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사람 얘기
올해는 무더운 여름이 평소보다 빨리 찾아온 것 같습니다. 매미 소리가 들리고, 푹푹 찌는 날씨에 다들 손에 부채 하나씩 들고 다니는걸 보니 이제 정말 여름이네요. 시원한 맥주가, 학생들은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이 땡기는 그런 날씨요. 저는 이렇게 더운 여름에는 어디가기도 겁나고 귀찮더라고요. 아무래도 선풍기 한 대 틀어놓고서 집에서 뒹굴거리는게 단연 최고죠. 아마도 지금 이 라디오를 듣고 계신 분들도 저랑 같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참 탁월한 선택이에요. 이렇게 무더운 밤에는 특별하게 어딘가 가시지 않아도 저와 함께하시면 어딜가서 이만한 휴가가 없다고 자랑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정말로요. 오늘도 여러분들의 귀를 달달하게 녹여줄 꿀에펨 라디오 슈가입니다. 네. 지난주부터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사연 신청을 받았는데요. 이번 주제는 아는사람 얘기였죠? 사실 이 주제가 말하고 싶은건 많은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말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잖아요. 근데 이게 가끔은 진짜 아는사람 얘기인가 긴가민가하고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특히 사연이 더 많이 올라온 것 같아요. 정말 많았어요. 근데 게다가 다 재밌어. 진짜 그 중에서 고르느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러면 저 민슈가가 고르고 고른 아는사람 얘기, 지금부터 그 첫번째 얘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대학생 ㅇㅇㅇ입니다. 원래부터 꿀에펨 라디오 진짜 좋아해서 맨날 챙겨들어요. 슙디 목소리 제가 참 좋아하는데요, 한번 가져보겠습니다. 아무튼 평소 같이 듣고 있었는데 사연을 모집하더라고요. 원래 사연 듣는거만 좋아하지 보내고 이런거 잘 안하는데 꿀에펨이니까! 이런 것도 다 해보네요. 그래서 저도 아는사람 얘기 소개할까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꼭 사실은 너의 얘기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이건 정말 진짜 제 친구 얘기에요. 음,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는 좋아하는 남자애가 있었어요. 같은 고등학교였고 옆반 남자애였죠. 고등학교 3년동안 옆반에 누가 있는지 관심도 없었는데 유일하게 딱 하나있는 남자사람친구란 애가 옆반 애인데 되게 잘 생기지 않았냐고 물어봐서 처음 봤대요. 그리고 아마 첫눈에 반했을거에요. 공부에 몰두해야 할 고3때 갑자기 엄청 좋아하게 되었어요.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급식실에서 밥 먹는 것만 봐도, 가끔 그러다가 문득 웃을 때면 설레서 하루 종일 그 애만 생각났대요. 아 맞아,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것도 몰래 훔쳐보고 그랬대요. 사실 좀 많이 잘생겼어요. 키도 크고 성격도 좋고 학교에서 인기도 완전 많았어요. 근데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 여자한테 진짜 관심이 없는거에요. 학교에서 유명한 예쁜 애들이 고백해도 다 거절하고. 그래서 자기도 고백했다가 차일까봐 고백도 못하고 속만 끓이다가 결국 그렇게 졸업했대요. 그렇게 끝일줄 알았는데 근데 이게 참 신기하게도 같은 대학에 가게 된거에요. 말 한마디 못 해본 사이였는데 그 남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걸 알고 먼저 아는 척을 하더래요. 