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전정국 02
* * *
나는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전정국을 마주하자마자, 그대로 온 몸이 굳어버렸다. 괜히 방금 전 교무실에서의 일과, 정호석이 내게 했던 말들이 생각나며 전정국의 눈을 피해 고개를 푹 숙이고 전정국이 교실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옆으로 비켜섰다. 전정국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전정국은 내 옆으로 지나가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숙였던 고개를 드니, 전정국은 나를 무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자 어쩔줄 몰라 하던 나는 그저 아무 말 못하고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고, 전정국은 그대로 몸을 돌려 자기 자리로 걸어가고 있었다.
망했다. 내가 그 순간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전정국이 자리에 앉고, 교실을 서성이던 반 친구들이 하나 둘 제 자리로 돌아가 소란스럽던 교실이 잠잠해질 때 까지 나는 뒷문에 멍하니 서 있었다.
"탄소, 종 쳤는데 안들어가고 여기서 뭐 하니? 어서 들어가"
선생님이 오실 때 까지도 내 자리로 돌아가야할지 말지 고민하며 서성이던 나는 결국 전정국이 있는 내 자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전정국은 기다렸다는듯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게 무어라 할 말이 있는건지, 아니면 나를 노려보는 것인지 그의 시선은 내게서 쉽게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먼저 사과를 해야하나? 나는 내 진심을 말 한 것 뿐이지만, 그에게는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소리였다.
"ㅁ.."
"내가 그렇게 싫냐?"
딱히 사과하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나도 양심은 있는지라 눈 딱 감고 사과하자 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었지만 전정국이 나보다 빨랐다.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려는 내 입을 가로막은 전정국은 내게 자신이 싫으냐고 물었다. 갑작스레 내게 던져진 질문에 나는 벙쪄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응' 이라고 대답하기엔 내 진심을 그대로 전할 용기따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아니' 라고 대답하기에는 방금 전 교무실에서 내가 했던 말이 떠올라 전정국에게 이제 와서 부정하기 굉장히 민망했다.
"나도 너 별로 안 좋아해."
전정국이 나보다 빨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뒤끝이 있는건지 아니면 내가 정말 싫은건지 전정국의 입에서는 본인도 내가 싫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미안' 이라는 두 글자를 입 밖으로 내뱉으려던 마음은 쏙 들어가버렸다. 불쾌했다. 사과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사내새끼가 고작 그거 하나 가지고 내게 똑같은 말을 되돌려 주었다는 것도 유치했고, 역시 양아치는 양아치구나 라고 생각했다.
전정국은 제 할말이 끝나자마자 평소처럼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잠시 휴대폰을 뒤적거리다 이내 흥미가 떨어진건지 그대로 책상에 나를 등지고 엎드렸다.
이기적인 전정국의 행동에 나는 전정국의 뒷통수를 가만히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
"탄소야~"
도통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전정국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아 지루하게 느껴졌던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과서를 대충 책상 속에 집어넣고 다음 수업시간까지
눈이라도 붙이려 엎드리려던 찰나, 종이 울리자마자 비워진 내 앞자리는 누군가가 앉음으로써 다시 채워졌다. 내 앞 자리에 앉은 사람은 다름아닌 정호석이었다.
나는 정호석과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였고, 오늘 잠깐 얘기한 것 외에는 단 한번도 말을 섞어본 적도 없었다. 심지어 내 이름을 오늘 처음 안듯한 정호석은 너무 자연스럽게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향해 앉아 내게 말을 걸었다.
"잘거야?"
무슨 슈렉의 고양이 마냥 나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잘거냐며 묻는 정호석이 어이없어, 아무런 대답도 응해주지 않은채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안자면 안돼? 나랑 놀자~"
금세 조용해진 주위에 당연히 제 자리로 돌아갔거나 전정국과 함께 나갔으리라 생각했던 정호석은 엎드린 내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 갖다대며 자신과 놀자는 황당한 소리를 해댔다.
