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 남사친과 능구렁이 남친 사이 2
15 (영원히 기억될 오늘)
"김종인, 자?"
내 무릎에 누워 눈을 꼬옥 감고 있는 김종인을 내려다보며 작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곧이어 녀석은 아니-,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기처럼 웅크리고 누워 일정한 간격으로 숨을 내뱉는 녀석의 모습에 마냥 웃음이 번졌다. 오늘 많이 피곤했나-. 조심스러운 손길로 머리칼을 쓸어넘겨 보기도 하고, 검지손가락을 세워 볼을 콕콕 찔러 보기도 했다.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던 귓볼을 만져보기도 하고, 짙은 눈썹을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그런 내 손길을 묵묵히 느끼고만 있던 녀석의 입꼬리가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쭈욱- 당겨졌다. 그런 김종인을 바라보며 덩달아 미소를 짓곤 손등으로 녀석의 볼을 쓰다듬었다.
"종이야, 머리 한 번만 묶어봐도 돼?"
"무슨 머리."
"네 머리."
"묶을 게 어디 있다고. 짧아서 안 묶여."
"아니야. 묶을 수 있어. 귀엽게 사과머리 한 번만 해보자-."
"… 아, 싫어."
"왜 싫어?"
"안 돼."
완강히 거부를 하며 팔을 들어 제 머리를 가리는 김종인의 모습에 더욱 욕심이 샘솟았다. 안 된다니까 더 하고 싶네. 김종인이 사과머리 하면 진짜 귀여울 텐데. 행복한 상상을 하며 클러치백 안에서 작은 고무줄 하나를 꺼내들었다. 살며시 눈을 떠 내 손에 들린 고무줄을 응시하던 녀석이 벌떡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그 모습에 부스스 웃음을 짓곤 녀석을 빤히 바라보았다.
"싫어. 안 묶을 거야. 나한테 왜 이래."
"머리 묶는 게 뭐 어때서…."
"너 또 사진 찍을 거잖아."
"… 어? 그걸 생각 못했네."
"……."
"근데 어차피 찍어도 나만 가지고 있지. 내가 설마 누굴 보여주겠어? 혼자 보기에도 아까운 네 사진을-."
"… 말은 잘 해요."
못마땅하다는 듯 고개를 슬쩍 젓던 김종인이 이내 다시금 내 무릎에 머리를 기대왔다. 어차피 들어줄 거면서 튕기긴-. 마음속으로 작은 투정을 내뱉곤 익숙한 손길로 녀석의 머리칼을 살짝 잡아 고무줄로 서너 번 감쌌다. 연두색 고무줄로 돌돌 묶인 모양새가 꽤나 귀엽게 보였다. 사과 꼭지마냥 귀엽게 떠오른 머리칼이, 녀석이 조금씩 몸을 움직일 때마다 팔랑거리며 함께 움직였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앞머리까지 함께 묶을 걸 그랬나. 그럼 더 귀여웠을지도 모르는데-. 약간의 후회감이 밀려오긴 했지만, 상관은 없었다. 이 자체로도 너무나 귀여웠다. 신기한지, 제 머리의 꼭지 부분을 만지작거리며 인상을 찡그리는 녀석의 모습에 살풋 웃음을 터뜨렸다.
"일어나 봐. 거울 보여줄까?"
"별로 안 보고 싶어."
"아, 왜? 너 지금 진짜 귀여워. 꼬마애 같아."
"꼬마이고 싶지 않아."
틱틱대듯 말대답을 하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연신 웃음을 내뱉었다. 그런 내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던 녀석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았고, 침대 위에 놓여있던 내 휴대폰을 집어들어 까만 화면에 제 모습을 비추어 보기 시작했다. 점점 인상이 굳어지는 걸 보니, 왠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같았다. 그런 녀석의 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표정이 왜 그래. 꼬마는 인상 쓰는 거 아니에요-."
"……."
"설마 삐진 건…"
"아니야."
"그래야지."
"……."
"이참에 내 휴대폰으로 셀카 좀 찍어줘."
김종인의 어깨에 턱을 대며 자연스레 말을 건넸다. 그런 내 말에 슬쩍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던 녀석이 다시금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카메라 어플을 실행해 나름 포즈를 취해 보이기 시작한다. 틱틱대면서도 해달라는 건 다 해주려 노력하는 녀석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내심 감동이었다. 하긴-, 김종인은 이런 게 매력이지. 안 해줄 것처럼 굴면서도 은근 하나씩 부탁을 들어주는 게 진짜 좋다니까.
