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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lection #07 ------------------------------------------------------------------------

"아 엄청 춥다"





재빨리 난로 옆으로 자리를 옮기며 몸을 덜덜 떠는 시늉을 하는 뒷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네모난 어깨. 넓은 등. 작은 뒤통수. 기다란 팔다리. 이상하다. 아무리봐도 선배의 실루엣인데.  





"내일은 너 집에 갈 수 있겠다.  내가 서울까지 데려다 줄까?"





유리창 위의 글씨는 어느새 방 안의 온기로 다시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나는 쉽게 그 안으로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눈을 동그랗게 뜬 선배가 걱정스레 다가왔다.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흠칫하고 놀라 소리가 다가오는 방향 반대편으로 한 발 물러섰다. 시선을 어찌 해야할 지 몰라서, 선배의  얼굴 언저리를 어정쩡하게 쳐다보았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부자연스러운 모습의 나를 보고, 선배는 그대로 자리에 우뚝 섰다.  걱정스레 위로 치켜뜨는 눈썹. 그 아래 나를 보는 선배의 다정스런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숨이 막혔다.  이렇게 똑같은 얼굴인데.   



ㅡ너는 누구니?  





"누구예요?"

"응?"

"당신 누구야"





말을 뱉고 나자 겨우 숨이 쉬어졌다.  내게 다가오다 얼어버린 자세 그대로, 선배는 눈도 깜빡이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 남준선배 아니잖아."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목울대를 움직이는 게 보였다. 





"너 뭐냐고...!"





나는 다이어리에서 사진을 잡아 떼 집어던졌다.  힘없이 날아간 사진은 난로 때문에 덥혀진 방 안의 공기를 따라 흐르다 천천히 그 발 밑에 떨어졌다.  선배는 발 밑으로 떨어진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멀끔한 가슴골이 다 보이도록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은, 양 손에 후라이팬과 나무주걱을 들고 있는,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남준선배를.





"그게...."





발치의 사진을 한참 쳐다보던 선배는, 아까 다락방에서 처럼 일렁이는 눈빛으로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사진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미안해."





숨이 턱 놓였다.  떨어지는 내 숨소리를 듣고 선배, 아니 그가 입을 꾹 다물고 다시 내게로 한 발 걸어왔다. 나는 주춤 거리며 뒷걸음질쳤다.  그가 안타까운 눈으로 다시 걸음을 멈췄다.



 

"말... 하려고 했는데."





 선배가 맞는데.  아무리 봐도, 내가 아무리 부끄러워하며 훔쳐보듯 그의 얼굴을 내 취향대로만 기억 속에 새겨 넣었다 하더라도.  눈을 껌뻑이며 입술을 달싹이는 표정이며 말투, 머뭇거리는 손짓까지  그는 아직도 남준선배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세월의 흐름을 감안해도 내가 알던 모습 그대로- 거기에서 아주 조금 더 나이든 모습 그대로인데.  내 기억이 변형된 게 아니라면, 너무나도 똑같은데.





-내가 어떤 이야기들을 해줬는데?

-너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니?

-이렇게, 너를 보니까.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더더욱 모르겠고.

-나도 나를 잘 몰랐네.

-내가 많이 다르니? 네 기억보다?





그가 했던 아리송한 말들이 연달아 머리 속을 내려쳤다





"누구예요? 당신 누군데 선배 흉내내고 있었어?"





그가 다시 흔들리는 눈빛을 하고 성큼 다가왔다. 내가 미처 뒷걸음 칠 여유도 없이. 





"흉내내지 않았어. "





바로 앞에 바짝 다가선 그의 가슴에 부딪힐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당신 김남준 아니잖아"

"나 김남준 맞아."





지금 말장난 할 타이밍이야? 나는 화가 나서 다시 고개를 들고 그를 노려보았다. 





"장난해요!? 당신 김남준선배 아니잖아"

"내가 김남준이야"

"아니라면서"

"난 아니라고 한 적 없어."

