도 우리는 4학년, 취업 준비고 눈코뜰새 없이 바빠 어쩌면 반강제로 영원한 이별을 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헌데 내 옆에서 야생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강아지(순화)마냥 실실 웃는 변백현은 군대를 안갔다. 내가 툭 던진 말에 괜히 시무룩해 하더니, 웃으며 말을 바꾸자 금새 표정이 풀린다.
"난 이제 내림. 잘 부탁해. 과대님아."
"어? 어, 응."
4층에서 문이 열렸다. 문이 닫히지 않게 열림 버튼을 누른 상태로 백현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런 내 손을 보며 당황해하던 백현은 내 손을 꼭 잡고 여러번 흔들어댄다. 그런 모습에 씩, 하고 웃으며 엘레베이터에서 내려 사물함으로 향했다. 그 순간 내 앞에 보이는 사물함 쪽에서 빛이 나는거시어따..!!(두둥)까지는 좀 심했고 아무튼 그곳엔 나의 사랑 민석오빠가 있었다. 수업에 가져갈 책을 챙기시는지 어쩜 높은 사물함 위치에 낑낑대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울까..^_____^
"안, 안녕하세요."
"어? 징어 오랜만이네. 이번에 부과대라며? 고생 좀 하겠다."
"아휴, 아니에요."
"오늘 개강파티 있는거 알지? 신입생들 많이 올테니까 거기서 인사 한 번 해야지."
"네, 이따 봬요!"
"그래, 안녕!"
민석오빠는 언제봐도 잘생기고 핸섬하다. 언제나 매너좋고 젠틀하지. 외모계의 전설이자 레전드야. 어쩜 저렇게 잘생긴 고양이처럼 생겼을까. 만약 우리집에서 고양이를 키우게된다면 이름은 시우민으로 지을것이다. 뜻은 시발 우리 민석이. 역시 내 네이밍 센스란 완벽하고 퍼펙트해.
나는 다시 한 번 생각없이 하겠다고 나선 부과대가 된 일이 이 학교에 들어와 가장 잘 한 일임을 확신했다.
***
"월요일 오전부터 전공 강의라니. 최악."
"그래도 오후는 공강이라며."
※공강 : 강의가 없는 시간
"응, 근데 학교 다시 가야 돼. 학생회 회의 있음. 극혐."
집이 가까우니 대부분의 식사를 자취방에서 해결했다. 나는 여자치고 요리를 못하는 축에 속했고, 김종대는 남자치고 요리를 잘하는 축에 속해 늘 나는 밥을 담당했고, 나머지 반찬은 모두 김종대가 담당했다. 오늘도 역시 자취방에 돌아와 함께 밥을 먹는 중이었다.
"오늘 몇시에 오냐."
"오늘 개강파티한대, 요 옆에서 하는데다 나는 부과대니까 아마 늦게 오겠지."
"뭐, 걱정은 안되지만 걱정하는 척 해줄게."
나는 술을 잘마신다. 그래서 별명은 일명 기공 소주여신. 나는 지금까지 취한 적이 없었다. 웬만한 남자들과 상대해도 내가 진 적은 단 한번도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내 앞에서 쩝쩝대며 밥을 먹고 있는 이 새끼는 술을 어지간히 못마신다. 지 자존심으로 한 병은 거뜬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볼땐 반 병도 안되보인다. 나약한 새X.
"간다."
"너무 늦게 오지 말고."
"예, 솊."
***
'누나!!!'
고등학교 2학년이었나, 어느 순간부터 나를 따라다니던 남자애가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리고 키도 고1치곤 고만고만했던. 고등학교를 다닐땐 연애엔 1도 관심이 없었기에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매우 적극적으로 대시했던 그 남자애를 전혀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저 아는 동생 취급만 했었다. 그 남자애는 거의 매일 나에게 매점 조공을 사다 받쳤다. 그러나 지금과는 다르게 수줍음과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항상 김종대를 시켜 그것들을 그 애에게 다시 돌려주곤 했다. 사실 커서 돌이켜보면 잘한 짓인것 같다. 그걸 다 쳐먹었으면 지금 나는 핵돼지가 되어있었겠지.
"누나!!!"
근데 갑자기 이런 얘길 왜 하느냐고? 왜냐면 고등학교 때 간절히 나를 부르던 그 목소리가, 지금 들려선 안되는 이 대학교 과동 안에서, 그것도 내 뒤에서 들려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하고 좌우를 둘러봐도 내 주변엔 여자가 없었다.
설마, 아닐거야. 에이, 그 꼬마애가 지금 여기 있을 이유가 없잖ㅇ...
"악!!!"
"누나!!"
"..."
이름, 오세훈. 나이, 20세. 별명, 징어바라기(라 쓰고 빠돌이라 읽는다.). 요즘 뭐라더라, 그 슬리데린 상? 그래, 아무튼 그런 몽타주가 지금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것도 헤실헤실. 분명 내가 졸업할 때 까지만 해도 그렇게 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젠 나를 아주 내려다 본다.
"...오, 세훈?"
"누나, 완전 오랜만이죠. 그죠, 아, 진짜 어쩐지 뒷모습이 누나 같더라니."
"...야, 너 설마."
순간 뇌리를 스치고 번쩍 떠오르는 오늘 아침 김종대의 말.
"야, 너 글대전에 또 올라왔던데."
"뭐라더라, 기공 14학번 징어누나 기다려요. 내가 간다?"
설마.
"글대전에 글 올린게..."
"헐. 봤어요? 안볼까봐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봤으면 됐어요."
"...근데 너 도대체 왜 여기 있는건데?"
아니나 다를까, 그 글의 주인공은 이 새끼가 맞았다. 그나저나 이 새끼가 왜 여기 있냐고!! 왜!!!
"그야 저는 오늘부터 기공 15학번이니까요~"
"..."
"대학 와서도 누나 후배네요? 대박."
"..."
병신이 아닌 이상 나를 따라 이 과에 왔을리는 없고, 쟤도 엄연히 지 성적 맞춰서 수능보고 온걸테니 딱히 할말도 없고.
내 인생은 왜 이럴까요. 이거 자퇴각 아니고 자살각인듯^^.
"누나 오늘 개강파티 오실거죠?"
"응...가야지."
"그럼 잠시 후에 봐요, 누나."
"어...잘 가."
오세훈 또X이는 내가 누나랑 술을 마시다니, 이거 진짜 대박. 누나 술취하면 애교 쩌는거 아니야? 미친, 개설렌다는 둥 말도 안되는 개잡소리를 하며 나를 떠나갔다.
네, 오세훈 후배님. 저랑 다이다이 한 판 뜨시죠^^.
실로 오늘은 내 생에 가장 다이나믹한 개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끝이 왜저럴까여 완전 뭐 싸다 만 느낌..ㅎ
오랜 휴재로 기존 작품의 감각을 모두 잃어버린 기념으로 글 하나 적어보았습니다
사실 공대 아름이는 무슨 남성화 되어가는 공순이의 한풀이입니다(하하)
배고픈 밤이네요..후
암호닉은 늘 그렇듯 새롭게 받겠습니다 댓글에 잘 보일 수 있도록 티나게 적어주시면 감사합니당
제가 동체시력이 안좋아서 스크롤 내리다 놓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오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