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국 찾기 06 전정국은 최근 꽤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갑작스레 많아진 태권도장 일과 개인적인 일들로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고 그로 인해 전정국의 얼굴을 보기는 무척이나 힘들어졌다. 전정국이 우린 대체 언제 만나는거냐고 서운함이 가득한 문자를 보내올 때면 나는 태권도장으로 가 전정국이 나올 때까지 그 앞에 앉아 기다렸다. 그러면 아이들을 배웅하던 전정국이 나를 발견하고 다짜고짜 안아버리는 것도 이젠 익숙해진 일이었다. 전정국을 만난 후로 나에게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젠 잃어버린 시간들로부터 숨지 않겠다는 것. 전정국을 만나며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싶다, 그렇게 말이다. 솔직히 전에도 그런 생각을 안해본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두번째로 기억을 잃으며 나는 기억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또 잃어버릴 기억인데, 잊어버릴 시간인데 다시 찾아서 뭐 하겠느냐고. 하지만 전정국을 만나며, 그와 세번째 연애를 시작하며 내 생각들이 바뀌었다. 나는 내 시간을 찾고 기억하고 추억하기로 결심했다. 그 시간에 전정국을 혼자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이젠 그럴 수 없었다. - 이사? " 응. 방금 전에 살던 오피스텔 갔다왔어. 다행히 입주한 사람이 없대서 이번주 주말에 들어가려고. " - 왜 갑자기? 전정국의 물음에 나는 잠시 대답하기를 머뭇거렸다. 내가 기억을 찾기 위해 안간힘 쓰고 있다는 것을 전정국에게 알려야하나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내 말을 들으면 나를 말릴 것이 분명했다. 기억을 잃은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그에 슬퍼하는 나에게 기억을 찾지 않아도 괜찮다고 더 슬픈 표정으로 말하던 전정국이었다. " 기억나지 않을까 해서. " - ... " 조금이라도, 하나라도 더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 - ...안 그래도 된다고 했잖아. 굳이 다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그냥 너랑 나랑 다시 만난 그 때부터만 기억하면 돼. 아니나다를까 전정국은 나를 말린다. 전정국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기억을 찾으려고 애쓰는 나에게 괜찮다고 말한다. 과거는 잊고 지금까지만, 앞으로만 기억하면 된다고 말하는 전정국에게 나는 알겠다는 긍정의 대답을 건넬 수가 없다. " 어떻게 그래. 내 기억인데, 다 내 기억인데. " - ... " 기억할거야. 정국아, 나 기억하고 싶어. " - ... " 학교도 다시 나가고 알바도 다시 할거야. 예전에 알바하던 카페 다시 나가기로 했어. " 내 단호한 대답에 전정국이 내쉬는 한숨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내 귓가에 닿는다. '미안해.' 작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내 말에 전정국은 알긴 아냐며 장난스럽게 말한다. 꽤 길었던 통화에 전정국이 이제 그만 끊어야겠다며 내게 인사를 건넨다. " 정국아. " - 응. 왜? " 보고싶어. " - ...어? " 나도 너 많이 보고싶어. " 흔들림없이 또박또박 전해진 내 말에 대한 전정국의 대답은 늦어진다. 곧바로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늦어졌지만 나는 언젠가 들려올 그의 대답을 기다리며 귀에 댄 핸드폰에 집중한다. 마침내 들려온 전정국의 대답에 들은 내 얼굴에는 웃음이 만개한다. - 고마워. 보고싶다고 말해줘서. 예전처럼 다시 말해줘서 고마워. " ... " - 나도 보고싶어. 나는 이제 더이상 내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 대신에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전정국이 생각나면 전화하고 보고싶으면 보고싶다고 그에게 솔직하게 말한다. 그것이 내가 전정국에게 해줄 수 있는 많지 않은 것들 중에 하나다. 전정국과 나는 서로에게 솔직해지며 더욱 가까워진다. 이제 난 같이 있었던 과거의 시간 때문에 과거의 전정국을 좋아하는게 아니라 지금 있는 그대로의 전정국을 좋아한다. 나는 계획대로 이사를 했다. 혼자 살 집이었기에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지만 짐을 꾸미고 나르는 일은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다. 짐 정리를 하기 전부터 피곤함이 밀려와 침대에 쓰러지듯이 몸을 던졌다. 아, 아무것도 하기싫다. 그냥 잘까. 속으로 수십번, 수백번 내적갈등을 하고있는데 익숙한 벨소리가 울린다. 손을 뻗어 느릿하게 핸드폰을 찾아낸 나는 핸드폰에 뜬 반가운 이름에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는다. " 여보세요? " - 이사는 잘 했어? " 응응. 짐 다 옮겼어. " - 짐 정리는? " 어? 어어, 다 했지. " - 잘했어잘했어. 밥은? 짐 정리하고 했으면 아직 못 먹었겠네? " 응. 이제 먹어야지. " - 택배 같은거 와도 문 막 열어주지마. 그냥 앞에 두고 가라해. 모르는 사람한테 절대로 문 열어주면 안돼. 무슨 내가 애야. 전정국의 잔소리에 뚱한 목소리로 답하니 전정국이 웃어버린다. '그래도 진짜 조심해. 난 너 걱정돼.' 끝까지 이어지는 걱정은 결국 알겠다는 내 대답이 나오고서야 멈춘다. 이제 그만 끊어야겠다며 인사를 한 전정국은 아쉬움이 다 가시기도 전에 전화를 끊는다. 이미 끊긴 전화를 내려다보며 나는 아쉬움에 한숨을 내쉰다. 대충 저녁을 먹고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고 있었다. 아직 할 일은 산더미였지만 이미 저멀리 치워둔채 외면하였다. 