"같이 찍어."
"어? 나도?"
"벌써 세 장이나 찍었어. 마지막은 같이."
혼자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사이 도대체 언제 그만큼이나 찍은 건지, 무심한 어투로 말을 건네오는 김종인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리곤 평범하기 그지 없는 포즈를 취하며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곧이어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고, 아무렇지 않게 저장 버튼을 꾸욱 누른 녀석이 제 머리가 묶여있던 고무줄을 미련없이 풀어냈다. 잠시나마 묶여있던 탓에 아직 붕- 떠있는 머리칼을 황급히 가라앉힌 녀석이 작게 하품을 하며 손으로 눈을 비볐다.
"졸려?"
"조금."
"그럼 잘ㄲ… 아, 맞다. 나 그거 빌려왔는데."
"뭐."
"공포영화 DVD…."
거짓말처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르르쾅쾅- 하며 천둥이 쳤다. 제법 크나큰 소리에 흠칫 놀라는 날 보며 피식 웃음을 짓던 녀석이 이내 다시 정색을 해보였다.
"절대 안 봐."
"… 아니, 왜?"
"나 무서운 거 싫어하잖아. 너도 싫어하고."
"그래도…. 내가 힘들게 빌려온 건데."
"왜 하필 무서운 걸 빌려왔어. 누구 좋으라고."
"… 아, 김종인은 야한 것밖에 안 보나?"
"……."
"… 장난이야."
장난스레 말하는 내게 생전 본 적 없던 표정을 지어보이며 입을 꾸욱 다무는 김종인의 모습에, 황급히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다. 평소의 찡그린 표정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에 집중을 하며 녀석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댔다.
"너 분명 보면서 무섭다고 계속 끄라 할 거잖아."
"내가? 아닌데…. 네가 그러겠지."
"전혀."
"… 에라이, 그냥 안 봐. 놓고 갈 테니까, 나중에 오세훈 놀러오면 같이 봐."
"끔찍해."
정말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까지 하는 김종인을 흘끗 바라보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곤 녀석의 큼지막한 손을 만지작거리며 손가락으로 장난을 쳤다. 손을 쫘악 펴 크기를 재보기도 하고, 주먹 쥔 손의 크기를 비교해 보기도 하고…. 그런 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고만 있던 녀석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잠시 잊고 있던 게 생각이라도 난 건지, 짧게 탄성을 내뱉으며 내게 시선을 옮겨오기 시작한다.
"아, 맞다."
"응?"
"그, 뭐지-. 옆에 서랍 좀 열어 봐."
"서랍? 왜?"
"그냥."
"… 첫 번째 서랍?"
"응."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무심한 목소리였다. 내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던 김종인이 살풋 웃음을 지으며 내 머리 위로 제 손을 얹어왔다. 그런 녀석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궁금한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손을 뻗어 첫 번째 서랍을 열어 보았다. 슬쩍만 봐서 보이는 거라곤 여러 필기도구와 포스트잇 몇 개가 전부였다. 그렇게 몇 초 동안 서랍 안을 살피기만 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런 날 보며 피식 웃어버리던 녀석이 다시금 턱짓으로 서랍을 가리켰다.
"저- 구석에 뭐가 있지 않아?"
"구석에?"
구석에 뭐가 있지 않아?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건네오는 김종인을 바라보며 서랍의 구석 쪽으로 손을 뻗었다. 손을 뻗었지만 아무 것도 잡히는 게 없어 살짝 인상을 찡그리려 할 때쯤, 딱딱한 무언가가 손끝에 닿았다. 표면이 제법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걸로 보아, 어릴 적 엄마 몰래 열어 보곤 하던 보석상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게 뭘까, 이게 뭘까. 머릿속으로 많은 상상을 그려내며 조심스레 물건을 꺼내 보았다. 한 손으로도 충분히 잡히는, 짙은 파란색의 작은 상자였다.
"열어 봐."
물끄러미 상자만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김종인의 낮은 목소리가 다가와 앉았다. 열어 봐-. 부드럽고도 달콤한 목소리를 머릿속에 되새기며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손바닥 만한 작은 상자 안엔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 두 개가 나란히 들어 있었다. 적당한 두께, 적당히 심플한 디자인, 적당한 반짝거림. 커플링이었다. 나란히 꽂힌 반지 두 개를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커플링이라는 건가. 친한 친구와의 우정을 맹세하기 위한 우정링이 아닌, 애인과의 사랑을 맹세하기 위한 커플링… 이라는 건가.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이미 새하얗게 변해버린 머릿속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심장은 두근두근, 세차게 뛰었다. 분명 무척이나 설레고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걱정감이 느껴졌다. 커플링…, 비쌀 텐데. 이런 건 또 언제 준비한 거지. 돈이 어디 있다고….
