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스트리트 1번지
w. 정국학개론
" 놀러가기로 했잖아요! "
" 다음 주가 마감이라 깜빡했다. 미안. 다음에 꼭 가자. "
" 아아! 진짜 싫어! "
이럴 줄 알았다. 매주 목요일은 아저씨와 노는 시간으로 비워두려고 겨우겨우 공강을 만들어놨는데 놀러가기로 약속을 해놓고는 바쁘단 핑계로 아저씨는 미안하단 말만 반복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겨우 얼굴을 가리는 용으로 사용했던 화장품을 제 용도에 맞게 사용하고, 어떤 옷을 입어야 아저씨와 잘 어울릴지 어젯밤부터 방금 전까지 고민했는데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아저씨의 부스스한 머리와 늘어난 티셔츠였다. 집으로 끌려들어와서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으면 아저씨는 냉수를 꺼내 마시더니 곧 다가와서는 내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 하지 마요. 아침부터 한 건데. "
" 오늘 예쁘네. "
" 그래도 안 풀리거든요. "
" 다음에는 진짜 꼭 가자. 약속. "
사실 조금 설레는 심장을 꼭 붙잡고 화끈거리는 얼굴을 푹 숙였다. 내 얼굴 앞에 들이밀어진 아저씨의 새끼 손가락을 빤히 쳐다보았다. 새하얀 손이 또 뭐가 그렇게 예쁘다고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어쩔 수 없는 내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옆에서 나른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손가락만 봐도, 웃음 소리만 들어도 이렇게 설레는데. 치마를 구겨지게 쥐었다.
" 아저씨. "
" 왜. "
" 답은 언제 해 줄 거예요? "
*
" 오늘 공강이라며. 학교는 왜 나왔냐? "
" 딱히 있을 곳이 없어서요. 아저씨는 글 쓰느라 바쁘지, 집은 불편하지. 여기가 제일 편해요. "
아저씨는 답을 해 주지 않았다. 결국 터져나올 것 같은 눈물을 꾹 참고 도망치듯이 아저씨 집을 나왔다. 달리 갈 곳도 없었고 가는 김에 호석 오빠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심정으로 버스를 탔다. 지금까지도 아저씨에게는 문자 한 통이 오지 않았다. 너무 성급했나 싶었지만 기다리다 지쳐 땡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폰을 만지작대는 내 모습에 호석 오빠가 웃으며 내 맞은편에 의자를 끌고와 앉았다.
" 차였냐? "
" 아니거든요. "
" 차였네. "
" 아니라니, "
" 또 차였어? "
호석 오빠는 내가 아저씨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둘은 아는 사이고. 언제부터 알게된 사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아저씨를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임은 확실하다. 그래서인지 호석 오빠는 아저씨와 참 많이도 닮아 있었다. 하는 말과 행동은 다르지만, 묘하게 같았다. 나를 대하는 모습이 똑같았다. 하는 생각도 비슷한 것 같고. 나는 아저씨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늘 호석 오빠에게 물었고 호석 오빠는 아는 선에서 답을 해 주었다. 작작 물었으면 괜찮은데 괜히 이것저것 묻는 바람에 눈치 빠른 오빠에게 아저씨를 좋아하는 걸 들켰지만. 내가 매번 차이는 것도 알고 있다. 차일 때마다 동방에서 질질 짜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 그렇게 좋냐? "
방울방울지던 눈물이 툭, 손등에 떨어졌다. 매번 있는 일이었지만 매번 아팠고, 부끄러웠다. 익숙해질 법도 한데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울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싶다가도 호석 오빠 목소리만 들으면 반사적으로 눈물이 튀어나왔다. 아저씨가 나쁜 습관은 들이는 게 아니랬는데 벌써 나쁜 습관이 든 것 같았다.
굳이 앞을 보지 않아도 웃고 있을 호석 오빠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 주었다. 어쩌면 이 손길이 좋아서 아픈 일이 있을 때마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곳을 찾는 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시절, 내 인생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아저씨처럼 대학 시절, 내 인생의 반틈 정도는 호석 오빠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상황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 내년이면 호석 오빠도 졸업인데. 호석 오빠가 없는 동방을 생각하면 앞이 캄캄할 정도였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다가도 괜한 감성에 젖어버린다.