그러다가 인사도 하고 얘기도 하고 연락도 하고 급속도로 친해졌대요. 사실은 친해지기까지 친구가 티 안나게 엄청 쫓아다녔죠. 밥 먹자고 조르고 놀러가자고 조르고. 그냥 고등학생 때 좋아한 줄로만,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봐도봐도 계속 좋은거에요. 그래서 인정했대요. 많이 좋아한다고. 근데 어떻게 된 친구사이인데 어색해지기 싫어서, 그사이 깨기 싫어서 고백도 못했대요. 결국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그 남자가 군대에 갔어요. 그리고 나서야 까이더라도 한번 고백이라도 해볼 걸하고 후회했죠. 후회하고 후회하다가 잊으려고도 했대요. 그래서 소개팅도 여러번하고. 근데 다 마음에 안 들어서, 아니 사실은 그렇다기보단 그 남자를 아직도 못 잊고 있어서 그렇게 계속 솔로로 있었대요. 바보같죠 진짜? 그랬더니 시간이 흐르고 그 남자가 제대를 했죠. 어찌나 기쁘던지. 그 남자 얼굴을 다시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었대요. 그 남자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당황해서 우는거 달래주는데 그게 엄청 엉성했고 눈물은 나는데 또 저렇게 어설프면서도 자기를 달래주는게 좋아서 울음이랑 웃음 참느라 힘들었대요. 아무튼 자기 기억 속에서 둘의 첫 시작은 그렇대요. 그 후에는 둘이 진짜 많이 붙어다녔어요. 주위 사람들이 사귀냐고 물어볼 만큼. 근데 그 말이 어찌나 좋았는지 변명도 안하고 그냥 웃기만 했죠. 그 남자도 웃었대요. 아닌척 하려는 것 같은데 자기도 좋아서 웃는거 다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얼마동안 썸을 타다가 결국 먼저 고백을 했대요. " 나 너 좋아해. 엄청 오랫동안 좋아했고 되게 많이 좋아해. " 진짜 미친듯이 떨렸죠. 정말 이러다가 까이면 어떡하나.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후회했대요. 그래서 쳐다도 못 보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친구를 확 안았어요. 그리고는 뒷통수를 쓰다듬으면서 하는 말이 " 나도 좋아해. " 나지막하게 그랬대요. 그거 뿐이었는데 딱 그 말뿐이었는데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좋았죠. 혼자 짝사랑인줄 알고 있었는데 상대방도 날 좋아한다니 얼마나 좋겠어요. 아, 다시 말하지만 제 얘기는 아니에요. 친구가, 그 친구가 그랬어요. 이게 꿈이라면 절대 깨고싶지 않을 만큼, 평생 안 깨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만큼이나 좋았대요. 그렇게 둘은 연애를 시작했어요. 보는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만큼 진짜 달달하고 행복한 연애를요. 친구일 때는 장난도 많이 치고 짓궂었는데 연애를 하니까 사람이 어쩜 그렇게 다정해지는지. 일상 생활에서 두 손을 다 쓸 수가 없었어요. 늘 한 손을 잡고 놔주지를 않아서.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작고 못생긴 손을 주물주물 거리면서 절대 놔주질 않았대요. 데이트를 하면 늘 집에 데려다주고 자기는 막차를 타고 한밤중에 집에 갔어요. 그게 미안하면서도 사실은 또 엄청 좋았대요. 진짜 연애가 이런거구나 이 남자랑 사귈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했대요. 그 남자 생각만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어요. 하루종일 행복했죠. 그렇게 제법 오래 만났어요. 거의 1년정도 만났죠. 원래 싫증도 잘내고 쉽게 질려하는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안 질리고 만날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좋았던거 같아요. 근데 언젠가부터 이게 조금씩 이상하다고 느껴졌어요. 