"원래 이런 타이밍에 주려 한 게 아닌데, 되도록이면 빨리 주고 싶어서."
"……."
"별로 안 비싸. 걱정 안 해도 된다."
"… 언제 샀어? 나 진짜 몰랐어."
"그냥, 며칠 전에. 학교 끝나고 시간 좀 한가할 때."
"… 아…, 진짜."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하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좋은데… 단순히 '좋다'라는 말론 부족한 감정이었다. 그저 벙찐 채 김종인의 얼굴과 반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마워-. 전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쉽게 입술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입술이 바들바들 떨렸다.
"손."
그런 날 보며 작게 웃음을 짓던 김종인이, 작은 사이즈의 반지를 꺼내 내 왼쪽 손의 네 번째 손가락에 쏘옥 끼워주었다. 그리 딱 맞지도, 그리 헐렁하지도 않은, 알맞은 사이즈였다. 아무 것도 없던 맨 손에 껴진 반지가 아직은 많이 낯설었다. 달달한 꿈을 꾸고있는 것도 같았다.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커플링이라니. 남자친구와 커플링을 끼다니, 내가.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괜히 자꾸만 확인을 하게 되었다. 그저 꿈만 같았다.
"다행이다. 딱 맞네."
"… 사이즈 어떻게 알았어?"
"그냥 감으로. 내 새끼손가락 사이즈야."
"어? 너 그거 알아? 여자 약지손가락에 맞는 반지가 남자 새끼손가락에도 맞으면, 천생연분이래."
"그래?"
"응, 그렇대. 우리 천생연ㅂ…"
"그런 거 다 미신이야."
"쳇."
단호하게 말을 내뱉는 김종인을 살짝 흘기곤 다시 시선을 옮겨 반지를 빤히 바라보았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지금이 아닌 앞으로도 쭈욱 그럴 것 같았다. 잠시나마 안 좋았던 기분도, 이 조그마한 반지 하나면 거짓말처럼 싸악- 풀려 문제가 없을 것만 같았다.
"예쁘냐."
"응? 아, 당연하지…."
"반지 말고."
"응?"
"나."
"… 너?"
"……."
"… 너도 예뻐. 반지만큼."
"그럼,"
"……."
"뽀뽀해줘."
나름 애교스럽게 들려오는 멘트에 흠칫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떠보였다. 그런 날 보며 피식 웃곤 제 입술을 살짝 내밀어 보이는 모습 또한 내 심장을 자극해오기 충분했다.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는 심박수를 느끼며 애꿎은 이불을 꼬옥 쥐었다. 뽀뽀 한 번 해주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아깐 해달라는 말 없이도 스스로 잘 해줬잖아. 뭘 주저하는 거야. 뭘 망설여. 얼른 해, 얼른. 어디선가 오세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곤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곤, 아직 작은 상자에 그대로 들어있는 반지를 꺼내 녀석의 왼쪽 손, 네 번째 손가락에 쏘옥 끼워주었다.
"고마워. 반지… 진짜 예상 못했는데, 너무 예뻐."
웅얼거리듯 말을 건넸다. 순식간에 차오른 부끄러움과 쑥쓰러움 탓에 시선도 마주하지 못한 채 건넨 말이, 김종인에게 잘 전해졌을지는 미지수였다. 그저 입술을 달싹이며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어색히 웃으며 살며시 입을 맞췄다 뗐다. 빠른 속도로 밀려오기 시작하는 창피함에 멋쩍게 웃어보였다. 이미 빨개질 대로 빨개진 얼굴을 이제와서 가리는 것도 이상할 듯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짓던 녀석이 큼지막한 손으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왔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
째깍째깍. 좁은 방 안을 메우는 소리라곤 시곗바늘 소리가 다였다. 시계는 어느새 제법 늦은 시간을 나타내주고 있었다. 그저 묵묵히 시계를 바라보다 시선을 옮겨 김종인을 바라보았다. 뭐가 그리 재밌고 좋은지, 침대에 몸을 옆으로 뉘여 팔로 제 머리를 받친 채 나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조금은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런 녀석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곤 천천히 입술을 뗐다.
"늦었는데, 잘까?"
"졸리냐."
"그냥… 살짝."
