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스트리트 1번지
w. 정국학개론
" 아저씨, 아저씨 일어났어요? "
- 어어, 일어났지. 방금.
" 또 밤샜어요? "
- 아냐. 너 가고 바로 잤어.
" 지금 학교 갈 건데 가기 전에 들렀다 가도 돼요? "
- 비밀번호 알면서 뭘 자꾸 물어.
0309 익숙한 네 자리를 치고 문을 열었다. 연락한 지 겨우 10분 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젖은 머리를 탈탈 털고 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매번 보는 모습이지만 아저씨 모르게 코를 부여잡는다. 그냥, 뭐. 그렇다. 일반적인 여자들이 그렇듯이.
내가 오는 일이 당연하다는 듯이 아저씨는 왔어? 한 마디 던져 주고는 냉장고를 열어 물을 꺼낸다. 물 끓여서 마시라니까 진짜 말 안 듣지. 퉁명스런 표정으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아저씨가 들이키려는 물통을 빼앗고는 찬장 문을 열었다.
" 이거 물에 뿌려서 끓이고 마시라니까요? 이게 눈에 진짜 좋은데. "
" 귀찮아. "
" 아저씨 밤마다 노트북 보고 있으면 눈이 얼마나 나빠지는지 알아요? "
" 괜찮아. "
" 와,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내가 안 괜찮거든요? "
" 뜨거운 물 안 좋아해. "
" 아니, 아저씨 보고 부채질하래요? 냉장고 있잖아요, 냉장고! "
늘 이런 식이었다.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미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저씨의 팔뚝을 아프지 않게 치면 아저씨는 엄살을 부리며 맞은 부위를 쓰다듬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더니 딱 그 꼴이었다. 아저씨가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내 손에 들려 있는 물통을 가져갔다. 휑해진 손을 내리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더니 물을 한 번 들이킨 아저씨가 나른한 웃음을 뱉는다.
" 애가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 "
*
동아리 모집기간이 끝나고 일주일 동안 지켜본 결과 유난히 동아리실을 제 집처럼 들락날락거리는 세 명이 있다. 하나는 물론 씨걸. 누가 보면 제 집 안방처럼 보라색 소파에 기다란 몸을 뉘이는데 덕분에 나는 딱딱한 의자에 앉았더랜다. 호석 오빠가 따끔하게 위아래에 관해 알려준 덕분에 그래도 요즘은 얌전히 앉아 있는 편이다. 두 번째는 박지민이라고, 신입생인데 나랑은 동갑이라고 친절히 알려 준 덕분에 말을 까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래도 말을 까기 위해 일부러 알려 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태형. 첫인상이 아주 안 좋은 녀석인데 입만 열면 욕이다. 박지민이랑 고등학교 동창이라는데 박지민이랑 얘기할 땐 실실 잘만 웃으면서 나한텐 어찌나 까칠한지 눈도 마주치기가 무섭다. 아무튼 이 세 명이 동아리실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더라.
" 뭐냐, 너네 또 여기 있냐? "
" 형! "
" 형님! "
" ……. "
호석 오빠의 등장에 씨걸과 박지민이 유난히 반가워한다. 내가 들어올 땐 그렇게까지 반가워하지도 않았으면서. 세상에서 제일 까칠한 김태형은 보라색 소파에 앉아서는 고개만 살짝 까딱하더니 귀에 이어폰을 꼽는다. 싸가지가 바가지. 그래도 호석 오빠에겐 인사라도 하지 나는 아예 개무시다, 개무시. 노래를 고르는 듯 폰을 잡고 손가락을 위아래로 움직이던 김태형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있는 나를 본다. 마음속으로 노려본다는 게 닿았나 싶어 움찔하는데 김태형이 얼굴을 찡그린다.
" 뭘 봐. "
" 안 봤거든? "
" 봤잖아. "
" 진짜 안 봤거든! "
" 그럼 말고. "
대화 같지도 않은 대화였지만 대화를 나누려면 적어도 이어폰은 빼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머릿속을 한창 지배하고 있을 때 호석 오빠 앞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던 박지민과 씨걸이 나와 김태형 근처로 다가온다. 박지민은 김태형 옆에, 씨걸은 내 옆에 앉아서는 나와 김태형을 번갈아보는데 성난 표정으로 둘을 홱홱 노려보았더니 박지민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김태형에게 팔짱을 끼고 씨걸은 여전히 그 환한 웃음을 보인다. 화났어요? 씨걸의 물음에 김태형을 힐끗 보았다. 하여튼 싸가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났어. 씨걸의 손이 내 머리 위에 앉았다. 동그래진 눈으로 쳐다보자 씨걸이 하얀 치아를 보이며 해맑게 웃는다.
