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 읽으시기 전에 꼭, 12편을 복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13편이 더 와닿으실 것 같아요. 부탁드립니다.
* 나름 열심히 선곡한 BGM인데,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두 번 읽으실 분들은 한 번은 재생하시고, 한 번은 꺼두시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럼블피쉬 - 사랑은 잔인하게 쓰여진다.)
[인피니트/현성] 자존심 13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따사로운 오전, 그리고 오후로 슬슬 넘어갈 때쯤의 침대. 김성규와 이렇게 달콤한 시간을 보낸 적이 언제였을까,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눈만 깜빡거리고, 허리에 손을 걸친 것이 불편한지 숨을 참는건지 모를 행동에 슬그머니 허리를 간지럽히자 그제서야 푸학ㅡ하고 숨을 뱉는다. 토끼 같은 얼굴에 눈물샘이 촉촉히 젖어있는 것도 예쁘고, 내 팔에 얌전히 누워있는 것도 너무 예쁘다. 마구마구 뽀뽀를 해주고 싶은 얼굴. 사랑을 공평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언제나 사랑만 받았기에, 돌려줄 방법을 채 찾지못해 궁리하자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다시 이불을 덮고 고른 숨을 쉰다. 사람마다 공평의 기준이 다른만큼, 나는 김성규에게 더 헌신해야했다. 나에겐 그것이 공평했다. 정적 속에서 천장을 바라본 채 생각에 잠기자 그 고요함이 어색했던지 입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말을 걸 것 같다가도, 결국엔 입술을 닫는 김성규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도 모르고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할 말 있어?ㅡ 내 말에 놀란 듯 푸드덕거리며 이불 속으로 숨는 이유는 뭔데. 그 와중에 답지않게 귀여운 모습이 보여 절로 웃음이 터진다. 이불 속으로 아예 들어간 김성규를 보러 나도 이불 안으로 들어가자 미미한 햇빛으로 보이는 내 얼굴에 놀랐는지, 다시 밖으로 빠져나와 모른 척 한다. 날 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아직까지 이러는 것을 보면 여전히 섭섭한 것은 별 수 없다. 김성규의 마음이 언제쯤 녹아내릴 지 모르지만, 최대한 빨리 풀어졌으면 좋겠는데……한숨 푹. 내 한숨에 또 눈치를 보는 저 얼굴.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눈알만 도로록 굴리며 혀로 입술을 축이는 저 얼굴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자 침 한 번 삼키고 질문. "……무슨 생각해?" 조금 싱거웠다. 한참이나 고민한 말이 고작 그거라서. 너무나 신중했던 나의 생각을 읽지 못했는지, 정말 궁금한건지, 내 눈을 한 번 보고, 다시 베개를 베고 누워버리는 김성규의 뒷통수에 다시 팔을 갖다대자 피하진 않으면서도 어째 내 쪽으로 가까이 오질 않는다. 이불을 좀 걷어내고 확 끌어안자 어어ㅡ하며 끌려오는데,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팔에 감기는 몸매가 또 안쓰럽다. 졸지에 내 옆구리에 얼굴을 묻게 된 김성규의 고른 숨이 그대로 느껴졌다. 셔츠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느끼는 숨결은 참 고귀하고, 좋아서 갈비뼈 사이마다 묻어두고 싶은 마음. 무슨 생각을 했다고 하면 좋을까. 네 생각, 김성규 생각. 이러려다가 조금 오글거리는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인데……대답이 조금 오래걸리는 나를 보고 불안했던지 옆구리에 숨을 쉬던 것을 그만두고 팔을 턱 내 허리에 감는다. 김성규에겐 엄청난 도발이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김성규가 내 허리에 손을 감은 것은, 확신을 달란 일종의 구원 신호였다. 메이데이. 그 구원 신호에 손을 뻗어야 했던 나는 다리를 감아 김성규를 푹 안았다. 나보다 약간 작은 키 덕분에 완전히 안을 수 있어서 좋았다. 김성규는 예전부터 나보다 키가 작은 것을 자존심 상해하곤 했다. 꼭, 쓸모 없는 것에 감정 소모를 해가며 바락바락 화를 내곤 했었는데. 나보다 정신연령도 어린 것이 왜 나보다 키는 크냐며 까치발을 들며 은근히 꿀밤을 먹인 적도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우리 되게 유치했었네……라는 과거로 흘러간 생각을 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사랑할 생각." 