"눈 감고 있으면 금방 잠 들겠네."
"응, 아마 그럴 것 같… 어디 가?"
"거실."
"거실? 왜?"
"잘 준비 하러. 네가 침대에서 자야지."
"내가 거실에서 자려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 아, 그래도…. 난 네가 침대에서 잤음 좋겠어. 여름이지만, 거실에서 자다 감기 걸려."
"네가 걸리는 건 괜찮고?"
"……."
"나 감기 안 걸려."
"……."
"그럼 바닥에서 잘게. 방바닥."
거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김종인의 손을 잡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네자, 녀석은 이내 솔로몬이라도 된 양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해 놓는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이불을 펴기 시작한다. 그저 침대에 앉아 그런 녀석의 행동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다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이 시간에 연락 올 사람이 없는데-. 익숙하게 홀드를 열어 방금 도착한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월요일에 수업 끝나고 잠깐 학교 앞 카페에서 볼 수 있어? 과제에 관해서 물어볼 게 좀 있는데.]
도경수 선배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과제라면, 제일 최근에 내주신 교양수업 과제밖에 없는데-. 내용이 너무 까다롭다며 제법 애를 먹어하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그 과제에 관한 얘기겠지. 그와 같이 듣는 몇 안 되는 수업 중 과제를 내주신 수업은 심리학 교양수업 뿐이니까.
[네, 그래요. 몇 시쯤이 좋을까요?]
천천히 자판을 입력하며 그에게 답장을 전송했다. 그리곤 곧이어 짧은 메시지가 도착했다. 5시. 그의 무뚝뚝한 성격과 아주 잘 들어맞는 짤막한 내용이었다. 핵심만 쏘옥 담겨있는-.
"누구랑 카톡해."
"응? 아, 카톡 아니야. 문자."
"그니까 누구랑."
"선배랑. 과제 때문에…."
바닥에 깔린 이불 위에 털썩 앉은 채 나를 향해 말을 건네오던 김종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녀석을 보며 배싯 웃음을 짓곤 베개를 꼬옥 끌어안았다. 나를 빤히 바라봐오는 녀석의 짙은 시선이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마냥 설렜다. 그런 녀석의 눈동자를 멍하니 응시하기만 하다, 끌어안고 있던 베개를 다시 내려놓은 뒤 조심스레 몸을 뉘이며 이불을 목까지 끌어와 덮었다. 집 주인은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데, 정작 손님인 난 폭신한 침대에서 잠을 잔다는 게 정말이지 마음에 걸리면서도 찝찝하게만 느껴졌다. 두 손으로 이불을 꼬옥 쥐었다. 시선은 하얗기만 한 천장에 두었다. 침대에서 자게 하고 싶은데. 내가 바닥에서 자겠다 할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곤 다시 시선을 옮겨 녀석을 바라보았다.
"… 같이 누울까?"
"……."
"집 주인인데 바닥에서 자긴 좀 그렇잖아…. 너 침대에서 잤음 좋겠어."
"같이?"
아무렇지 않게 물어오는 목소리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큰 맘 먹고 건넨 말이긴 하지만, 왠지 모를 창피함과 어색함이 밀려오는 것도 같았다. 제법 얼굴을 붉힌 나를 빤히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짓던 김종인이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내가 누워있는 침대의 끝에 살포시 걸터 앉는다. 바로 코앞에 위치한 넓은 등판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진짜 남자가 되었구나. 진짜 남자가 되었어.
"눕는다, 네 옆에."
"… 어? 아…, 그래…."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말을 내뱉곤 조심스레 이불 안으로 쏘옥 들어와 눕는 김종인을 바라보다 숨을 흡- 하고 크게 들이마셨다. 온몸이 굳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와중에도 나를 배려해 자다 떨어지면 안 된다며 안 쪽으로 누우라 말을 하는 녀석의 모습에, 다시금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배려라는 게 배어있는 녀석은, 어디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남자였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행동들엔 배려와 매너, 예의라는 게 깃들어 있었다. 이런 남자가 과연 어딨을까, 싶었다. 아마 없겠지. 있을 리가… 없지.
"……."
"……."
침묵만이 감도는 방 안. 어느 누구도 먼저 입술을 떼지 않았다. 그저 몸을 똑바로 뉘인 채 얇은 이불을 꼬옥 쥐고 있는 양쪽 손이 무안해질 정도였다. 시선은 분명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서도 왠지 모르게 불편함이 느껴졌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지, 내 얼굴에 뭐 묻기라도 했나. 옆에선 김종인의 그윽한 시선이 느껴졌다. 아예 몸을 내 쪽으로 뉘이곤 팔로 제 머리를 받친 채 내게 지그시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제법 부담스럽게 느껴져, 조금이라도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리곤 얼마 안 있어 녀석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혀왔다.