자꾸 연락이 뜸해지고 만날 수도 없고 어렵게 만나도 늘 피곤해 보이고. 상대방이 그러니까 연락하기도 망설여져서 더 뜸해졌대요. 아니겠지. 기분 탓이겠지.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겠지.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수업 끝나고 커피나 한잔 마시려고 카페에 갔대요. 그 남자랑 맨날가던 그 카페. 그 날은 그 카페에 가는게 아니었는데... 그 남자가 거기 있더래요, 어떤 여자랑 같이. 둘이 늘 같이 앉던 자리에 다른 여자랑 앉아있었대요. 진짜 놀랐는데, 믿기 싫었는데, 그래서 애써 뒤돌아서 모른척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어요. 그 여자 손을 잡고 있었거든요. 그 모습을 보니까 더 이상은 모른척 할 수가 없더래요. 직감이라는게 있잖아요. 그제야 계속 들던 이상한 느낌이 뭔지 알게 된거에요. 그대로 카페를 뛰쳐나와서 엄청 울었대요. 진짜 펑펑 울었어요.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술도 마시고 연락도 안하고 그랬대요. 사실 그 남자 욕도 엄청했어요. 그 자식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나한테 어떻게 이러냐고, 그 남자를 보여준 그 남자사람친구를 불러내서 원망도 했죠. 너는 왜 쟤를 나한테 보여줬냐고 막 그랬어요. 그렇게 서러움을 토하다가 쓰러지듯이 기대서 울었던거 같아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걔는 미안하다며 날 토닥여줬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걔가 무슨 죄가 있겠어요. 그냥 한번 보여준게 다고 먼저 좋다고 따라다닌건 난데. 그 때 그랬던거 아직도 미안해요. 근데 다 알면서도 화 풀 데가 없으니까 그랬던거 같아요. 그래서 술 마시면 늘 걔를 불러내서 울었고 며칠을 그러다가 결심했죠. 그 남자를 보내주기로. 엄청 좋아했거든요. 그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 무너져버릴 것 같아서 먼저 보내주기로 결심했대요. 그 사람이 행복하면 된다고 진짜로 그 마음뿐이어서 그 남자한테 헤어지자고 했대요. 그러니까 그 남자가 되게 놀랐다가 곧 다시 차분해지더라고요.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대요. 사실 그렇게 빨리 수긍하는거 뻔뻔하지 않냐고 막 따지고 싶었는데 그만 뒀대요. 진짜 많이 좋아하니까 그냥 아름답게 구질구질하지 않게 끝내고 싶어서. 혹시 슙디도 그런 마음 알아요? 미안하다고 헤어지자고 말하고 뒤돌았어요. 그 얼굴 보고있으면 눈물이 날 거 같아서 더 서있을 수가 없었대요.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어요. 근데 그거 아세요? 헤어진 그날이요, 1주년 하루 전날이었어요. 그 날만 엄청 기다리고 기대해서 뭐할지 계획도 다 세워놨는데 하루 전에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아무튼 그렇게 헤어지고 연락 한 번을 안했대요. 얼굴도 잘 안 보이더라고요. 뭐 그 여자랑 잘 지내고 있겠죠. 차라리 그런 모습 안 보여줘서 다행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대요. 근데 그 남자만 행복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그랬는데, 너무 힘들대요. 벌써 6개월이나 지났는데 혼자 울어요. 가끔씩 그 사람이 떠오르면 눈물도 같이 차올라서 어쩔 수가 없대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그냥 보내주지 말 걸, 그렇게 생각한대요. 한번 붙잡아볼 걸, 매달려볼 걸.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늦었고 달라질 것도 없지만 그래도 후회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사람 진짜 이상해요. 