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으러 갈건가"
쿨하게 사무실을 나가버리신 차장님 뒤를 오늘도 쫄래쫄래 따라감
"아니에요 그냥 대리님들이랑 드시고 오세요 저 오늘 안 먹을 생각이었어요 정말로 !"
"거르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왜 자꾸 빗나가나"
"먹고 싶은거 없으면 그냥 아무데나 갈건데"
"그럼 아무데나 가요 차장님 드시고 싶은걸로"
결국 걸어서 몇분 걸리지 않는 식당에 자리잡고 앉음
차장님이 돌솥비빔밥 시키시길래 나도 그냥 같은걸로 주문함
비빔밥이 나와서 비비려는데 사실 나는 이런 류의 음식을 잘 못 비빔
학교다닐 때도 항상 친구들이 대신 해줬음
그래도 다 큰 어른이 비빔밥하나 잘 못 비비는게 부끄러워서 열심히 휘적거리고 있었음
아무리 비벼도 흰 쌀과의 경계는 그대로 ㅋㅋㅋㅋㅋㅋ
차장님께서 그런 나를 발견하시고는 어휴, 다 큰 애 하시고는 내것과 차장님것을 바꾸심
"한입도 안했으니까, 그냥 먹어요"
그렇게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또 본능적으로 차장님께서 지갑을 꺼내시길래
오늘은 정말 내가 내겠다고 끝까지 밀어붙여도 아랑곳 하지 않으심
결국에는 또 얻어먹고.. 잠깐 카페에 들렸을 때는 커피는 내가 계산함
이번에도 차장님이랑 같은 음료를 주문하니까
"따라쟁이"
저 한마디에 내면에서 웃음보가 폭발함
"재밌는거 보여줄까"
"??"
잠깐 커피를 나에게 건네고 휴대폰을 꺼내시더니 어떤 사진을 보여주심
뭘까 하고 가까이서 보니
사무실 책상에서 찌부된 상태로 잠 들어있는 나였음
"아 지워주세요"
미동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심
내가 재빨리 삭제버튼을 누르려고 하니까 차장님께서 피하심
"아 저건 좀 아닌데 정말로"
다시 휴대폰을 향해 손을 뻗었는데 툭 치시면서
"나 이사원거 아니에요, 만지지마"
사진도 서러웠고 말도 서러웠음 그래서 아무 말 없이 회사로 걸어감
옥상 갔다 돌아오신 차장님이 내게 말을 걸어 오심
"저기 이따••"
항상 나만 당하는게 억울해서 한 번 장난을 침
차장님이 입을 여시자 마자 윽, 하고 코를 막음
현실당황하시면서 한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 양치했는데? 라고 말씀하고 계셨음
"장나닙니다 ~"
하고는 칫솔을 물고 재빨리 화장실로 감
자리에 앉다 키보드를 두드리시던 차장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인상한번 쓰시고 소리없이 '혼나' 라고 말씀하심
그 뒤로도 줄곧 졸라서 사진 삭제를 약속받음
내 앞에서 삭제하기로 하고 같이 휴대폰 액정을 보고 있었음
삭제하려던 찰나, 전화가 옴
[아영씨]
차장님이 전화를 받으시며 사무실을 나가심
왠지모를 허탈함에 그냥 자리에 앉아 일이나 하려고 모니터로 눈을 돌림
5분? 가량 지나고 차장님이 돌아오심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니까 갑자기 넥타이를 바꿔 매시더니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심
나도 슬쩍 눈치를 챘음
내가 차장님을 좋아하고 있었던 건지, 다른 이유인지 몰라도 이 상황에 점점 마음이 쓰라렸음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궁상이나 떨어볼까, 하고 퇴근 후에 생전 가보지도 않던 포장마차에 가서 안주없이 소주를 들이붓고 있었음
속상한 마음에 마시고 마시다 결국 취할 정도로 마셔버림
한창 정신이 몽롱하던 때에 휴대폰이 울렸음
[어디] - 차장님
[알ㄹ아서 모하게!]
[술마셨나]
[어저라고]
[장난치는 거에요]
[아니다 !]
이번엔 전화벨이 울림
[어디에요]
[왜요~~]
[장난치지말고 어디야 누구랑있어요]
[친구없는뎅 ~~몰라요오~~?]
[어디냐고 물었는데]
[모른다고요 ㅜㅜㅜㅜㅜㅜ 나도 여기가 어딘지]
대충 위치 설명을 하고 세상모르게 엎어져서 자고 있었음
"일어나요"
부시시 눈을 떠보니 차장님이 계셨음
"아영씨는 어디두고~?"
"까불지마 얼른 일어나"
"싀른디이ㅣ~~"
미간 찌푸린게 무서워서 어쨋든 일어나서 비틀비틀 따라감
같이 편의점에 들러서 마실 것좀 사고 벤치에 앉았음
"나 봐요"
못 들은 척
"겁도 없이 어디서 여자 혼자"
못 들은 척
"대답"
"술 마셨는데"
"장난해요"
"물어봐서 대답한 거잖아요"
"왜 그러는데요 설명 해봐"
좀 화난 듯 보였음
"내가 왜 설명을 해요 나 차장님거 아니야 신경쓰지마"
말 없이 깊은 한 숨을 내쉬셨음
"내 맘대로 술도 못마셔요? 스물다섯씩이나 됬는데? 차장님도 하고싶은거 다하잖아요"
"이럴거에요 진짜"
화난 차장님이 무서워서 술기운에 울음을 참다가 결국 울어버림
"물었잖아"
차가운 톤으로 저 말을 뱉으시다가 우는 나를 발견하곤 살짝 당황하심
"울어요?"
"아니요"
"좀 봐 진짜 울어요?
"아니라니까아"
차장님이 손으로 내 얼굴 들어서 보는데 순간 울음이 완전 터져버림
"안운다고오오오오ㅜㅜㅜ 집에갈거야 ㅠㅠㅠㅠㅠㅍㅍ퓨ㅠ"
일어났는데 차장님께 손목이 잡혀 다시 앉음
"왜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울어요, 말해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안알려줄건데ㅠㅠㅠㅠ"
스읍. 하시더니 나를 노려보심
"막 선보러다니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사진도막찍고ㅠㅠㅠㅠㅠㅠㅠ 못생겼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여자랑밥먹고 전화하고ㅠㅠㅠㅠ"
"그래서"
"좋아하는데ㅠㅠㅠㅠㅠㅠㅠ마음아퍼ㅠㅠㅠㅠㅠㅠㅠ서러웡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소리질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두손으로 내 머리를 감싸앉고 투박하게 토닥토닥 하심
"미안해요"
"안좋아해, 안만날거야 울지마"
"내가 가르쳐줬잖아요 빈속에 그러면 어떡해"
"이 밤에 혼자 거기서 이렇게 잔뜩 취해서"
"속상하다 진짜"
그렇게 안긴채로 시간이 좀 흘렀음
"다 울었으면 가야지 집에. 가요 데려다줄게"
"차장님 집 요기 앞에잖아요"
"피곤하다 얼른 가지?"
"흥"
"내일 나 어떻게 보려고 이러나"
"그럼 그만둬요 ㅜㅜ 내가 ?"
"애다 애야"
어이가 없으신 듯 피식웃으시곤 다시 걸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