"넌 침대에서 봐도 예쁘네."
"……."
"옆 모습도 예쁘고."
"……."
"이불 꼬옥 쥐고 있는 손가락도 예쁘고."
"… 야, 진짜…."
"왜."
"… 하지 마, 그런 말…."
"하지 마?"
"… 그래."
아무렇지 않게 건네오는 말들에 얼굴을 붉혔다. 쥐구멍이 있다면 쏘옥 들어가 숨어 버리고도 싶었다. 능구렁이라도 된 양 낯간지러운 말을 툭툭 내뱉는 김종인의 얼굴을 조금도 마주할 수가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상황과 분위기가 전부 민망하고 쑥쓰러웠다.
"쑥쓰럽구나."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건지, 김종인이 작게 웃으며 내 생각을 대신 말해주었다. 쑥쓰럽구나. 그래, 쑥쓰러워. 그것도 아주 많이-. 마음속으로 대답을 하며 슬쩍 고개를 돌려 녀석을 흘겨 보았다. 여전히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거야. 난 하나도 안 웃긴데. 의미 모를 짜증감이 치미는 것도 같았다. 그리곤 용기를 내 녀석 쪽으로 몸을 돌려 동그란 눈동자를 마주했다. 순식간에 마주쳐진 시선에 작게 놀라던 녀석이 이내 시원히 입꼬리를 당겨 웃어보였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난 김종인의 시원한 웃음이 좋았다. 남자답게 벌어진 입매, 예쁜 호선을 그리는 눈꼬리, 눈가에 진 주름…. 모든 것이 좋았다. 잘생겼다는 건 원래부터 알던 사실인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더 잘생겼네. 입이 닳도록 말해주어도 모자랄 만큼, 진짜 잘생겼다-.
"종이야."
"응."
"부모님이 알면… 놀라시겠지?"
"… 아,"
"진짜 놀라시겠다. 너랑 내가 사귀는 거 알면-."
"나중에 뵈러 가자. 너희 부모님이랑, 우리 부모님."
"… 아직도 신기해. 너랑 내가 어떻게…."
"신기하기만 해?"
"……."
"난 좋기도 해. 행복하기도 하고."
"… 나도."
수줍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런 날 보며 작게 웃음을 짓던 녀석이 손을 뻗어 살짝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지금 이 상황은 꿈인가, 현실인가. 요즘들어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가 정말이지 힘들었다. 왜지, 왜일까. 꿈만 같은 현실이 매일이다시피 눈앞에 펼쳐져서일까.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었는데. 아무렇지 않게 해오는 행동들에 괜히 나 혼자 설레하고…."
"좋아해서 그랬던 거였어."
그저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사소한 기억이라 할지 몰라도, 지금 이 상황을 모두 고이 간직해두고 싶었다. 서로를 마주하며 포근한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워있는 우리 둘, 김종인의 까만 눈동자에 그려진 내 모습, 김종인의 짙은 쌍꺼풀 라인, 동그란 콧날, 도톰하면서도 제법 붉은 입술, 작게 움직이는 목울대, 느린 속도로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하는 눈꺼풀까지-. 전부 기억을 해둬야지. 먼 훗날 오늘을 떠올려 보았을 때, 지금의 기분을 똑같이 생생히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이 많이 흐른 나중에도, 지금의 설렘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전부 똑똑히, 또렷이 기억을 해둬야지.
"종이야, 손 잡고 잘까?"
"손?"
해사하게 웃어보이며 살며시 김종인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그런 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던 녀석이 제 아랫입술을 꾸욱 물었다. 그게 너무도 귀엽게 보여, 배시시 웃으며 녀석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내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부드러운 손가락 사이로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녀석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였다. 느리게 눈을 꿈뻑이며 맞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손에 땀 차기 전까지만… 잡고 있…."
"아니야. 그냥 계속 잡고 있자."
"응?"
"그래야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못하지."
제법 진지하게 들려오는 말에 입술을 앙 다물었다. 그리곤 일부러 더욱 힘을 줘 두 손으로 김종인의 손을 꽈악- 잡았다. 그런 내 행동에 아프다며 작게 소리를 치는 녀석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천천히 손을 놓아줄 수 있었다.