엄청 미운데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보고싶대요. 슙디 있잖아요. 나 친구 대신에 한마디만 해도 되겠죠? 할 말이 있는데 얘가 용기가 없어서 직접은 못 말할 거 같아서 그래요. 이름이 특이해서 들으면 알 것 같지만 그 남자는 라디오 듣는거 안 좋아하니까 이 라디오 듣고 있을거 같지는 않아서 한마디 정도는 해도 될 거 같아요. 이건 정말로 제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제 친구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진짜 보고싶다, 전정국. 네. 사연 보내주신 ㅇㅇㅇ님 감사합니다.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라도 사랑 얘기는 듣고 들어도 마음이 촉촉해지는 것 같아요. ㅇㅇㅇ님이 전해주신 그 마음이 그 분께 꼭 전해지길 바랄게요. 자, 그러면 이제 오늘의 두번째 사연 읽어드릴게요. 이번에는 한 남자분이 보내주신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는 날이 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네요. 사실은 제가 라디오 듣는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다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그냥 넘기려고 했는데 전에 누가 그랬던게 생각나더라고요. 꿀에펨은 다른 라디오랑 다르다고 듣고 있으면 힐링된다고. 슈가씨 목소리 진짜 좋아하더라고요. 그 말이 생각나서 듣다가 마침 사연 신청을 받는다길래 한번 보내봅니다. 주제가 아는사람 얘기래서 제가 아는 친한 형 얘기를 해볼까해요. 일단 이 형 되게 잘생겼어요. 키 크고 성격도 좋고 당연히 인기도 많았죠. 고등학교 때부터 좋다고 따라다니던 여자들도 많았는데 이상하게 다들 관심이 안갔대요. 근데 어느 날 축구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어떤 여자애랑 눈이 마주쳤어요. 그러니까 그 애가 눈이 엄청 커지면서 놀라는거에요. 몰래 훔쳐보다가 걸린 것처럼요. 그리고는 막 도망치듯이 뒤도 한번 안 돌아보고 뛰어갔어요. 뛰어가는 뒷모습이랑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그 후에는 축구 할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는게 습관이 됐대요. 그러다가 그 애를 발견하면 웃음이 새어나오고 못보면 서운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혹시 오늘은 무슨 일이 있나 걱정도 되고 그랬대요. 근데 이 형도 연애 같은거 못 해봐서 참 쑥맥이에요. 고백도 못하고 몰래 훔쳐보기만 하다가 졸업했죠. 병신같이 진짜. 남자가 되서 그 정도 용기도 없냐고 제가 많이 혼냈어요. 후회해도 뭐 어쩔 수 있나요. 포기하고 대학이나 열심히 다니자하는 마음이었는데 진짜 신기하게도 그 대학에서 그 여자를 만났대요. 같은 대학에 오다니 이거 솔직히 운명같죠. 아무튼 이번에는 용기를 내서 먼저 아는척 했대요. 학교에서 몇번 봤다고 진짜 신기하다고 먼저 인사도 하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번호도 따고 연락도 하고 그렇게 친해지게 되었대요. 그런데 그 여자 있잖아요. 티가 되게 많이 나더라고요. 이런 말 재수 없긴 한데 솔직히 자기 좋아하는게 티가 났대요. 밥 사달라고, 어디 같이 가자고 졸졸 쫓아다니는게 그게 또 강아지같고 귀여워서 그냥 모른척 했대요. 의도치않게 밀당한건가? 조금만 그렇게 모른척 하다가 고백하려고 했는데 진짜 이 형 운도 지지리도 없지. 영장이 날라오더라구요. 슈가씨 그거 알아요? 영장 받고 고백하면 쓰레기래요. 이 형은 그거 알았대요. 자기 형이 알려줘서 알고 있었대요. 그래서 결국 고백 못 하고 군대에 갔어요. 군대에 있는 동안 진짜 미친듯이 괴로웠대요. 절대 짧은 기간이 아닌데 과연 그 마음 그대로 기다려 줄지 걱정되는데 또 조금 기대도 되고. 