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전정국 05
* * *
무슨 깡으로 정호석에게 그간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봇물 터지듯이 내뱉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정호석에게 비난 아닌 비난을 실컷 퍼부은 뒤였고, 정호석은 그런 나를 향해 팔을 들어올렸었다. 손찌검을 당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눈을 감고 시야가 어두워진 동시에 귓가엔 어느새 익숙해진 목소리가 들렸다. 굳이 눈을 뜨지 않고도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땐, 전정국이 정호석의 팔을 붙들고 무얼 하는거냐며 묻고 있었다. 그 때 전정국의 눈빛은 살기가 돌았다고 표현하면 될 정도로 차가웠다. 아마 정호석도 그의 눈빛에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 분명하다. 전정국의 둘도 없는 친구인 정호석은 전정국의 그런 눈빛을 처음 받아 봤을테니까.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전정국의 말투는 그의 눈빛마냥 차가웠다.
"아, 정국아 쟤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이쁘다 이쁘다 해줬더니 기어올ㄹ.."
"그래서 때리려고?"
"..어?"
"쟤 때리려고 했냐고"
"...아니"
나를 때리려는 의도로 팔을 들어올린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한 정호석을 비롯한 무리의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기분을 나쁘게 한다면 곧바로 해코지를 할게 뻔한 아이들이었다. 그런 정호석이 나를 때리려는 의도로 팔을 들어올린게 아니였다니, 나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니가 잘못한거 맞잖아"
"유치한 짓 그만해"
"...사과 해"
전정국은 일방적으로 할말을 끝내곤 다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내 시선은 교실 밖으로 나가는 전정국을 따라가고 있었고, 전정국이 뒷문을 닫고 아예 시야에서 사라졌을 때 쯤 정호석이 나를 불러세웠다.
"야 김탄소"
"..."
"때리려던건.. 아니야"
"..응"
"여자 안 때려"
"그냥.. 내가 원래 좀 다혈질이야"
"그러니까.."
"아 진짜,"
"...?"
"존나 미안하다고"
"아.."
"그리고 일부러 그런거 아니야. 그냥 너 시끄러울까봐.."
정호석은 방금 전 내가 정호석에게 화를 내게 만든 상황을 보고 말하는 듯 했다. 정호석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건 사실이었다. 어쩌다보니 예민해진 기분 탓에 나도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결국 큰 소리를 내게 된 거지만, 내가 시끄러워 할까봐 그랬다는 변명이 조금은 귀여웠다.
"아냐 나도 미안해"
정호석이 잘못한게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미안했다. 반 아이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서 나에게 그런 모진 말을 들었을 정호석을 생각하니 참 무안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과를 하자마자, 정호석은 나를 빤히 한 번 쳐다보더니, 전정국이 나간 뒷문으로 그 또한 나가버렸다.
*
전정국과 정호석은 의외로 교실에 빨리 돌아왔다. 1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로 돌아왔고 정호석은 자리에 앉자마자 책상 위로 엎어졌다. 전정국은 여느 때 처럼 삐딱하게 앉아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한참을 휴대폰에 집중했다. 대체 저 안에는 뭐가 들었길래, 아님 누구랑 연락을 하길래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붙들고 있는지 괜시리 궁금해졌다. 여간 궁금한게 아니였는지, 휴대폰을 들고 있는 전정국의 양 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휴대폰을 들고 있는 손이 매우 커보였다. 투박하지만 남자치곤 길쭉하고 얇은 손가락과, 힘줄이 살아있는 손등을 보고 있노라니 나는 어느새 넋을 놓고 전정국의 손을 감상하고 있었다.
"할 말 있냐"
전정국이 내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민망했다. 무의식중에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본 전정국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정국 또한 민망했을까? 아니면 부담스러웠을까? 그것도 아니면 내가 자신의 휴대폰을 엿보는게 기분 나빴을까? 나는 전정국의 손을 바라보았을 뿐이지, 절대 전정국이 휴대폰으로 하고 있는 것을 엿보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전정국은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괜히 억울했다.