나는 말재주가 없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논리적으로 이유를 들어가며 하나하나 따지는 김성규와 달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엔 질색하는 나에겐 '사랑할 생각'은 최고의 표현이었다. 더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저 사랑할 생각ㅡ사랑했던 생각, 사랑한 생각, 사랑할 생각ㅡ이라고 대답했더니 말이 없다. 김성규를 안은 것을 놓을 생각은 없다. 며칠이고 이런 자세로 함께 할 수 있다면 나에겐 영광이니까. 몸이 불편하지 않도록 약간 틈을 두어 안아도, 좋아. 다 좋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정적을 깬 것은 김성규였다. "……있잖아.""응.""내 말, 너무 신경 안 써도 돼." 무슨 말? 나는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었다. 김성규가 몇 마디 하진 않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라서. 김성규의 말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은 채로 그렇게 끌어안고 있다가 나를 은근히 밀어내는 손길이 느껴져 조금 섭섭한 모습으로 얼굴을 보니 어쩔 줄 몰라하며, 또, 불안해 해. '믿음'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참으로 얇은 종이 같다. 평평한 종이는 한 번 구겨지면 처음처럼 펴지지 않아. 딱, 그거야. 믿음이란……너도……. 내 멋대로 정의내린 믿음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또 정적이었다가, 오랫동안 이어진 김성규의 말은 내 급소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김성규는 나보다 말을 많이 하지않으면서도 그 말 한 마디엔 엄청난 뼈가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할 것만 같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따지지도 못할 나에게 김성규의 말은 조금 잔인하다고 느껴지……면 안 되지만 어쨌든 전혀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내가 니 허리에 팔 올리면서 공평하게 해달라고 했던 거 있잖아, 그거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그러니까……아까 내가 무슨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너가 사랑할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꼭 거짓말 안 해도 돼. 그냥 그 여자……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되고, 음, 그러니까……나는 진짜 나한테만 잘해주면 그 여자랑 너랑 다시 만나도 상관 안 하려고……. 그러니까……좀 속은 상하겠지만, 뭐……아니 내가 너 싫다는 것은 아닌데…….""야, 김성규." 「만약, 사랑을 재는 저울이 있다고 쳐보자. 그 동안의 무게를 쟀는데, 한 쪽이 너무 기울어졌어.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너 말대로라면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쪽에 좀 더 사랑을 두어야겠지. 그래야 균형이 맞고 공평하니까. 그치? 내 말 맞지?」 아까의 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사랑할 생각, 이라고 말한 것이 실수였나보다. 주어 없이 말한 그 문장에 김성규는 또 오해를 한 것이 틀림 없었다. 이렇게 같이 안아놓고선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는지 여건이 된다면 김성규의 뇌라도 해부하고 싶지만, 그런 베이스는 모두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냥 이름을 불러버렸다.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가슴이 답답하면 목소리 톤이 낮아지던 내 버릇이 또 튀어나와버렸다. 실수. 이것도 실수였다. 여전히 나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는 김성규는 내 목소리 톤에 한 번 더 놀란 게 확실했다. 아, 어떡해. 