그렇게 전전긍긍하면서 군생활 하니까 시간이 훌쩍 지났죠. 제대 하자마자 그 여자를 찾아갔대요. 놀라서 두 눈이 동그래진 그 여자한테 충성하고 경례를 하자마자 그 여자가 갑자기 펑펑 울었대요.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막 엉엉 우는데 얼마나 난감했는지. 그렇게 우는 여자를 보는게 처음이라 달래주는데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엉성하더라고요. 아무튼 형은 그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짝사랑도, 고백 준비도. 둘이 엄청 붙어다녔대요. 맨날 만나서 밥 먹고 놀고. 주위에서 둘이 사귀냐고 물어보면 그 여자 되게 수줍게 웃었어요. 형은 그게 또 귀여워서 몰래 웃고. 티가 많이 나는 여자라서 아직도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대요. 언제 고백을 해야 할지 타이밍만 보고 있었는데 그 여자가 먼저 말을꺼내더라고요. 좋아한다고, 되게 많이 좋아한다고 엄청 떨면서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푹 숙이는데 그걸 보니까 진짜 좋아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안아버렸대요. 너무 좋아서 아무 말도 생각이 안나서 " 나도 좋아해. " 품에 꼭 안고서 그냥 그렇게만 말했어요. 그렇게 연애를 시작했어요. 아무 것도 안해도 진짜 행복했대요. 날씨가 좋으면 기분이 더 좋고 날씨가 안 좋아도 그냥 기분이 좋고. 주위 사람들이 요새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 보이냐고 물으면 능글맞게 사랑해서, 라고 말했대요. 아, 그리고 그 여자는 손이 진짜 귀여웠어요. 하얗고 작은데 또 길쭉하고 부드러워서 그 손 만지고 있으면 힘들었던거 다 풀렸대요. 그 손 놓기가 싫어서 하루종일 꽉 잡고 있었던 거 같아요. 손을 잡고 있느라 한 손밖에 못써도, 불편해도 그저 좋았대요. 그 여자 집이 좀 멀었거든요. 그런데도 데이트하면 이 형이 꼭 집까지 데려다줬어요. 진짜 괜찮다고 안 그래도 된다고 그랬는데 어떻게 그래요.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데. 그래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겨우 막차 타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에 갔지만 행복했대요. 그렇게 만나니까 거의 1년이 다 되더라고요. 만나는 1년내내 너무 행복해서, 고마워서 꼭 선물을 해주고 싶었대요. 예쁜 반지 하나 맞춰 주고 싶었는데 그럴만한 돈이 없어서 알바를 시작했어요. 그러게 진작 돈 좀 모아놓지. 그냥 할 수 있는 알바는 모조리 다 하니까 피곤해서 집에 오면 그냥 뻗어서 자고 다음 날은 또 하루종일 알바하고. 만날 시간도 없이 바빴는데 연락을 못했대요. 혹시라도 뭐하냐고 물어보면 들켜버릴까봐. 그리고 연락이 없길래 그 여자도 자기처럼 뭔가 준비하느라고 바쁠거라 생각했대요. 참 단순하죠. 잠도 못 자니까 너무 피곤해서 만날 수도 없었대요. 피곤해보이는 얼굴 보면 걱정할까봐. 그렇게 만나지도 못 하면서 바쁘게 일해서 돈을 모았대요. 근데 막상 사려니까 무슨 반지를 사야 할지 못 고르겠더래요. 그런 걸 골라봤어야지. 그래서 친형 여자친구한테 부탁했대요. 반지 고르는 것 좀 도와달라고. 흔쾌히 알았다고 해주셔서 다행이었죠. 자주 가던 카페에서 만나서 그동안 골라놓은 반지 사진을 보여줬대요. 조언을 듣고 반지를 골랐는데 사이즈를 아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모른다고 했더니 한숨을 내쉬더라고요. 손은 많이 잡아봤다고 중얼거렸더니 그 분이 자기 손을 내밀었대요. 손가락 만져보고 대충 어느정도인것 같은지 말해달라고. 그렇게 추측해서 사이즈도 정하고 반지를 샀대요. 반지를 사니까 빨리 주고 싶은데 계획한 서프라이즈가 있으니까 차마 하지는 못 하고 빨리 그 날이 되기만 기다렸대요. 엄청 설렜죠. 