"아까는 미안"
전정국도 내게 사과를 했다. 아마 친구인 정호석이 내게 팔을 들어올렸던게 많이 신경쓰였나보다. 사실 전정국이 내게 미안할 것은 없었다. 또 나는 정호석에게 사과를 받았기 때문에 더욱 사과를 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사과를 하는 전정국의 모습은 지금 껏 내가 봐온 전정국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다정했고, 또 부드러웠다.
"괜찮아"
"여자는 안 때려. 걔가 철이 덜 들어서 그래. 니가 이해해라"
정호석이 했던 말을 똑같이 했다. 여자는 안 때린다며 안심을 시켰고, 일전에 정호석이 전정국은 아직 사춘기라고 했던 것 처럼 전정국은 정호석이 아직 철이 덜 들었다고 했다. 서로를 어린애 보듯 하는 행동이 괜히 귀여워서 슬쩍 웃음이 났다. 내 눈엔 둘 다 똑같이 유치했지만 둘이 정말 둘도 없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응. 나 괜찮아 아까 정호석이 나한테 사과 했고, 나도 사과 했어"
"잘했어"
전정국은 내 눈을 바라보며 잘했다고 말했고 동시에 웃었다. 전정국이 웃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게 웃어준 것이 처음이였다. 전정국이 웃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왜 잘 웃지 않는지 궁금할 정도로 순수하고 예뻤다. 웃는 모습이 정말 예쁜데 왜 자주 웃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전정국의 웃음을 보곤, 괜히 부끄러워 애써 시선을 칠판으로 옮겼다. 언제 들어오신건지 선생님께서는 이미 수업에 열중하고 계셨다. 나는 곧바로 펜을 손에 쥐고 칠판에 적혀있는 내용을 필기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공책에 필기를 하며 교과서로 시선을 옮길 때 마다 내 쪽을 향해 있는 전정국이 살짝살짝 보였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건지, 아니면 선생님이 분필을 던져 이제 막 잠에서 깬 정호석과 눈빛을 주고 받는건지 내 옆통수가 뚫릴 정도로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그저 수업에만 열중했다.
"김탄소"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지 전정국은 내 이름을 불렀다.
"어, 어?"
당황한나머지 바보같은 소리를 내며 대답했다. 그게 또 부끄러워 전정국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얼굴에 볼펜 묻었어"
"응?"
"여기,"
전정국이 내 왼쪽 볼께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묻었다고."
내 볼에 놓인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려 언제 묻은 것인지 모를 볼펜 자국을 지워냈다.
*
전정국이 내 볼에 손을 갖다 댄 뒤로 볼이 화끈거려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날은 물론, 그 날 이후에도 나는 전정국을 계속 의식하고 있었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요 몇일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전정국의 새로운 모습을 봐서 그런건지, 다정하면서도 자상한 전정국의 행동에 적응이 되지 않는건지 전정국을 똑바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더군다나 예전과는 다르게 내게 자주 말을 걸어오는 전정국에 나는 대답을 하느라 애를 먹어야했다. 이를테면,
"야"
"응?"
"너는 어렸을 때 집에만 있었냐?"
"그게 무슨 소리야"
"피부 진짜 하얗다"
라던가,
"김탄소"
"왜"
"너는 파마나 염색 하지마"
"응?"
"너는 검은 머리가 잘 어울려. 긴 생머리"
등등의 낯간지러운 말들. 사실 전정국의 이런 행동은 봐도 봐도, 들어도 들어도 도통 적응이 되질 않는다. 예전엔 쳐다보기만 해도 뭘 보냐며 내게 시비를 걸던 전정국 이였지만, 요즘 들어 부쩍 내게 말을 거는 횟수가 늘었고 가끔은 장난을 걸기도 하였다. 그렇게 틈만 나면 투닥거리며 전정국과 거의 한 달을 보냈다. 날이 갈 수록 정국은 점점 장난스러운 또래 남학생들 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예전의 전정국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한심한 양아치였지만 요즘 그의 모습은 예전의 모습과는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전정국이 변해가는 만큼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중간고사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시험기간에 유난히 예민한 성격인 나는, 가끔 전정국의 장난에 짜증이 나 그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짜증과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물론 전정국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그런 나를 받아주었다.
"탄소야~"
"응?"