머리를 헝클이며 계속해서 터지는 한숨을 쉬자 김성규가 급속히 냉각된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하고 이불을 조금 끌어당겨 제 쪽으로 덮은 후, 팔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제 베개에 누워버렸다. 우리 둘이 누운 공간 사이에 생긴 틈이, 마치 우리의 상황 같아서 웃을 수도 없었다. 나조차 잊은 그 여자를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제 머릿 속에 꽁꽁 담아뒀을 김성규의 마음이 어땠을까. 이젠 나에게 등을 돌려 누운 김성규를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와버렸다. 시간은 꽤 흘러있었다. 아침 먹고, 빚을 이야기할 때도 나름 견딜 만 했다. 그러나 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김성규를 보면서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했다. 해명하지 않고 나와버린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다시 들어가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근 육 개월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항상 진심이었지만, 여태껏 이런 진심을 대해본 적이 없다. 나도 슬슬 속이 상하는 중이었다. 며칠 간 이렇게 했으면 좀 믿어주지……. 소파에 앉아 마른 세수만 했다. 더 이상 나도 방법이 없었다. 저울 따위로 공평함을 따지면서 내 사랑의 크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김성규가 베개라도 던지며 나만 봐달라고 구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세던 김성규의 자존심을 꺾으면서 믿음까지 꺾어버린 나의 과거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 결국, 거실에 앉아 나 혼자 아ㅡ하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답답했다. 너무 답답해서 속에 무엇이라도 얹힌 기분. "……모르겠어. 다 모르겠어." 자조였다. 공허한 거실에서 나 혼자 중얼거린 말. 아마 내가 그 여자와 살을 맞댄 순간엔 김성규는 이랬겠지. 모르겠어. 답답해. 어떻게 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예전처럼, 그렇게, 정말, 난 사랑할 생각을 했는데 왜……. 내가 그 여자를 만나서 너에게 몹쓸 짓을 한 건 정말 인정하고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내가 잘하겠다고 했잖아. 근데, 왜……. 나를 믿는 것 같으면서도 믿질 않아. 난 그게 힘들어. 그냥 나보고 꺼지라고, 여기서 나가라고 말을 해줘. 내가 안으면 가만히 있다가도 이렇게 나오면 난 정말……모르겠어. 성규야. 내가 너한테 다시 설렌버린 것이 잘못이야? 김성규. 나도 변했고, 너도 변했어……. 물론 내 책임이지만……아까처럼 안겨있을거면, 날 한 번 더 믿어도 좋잖아. 왜…….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중얼거렸다. 김성규처럼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 술이라도 마시며 진심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내 마음이 알아서 내 진심을 토해내고 있었나보다. 내가 지껄인 헛소리들이 메아리가 되어 내 귀를 때리고 있을 때 느껴지는 시선. 소파에 앉아 고개만 돌린 채로 옆을 보니 날 애태우는 김성규가 서있었다. 내 말을 들었을까. 만약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근데, 웃긴 것은 김성규의 모습이 다 환상 같았다. 주변엔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고, 내 눈이 미쳤나봐. 눈을 마구 비비며 김성규를 다시 한 번 보자 이제는 얼굴이 바뀐다. 뚝, 뚝, 뚝. 내가 김성규를 또 울렸다. 울렸어. "……나 참 애인 자격 없다.""……""저울? 그 딴 말 지껄이면 뭐해. 그치? 다 필요 없잖아.""……""그냥, 내가 여기 있는게 다 원인인 것 같다." 거실에 홀로 서있는 김성규를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챙겨버렸다. 김성규가 보기 싫어서가 아닌, 김성규의 얼굴을 자꾸만 보게 되는 내 모습이 싫어서였다. 다시 김성규를 지나쳐 현관으로 걸어가는데 나는 왜 또 눈물이 차오를까. 참, 어이 없고 지랄맞은 광경이었다. 울컥하는 눈을 마구 비비며 신발을 구겨신는데 다다다다ㅡ "……한 번 더 잡아줄 수 있었잖아.""……""내가 불안해하면 평생이고 달래줄 것처럼 굴었으면서……""……""아직도 생각이 나. 