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로 뵙는 건 오랜만입니다만, 그간 잘 지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보내신 편지는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흘 동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후회도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나는 왜 마음을 전하지 않았던 걸까, 하고 말입니다.
나흘 째, 당신이 제게 보냈던 편지들을 붙잡고 겨우 잠에 들었습니다. 일어났을 땐 편지엔 눈물 자욱이 가득했습니다. 글자는 곳곳이 조금씩 번져 있었고, 구겨진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편지를 붙잡고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습니다. 손에 쥐고 있던, 품에 고이 간직했던 당신의 편지엔 당신의 사랑스러운 향기가 짙게 배어있었습니다. 아니, 당신의 냄새가 편지를 받자마자 제게 짙게 배어버린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또다시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냈습니다. 아마 하늘이 저를 딱하게 여기셨다면, 제 눈물은 밤하늘 위 은하수가 되어 당신이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저는 당신을, 그중 손을 참으로 좋아했습니다. 당신이 연필을 잡고 있는 모습,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꽃을 매만지던 모습,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기며 장난을 치던 모습, 모든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글자 한 자, 한 자에 당신과의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즐겁지만,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름답고, 아름답고, 또 아름답습니다. 제 머릿속엔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의 당신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사내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제가 처음으로 연정을 품은 상대가 당신이니, 당신은 영원히 제 머릿속에 무덤까지 남을 것입니다.
당신이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는 모릅니다. 그저 주위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편지를 급하게 쓴 것뿐입니다. 물론 그 소문들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빌려 당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영원히 저라는 꽃밭에서 노닐었으면 합니다.
민윤기」
*
나는 그의 편지를 본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아내었다. 편지를 품에 안고 벽에 기대어 앉았다. 방 안은 축축한 눈물과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그의 편지를 고이 접어 통 안에 있는 다른 편지들 사이에 넣었다. 그리고 편지들이 들어있는 통과 옷가지들, 돈을 챙겨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책상에 굴러다니던 종이 한 장을 잡아 연필을 손에 쥐고 빠르게 휘갈겼다. 그것을 책상 위에 고이 올려두고 가방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를 만나고 싶습니다.」
*
문을 두들기는 시끄러운 소리에 몸을 일으켜 눈을 찡그리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어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확인한 순간 굳어버렸다.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그녀가 제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멍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을 걸려던 찰나에 그녀가 먼저 나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나는 내 입술 위에 놓인 말랑하면서도 물컹한 무언가에 혼이 나갈 것만 같았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밀어내지 않았다. 이성보다 본능이 앞섰다. 그저,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났을까,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이곳을 떠나요.”
“잠시만, 이게 무슨…….”
“나와 떠나자고요! 여길!”
“……!”
“당신이 말했잖아요. 내가 영원히 당신이란 꽃밭에서 노닐기 바란다고.”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녀를 품속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녀에게만 들릴 만큼 말했다.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이야……, 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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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흨ㄱ.. 저 편지 내용이 너무 쓰고 싶어서 들고 왔어요... 민윤기가 저런 편지를 써준다면 발림.. ㅇ<-<
예그리나의 뜻은 '사랑하는 우리 사이'라고 합니다. 으윽.. 단어가 너무 좋다..
암호닉
[바나나] [망고] [흥탄♥] [봄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