"나 이거 모르겠어, 좀 알려줘.."
사소한 일로 잠깐 싸움 아닌 싸움을 했던 정호석과도 어느새 어색함을 풀고 나름 친해졌다. 뭐, 전정국보다 조금 더 친한 것 같기도 하다. 또, 몰랐던 사실인데 정호석은 의외로 공부에 대한 열정이 투철했다. 썩 잘하는 편은 아니였지만, 그렇다고 못하는 편도 아니였다. 특히 수학을 잘 했는데, 때때로 수학에 가장 취약한 나에게 문제를 알려주기도 했다. 아마 같이 공부를 하며 정호석과 친해졌던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요즘 전정국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정호석이 공부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은 것인지, 공부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어보였던 전정국이 수업시간에 휴대폰 대신 교과서를 꺼내들었고, 틈만 나면 담배를 피러 가던 전정국이 담배 대신 펜을 손에 들었다. 변해가는 정호석과 전정국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피곤해졌다.
"탄소야, 오늘도 독서실 갈거야?"
"아마?"
"그럼 나도 같이 가!"
"어, 그럼 나도 갈래"
정호석과 전정국이 나를 따라 독서실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둘의 공부를 자연스레 봐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인 탓에 학원은 모조리 주말로 옮겨버렸고, 주중에는 야자실에서 야자를 하거나 새벽까지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부터 야자실과 독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엔 정호석과 전정국이 함께 하게 되었다. 처음엔 조용한 분위기에 책상에 엎어져 잠을 퍼질러 자기 일쑤였지만, 언제부터인가 눈에 불을 키고 공부하는 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도 양 옆에 전정국과 정호석을 끼고 독서실로 향하고 있었다. 독서실까지 걷는 내내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전정국과 정호석에 귀가 아파왔다.
"김탄소?"
독서실 건물로 다다랐을 때,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렀다.
"와, 혹시나 했는데 김탄소 맞네, 오랫만이다?"
나를 불러세운 반가운 얼굴에, 화색을 띄고 전정국과 정호석을 내버려둔 채 그에게 달려갔다.
* * *
으아, 드디어 5화 업데이트 되었습니다ㅠㅡㅠ 많이 기다리셨죠..!! 쓰차가 풀린지 3일이나 되었는데, 그동안 미리 써두었던 내용이 전~부 날라가서 이제서야 찾아왔네요ㅜㅜ
뭔가 급전개가 된듯 하지만ㅠㅡㅠ.. 얼른 남친정국이가 보고싶은 마음에..!! 전개를 예상보다 빠르게 썼습니다..!! 다정하게 변한 정국이를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잘 표현 되었을런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4화에서 호석이의 의외의 모습을 보여줘서ㅠㅠㅠㅠ 어떻게 풀어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했답니당..ㅎㅎ 원래 호석이는 긍정적이고 밝은 아이로만 등장할 예정이었는데, 어떻게 쓰다보니 제 손이 일을 벌려놨었네요..ㅎㅎ 덕분에 혼란스러우셨을 독자님들께 죄송한 따름입니다..☆★ 다시는 예정에 없던 내용을 추가하거나 그러지 않을거예요ㅜㅜㅜㅜㅜㅜ
아 그리고, 이 쯤 되면! 의외의 인물이 한 명 뙇! 등장 할 차례인데! 아직도 멤버를 정하지 못했어요ㅠㅅㅠ.. 캐릭터와 역할은 대충 잡아두었는데 어떤 멤버가 어울릴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랍니다ㅠㅠ 남은 멤버중에 셋으로 추려놓긴 했는데, 이것도 힘드네요..☆★ 아무래도 우리 독자님들의 의견을 수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살짝만 캐릭터에 대해 소개하자면, 탄소와 꽤 복잡하고도 깊은 사이! 의 인물이고, 공부 잘하는 엄친아 스타일의 캐릭터 입니다!! 투표 만들어두었으니, 한 번만 투표 부탁드려요♥ (어쩌다보니 김형제들..★)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독자님들ㅠㅡㅠ 너무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 같은데, 아직 깨어있는 독자분들은 좋은 밤 되세요 :)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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