그 여자의 얼굴이.""……""장례식장에서……봤던 얼굴이 너무 예뻤어……" 나 따위는 비교되지도 않을만큼.차라리 그 여자 얼굴을 몰랐으면 좋았을걸.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교가 돼. 구겨신은 신발을 던지듯 벗어두고, 급히 몸을 돌렸다. 내 앞에 서서 눈물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말에, 나는 무슨 자격으로 울었는지 모르겠다. 더보기굉장히 늦은 자존심13입니다ㅠㅠ 근데 분량도 똥이야!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근데 전 자존심 빼곤 다른 글은 다 재미가 없나봐여 하하....ㅠㅠ 물론 자존심도 똥이지만..ㅠㅠ
[인피니트/현성] 자존심 13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따사로운 오전, 그리고 오후로 슬슬 넘어갈 때쯤의 침대. 김성규와 이렇게 달콤한 시간을 보낸 적이 언제였을까, 고민하면서도 여전히 눈만 깜빡거리고, 허리에 손을 걸친 것이 불편한지 숨을 참는건지 모를 행동에 슬그머니 허리를 간지럽히자 그제서야 푸학ㅡ하고 숨을 뱉는다. 토끼 같은 얼굴에 눈물샘이 촉촉히 젖어있는 것도 예쁘고, 내 팔에 얌전히 누워있는 것도 너무 예쁘다. 마구마구 뽀뽀를 해주고 싶은 얼굴. 사랑을 공평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한 번도 고민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언제나 사랑만 받았기에, 돌려줄 방법을 채 찾지못해 궁리하자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다시 이불을 덮고 고른 숨을 쉰다. 사람마다 공평의 기준이 다른만큼, 나는 김성규에게 더 헌신해야했다. 나에겐 그것이 공평했다. 정적 속에서 천장을 바라본 채 생각에 잠기자 그 고요함이 어색했던지 입을 열었다 닫았다하며 말을 걸 것 같다가도, 결국엔 입술을 닫는 김성규의 얼굴을 내려다보는 것도 모르고 끝까지 말을 하지 않는다. 할 말 있어?ㅡ 내 말에 놀란 듯 푸드덕거리며 이불 속으로 숨는 이유는 뭔데. 그 와중에 답지않게 귀여운 모습이 보여 절로 웃음이 터진다. 이불 속으로 아예 들어간 김성규를 보러 나도 이불 안으로 들어가자 미미한 햇빛으로 보이는 내 얼굴에 놀랐는지, 다시 밖으로 빠져나와 모른 척 한다. 날 피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아직까지 이러는 것을 보면 여전히 섭섭한 것은 별 수 없다. 김성규의 마음이 언제쯤 녹아내릴 지 모르지만, 최대한 빨리 풀어졌으면 좋겠는데……한숨 푹. 내 한숨에 또 눈치를 보는 저 얼굴. 속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눈알만 도로록 굴리며 혀로 입술을 축이는 저 얼굴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자 침 한 번 삼키고 질문.
"……무슨 생각해?"
조금 싱거웠다. 한참이나 고민한 말이 고작 그거라서. 너무나 신중했던 나의 생각을 읽지 못했는지, 정말 궁금한건지, 내 눈을 한 번 보고, 다시 베개를 베고 누워버리는 김성규의 뒷통수에 다시 팔을 갖다대자 피하진 않으면서도 어째 내 쪽으로 가까이 오질 않는다. 이불을 좀 걷어내고 확 끌어안자 어어ㅡ하며 끌려오는데,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팔에 감기는 몸매가 또 안쓰럽다. 졸지에 내 옆구리에 얼굴을 묻게 된 김성규의 고른 숨이 그대로 느껴졌다. 셔츠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느끼는 숨결은 참 고귀하고, 좋아서 갈비뼈 사이마다 묻어두고 싶은 마음. 무슨 생각을 했다고 하면 좋을까. 네 생각, 김성규 생각. 이러려다가 조금 오글거리는 것 같아서 그만두기로 했다. 하지만 사실인데……대답이 조금 오래걸리는 나를 보고 불안했던지 옆구리에 숨을 쉬던 것을 그만두고 팔을 턱 내 허리에 감는다. 김성규에겐 엄청난 도발이었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김성규가 내 허리에 손을 감은 것은, 확신을 달란 일종의 구원 신호였다. 메이데이. 그 구원 신호에 손을 뻗어야 했던 나는 다리를 감아 김성규를 푹 안았다. 나보다 약간 작은 키 덕분에 완전히 안을 수 있어서 좋았다. 김성규는 예전부터 나보다 키가 작은 것을 자존심 상해하곤 했다. 꼭, 쓸모 없는 것에 감정 소모를 해가며 바락바락 화를 내곤 했었는데. 나보다 정신연령도 어린 것이 왜 나보다 키는 크냐며 까치발을 들며 은근히 꿀밤을 먹인 적도 있었는데. 그러고보니 우리 되게 유치했었네……라는 과거로 흘러간 생각을 하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사랑할 생각."