"미안하다고 방금...."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내게 눈을 맞췄다.  말투만큼이나 단호해진 눈동자가 보였다.  도톰한 눈두덩이 밑에  길게 뻗은 가느다란 눈꼬리와  얇은 애교살 밑으로 살짝 진 그림자.  그리고 익숙하게 퍼지는 베이비파우더 향 비누냄새. 기억 속의 남준 선배와 꼭 닮은 그가 말했다.





"잘 봐, 내가 김남준이야."





그의 표정이 너무 절박해서 이해하고 싶었다. 하지만 분명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인데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배를 따라 읽곤 했던 어려운 책들처럼 그가 이상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네가 알고 있던 김남준은 가짜야. 지금 여기 네 앞의 내가 진짜 김남준이야."





그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계속 머릿속이 뒤엉켰다.





"다섯번째야"

"네?"

"네가 다섯번째라고"

"뭐가..."

"사라진 가짜 김남준을 찾아온  사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어요"

"내가 김남준이라고! "





그는 목소리까지 선배와 똑같았다. 





"믿기 어렵다는거 알아,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진짜야. "





 이렇게 격양된 목소리는 선배에게서도 그에게서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선배도 답답하면 이런 목소리를 냈겠지.  





"그래서 놀라지 않게 적당한 타이밍 맞춰서 진실을 이야기해주고 돌려보내기를 반복했어."





나는 아직도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의 목소리가 선배와 너무 닮은 것 같아서,  처음 듣는 그의 높은 목소리가 선배의 그것과 같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아주 잠시 했다.  멍한 나의 눈을 보고, 그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속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익숙한 얼굴의 남자 아이 두 명이 똑같은 옷을 입고 웃고 있었다.  내가 지금 그의 얼굴에서 대학 시절 선배의 얼굴을 연상할 수 있을 만큼,  그 시절 선배의 얼굴에서 사진 속 두 소년의 얼굴도 충분히 연상할 수 있었다.





"네가 알고 있던 그 녀석은 내 쌍둥이 동생이야. 내 흉내를 내고 다니던."





발 밑이 쑥 꺼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 앉았다.





"아니, 그냥 흉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나였어.  나인 것 처럼 살았더라고. 나 조차도 몰랐는데 내가 이런 말투를 쓰고 이런 습관이 있던 사람이었나 싶을만큼.  그 녀석이 그러고 다녔어."





그가 나를 따라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앞에 앉았다.  처음 내가 눈 밭에서 그에게 달려가 안겼을 때, 허수아비처럼 두 팔을 벌리고 난처하게 나를 내려다보던 그때의 표정으로, 그가 조심스레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왜... 처음부터 이야기 해주지 않았어요?"

"미안.  말 할 타이밍을 놓쳐서..."

"왜..."

"...처음엔 망설였고..... 나중엔  ..... "





그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전부 이해가 되었다.  과거의 선배는 보여준 적 없던 모습들.   그의 엘피판들을 보며 추억에 젖어드는 나를 따라 안절부절 옮기던 시선,  배고파하는 나를 위해서 주방에서 칼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던 어설픈 모습,  그렇게 더듬더듬 나의 기억에 자신을 맞추던 그의 행동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졌다. 조심스럽던 모습이 사라져가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잡아 끌어 자기 어깨에 나를 기대 눕히고,  어르신들 틈바구니에서 어른 아이의 얼굴을 한 채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는 세월의 흐름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그는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 온 사람이었다.  





"내가 많이 아팠다고.... 그래서 부모님의 관심이 전부 내게 쏟아졌고.  그 기간이 좀 길었어. 그렇게 점점 상처입은 녀석이 맘의 문을 닫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고 나서야 녀석이 내 흉내를 내고 다닌 걸 알았어."





선배는 사람 대하는게 너무나 능숙해서 어떤 상황에서도 차분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당연했다. 선배는, 그러니까 가짜 김남준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할 지를 철저히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행동하는 사람과,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은 같아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란 걸 생각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적어도 가짜 김남준 사건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결론은 ....... 나는 전혀 다른 사람에게 와서 전혀 다른 추억에 젖어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한 꼴이네요."