"… 김종인 은근…."
"……."
"… 아까도 그렇고…."
"아까 뭐."
"……."
"… 아, 그건."
인상을 찡그린 채 무언가 생각을 하는 듯싶던 김종인이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런 녀석의 모습에 아까 나눴던 입맞춤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도 같았다. 분명 먼저 말을 꺼낸 건 난데,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느끼는 것 또한 내 몫이었다. 괜히 혀로 입술을 축이던 녀석이 어색히 웃음을 짓는 듯싶더니, 이내 이불을 머리 끝까지 끌어 덮었다. … 아까 갑자기 화장실은 왜 갔던 거야? 라며 진심으로 궁금했던 걸 물어 보고도 싶었지만, 애써 꾸욱 참았다. 얇은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쓴 녀석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다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불 밖으로 삐죽 튀어나온 머리카락 몇 올마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깍지가 단단히 씌였구나, 싶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두터워지는 것만 같은 김종인 콩깍지가, 제대로 씌인 게 분명했다.
이건 후문이지만, 김종인은 그날 밤새 잠을 설쳤다. 그게 무슨 이유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녀석은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 안의 불을 끄고 난 뒤에도 녀석의 뒤척거림은 계속 되었고, 의미 모를 한숨 소리도 들려왔다. 옆 자리에 누워있던 난, 자는 척을 해보이며 슬쩍 실눈을 떠 밤새 녀석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손만 잡고 자자던 녀석은 왜인지, 쉽게 손도 잡지 못했다. 자고 있는 내 모습을-사실 자는 척이었지만-힐끔힐끔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뱉던 녀석은 아예 내 쪽으로 돌아 눕는가 하면, 정면을 보고 누운 채 돌부처라도 된 양 두 손을 모아 제 배 위로 살포시 올려놓고 있기도 했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가 하면, 제법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마땅한 답은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중에 오세훈을 만나면 은근슬쩍 물어봐야지. 연애를 글로 배운 자칭 연애 박사 오세훈은 뭔가 아는 게 있을지도 몰라-. 마음속으로 다짐 아닌 다짐을 해보였다.
아침 식사는 김종인이 준비를 했다. 전 날 저녁 식사는 내가 준비를 했으니, 나름의 보답이라며 아침 식사는 제가 준비를 하겠다고 시큰둥하게 건네오던 말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떠오른다. 요리에 소질이 없는 김종인은 결국 계란 후라이를 태워 먹었다. 부엌에서 피어난 탄 냄새는 조그마한 방과 거실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탄 냄새가 난다며 제 등을 쿡쿡 찔러오는 내게, 녀석은 고개를 젓곤 기분 탓이라며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을 해보였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놓고 다시 계란 후라이를 만들기 시작하는 녀석의 모습에 크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침 식사 메뉴는 전 날 저녁에 먹다 남은 된장찌개와 몇몇 반찬들, 그리고 계란 후라이가 전부였다. 그날 먹은 계란 후라이는 정말이지 맛있었다. 꿀이나 설탕을 넣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달디 달았다. 누가 만들어서 그런 건진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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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공지! |
암호닉 공지는 아마 처음일 거예요.. 그렇죠? 사실 공지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암호닉 정리를 좀 해볼까 해요. 암호닉 신청은 하셨지만 저와 소통을 그다지 하지 않으신 분도 꽤 많더라구요, 암호닉 목록을 훑어보니까..! 전 여러분과 소통하는 게 정말정말 좋은데, 물론 제가 머리가 나쁜 탓도 있겠지만, 익숙한 암호닉이 있는가 하면 되게 낯선 암호닉도 있어요.. 암호닉이란 게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맞지만, 추후 있을 번외라든가.. 번외라든가.. 번외 같은 걸.. 따로 메일링해서 보내드릴 생각을.. 지금 하고 있거든요, 제가. 아직 완결까진 멀고 멀었지만.. 전 벌써부터 나중을 생각하고 있어요..(먼 산)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암호닉 생존신고도 할 겸, 이번 15화를 마지막으로 당분간 암호닉 신청을 받지 않을 생각이에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처음 신청해주시는 분들, 기존에 신청을 해주셨던 분들 모두 동일하게
댓글의 앞에 넣든, 중간에 넣든, 뒤에 넣든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꼭 대괄호 안에 암호닉을 넣어주세요! 그래야 제가.. 알아보기 쉽거든요.. 쿨럭..
기간은 넉넉잡아 일주일로 할게요. 오늘이 7월 29일 수요일이니까..
마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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