나는 말재주가 없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논리적으로 이유를 들어가며 하나하나 따지는 김성규와 달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엔 질색하는 나에겐 '사랑할 생각'은 최고의 표현이었다. 더 어쩔 도리가 없어서, 그저 사랑할 생각ㅡ사랑했던 생각, 사랑한 생각, 사랑할 생각ㅡ이라고 대답했더니 말이 없다. 김성규를 안은 것을 놓을 생각은 없다. 며칠이고 이런 자세로 함께 할 수 있다면 나에겐 영광이니까. 몸이 불편하지 않도록 약간 틈을 두어 안아도, 좋아. 다 좋아.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정적을 깬 것은 김성규였다.
"……있잖아.""응.""내 말, 너무 신경 안 써도 돼."
무슨 말?
나는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었다. 김성규가 몇 마디 하진 않았지만 그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몰라서. 김성규의 말에 별 의미를 두지 않은 채로 그렇게 끌어안고 있다가 나를 은근히 밀어내는 손길이 느껴져 조금 섭섭한 모습으로 얼굴을 보니 어쩔 줄 몰라하며, 또, 불안해 해. '믿음'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참으로 얇은 종이 같다. 평평한 종이는 한 번 구겨지면 처음처럼 펴지지 않아. 딱, 그거야. 믿음이란……너도……. 내 멋대로 정의내린 믿음에 대해 한참 생각하다가 무슨 말이냐고 묻자 또 정적이었다가, 오랫동안 이어진 김성규의 말은 내 급소를 찌르는 느낌이었다. 김성규는 나보다 말을 많이 하지않으면서도 그 말 한 마디엔 엄청난 뼈가 있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할 것만 같은.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따지지도 못할 나에게 김성규의 말은 조금 잔인하다고 느껴지……면 안 되지만 어쨌든 전혀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내가 니 허리에 팔 올리면서 공평하게 해달라고 했던 거 있잖아, 그거 너무 신경쓰지 말라고. 그러니까……아까 내가 무슨 생각하냐고 물었을 때 너가 사랑할 생각하고 있다고 했는데, 꼭 거짓말 안 해도 돼. 그냥 그 여자……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되고, 음, 그러니까……나는 진짜 나한테만 잘해주면 그 여자랑 너랑 다시 만나도 상관 안 하려고……. 그러니까……좀 속은 상하겠지만, 뭐……아니 내가 너 싫다는 것은 아닌데…….""야, 김성규."
「만약, 사랑을 재는 저울이 있다고 쳐보자. 그 동안의 무게를 쟀는데, 한 쪽이 너무 기울어졌어.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너 말대로라면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한 쪽에 좀 더 사랑을 두어야겠지. 그래야 균형이 맞고 공평하니까. 그치? 내 말 맞지?」
아까의 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그 사랑할 생각, 이라고 말한 것이 실수였나보다. 주어 없이 말한 그 문장에 김성규는 또 오해를 한 것이 틀림 없었다. 이렇게 같이 안아놓고선 어떻게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는지 여건이 된다면 김성규의 뇌라도 해부하고 싶지만, 그런 베이스는 모두 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 변명도 하지 못하고 그냥 이름을 불러버렸다. 머리가 복잡해지거나 가슴이 답답하면 목소리 톤이 낮아지던 내 버릇이 또 튀어나와버렸다. 실수. 이것도 실수였다. 여전히 나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는 김성규는 내 목소리 톤에 한 번 더 놀란 게 확실했다. 아, 어떡해. 머리를 헝클이며 계속해서 터지는 한숨을 쉬자 김성규가 급속히 냉각된 분위기에 어쩔 줄 몰라하고 이불을 조금 끌어당겨 제 쪽으로 덮은 후, 팔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제 베개에 누워버렸다. 우리 둘이 누운 공간 사이에 생긴 틈이, 마치 우리의 상황 같아서 웃을 수도 없었다. 나조차 잊은 그 여자를 여전히 지우지 못하고 제 머릿 속에 꽁꽁 담아뒀을 김성규의 마음이 어땠을까. 이젠 나에게 등을 돌려 누운 김성규를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와버렸다. 시간은 꽤 흘러있었다. 아침 먹고, 빚을 이야기할 때도 나름 견딜 만 했다. 그러나 그 여자 이야기를 꺼내는 김성규를 보면서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도저히 감을 잡지 못했다. 해명하지 않고 나와버린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다시 들어가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고 싶진 않았다.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근 육 개월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항상 진심이었지만, 여태껏 이런 진심을 대해본 적이 없다. 나도 슬슬 속이 상하는 중이었다. 며칠 간 이렇게 했으면 좀 믿어주지……. 소파에 앉아 마른 세수만 했다. 더 이상 나도 방법이 없었다. 저울 따위로 공평함을 따지면서 내 사랑의 크기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차라리, 김성규가 베개라도 던지며 나만 봐달라고 구걸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세던 김성규의 자존심을 꺾으면서 믿음까지 꺾어버린 나의 과거에 소리를 지르고 싶어 결국, 거실에 앉아 나 혼자 아ㅡ하는 비명 아닌 비명을 질렀다. 답답했다. 너무 답답해서 속에 무엇이라도 얹힌 기분.