나는 어깨 위에 올려진 그의 손을 툭 쳐냈다. 그가 밀쳐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두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그렇게 생각하지 말자.  이것도 인연이잖아.  난 여기가 너의 안식처이기도 했으면 해.  "





익숙한 톤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난 뭐에 화가 난 걸까.





"자꾸 남준선배처럼 이야기 하지 마세요- 당신, 남준선배 아니잖아요."





내 말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내 뱉고 나서야 알았다.  그는 원래의 그 자신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알던 그 모습 이상으로, 예상 이외의 엉뚱한 모습까지 넘치도록 보여주면서.  그를 흉내낸 나의 첫사랑이 그처럼 이야기하고 행동하며 내게 거짓 추억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이제 제대로 알겠다.  기억 속의 선배가 그렇게 완벽했던 이유를.  보기에 멋있는 그의 모습을 따라하는데, 따라할 필요가 없는 모습까지는 가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의 그는 죄가 없다.  오히려 잘못한 건 내가 아닌가.  그는 엉뚱한 자신에게 찾아온 나를 받아준 것 뿐.  



나는 그때까지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가방에 챙겨넣고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거실 한 구석에 굴러다니던 캐리어를 챙겨 현관문 앞에 서자, 그가 다급하게 내 가방을 낚아채며 막아 섰다.  





"지금 밖이 몇 도인지 알아? 이 시간에 나가서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

"상관없잖아요."

"왜 상관이 없어"

"...당신 나 알아요?"

"....."

"모르잖아.  나도,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진짜 하나도 모르겠어서요"





양 손을 허리에 올리고 난감한 표정으로 그가 현관문에 기대섰다.  





"네 기억 속의 김남준이 지금 이 모습과 많이 다르다면, 그래서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닮아서 더 소름끼쳐요."





그가 한 손을 들어 입가를 쓰다듬으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턱을 쓰다듬다가, 목덜미를 쓰다듬다가, 그렇게 한숨을 쉬면서. 그는 나를 설득할 말을 계속 생각하는 눈치였다.  어떻게 해서든 문 앞에서 비켜줄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난 김남준이야. 네가 알고 있던 기억 속 그 녀석은 나와 다를 바가 없어. 어쩌면 그게 한소라라는 사람 옆에서 나보다 더 나답게 너한테 내가 되어 준거라고 생각해."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는지 궁금하네요"





머뭇거리던 그가 캐리어로 시선을 떨궜다.  영문으로 써져있던 내 네임텍이 달랑거렸다. 하아... 진짜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캐리어를 잡고 있던 손을 탁, 놓았다.  





"기분 나쁜 거 이해해.  처음부터 솔직히 말했어야 했는데.  우리 얘기 좀 더 하자."

"여기까지만 해도 1년치 이불킥 감이에요. 더 이상 민폐끼치고 싶지도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해, 진짜 민폐가 뭔지. 아무리 화가 나도 이 한 겨울에 산골짜기에서 밤을 새는 건 말이 안 돼"

"이성적이라서 좋으시겠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같은 사람한테 야한 위로도 해줄 줄 아는 진짜 김남준씨."





그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문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그를 밀쳐내려고 손을 뻗었지만 비켜줄 마음이 없는 그는 반대로 내 손을 잡고 다시 현관문을 등지고 나를 돌려세웠다.  한참을 그러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아니, 둘 다 왜 여기서 이러고있어?"





문 밖에, 식을까봐 꽁꽁 싸맨 단지 하나를 들고 종점할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이 곧바로 나의 가방으로 향했다.





"지금 가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소라야,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 저마다, 부피는 달라도 질량은 같은 삶의 무게를 지니고 있거든.

-걱정마. 네가 찾아오면 언제든 위로해줄께. 지금처럼.





모든 게 거짓이었을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모든 게 거짓이지만, 또 한편으론 진짜였을 것이다.  





