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야. 도경수. 형.
나를 불러대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어지럽게 흩어졌다. 나를 둘러싼 멤버들의 다리를 붙잡아 밀어내고
기어서라도 몸을 움직였다. 제발...제발.....
그때, 강한힘으로 나를 일으키는 손이 있었다.
"정신차려 새끼야."
세게 내려쳐진 뺨에 이제야 제대로 된 무언가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백현아..백현아...제발..."
숨이 막혀서 도저히 뭘 할 수가 없다.
"백현아..백현아..."
붙잡듯 백현이의 이름만 불러댔다.
눈을 감은 너의 모습만 떠올라 지금 당장 내가 뭘 해야할지 가늠도 가지 않았다.
지금 나는 주저앉아 울어야 하나.
아니면...아니면 너를 향해 뛰어야 하나.
만일...지금 이대로 달려가 창백한 너의 얼굴을 보게 된다면 나는 어떡해야 하는건지...
"도경수!!!!!!"
"..백현아...백현아...."
"너 진짜 죽게 둘거야?어?"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내 사랑하는 여자가 죽는다.
안된다.
그대로 넘어질 듯한 다리를 움직여 달렸다.
지체한 시간이 짧지 않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너는 내게 천금과도 같은 빛을 안겨주는 여자다.
세상에 존재할 수가 있을까 싶은 이런 깊은 암흑을 내게 안길 수도 있는 여자였던가 넌.
무작정 회사건물을 나서려는 나를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미친새끼야. 이대로 나가면 어떻게 가게."
"놔."
"기다리라고 병신아."
"어떻게 기다려 어떻게 기다리냐고 놔!!!!!"
"내가 차 가지고 올테니까 좀!!!!!!!!"
"......."
"기다려 병신아..그게 빨라. 그리고...이거나 신어."
뒤돌아 지하주차장으로 향하는 백현이가 건넨건
아까 바닥을 기느라 벗겨진 내 오른쪽 운동화였다.
백현이가 모는 차에 올라타 소리도 못내고 눈물 흘렸다.
여전히 나는 신발 한 짝이 벗겨진 채였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수없이 죽었다.
말없이 차를 몰던 백현이가 멈췄을때에 이미 나는 산 사람의 그 어떤 것도 가지지 못했다.
숨을 쉬고 있었지만 호흡하지 않았고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백현이가 나를 붙잡아 계단을 오르는 와중에도 나는 내가 움직이는지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문앞에 선 백현이가 나를 그 앞에 세웠다.
"빨리 문열어. 너는 비밀번호 알잖아."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저 안에서 니 애인이 지금 죽어가고 있어. 병신새끼야."
백현아. 그러니까.
문을 열었는데 모든 걸 놓아버린 내 애인을 봤을때 나는....
"너 지금 이러는 것도 여유고 사치야 새끼야. 빨리 열어."
"내..생일."
비밀번호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내 생일이야 백현아."
백현이는 곧장 도어락을 해제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여전히 문밖에 우두커니 서있을 뿐이었다.
도저히 발을 들일 수가 없다.
누구보다 아프고 힘들었을 너에게 지금 달려가 안아주고 달래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네가 죽는 것은 생각보다 두렵지 않다.
네가 없다면..내 곁에 있을 수 없이 먼 곳으로 향한다면 뭐가 문제인가.
나 역시 너를 따르면 되는것 아닌가.
하지만...내가 없었을 공간에서 마지막을 택했을 너를 봐야할 그 찰나가 자신이 없다.
나를 두고 너의 선택으로 멀어지려 했을 너를 바라볼 용기가 없다.
차라리 지금 발을 들여 안으로 향했을때..
너는 숨을 쉬고 있지 말아라 아가.
차라리 그 어떤 것보다 차갑게 굳어 나를 바라봐라 아가.
그래야 내가 아무런 미련없이 생각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 너를 내 머릿속에 가득채워
너에게 닿지 못할, 그러나 너만을 위한 끝없이 반복할 너에 대한 사랑을 속삭이며....
함께 눈을 감을 것 아닌가.
서서히 안으로 발을 들였다.
현관에 서 서 한참을 있다가
이제는 마루에 올라섰다.
이제는 한발자국씩 욕실로 향했다.
백현이는 여전히 아무 소리가 없었다.
살짝 열린 욕실 문을 떨리는 손으로 밀어냈다.
우두커니 서있는 백현이가 보인다.
영겁의 시간을 두고 움직이듯 고개를 돌렸다.
"...아가."
잔뜩 잘린 머리칼들이 욕조의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급히 훑어본 너의 몸에는 상처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해보니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너는 말한다.
"이걸로 지금 나를 그으면..."
너에게 나는 다가간다.
"피가 나오잖아.."
내가 사랑한 얼굴에 자리잡았던 길고 탐스런 머리카락은 이제 아무렇게나 잘라진채로 뺨위에 달라 붙어 있었다.
"...그건 더럽잖아.."
조용히 너의 머리칼을 떼어냈다. 그리고 자리한 너의 모든곳에 입을 맞췄다.
"혹시...니가 와서 만지게 될까봐..."
더한것이라도 나는 할텐데.
"그래서 못했어..."
욕조안에 함께 몸을 들여 너의 앞에 앉았다.
"목을 매려고 했어."
그리고 너를 안았다.
"근데..너무 힘들어서 쉬고 있었어..."
그래.
이제 나는 알았다.
살아 호흡해내는 매 순간이 고통으로 물들 것이다.
차라리 죽자.
죽어버리자.
그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