"……모르겠어. 다 모르겠어."
자조였다. 공허한 거실에서 나 혼자 중얼거린 말. 아마 내가 그 여자와 살을 맞댄 순간엔 김성규는 이랬겠지. 모르겠어. 답답해. 어떻게 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예전처럼, 그렇게, 정말, 난 사랑할 생각을 했는데 왜……. 내가 그 여자를 만나서 너에게 몹쓸 짓을 한 건 정말 인정하고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내가 잘하겠다고 했잖아. 근데, 왜……. 나를 믿는 것 같으면서도 믿질 않아. 난 그게 힘들어. 그냥 나보고 꺼지라고, 여기서 나가라고 말을 해줘. 내가 안으면 가만히 있다가도 이렇게 나오면 난 정말……모르겠어. 성규야. 내가 너한테 다시 설렌버린 것이 잘못이야? 김성규. 나도 변했고, 너도 변했어……. 물론 내 책임이지만……아까처럼 안겨있을거면, 날 한 번 더 믿어도 좋잖아. 왜…….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중얼거렸다. 김성규처럼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혼자 끙끙 앓는 스타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나 술이라도 마시며 진심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내 마음이 알아서 내 진심을 토해내고 있었나보다. 내가 지껄인 헛소리들이 메아리가 되어 내 귀를 때리고 있을 때 느껴지는 시선. 소파에 앉아 고개만 돌린 채로 옆을 보니 날 애태우는 김성규가 서있었다. 내 말을 들었을까. 만약 들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근데, 웃긴 것은 김성규의 모습이 다 환상 같았다. 주변엔 알 수 없는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고, 내 눈이 미쳤나봐. 눈을 마구 비비며 김성규를 다시 한 번 보자 이제는 얼굴이 바뀐다. 뚝, 뚝, 뚝. 내가 김성규를 또 울렸다. 울렸어.
"……나 참 애인 자격 없다.""……""저울? 그 딴 말 지껄이면 뭐해. 그치? 다 필요 없잖아.""……""그냥, 내가 여기 있는게 다 원인인 것 같다."
거실에 홀로 서있는 김성규를 지나쳐 안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챙겨버렸다. 김성규가 보기 싫어서가 아닌, 김성규의 얼굴을 자꾸만 보게 되는 내 모습이 싫어서였다. 다시 김성규를 지나쳐 현관으로 걸어가는데 나는 왜 또 눈물이 차오를까. 참, 어이 없고 지랄맞은 광경이었다. 울컥하는 눈을 마구 비비며 신발을 구겨신는데 다다다다ㅡ
"……한 번 더 잡아줄 수 있었잖아.""……""내가 불안해하면 평생이고 달래줄 것처럼 굴었으면서……""……""아직도 생각이 나. 그 여자의 얼굴이.""……""장례식장에서……봤던 얼굴이 너무 예뻤어……"
나 따위는 비교되지도 않을만큼.차라리 그 여자 얼굴을 몰랐으면 좋았을걸.내 마음 속으로 자꾸 비교가 돼.
구겨신은 신발을 던지듯 벗어두고, 급히 몸을 돌렸다. 내 앞에 서서 눈물과 함께 뚝뚝 떨어지는 말에, 나는 무슨 자격으로 울었는지 모르겠다.
굉장히 늦은 자존심13입니다ㅠㅠ 근데 분량도 똥이야!
그래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댓글 달아주시는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근데 전 자존심 빼곤 다른 글은 다 재미가 없나봐여 하하....ㅠㅠ 물론 자존심도 똥이지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