-네가 알고 있던 그 녀석은 내 쌍둥이 동생이야. 내 흉내를 내고 다니던.

-아니, 그냥 흉내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나였어.   

-나인 것 처럼 살았더라고.





나와는 상관 없는.





-걱정 마. 네가 찾아오면 언제든 위로해 줄께. 지금처럼.





"...........나쁜 새끼."





따듯한 아랫목에 두 발을 뻗고 있는데, 노곤해지는 몸과는 다르게 머리 속은 점점 또렷해졌다.  내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드르륵 미닫이 문이 열리더니 종점할머니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불 잔뜩 올렸는디, 따뜻한가 모르겄네."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며 이불 속으로 할머니의 손이 들어왔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그 안에, 차갑게 곱은 할머니의 손가락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온 몸에서 장작 냄새가 났다. 이 시간까지 아궁이에 불을 때우고 있었을 할머니를 향해,  나는 억지로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도 말을 하면 좋겠는데, 도저히 입이 안떨어졌다.





"입 안심심해? 곶감 좋아해? 곶감 줄까?





나는 모든 게 너무 귀찮아서 하룻밤 재워주는 고마운 할머니에게도 짜증이 올라왔다.





"우리 혜원이 옷이 잘 맞네. "





이러면 안돼. 고마운 분이잖아. 불쌍한 분이잖아.  떠올리지 않으려 애썼는데 어쩔 수 없이 선배의, 아니 그ㅡ 김남준의 말이 떠올랐다





-알 필요없는 것을 굳이 알려주는 것도 상처가 될까싶어서 할머니가 저러실 때마다 고민이 돼.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알려주지 않는게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럴까?

-네... 할머니의 세상을 굳이 깨뜨릴 필요없을 것 같아요. 행복해보이시는데요.





그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섯 번 째로 찾아온, 사라진 가짜 김남준을 찾아온 대학 후배라는 낯선 여자 앞에서.  그 여자가 신나서 달려와 매달리며 눈물을 비췄을 때, 그리고 세상 모든 사연을 저 혼자 짊어진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을 때,  머뭇거리다 위로부터 해줄 수 밖에.  가짜 김남준이 흉내냈던 진짜 김남준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일 것이다.  눈물 맛이 나던 그 키스는 그럼 할머니 목에 둘러주던 목도리 같은 것이었을까.





-그렇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살면 참 좋을거야.





그럼 그냥 그렇게 나를 보내주지. 왜 들켜버린 건데?  왜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건데?  나는 말도 안되는 원망을 허공에 쏟아냈다.





"왜 그래, 둘이 싸웠어?"





싸운거 같기도하고... 아닌거 같기도하고. 모르겠어요





"뭔일인지 몰라도 얼른 화해해. 감정 너무 묵히면 나중엔 풀고 싶어도 못 풀어."





그런데, 내가 누구랑 싸우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어요.  





"이 할미 말 들어. 알았지? 꼭. 약속해. 내일 화해한다고."





누구한테 이렇게 화가 나는지도.





"화해할 것 도 없어요.... 다 끝났어요."





할머니가 내 어깨 위로 이불을 덮어 씌우고 끌어안은 뒤 토닥였다.





"사람 인연을 어찌 하룻밤 말다툼으로 다 끊어. "





언젠가 선배가, 가짜 김남준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럼 선배도 저에게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셔도 돼요. 저도 다 들어드릴께요.





내 말을 듣고 순식간에 서늘해졌던 눈매. 그렇다, 진짜 김남준은 보여준 적 없었던 표정이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나자, 이제야 그 말도 표정도 모두 이해가 되었다.





-중국 태산에 엄청나게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그는 뜬금없이 다른 이야기를 꺼냈었다.





-선녀의 얇은 비단옷으로 스치듯 문질러서 그 큰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겁'이라고 한대. 그런 시간이 수 없이 쌓이면 억겁이 되는 거지.

-그래서요?