" 울지 마. 형이 너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좋아하겠냐. "
" 아저씨 편 들지 마요. "
" 코나 닦고 말하지? "
호석 오빠가 휴지를 끊어 주었다. 툴툴대며 코를 팽 풀고 휴지를 뭉쳐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데 호석 오빠가 여자애가 그게 뭐냐며 혀를 찬다. 호석 오빠를 밉지 않게 흘겨보며 금방 건조해진 눈을 손등으로 비비는데 한동안 잠잠하던 동방의 문이 열린다. 제 몸보다 작은 검은색 기타집을 찬 김태형이었다. 들어오자마자 호석 오빠에게 꾸벅 목을 움직이고는 나를 힐끗 보더니 내 옆으로 와 앉는다.
" 김태형 뭐냐. 공강이야? "
" 네. 수업 끝나서요. "
" 그건 뭔데. 기타? "
" 일렉이요. "
호석 오빠가 고개를 끄덕이며 폰을 확인하더니 금방 동방을 나가버린다. 약속이 있으면 약속이 있다 말이라도 하고 나가지, 어색하게 이게 뭐야. 정적은 짧았다. 기타집에서 삐까뻔쩍한 일렉 기타를 꺼낸 김태형이 기타줄을 잡는다. 앰프를 연결할 생각이 없는지 줄만 팅팅 튕기던 김태형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나를 그제서야 쳐다본다.
" 또 뭐. "
" ……. "
" 이번에도 안 봤냐? "
" 아니, 뭐…… "
너무 대놓고 쳐다봤나, 싶어 코를 킁 들이마시며 눈을 돌렸다. 곧 시선을 기타로 옮긴 김태형이 다시 기타줄을 잡고 튕긴다. 무슨 노래인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던 김태형의 손이 잠시 멈추고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 속을, 김태형의 낮은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 울었냐? "
" ……. "
" 아님 말고. "
얼굴이 따가웠다. 아무래도 김태형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함부로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눈이 그렇게 빨간가. 간지러운 느낌에 다시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한동안 나를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던 김태형이 다시 기타를 잡았고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는데 그게 아저씨에게서 온 건지, 아니면 김미영 팀장님에게서 온 건지 알 수가 없어 홀드 버튼만 누르기를 반복했다. 헛된 희망은 가지지 말자, 아저씨가 아니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잔뜩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폰을 만지작댔다.
[어디야]
아저씨였다. 동방인 걸 뻔히 알면서 묻는 심보는 뭐야. 어쩌면 호석 오빠가 아저씨에게 연락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답을 할까, 말까. 사실 이런 고민은 사치였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게임에서 더 좋아하는 나따위가 고민이란 걸 제대로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고민은 Yes or No가 아니었다. How. 답을 어떻게 해야 내가 덜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까. 내가 덜 애처럼 느껴질까. 그래서 오늘도 고민을 했다. 어떻게 답을 해야 할까. 어느새 찾아온 정적을 알아채질 못할 정도로 머리를 굴렸다. 옆에서 부딪혀오는 시선에 얼굴이 따가운 것조차 알지 못할 정도로 그랬다. 그 정도로 문자 한 통에 정신이 없었다.
*
" 너 경찰행정학과였어? "
" 누나랑 같은 단대. "
" 뭐야. 엄청 가까웠잖아. "
씨걸은 생각보다 나와 가까웠다. 그래서 학생식당에서 마주칠 수 있었구나. 그제서야 이해가 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씨걸이 턱을 괴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부담스런 눈빛에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한동안 눈을 떼지도 않고 그렇게 나와 마주치고 있다. 꼭 눈싸움이라도 하듯, 누구 하나가 눈을 감으면 지는 게임이라도 하듯 눈을 맞추고 있는데 이게 뭐라고 괜히 웃음이 나온다. 아름다운 걸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처럼.
" 무슨 꿈 꿨어요? "
" 꿈? "
" 어제 무슨 꿈 꿨어요? "
글쎄. 꿈이란 걸 꾸긴 했나. 평소에도 꿈에 관해선 제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는 탓에 바로 몇 시간 전으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어렸을 적엔 꿈이란 걸 꽤 꿨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선 꿈을 꿀 여유도 없었던 것 같다. 학교에서 치이고, 집에서 치이고, 유일한 안식처는 아저씨네 집이었는데 그땐 아저씨에게도 치였던 것 같다. 좀 다른 의미에서.