조용한 핸드폰에는 전정국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전화를 끊은 후에 어떠한 연락도 없는 핸드폰을 의미없이 들여다보고 있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인터폰을 두고 굳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의아함을 느끼며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 누구세요? " - 택배요. 택배 올 게 없는데? 이 늦은 시간에 무슨 택배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았다가 그대로 멈췄다. 순간 불길한 기운이 나를 감쌌다. 티비에서 보고 질색했던 여자 혼자 사는 집을 노리는 흉흉한 범죄자들이 떠올랐다. 설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에 손잡이를 놓고 문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 저기요! 택배왔다니까요! 남자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며 쾅쾅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문에서 몸을 떼며 뒷걸음질 쳤다. '그냥 앞에 두고 가주세요.' 간신히 목소리를 짜내어 남자에게 말하고 신발장 앞에 놓인 빗자루를 손에 쥐었다. 혹시나 남자가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절로 손에 땀이 났다. 다행히도 남자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떠났다. 남자가 멀어지는것 같은 소리에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쾅쾅- 몸에 긴장이 풀려갈때쯤 다시 한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 몸의 신경이 다 곤두섰고 나는 빗자루를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 누구세요? " - 아무래도 택배를 직접 전달해야할것 같아서요. 얼굴 보고 직접. " 그,그냥 두고가세요. 알아서 가,가져갈게요. " - 안돼요. 꼭 얼굴을 봐야겠네요. " 그냥 두고가시라니까요. 누구신데 그러세요! " 신경질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내 말에 대한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남자가 조용해지자 불안해진건 내 쪽이었다. 너무 세게 나갔나? 말로 안되니까 문 열고 들어오려는 건가? 줄기차게 펼쳐지는 상상들에 입술이 마르고 손이 떨렸다. 떨리는 손으로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 최근 통화기록에 가장 위에 있는 전정국을 찾아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문 밖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내가 누구냐면, " ... " - 너랑 연애하는 남자요. " ... " - 전정국이라고 하는데요. 내가 너 얼굴을 못 봐서 애가 타서 죽을것 같거든요. " ... " - 그니까 문 좀 열어주세요. 그제야 익숙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놓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걸어가 손잡이를 돌리니 누구보다도 보고싶었던 얼굴이 웃으며 서있다.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전정국에 보고싶었던 마음과 방금까지의 긴장감이 섞여 눈에 눈물이 고였다. 환하게 나를 보며 웃던 전정국은 내 눈물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내 얼굴을 붙잡으며 물었다. " 왜, 왜 울어. 무슨 일이야. " " ... " " 어? 대답 좀 해봐. 왜, 뭐 땜에 울어. " " ...너, 너 때문에. "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내 대답에 전정국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알았다는 표정으로 바뀐다. 조심스럽게 내 눈물을 닦은 전정국은 나를 한 품에 안아버린다. 그리고는 내 등을 토닥거리며 다정하게 묻는다. " 많이 놀랐어? " " 어. " " 미안해. 나는 그냥 장난치려고한건데 이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어. 미안해. 이런거 다신 안할게. " 전정국의 말에 금새 진정이 된 나는 이내 얼굴에 웃음기를 띄우고 전정국을 밀어낸다. 자신에게 잘 안겨있다가 순식간에 멀어진 나를 전정국은 왜 그러냐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본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만 꿈뻑거리는 전정국에게 나는 의아한 말투로 물었다. " 근데, 누구시라고요? 저랑 뭐하는 남자요? " " 연애. 너랑 연애하는 남자요. " " 그 남자 맞아요? 제가 연애하는 남자가 요즘 되게 바쁜데 그 쪽은 한가해보여서요. 이런 장난도 치고. " " 그 바쁜 남자가 너 보고싶어서 죽을거 같아서 왔어요. 그니까 나 들어가도 돼요? " 전정국의 능청스러움에 내가 졌다. 허-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니 전정국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온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들어온 전정국은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본다. 나는 정신없이 집 안을 구경하는 전정국의 앞에 서서 그에게 두 손을 내민다. " 선물은? " " 어? 무슨 선물? " " 이사하고 첫 손님인데 집들이 선물 없어? " " 허, 내가 이 집에 얼마나 많이 왔는지 넌 모르지? " 전정국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문다. 하긴, 2년을 연애하면서 이미 수차례 오갔을 집이었다. 내가 기억 못 하는 것 뿐이지. '그건 그렇네.' 내밀었던 손을 치우고 시무룩해진 말투로 말하는 내 볼에 따뜻한 입술의 감촉이 닿는다. 전정국은 빠르게 내 볼에 입술 도장을 찍고는 멀어진다. 