" 화내지 마요. "
*
김규태 아니면 김연주. 2학년에 배정된 전공 수업이 그렇게 많지 않은 탓에 둘 중 한 명은 걸리는 게 당연했다. 최우선적으로 김규태를 피하는 게 내 목표였는데 수업 딱 하나가 계산 착오였다. 그 징글거리는 얼굴과 마주하고 진을 쏙 빼놓고 왔다. 그때 학생식당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 말을 걸지는 않았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조별 과제가 많은 수업이었다. 2인 1조라 걸릴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지만 걸리게 된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머릿속이 김규태로 가득 찼다. 그날 일도 생각이 났다. 복잡해진 머리통을 힘겹게 들고 동방 문을 열었다.
" 아, 안녕하세요. "
" 너 요즘도 동방 오니? "
" 아, 네……. "
하지연. 영어영문학과. 4학년. 2학년 마치고 호주로 교환학생을 1년 간 갔다온 후 마음에 들어 1년 더 갔다왔다고 했으니까 올해로 스물다섯. 그러니까 호석 오빠와는 동갑. 같은 나인데 사람이 얼마나 다른지 내가 다른 남자 선배들과 얘기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한 여자 선배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 생각엔 그냥 나를 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 같다. 작년에 나를 하도 몰아세운 바람에 남자 선배들에게 이리저리 까여서는 한동안 동방에서 얼굴 볼 일이 없었는데 웬일인지 반갑지 않은 얼굴로 보라색 소파를 차지하고 있다. 짜증 나게 왜 다들 자꾸 내 보라색 소파를 건드는 거야.
그래도 선배인지라 허리 숙여가며 인사하고는 딱딱한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드는데 곧 호석 오빠가 따라서 들어온다. 안녕~ 낭창한 목소리로 들어오던 사람이 내 맞은편에 있는 하지연 선배를 보고는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연다.
" 야, 너, 오랜만이다? "
" 그러게. 오랜만이네. 누구 때문에. "
누구가 누구인지는 누가 들어도 알겠고. 방금까지 김규태 때문에 아픈 머리를 이고 왔는데 여기서까지 괴롭힘을 당할 수 없다는 생각에 차라리 학교를 돌아다녀야겠다 싶어 풀고 있던 가방을 다시 싸서 맸더니 호석 오빠의 물음이 던져진다.
" 어디 가려고? 밥 먹어야지. "
" 딱 한 시간 후에 먹어요. 나 머리가 좀 아파서. "
" 둘이 친한 건 여전하고? "
차마 대놓고 얼굴을 찡그릴 수가 없어 호석 오빠 쪽을 보고 울상을 지었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곧 다가와 내 어깨를 두드린다. 뒤에서 득달같이 달려오는 질문에 다시 한 번 얼굴을 찡그리며 동방 문을 열었다. 그랬더니 보이는 건 하얀 무지티, 에 있는 빨간 자국.
" 누나! "
씨걸이다.
칠칠맞게 이런 건 어디서 묻히고 다니는지 보는 내가 답답하다. 씨걸의 얼굴을 올려다 볼 새 없이 무지티에 묻어 있는 빨간 자국만 빤히 쳐다보았더니 부끄러운 듯 큰 손으로 그 자국을 가리더니 수줍게 웃는다. 그러니까. 대체 왜 수줍게 웃는 건데? 이상한 눈으로 씨걸을 보았더니 뱉는 말이 가관이다.
" 가슴을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게 어디 있어요. "
" ……하, "
" 부끄럽게. "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래도 확실히 씨걸을 보고 있으니 마음도 머리도 놓인다. 한결 깔끔해진 머리에 기분 좋게 돌아다닐 수 있겠구나 싶어 씨걸을 따라 웃었다. 그리고 곧 하지연 선배에 의해 깨졌다. 신입생이냐며 밝게 물어오는 그 물음에 씨걸의 시선이 내 뒤를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내 동기 남자애들은 하지연 선배를 굉장히 좋아했다. 여자인 내가 봐도 예쁘긴 했다. 우리 또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성숙미가 느껴지기도 했고. 검은색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니 청순하기도 했고.