그런데 어느날 늦은 밤에 그 여자한테 전화가 왔대요. 그래서 받았는데 듣고 싶은 목소리 대신에 낯선 목소리가 들렸대요. " 핸드폰 주인 남자친구세요? 지금 여자분이 많이 취하셔서 그런데 좀 와주셔야겠어요. "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뛰쳐나갔대요. 그렇게 한걸음에 도착했고 거기에 그 여자가 있었어요. 근데 혼자가 아니라 어떤 남자랑 같이 있었어요. 게다가 그 품에서 울면서요. 나쁜새끼라고, 너 진짜 밉다고 중얼거리면서 펑펑 울고 있었대요. 남자는 미안하다고 토닥여주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했죠. 남자친구는 바로 나인데 왜 저기서 저러고 있나. 근데 거기서 다가가지를 못했대요. 이상하게도 느낌이, 마음이 자꾸 불안해서 그대로 다가갔다가 완전히 멀어지게 될 것 같아서. 불안해서 그대로 뒤돌아서 나왔대요. 아닐거라고, 그럴리없다고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대요. 이건 진짜 형을 위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 형 그 날 울었어요. 되게 많이. 다음에 볼 때는 꼭 웃으면서 보고 싶었는데 만나자는 연락 받자마자 표정 관리가 안됐대요. 웃으려고 해도 자꾸 표정이 경직되고. 진짜 불안하고 무서웠는데 안 나갈 수는 없으니까 나갔죠. 오랜만이다, 그동안 뭐하느라 연락 한 번을 안했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짜증내고 화내도 좋으니까 그냥 이런 투정 섞인 말을 기대했는데 돌아오는 말은 차가웠대요. " 우리 헤어지자. " 그 말 뿐이었어요. 그 여자가 한 말도, 형이 들은 말도 그게 끝이였어요. 너무 간단해서 놀랐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려서 얼떨떨하고 슬펐는데 근데 그거보다 더 슬펐던건 뭔지 알아요? 그 와중에도 티가 나더라고요. 그 여자가 힘들하는게, 지쳐있다는게 티가 나더래요. 그렇게 티가 나는데 어떻게 붙잡아요. 그 여자가 예전에 한 말이 생각났대요. 자기는 싫증도 잘 내고 잘 질린다고 했던 말이 떠오르더래요. 그래서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차마 알겠다고 말은 안 나와서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대요. 그랬더니 그 여자는 미안하다고 하고 뒤돌아 걸어갔어요. 그게 다에요. 몇 년을 좋아했고 1년을 사랑했는데 그 1년이 되기 하루 전날에 다 끝나버렸어요. 그 형 엄청 힘들어했어요. 너무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었대요. 전부 다 잊고 싶었대요. 부질없다고, 사랑이고 추억이고 다 사라져버린다고 그렇게 생각했대요. 근데 있잖아요 슈가씨, 형이 그 여자 주려고 산 반지요. 그거 지금 형 새끼손가락에 끼워져있어요. 여자 반지가 남자 새끼손가락에 딱 맞으면 천생연분이라면서요. 그 형이 그 반지 자기 새끼손가락에 맞아서 얼마나 좋아했는데 역시 그런건 다 미신인가봐요. 하나도 안 맞아. 잊겠다고, 잊을거라고 했는데 이 형 아직도 못 잊은거 같아요. 말만 그렇게 하고 아닌 것 같아요. 6개월이나 지났는데도 아직도 호구같이 그 반지 끼고 있는거 보면 그런거 맞겠죠. 후회한대요. 그때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붙잡아볼 걸, 거기서 그렇게 보내지 말걸, 진짜 후회한대요. 지금 와서 이러는거 엄청 늦었겠지만 그렇게 후회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보기에 이 형 그 반지 앞으로도 되게 오래 끼고 있을거 같아요. 많이 힘들어하면서, 아파하면서, 보고 싶어 하면서 아마도 그럴거 같아요. 형도 그 여자도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둘이 서로 정말 좋아했거든요. 아 맞다, 사연 보내는거 익명 아니죠? 제 이름은 전정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