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탐스런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잘라낸 칼이 아직도 너의 손에 들려있다.
손이 새하얗게 질리도록 잡고 있었다.
내게 안겨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넌 마치 생명줄을 붙잡듯 그 칼을 놓지 못하고 쥐고 있었다.
서서히 손을 뻗어 칼을 내가 잡아 들었다.
"..아가."
나는 아무렇지 않겠다.
"...어떻게 할까...."
네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 죽는것도 나쁘지 않다.
"..같이..갈까..."
옆에만 있다면...함께 있을 수 있다면 뭐가 문제인가.
너는 말없이 온몸을 내게 기대고 있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내 품안에 안겨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조금은 기뻐하고 있다.
머리 위로 수건 한 장이 떨어졌다.
"..그만하고 나와. 감기 걸리겠다."
백현이는 곧 내손에서 칼을 가져갔다.
그리고선 너를 안아 일으키려고 한다.
"하..지마."
나도 모르게 너의 몸을 꽉 잡아챘다.
"도경수. 이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이래. 조심해야지."
"하..지마...데려가지마..."
백현아. 데려가지마. 가져가지마.
내거야. 내거니까 내품에서 가져가지마. 하지마.
"...경수야."
인형처럼 아무렇게나 몸을 맡기는 너를 안은채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데려..가지마..백현아...가져가지마....내거야..."
"..도경수...너라도 정신차려라..제발..."
"..아니야...내거야...싫어...내거니까..."
수건으로 가려져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백현이의 커다란 한숨 소리가 들렸다.
혹시 너도 울고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그저 아직도 뛰고 있는 너의 심장이 내가슴에 닿도록 더욱 너를 끌어 안을 뿐이다.
잔뜩 젖은 내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다.
백현이는 나와 나란히 소파에 앉아있었고 누구것인지 모를 휴대전화는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멍하니 내 다리를 베고 누운 너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엉망이 되버린, 짧아진 너의 머리카락.
"..경수야."
"..어."
"너 진짜 어쩔거냐."
"뭘."
"팀 나가는거..그래 그건 어떻게든 한다 치자. 그다음은. 그다음은 어쩔건데."
"백현아."
"일단 병원부터 가보는게 좋지 않겠어?"
"당장 내일이 안보여..."
"......"
"지금 당장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다음을 어떻게 생각해..?"
"""너까지 이러면 어쩌려고 그러냐. 어? 너라도 정신차리고 치료를 받게 하든 어쩌든지 해야 할거 아냐."
"...그러게."
"....."
"그러니까...그래야 되는데..."
"....."
"내가 지금 뭐라고...했지..?"
"..뭐?"
"..백현아. 밥 먹었냐?"
"도경수. 너 지금 뭐라는..."
"아니..우리가 지금..왜 여기있지..?"
백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앞에 섰다.
그러고선 내 어깨를 잡아 조금은 세게 흔들었다.
여전히 너는 내 무릎에 누워 있었고, 난 그런 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경수야. 제발..."
"......"
"제발....정신 차려라...어?"
"백현아."
"....너까지 어떻게 나한테 이러냐...개새끼야...어? 너까지...날더러 뭘 어쩌라고..."
"백현아."
"....."
"이게....사는거냐."
"....."
"오늘 밤도..."
"......."
"내일도....그 다음날도..."
"......"
"이럴텐데..."
"........"
"우리 아가 이렇게 아픈꼴을..어떻게 보냐..백현아."
"..하...고 싶은 말이 뭐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니가 정신차리고 이ㅈ..."
"같이 있으면 돼..."
"뭐..?"
"옆에만..있으면...그러면 나는 상관없어..."
"......도경수."
"...가라."
"......"
"너 가. 백현아."
"....."
"가서...멤버들한테 아니라고 말해."
"......"
"내 애인이랑 바람난거 아니고 그냥...아무렇게나 말해 백현아. 나는 상관없어.
그냥...사실만 말하지마. 우리 애기가 싫어하니까.
그리고..콘서트 준비도하고 노래 연습도 하고...그냥...예전처럼 그렇게 해..."
"...넌."
"난...나는...."
"...도경수 너는 이렇게 있다가 니 애인이랑 죽기라도 하려고 그러냐?어?"
"그냥...이대로 아가랑 좀 쉬다가.."
"....."
"배고프면 밥도 먹고....목마르면 물도 마시고..."
"......"
"졸리면 잠도 자고...심심하면 영화도 보고...."
"......"
"사랑스러울 때 뽀뽀도하고...키스도 하고..."
"....."
"그러다가....사랑한다고 고백하고..."
"......"
"갑자기 울기도 하고....죽겠다고 하면 말리다가 같이 죽기도 하고...?"
백현이를 올려다보며 그냥 웃었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대로 두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백현아.
"병원은."
"..."
"병원은 안 가? 정식으로 탈퇴선언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한국에선 살기 힘들테니까
어디로든 떠날 곳도 알아보고..멤버들한ㅌ.."
"아가."
백현이의 말을 듣다가 너를 불렀다.
사실 백현이 네가 하는말은 하나도 현실성이 없게 느껴진다.
내가 해야할 일인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내부름에 너는 조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여전히 내 무릎에 누워 있는 너를 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우리..."
병원에 가는 것도 좋아.
필요하다면 기자회견도 해야겠지.
"결혼하자."
말하지 않았던가.
너를 위해 준비해둔 너른 마당이 있는 집.
우리 둘만 세상에 있는것처럼...그렇게.
옛날처럼 남의 시선에 휘둘리고 너를 감추려고 애쓰지 않고
에이즈에 걸려 불행하고 조금은 단정치 못한 여자의 모습을 한 너로 보이지 않게.
나라는 남자에게 둘도 없는 사랑을 받는 여자라는 걸 네가 알 수 있도록.
너만 보고
너만 듣고
너만 알게.
병원에 가고 싶지 않으면 안가도 괜찮아.
네가 싫은건 아무것도 하지마.
네가 견디지 못해 죽고싶다면
무섭지 않게 그 먼 길을 함께 할 남자가 네곁에 있으니
겁내지 마라.
대신...
내 아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을 남기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