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내가 에이즈에 걸렸다고 했다.
아마도 1년전 교통사고로 인해 수혈을 받은 혈액때문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글세..이제와서 의심하면 뭐 어쩌자는건지 모르겠다. 이미 나는 에이즈에 걸린 여자일 뿐이다.
어제 집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못하고 현관문에 주저앉아 하루를 보냈다. 날이 다시 밝아졌기에 하루가 지났음을 알았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다.
쾅쾅쾅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부터 끈질기게 울리 벨소리는 보나마나 경수겠지. 이제 나는 너의 옆에 설 수가 없는 여자가 됐는데 경수야.
어쩌지.
"참으려고 했어."
마치 내가 집안에 있는걸 아는 사람처럼 말을 한다.
"너 이러는데 이유가 없을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경수는 언제나 절대 흥분하는 일이 없다. 그는 언제나 차분하다.
"헤어지고 싶으면 말을 해. 그래야 내가."
경수야. 지금이라도 나는 문을 열고 너에게 안기고 싶다. 근데 그럴 수가 없다. 내가 대체 왜 너른 너의 품을 두고 이런 차가운 바닥에서 입을 막고 울어야하는건지 모르겠다.
도경수가 없는 삶. 그런건 생각해본적이 없다.
"너한테 무릎이라도 꿇고 할거 아냐."
너 또한 절못한게 없잖아 경수야. 니가 왜 무릎을 꿇어. 바보야 너..?
혹여 울음소리라도 흘릴까봐 손이 하얘지도록 입을 세게 막고 경수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다.
"제발..헤어지지만 말자고. 뭐든지 내가 다 고치겠다고 말이라도 너한테 할거 아니냐."
너는 이런순간까지 나를 반하게 한다.
이제 난 너를 떠날건데..너를 보내줘야 하는데 이렇게까지 또 한번 너를 사랑하게 만들면 어떡해 경수야.
"너 지금 집에 있는거 알아. 지금 연습이고 녹음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왔어."
싫다. 나때문에 네가 일구어놓은것들이 흔들리는 건 싫다.
"왜이러는지 말해줄때까지 나 여기 있을거야."
경수야. 내가 어떻게 너한테 말해.
"너..니가 알고 있으면 이러면..안돼..니가 적어도..."
항상 같은톤을 유지하던 경수의 목소리가 떨린다. 가수가 아닌 남자로 봐달라고 고백하던 첫날에도 이만큼의 떨리는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니가 얼마나 나한테 목숨같은 여잔지..너 알고 있으면.."
경수야.
"너 지금 이러면 안돼."
나는 너를 너무 사랑해.
근데...어쩌겠어.
더이상 나는 너의옆에 머물 수가 없는 여자다.
항상 모든 사람들의 선망속에 묻혀 빛나게 살아가는 너의 옆에 더이상 설 수 없는 여자가 됐다.
얼마전 드디어 콘서크를 하게됐다며 웃던 너의 얼굴이 기억났다. 너에겐 평생을 꿈꾸던 일이었잖아 경수야.
연습때문에 병원에 같이 가주지 못한다며 드물게 미안해하던 너의 얼굴도 같이 떠오른다.
아마 어제부터 전화도 받지 않는 나때문에 연습도중에 저렇게 뛰쳐나왔겠지.
그건 안된다. 경수야.
힘이들어가지 않는 다리때문에 이미 꺼진 핸드폰을 쥐고 기다시피 방으로 돌아가 배터리를 갈고 휴대폰을 켰다.
진동이 멈추지 않게 부재중전화와 메시지를 알리는 알림이 울렸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연락을 하는 애가 아닌데..많이 걱정했구나.
마지막으로 온 문자를 확인했다.
[징어씨. 혹시 경수 거기갔어요?지금 연습중인데 안무가 형이 되게 화 많이 나셔서 혹시 이거보면 전화 좀 해줘요.]
백현씨한테 온 문자다.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징어씨?경수가 ㅇ..
"경수 지금 저희집앞에 있어요. 빨리 와서 데려가세요."
-...네?
"저희 집앞에 있다구요. 계속 저러고 있을것 같으니까 빨리 와서 좀 데려가세요."
백현씨는 잠시 아무말이 없었다.
나는 울음을 삼키느라 여념이 없었다. 숨이 막혔다. 말하는게 너무 힘들다.
-징어씨.
대답할 수가 없다. 울음을 참을 수도 없다 . 한계다.
-경수랑 싸웠어요?
차라리 그랬으면. 그런거라면 좋겠네요 저도.
-경수가 어제부터 징어씨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요? 집중못하고 핸드폰만 잡고 있어서 어제도 한소리 들었어요. 워낙에 자기 할 일 알아서 하니까
형들도 말없이 참다가 오늘 폭발한거에요. 경수 그런애 아닌거 우리 다 아는데 애가 너무 흔들리니까. 저도 좀 놀랐어요. 근데 연습이고 뭐고 징어씨 하나
본다고 거기까지 찾아간 애를 문도 안열어주고 데려가라니 무슨말이에요.
터졌다.
백현씨의 말을 듣자마자 밖에 있는 경수에게 들리지 않을까 싶게 큰 울음이 터졌다.
당황한 백현씨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쓰 겨를이 없었다.
그대로 다시 기어가 혹여나 현관밖의 경수가 내 울음소리를 들을까 방문을 닫았다.
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드려 휴대폼을 붙잡고 울음을 토해냈다.
어떡해요..어떡해요..경수 불쌍해서 어떡해요...
내이름만 연신 불러대던 백현씨는 그제서야 이상한걸 느꼈는지 말없이 내울음소리를 듣기만 했다.
-징어씨.
여전히 난 크게 운다.
-무슨일이에요.
지금도
-좋은일은 아니죠...?
계속
-만나서, 만나서 나랑 얘기해요.
경수는 밖에 서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