나랑 전혀 관련없는 정호석이 내게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 고개를 흔들어 뒷머리가 내 얼굴을 덮게 했지만, 정호석은 내 얼굴을 뒤덮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치워내 아예 내 귀에다가 대고 같이 놀자는 개소리를 짓걸였다. 안그래도 전정국 덕분에 오늘 내 불쾌지수는 극에 달했고, 나를 귀찮게하는 정호석이 거슬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고 정호석에게 말했다.
"내가 너랑 왜 놀아야 하는데?"
"말 했잖아! 너 마음에 든다고!"
"뭐?"
"전정국을 한방 먹인 애는 네가 처음이야!"
정호석의 입에서 나온 전정국의 이름에 나는 기겁하며 내 옆자리를 보았고, 다행히도 전정국은 엎드린 자세 그대로 숙면에 취해있었다. 그리고 정호석이 한 말을 다시 되짚었다. 한방 먹여? 전정국을?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방 먹은건 오히려 나였고, 전정국은 내가 알고있는 한, 내가 한 말 따위로 상처받거나 화가 날 찌질한 아이가 아니었다.
"네가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너랑 놀 생각 없으니까 저리 가."
"싫어. 너 엄청 매력있단 말이야. 나랑 놀자, 응?"
막무가내였다. 내가 매력있다니 뭐니 하며 정호석은 계속 징징댔고,
"씨발.. 시끄러우니까 좀 닥쳐"
결국 전정국은 잠에서 깼다.
"그럼 귀 틀어막고 자던가 새끼야"
정호석은 내게 하던 말투와는 사뭇 다른 험악한 말투로 전정국의 말을 받아쳤다. 그 덕에 다시 자각했다. 정호석도 전정국과 같은 양아치새끼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니 다시 기분이 불쾌했다. 양아치 새끼들과 조금이라도 엮이는 것을 싫어하는 나였고, 전정국과 짝꿍이 된 이후로 계속 둘과 엮이는 상황이 싫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건,
"씨발 쟤가 뭐가 좋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심심하면 혼자 쳐 나가서 놀던가"
"니가 뭔 상관이야 자던 잠이나 계속 자세요~ 담배 뺏기니까 할게 없으니 아주 쥐약이지? 하여튼 멍청한 새끼"
"닥치라고 했다? 왜 남의 자리까지 와서 개지랄이야"
나를 사이에 두고 다소 저급한 언어로 말싸움을 해대는 전정국과 정호석이었다. 더 기분 나쁜 건, 내가 저들의 대화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의 말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먼저 꼬리를 내리는 법이 없었다. 둘 사이에 낀 내가 듣기에도 전정국의 속을 살살 긁어대며 시비를 거는 정호석에 전정국은 화가 난건지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다운된 교실 분위기에 반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내 쪽을 향해 있었다. 정호석은 한숨을 푹 쉬더니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내가 짝이었어도 싫을만 하다."
아마 내가 교무실에서 했던 말을 두고 하는 말 인것 같았다.
"네가 이해해. 저 새끼 아직 사춘기라 그래"
"...뭐?"
사춘기? 무슨 중학교 2학년도 아니고, 거쳤어도 벌써 거쳤어야 할 나이에 때 늦은 사춘기라니. 더군다나 전정국은 사춘기라는 말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내 귀에는 정호석의 말이 꼴에 친구인 전정국을 감싸주려는 핑계로 들릴 뿐이었다. 전정국은 그냥 성격이 개같은 것임이 틀림없다. 그것도 아주 재수없고 밥맛 떨어지도록.
"다음 쉬는시간엔 나랑 꼭 놀아줘야 돼? 난 나간다~"
정호석은 또 개소리를 짓걸이며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내심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전정국이 걱정 되었던 것인지 전정국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정호석이 쓰다듬은 머리가 괜히 화끈거렸다. 곧 있으면 수업 종 칠텐데, 또 자리를 비운 두 녀석이 괜히 신경쓰였다.
*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다. 원래 수업이었던 영어 선생님이 갑작스레 출장을 가게 되어, 영어 수업은 체육 수업으로 변경되었다.