" 난 꿈 안 꾸는데? "
" 에이, 그런 게 어디 있냐~ "
" 진짜 안 꾸는데? "
" 그럼, 뭐, 생각이 없어요? "
" 그건 또 무슨 말이야. "
생각했던 답이 아니었는지 횡설수설 말을 이어나가던 씨걸이 내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는 듯 입을 다물었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본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 모습마저도 이제 갓 고등학생 딱지를 뗀 남자애 같아 물끄러미 보면서 웃고 있는데 다시 초점을 얻은 그 눈이 나와 딱 마주친다. 괜한 민망함이 밀려와 마치 보지 않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눈을 굴리는데 씨걸이 입을 크게 벌려 환히 웃으며 말한다.
" 잘생기면 잘생겼다고 말로 해요. 눈으로 하지 말고. "
" 미쳤냐? "
" 아주 그냥, 눈에서 하트가 뿅뿅~ "
" 하트가 뿅뿅? 진짜 미쳤지. "
" 곧 있으면 눈으로 나 잡아먹겠어요. "
자뻑도 저런 자뻑이 없지. 어이가 없어 반박도 못하고 어버버 하는데 씨걸은 뭐가 좋은지 헤실헤실 웃으며 윙크를 한다. 이마를 짚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냥 내가 쟤를 안 봐야지. 나름 소신 있는 여잔데 씨걸만 보면 휘둘리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하다. 정신 차리자. 휘둘리지 말자.
" 매일 생각하면 꿈에 나온대요. "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숙였던 얼굴을 들었다. 여전히 해사한 웃음을 걸치고 있는데 하고 있는 말은 아까와는 영 다른 모습임에 귀를 기울였다.
" 그래서 어제 내 꿈엔 누나가 나왔어요. "
" ……. "
" 매일 생각하거든요. "
정국학개론 |
제가 좀 늦었죠.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1일 1연재에 실패했어요. (아쉽) 늘 노력하는 정국학개론이 되겠습니다. 정국아 사랑해ㅎ으항하ㅇ캑 BGM ~ 스탠딩에그 - 예뻐서 그래 |
암호닉 |
그리 뭉실 ㅈㅈㄱ 웃웃웃 맑공 정콩국 새별 손가락 비비빅 형뚜 0418 오구리 방치킨 시나브로 슈테른 뿌야 냥냥이 미니미니 플랑크톤회장 소뿡 핑크보이 열아홉 부랑이 정꾸 이과생 인사이드아웃 미늉기 꾸꾹이 잼잼 방구대왕뿡뿡 핑슙 꽃님 조막부리 예에에 방탄나라정국공주 토끼 물고기 고구마 침을태태❤️오렌지❤️ 또또 막꾹수 인연 937 용용이 흥탄 이부 푸딩 사용안함 너를위해 스미마셍 민이 큄 #원슙 요를레히 스며들면 태권브이 몬무이 현지짱짱 소녀 민빠답없 기타치는소녀 요맘때 독자1 야끙 태태뽀뽀 호리호리 슈가몽 후엥 정쩔 수저 민트 오레오 코코팜 은류 박듀 윤아얌 계피 꿀떡맛탕 그로밋 작가님사랑해여 알라 히동 화원의낭자 윤기쟁이 태형워더 변탄소 태태한침침이 피닝 초코송이 슙꽃 젤리 규짐 디디 김치만두 지민쓰짝사랑 요덮아놀쟈 정국이마누라 달다리 1013 골드빈 맴매맹 탱탱 818 기화 여름밤 흥탄♥ 본시걸 태퉤 얌냠 영감 호빗 론 전장꾸 쿠마몬 초코 태태퉤 국쓰 몽쉘 돌핀이 괴물 8개월 웬디 비림 체리 달똥달 디즈니 토끼총총 꾹꾹이 허니꿍 썸남 김태형보스 아짓 꼬이 초딩입맛 침침 달콤윤기 팅커벨 자몽에이드 맴매야 쟉하 언더더쎄임문 97꾸 딘시 모매아 몽슈 |
p.s. 제 닉에서 다들 느끼셨듯이 제 최애는 정국이가 맞습니다! 하지만 제 최애가 정국이라서 늘 정국이를 주인공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정국이가 제가 생각하는 글 이미지에 늘 잘 어울려서 정국이를 주인공으로 세우고 있어요! 참고로 제 차애는 없습니다! 윤기가 아니랍니다 ^ㅁ^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어쩌다 보니 윤기 선배와 윤기 아저씨가 서브남주로 나오게 되는 것일뿐! 그리고 로맨틱 스트리트 1번지 서브남주는 아주 많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