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혼자 그런생각을 하고 그러세요"
"아무 생각도 안 했어"
"땀이라도 닦고 말씀하세요"
"먹기나 해요"
하며 고개를 휙 돌리심
기분좋게 한 잔 하려는데, 차장님이 병을 빼앗으셨음
내가 불만을 가득 품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아랑곳 않고 술병을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겨버리심
먼저 식사를 마치신 차장님은 계산을 하고 나가셔서 담배를 한 대 태우고 계셨음
나와서 오늘은 일찍 헤어지기로 하고,차장님이랑 둘이 걸어가는데 날이 좀 쌀쌀했음
콜록콜록-
"겉옷은요"
"안 입고 왔어요"
"자식이야 자식,"
하시더니 들고 가던 자켓을 건네주심
"괜찮아요"
"감기 걸려서 옮기지말고"
그렇게 또 걸어가는데 옷가게 안에 얼마전에 같이봤던 영화 남주등신대가 서있었음
무의식적으로 가게문 앞에 멈춰버림
몇초가 흐르고 아차싶어서 차장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음
뒷짐지고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추려는 표정으로, 나보다 다섯걸음 정도 앞에 서 계신 차장님과 눈이 마주쳤음
차장님에게로 가려고 했는데 먼저 출발하셔선 긴다리를 휘적이시며 빠른속도로 걸어가심
헥헥거리며 쫄래쫄래 뒤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급정거를 하시더니
이제 덥죠? 하고는 나에게 걸쳐져 있던 자켓을 도로 가져가셔서 입으심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앉았음
마주보고 앉았는데 정말 딱히 할말이 없었음
지금까지 이성이라곤 오빠밖에 없었던지라 남자와 둘이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이 어색했음
그것도 만나는 사이니까, 더 그랬음
괜히 휴대폰 액정도 한 번 보고, 주위도 두리번거려 보고 하다가 슬며시 차장님을 쳐다봤는데
안절부절 못하는 나와는 달리 너무 여유로운 표정으로 나를 빤히 응시하고 계셨음
"왜요...?"
"그냥"
"아 네,,"
하고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심
"커피는 연하게 마셔요"
"네"
연인사이가 맞나 싶을정도로 별다른 대화가 없었음.
내 단답에 차장님도 답답하셨는지 먼저 얘기를 꺼내셨음
"그렇게 할 말이 없어요?"
"아니요 아니요"
다른 사람과 있을 때는 내가 더 차장님을 편하게 대했었는데, 둘만 있으면 항상 입장이 바뀜
"알코올이 없으니까 말을 못하는구나 이사원이"
"원래 낯을 가려요, 남이랑 막 둘이 뭘 잘 못하고"
같이 회사다닌지가 얼만데.. 낯을 가리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만 늘어놓았음
"우리가 남은 아닐 걸요, 안그런가?"
"그렇죠, 같이 일한지 벌써 몇개월이 되어가는데"
"그런거 말고"
"네?"
시계를 한 번 보니 이제 갈 시간이 된 것 같아 나옴
-
한동안 우리팀은 정말로 바빴고, 모두가 지쳐있었음
특히 차장님이 제일 피곤한 시간을 보내셨음. 몸이 좀 안좋아 보이셨음
지쳐보여도 꿋꿋이 다 해내시더니, 결국 일이 끝나자마자 회사에 못 나오심
쉽게 지치고 아프고 하신분이 아닌데 회사까지 안나오실 정도면 얼마나 안 좋으신걸까 걱정이 되어서
퇴근 후에 죽을사서 차장님 댁으로 갔음
띵똥 -
초인종을 눌렀는데 한 동안 반응이 없다가 문이 열림
문틈으로 보이는 수척해진 얼굴에 마음이 좋지 않았음
"어쩐일이에요"
목소리부터가 힘이 하나도 없어보이셨음
"이거 좀 드시라고.."
그냥 가면 안 드실게 분명하기에, 들어가서 다 차려드렸음
한술을 안 뜨시길래 손에 숟가락까지 쥐어드림
"내가 애도 아니고, 얼른 가봐요"
"대리님들이 꼭 다드시는거 보고 오라고 하셨어요"
"이사원은, 저녁 먹었어요"
"얼른 드세요 식으면 맛 없어요"
"병원은 가보셨어요?"
절레절레
"약은요"
절레절레
"어쩌시려고요, 더 안 좋아져요"
"약 사올게요 드시고 계세요"
"그냥 앉아 있으면 안되나"
"약은요"
"이사원이"
"아니에요 됐어요"
"다 먹었어요, 나가요 데려다줄게요"
"아니에요 무슨"
꿋꿋이 겉옷을 가지러 가신 사이에 안녕히계세요 ! 외치고 집을 나옴
다음 날 곧바로 출근하셔서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보심
점심시간에 탕비실에 있었는데 잔뜩 힘든 얼굴을 하시고 들어오셔서는
"잠깐만,"
하시곤 허리를 숙여 몇 분을 내 어깨에 기댄채로 서계셨음
늦어서 죄송합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