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이는 흔들림없이 나를 바라봤다.
"뭐해. 지금 전화하라니까."
"....."
"또 혼자 있다가 질질짜면서 전화하지말고 내앞에서 해."
"......백현아."
"못하겠지."
"......."
"지금 니얼굴 니가 봐. 지금 그얼굴을 하고 도경수한테 무슨말을 할 수가 있겠는지 니가 한 번 보라고."
사실 괜한 오기였다. 내가 내손으로 경수를 내칠 수 있을 리가 없다. 백현아...백현아....나 좀 살려줘. 나 좀 어떻게 해줘 백현아.
휴대폰을 들었다. 괜한 오기여도 전화를 걸어 경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긴다해도 나는 해야한다.
떨리는 손으로 경수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경수는 신호가 채 두번을 넘기기전에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다급하게 나를 불러왔다.
-기다렸어...나 계속 기다렸어...어디야 집이야?나 지금 갈까? 갈게.
"아니..아니야 경수야.."
백현이는 내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다.
-..밥은 먹었어? 나 니말대로 연습도 잘하고 너 기다렸어. 얼굴보고 얘기하면 안돼? 지금..가면 안돼?
"..응..안돼..내가 하는말 먼저 들어 경수야."
이제 백현이는 고개를 돌리고 연신 얼굴을 마른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뭔데..무슨 얘기하려고 그래 너. 아니 무슨 얘기해도 좋아. 좋으니까 얼굴보고 얘기해. 나 지금 나간다.
"오지..마. 문 안열어줄거야."
백현아...이제 뭐라고 하지? 경수한테 뭐라고 하지?
-헤어지자고 해도 좋고 개새끼라고 나한테 욕해도 좋으니까!!!!!!제발 니 얼굴 한번만 보자...어?나 지금 돌 것 같아.
"..경수야..."
사랑한다고 한 번은 해도되지 않을까...백현아.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사랑한다고 한 번은 해도 되지 않을까..?
-사랑해.
경수는 사랑한다고 했다.
-사랑해..진짜 너..내가 사랑해...이러지마...제발...너 갑자기 이러면 나...아니...사랑해...말도 못하게 사랑해...
정신없이 뱉어내는 경수의 고백을 들으며 나는 눈으로 백현이를 쫓았다. 누구에게든 허락이라도 받고 싶었다. 이런 사랑고백을 하는 남자에게 나도..
감히 사랑한다고 한마디쯤은 해도 되지않을까...그래서...백현아. 내가 지금 붙잡을데가 너밖에 없다...너라도...너라도 허락해줘...
"경수야..사랑해. 나도"
누군지도 모를 신에게 나는 빌고싶었다. 용서해주세요.
"그러니까..."
내앞에 존재하는게 백현이 너니까...너라도 날 용서해줘..
"...헤어지자."
내말을 듣고 경수는 대답이 없었다. 눈물을 흘리는지..아니 숨을 쉬기는 하는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윽고 나는 알았다.
-그래, 헤어지자.
경수는
-다시 고백할게.
믿지 않는다.
-사귀자.
그리고 다시 내게 처음을 선물한다.
-우리 그동안 아팠던거 다 지우고 오늘부터 새로 시작하자.
수줍게 내게 처음 전화를 걸던 그날처럼.
-지금 끼고 있는 커플링 버려.
경수가 처음 1위를 한 날, 모든걸 제치고 날 찾아온 네가 건넨 반지 하나.
-다시 멋있게 고백할거야. 더 예쁜거 니 손에 끼워줄거야.
백현아.
-조금만 쉬고 있어.
경수 어떡해.
"경수야."
-응.
"나 사실..."
-..응.
"지금 백현이랑 같이 있어."
말했다.
"나 사실 백현이랑 아는 사이야.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
"백현이는 나 외롭게 안할거 같아."
니가 아무리 견디지 못할 긴 고독을 내게 안겨도 난 너아닌 다른남자를 상상하지 못한다.
"미안해.."
-.....
"백현이는 너무...미워하지마."
경수야. 내가 앞으로 니가 짊어질 더러운 모든 짐을 다 안고간다고 생각할게.
"백현이랑 연애하겠다는 소리..아니야."
-.....
"그냥..이제 너보다 사랑하는 남자가 있으니까...그만 둬야맞잖아."
그렇게 생각하니까..마음이 한결 편하다.
"고마웠어. 경수야..그ㄹ...."
-사랑해.
..뭐?
-사랑해.
경수야...
-할 말이 그게 다야? 그럼 괜찮아.
...
-더 잘할게.
...
-내가 더 잘할테니까...다른 남자를 더...사..랑해도 되니까..
.....
-옆에만 있어줘.
..........
-너 외롭지 않게 이딴거 가수고 뭐고 다 때려칠테니까!!!!!!
....
-내옆에 있어..니가 원한다면..
...
-백현이뒤에 있을게..
...
-뭐든지 백현이 다음으로 밀려나도 좋으니까...
...
-헤어지지만 말자..아무것도 아닌 사이 하지말자 우리.
휴대폰을 그대로 가슴에 묻고 무릎을 꿇고 백현이의 다리에 매달렸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백현아..
경수가 날 이만큼이나 사랑한다.
도저히 가늠할 수나 있는 것인가 이제.
멋대로 끊어버린 휴대폰을 내던진채 백현이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렸다.
"백현아...백..현아..."
"....."
"경수가 괜찮대...다 괜찮대...니 다음이라도 좋대..."
"...."
"어떡해..?경수 어떡해...?"
"...일어나..일단..일어나자..어?"
"제발..제발요..제발..우리경수 좀..누가..."
이제 나는 백현이를 붙잡고 어디에 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빌기 시작했다.
신이 아니어도 좋다. 그 누구여도 상관하지 않겠다.
"제발..누가...경수..좀....우리 경수 좀..."
글쎄...사실 나도 말을 잇지 못하겠다.
경수를 어떻게해야 하는지...
나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