딱히 내가 좋아하는 선배가 아니라 인사를 드리라며 몸을 비켜 줄 수도 없고 머뭇거리는데 씨걸이 금세 뒤를 향했던 시선을 거둔다.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씨걸이 느끼하게 윙크를 한 번 하더니 내 손목을 잡아 당겼다. 씨걸이 뒷걸음질을 쳤고 갑작스런 상황에 중심을 잡지 못한 내가 씨걸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문이 닫혔다.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약 몇 초간을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알아차렸을 때, 내가 씨걸을 끌어안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깨를 밀어내자 씨걸의 웃음이 금세 닿았다. 미쳤지. 김OO 미쳤지. 자책하고 있는데 씨걸이 엄지와 중지로 내 이마를 아프지 않게 튕긴다.
" 설렜어요? "
" 미쳤지, 미쳤… 미쳤냐? "
" 어, 반말 썼다. "
" 너…! "
" 나? "
" 너…, 너너너너! 신입생이잖아! "
" 네, 신입생인데요. 왜요? "
그러니까. 나는 신입생이니까, 재학생인 내가 한 살이 더 많으니까 반말을 써도 되지 않냐는 말을 하고 싶은 건데 내가 말을 잘못한 건지 쟤가 이해를 못하는 건지 고민이 되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끌어안은 게 아니라 나의 팔과 씨걸의 몸이 살짝 닿은 것일 뿐이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린 끌어안지 않았다는 거지. 벌써 머릿속에선 제3자의 시선에서 보게 되었을 우리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아냐, 지워내야 해. 상상 한 번 하면 끝이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마음속으로 손을 휘휘 저어 상상의 나래를 끊어내려 하는데 씨걸이 물어온다.
" 무슨 생각 해요? "
" 네 생, "
" 내 생각? "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정면으로 바싹 다가와 있는 얼굴에 숨을 멈추었다. 허리를 숙여가며 물어야 할 정도로 내가 이상해 보였나?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을 말이었는데 해명해야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명해야 하지? 네 생각은 네 생각인데, 그런 생각이 아니라 다른 생각이었다고 설명해야 하나? 내가 너를 끌어안은 걸 생각했다고 말해야 하나? 어감이 이상하잖아. 혼란스러운 머릿속 한 구석에서 씨걸의 얼굴이 동동 떠다녔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고 있는데 따뜻한 감촉이 볼을 감싸쥔다. 예의 그 따뜻한 감촉.
" 내 생각 했어요? "
절대. 아니거든.
정국학개론 |
여러분 저 또 왔어요. 요즘 자주 오네요. 제가 그랬잖아요. 이 글 쓸 때마다 너무 즐겁다고. 그래서 매일 오나 봐요. 사실 여기서 제 사심 채웁니다! 정국아윽걍아각ㄱ약 BGM ~ 빨간의자 - 설레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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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뭉실 ㅈㅈㄱ 웃웃웃 맑공 정콩국 새별 손가락 비비빅 형뚜 0418 오구리 방치킨 시나브로 슈테른 뿌야 냥냥이 미니미니 플랑크톤회장 소뿡 핑크보이 열아홉 부랑이 정꾸 이과생 인사이드아웃 미늉기 꾸꾹이 잼잼 방구대왕뿡뿡 핑슙 꽃님 조막부리 예에에 방탄나라정국공주 토끼 물고기 고구마 침을태태❤️오렌지❤️ 또또 막꾹수 인연 937 용용이 흥탄 이부 푸딩 사용안함 너를위해 스미마셍 민이 큄 #원슙 요를레히 스며들면 태권브이 몬무이 현지짱짱 소녀 민빠답없 기타치는소녀 요맘때 독자1 야끙 태태뽀뽀 호리호리 슈가몽 후엥 정쩔 수저 민트 오레오 코코팜 은류 박듀 윤아얌 계피 꿀떡맛탕 그로밋 작가님사랑해여 알라 히동 화원의낭자 윤기쟁이 태형워더 변탄소 태태한침침이 피닝 초코송이 슙꽃 젤리 규짐 디디 김치만두 지민쓰짝사랑 요덮아놀쟈 정국이마누라 달다리 1013 골드빈 맴매맹 탱탱 818 기화 여름밤 흥탄♥ 본시걸 태퉤 얌냠 영감 호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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