체육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원체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나였고, 흥미가 없는 탓인지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과목이었다. 급하게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교실 문을 잠그고 느릿느릿 체육관 쪽으로 걸었다. 본관을 나와 체육관으로 향하던 찰나, 불현듯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전정국과 정호석이 생각났다.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둘은, 다시 교실로 돌아올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다시 교실에 올라가 포스트잇 따위를 문 앞에 붙여 놓기에는 교실이 있는 4층까지 올라가기 귀찮았다. 둘이 수업에 빠지게 되면 어쨌거나 불똥은 나에게 튈 것이 분명했다. 결국 전정국과 정호석을 찾아 함께 체육관으로 향해야 한다는 결론 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따라 늦게 나온 내 친구에게 전정국과 정호석을 찾아 데려 갈테니 먼저 가있으라고 했다.
내 상식 선에서는 둘이 갈 만한 곳 이라곤 본관 뒤 벤치가 있는 작은 쉼터나 매점 뿐이었다. 우리 학교 양아치들이 자주 애용하는 곳 이었다. 매점은 수업시간에 사용할 수 없으니 둘이 있을만한 곳은 쉼터 뿐이었다. 쉼터는 보통 양아치 새끼들이 담배를 피워대는 핫플레이스 였다. 아까 얼핏 듣기로는, 전정국은 담배를 빼앗겼다고 했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둘이 있을만한 곳은 없었기에 쉼터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쉼터에 다다르자, 매캐한 담배 향이 코 끝을 찔러왔다. 아마 전정국과 정호석이겠지, 나는 조금더 걸음을 재촉하였다.
"하여튼 속 좁아 터진 새끼.. 네가 이러니까 그런 취급을 받는ㄱ.. 어? 김탄소?"
예상대로 전정국과 정호석은 쉼터에서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전정국은 내 쪽을 등지고 벤치에 앉아있었고, 정호석은 그런 전정국을 향해 벽에 등을 기대고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와 눈이 마주쳤고 정호석은 반갑다는 듯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정호석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에, 전정국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또 눈이 마주쳤다. 오늘만 벌써 몇 번 마주친건지, 오늘은 아주 재수가 없다.
"여긴 어쩐 일이야? 혹시 나 걱정돼서 온거야? 전정국이 나 팰까봐?"
"아니, 이번 시간 체육으로 바뀌었어. 얼른 체육관으로 가야해."
"어쨌든 걱정돼서 온거네? 감동이다 탄소야.."
정호석은 진심으로 감동받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정호석은 정상이 아닌 것 같았다.
"병신새끼, 지랄하고 자빠졌네"
전정국은 그런 정호석이 어이없다는 듯 육두문자를 서슴없이 내뱉었고, 담배를 지져 끈 뒤 혼자 휘적휘적 체육관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도 갈까?"
어느새 정호석은 저와 나를 '우리' 라고 칭하여 불렀다. 정호석도 피우던 담배를 대충 밟아 버린 뒤 내 팔을 잡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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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독자님들! 오늘은 한시간 정도 늦었네요ㅠㅡㅠ 어제 올린 1화가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서 정말 감동받았어요ㅠㅡㅠ!!!!
암호닉 신청해주신 분들도 꽤 있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ㅜ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또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니..
어째, 정국이 글에 호석이가 더 비중이 많은 것 같지만..!! 아마 3화 부터는 정국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합니다!
아 그리고 제가 소중한 정국이를 너무 나쁜 아이로 만든 것만 같아 석고대죄 하고싶은 심정입니다ㅜㅜㅜㅜㅜㅜㅜㅜ 다시 말하지만 이건 픽션이에요 픽션..!!
정국이와 본격적인 썸씽(♥) 이 없어서 브금도 없고 설렘도 없는 단계이지만..!! 곧 멜랑꼴리한 정국이를 볼 수 있으실테니 기다려주세요 내 독자님들♡
(+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시작되면 지금보다 분량이 더 길어질 것 같아요!)
♡ 암호닉 ♡
8ㅅ8 / 아치 / 호독 / :-) / 망고 / 박지민 / 0324 / 정국의 정석 / 둡우 / 쿠키 / 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