-그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는 너에게 다 말해줄 수 있을거야.

-결론은 말 안해주겠다는 거네!

-사람의 인연이란 게 원래 그런거야.

-선배는 저랑 아무 인연도 아니란 건가요?

-아니, 언젠가는 말하겠지. 그럼 그때 내가 너의 인연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게 어스름히 내 마음을 짐작한 선배의 배려섞인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없는 어떤 여자애가 더이상 혼자 상처를 쌓으며 다가오지 않게 하기 위한.  아니면 아마도 군대가기 전 더이상 인연을 만들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이거나. 그의 말과는 반대로 모든 걸 알아버린 순간 우리의 인연은 추억마저 전부 끝나버렸다.



토닥토닥, 할머니의 곱은 손가락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처음 할머니의 손이 휴대폰을 건네던 이틀 전이 떠올랐다.  할머니를 따라 저 폐교 위를 올라가지 말 걸.  그냥 좋은 첫사랑의 추억이 뭍어 있는 곳이었다 기억하고 돌아가버릴 걸. 







































낯선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아침까지 억지로 얻어먹고 버스종점으로 향했다.  며칠 보고 하룻밤 재웠다고 할머니는 그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나를 배웅하러 따라 나왔다.





"이거 챙겨가. 우리 혜원이가 내가 만든 곶감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이눔 지지배는 오지도 않고."

"할머니 저 안주셔도 되는데..."

"예끼....!!!"





나도 모르게 저절로 상체부터 한쪽으로 피했다.  할머니의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할머니 진짜 아파요 그만 때려요..."

"어른이 챙겨주면 고맙습니다-하고 받으면 되는거지!"

"아..알았어요. 고맙습니다 할머니"

"그려, 조심해서 가고. 또 와야해"





머뭇거리다가 할머니의 오른손이 또다시 허공으로 올라가려는것을보며 나는 움찔하며 바로 대답을 내뱉었다.





"네, 네! 저 또 올께요."

"그려, 꼭. "





부릉부릉, 바닥이 울리는 느낌이 와서 뒤를 돌아보니 저 아래서 버스가 오고 있었다.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내 손에 쥐어주었다.





"우리 혜원이, 또 와야 돼?"

"할머니 저는..."





당황해서 나는 재빨리 손을 빼려했는데 할머니의 곱은 손은 맵기만 한 게 아니라 힘도 쎘다.





"할미 기다린다?"





할머니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보면서 끝까지 나는 넘어오는 말을 뒤로 삼켰다.





"....네."





버스 안으로 들어섰다.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앉으려다가 멈칫.  한숨을 쉬며 맨 뒷자리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뒷자리 넓은 창으로 보이는 산길가 끝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집스레 시선을 안주려 애썼지만, 추억 속 첫사랑을 고대로 닮은 그 모습을 내가 모를 리 없다.  나는 끝까지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먼 곳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산등성이로 더듬더듬 눈길을 돌렸다.  거짓이지만 또 진짜이기도 한 추억의 이야기 속 산골짜기를 되돌아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그렇게 꾸역꾸역 눈물을 참았다.  



내가 울 이유가 어디있는가.  시작도 못해 본 첫사랑이고, 그나마도 신기루같은 거짓 추억일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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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그동안 많은 이를 본인의 의지로 돌려보낸 남준이는, 처음으로 마음과는 다르게 돌려보내게된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매번 잘 보고 있어요^^

3년 전
제가썼지만 속상할것 같긴해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3년 전
비회원182.204
우와 작가님 저 저번에 댓글 적었던 독자인데요 쌍둥이라는거 맞혔네요..!!! 진짜 쌍둥이 일줄이야...ㅎㅎ 오늘도 잘 읽고 가요~~
3년 전
먼저 댓글보자마자 진짜 깜짝놀랐습니다^^; 아니라고 할까 스포라고 할까 댓글달지말까 기타등등 친구랑 굉장히 고민하면서 토론아닌 토론을...ㅎㅎㅎ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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