그리고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내게 웃으며 말한다. " 그래도 너한테 남자친구로는 처음 온 거니까. " " ... " " 이건 선물. " 전정국은 다짜고짜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는 어린 아이처럼 밥을 달라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런 전정국에게 알겠다며 냉장고를 열었지만 보이는 반찬이라고는 계란과 김치뿐이었다. 전정국에게 처음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처음으로 그에게 요리를 해주는건데 생각보다 소박한 메뉴에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 뭐, 맛있게 해주면 되지. 나는 본격적으로 팔을 걷고 요리를 시작하고 식탁에 앉아있는 전정국에게 질문세례를 한다. " 바쁜 일은? 다 끝났어? " " 응. " " 다행이다. 요새는 잠도 좀 자? " " 응. " " 밥도 잘 챙겨먹고 다니고? " " 응. " " 근데 왜 오늘은 저녁, " 김치를 썰던 나는 문득 고개를 돌려 전정국을 보았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건지 전정국은 턱을 괴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단번에 마주친 시선에 내가 당황하여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자 전정국이 웃으며 오히려 내게 질문을 던진다. " 왜 그렇게 놀라. " " 아,아니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까... " " 빨리 하던거나 하세요. 나 배고파. " 전정국의 재촉에 알겠다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배가 고프다는 그의 말에 저절로 칼질이 빨라졌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놀림을 따라 또각또각 들려오는 소리 속에서 나지막하게 들려온 전정국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닿았고 나는 그 덕분에 제자리에 굳을 수밖에 없었다. " 결혼하고싶다. " " ... " " 너랑 결혼하면 나 아침마다 깨워주겠지? 너 맨날 요리하는 것도 볼 수 있고. " " ... " " 결혼할까? " 전정국의 말에 순식간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여러가지 감정이 섞여 나를 괴롭혔다. 그것들은 다정하게 말해주는 전정국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그럼에도 어떤 대답도 할 수 없는 미안함과 자책이었다. 나에겐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았다. 전정국을 또 잊어버릴지 아니면 기억할 수 있을지 나조차도 모르는 문제였다. 그래서 난 전정국에게 내 마음이 시키는 긍정의 대답을 건넬 수가 없었다. " 나중에. " " ... " " 내년에도 내가 너한테 이렇게 요리 해주면, 그 때 다시 생각해볼게. " 나는 물기 어린 목소리로 대답하며 전정국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하자 전정국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전정국은 알고있을 것이다. 시시콜콜 따지며 얘기하기에는 아직은 서로가 얼마나 아플지 알기에 우리는 오늘도 침묵하며 아픈 눈빛을 주고받는다. 꿈을 꿨다. 흐릿한 꿈의 시작은 전정국의 뒤를 졸졸 쫓아가는 내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전정국을 애타게 부르고 말을 걸지만 전정국은 매정하게도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는다. 그에 나는 익숙하지도 않은 높은 굽을 신고 전정국에게 달려간다. 가까스로 전정국과 걸음을 맞춘 나는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질 뻔하고 그런 나를 전정국이 잡아주며 장면이 바뀐다. 전정국과 내가 카페에 앉아있다. 나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하고있고 다른 한 손은 전정국이 붙잡고 쓰다듬느라 바쁘다. 내가 무언가를 찾았는지 전정국에게 핸드폰을 보여주려는 순간 전정국이 잡고있던 내 손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진다. 놀란 내가 손으로 시선을 돌리니 전정국은 내 손과 깍지를 껴서 내게 내민다. 그리고 우리 두 사람의 손가락에는 같은 반지가 나눠 껴져있다. 내가 행복함에 웃는 모습도 잠시, 곧 다시 장면이 바뀌고 어둑해진 길에 우리 두 사람이 서 있다. 그리고 나는 전정국의 앞에서 울기 시작한다. 전정국은 내 어깨를 잡지만 나는 그 팔을 밀쳐내버린다. 울음이 섞여 쏟아지는 내 말에 전정국은 고개를 숙인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들으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나를 가로막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그 순간의 우리가 많이 아프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이건 꿈이다. 그냥 악몽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장면들이 또렷해지고 나는 깨닫는다. 이건 단지 꿈이 아니고 내가 잃어버린 시간의 기억들이라는 것을.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 내 생각보다 아플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두려워진 나는 차라리 다 꿈이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과 함께 뒤척이다가 눈을 뜬다. 창문을 타고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내 위로 쏟아지는 햇빛에 기분이 좋아질 틈도 없이 머리가 아파온다. 누군가 내 머리를 누르는 듯 지끈지끈한 머리를 감싸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시 숨을 고르자 아프던 머리가 조금은 진정이 되었다. 화장실로 향하던 도중 우연찮게 식탁에 시선이 닿았고 자연스럽게 전정국이 떠올랐다. 꽤나 많은 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정국은 내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싹싹 비워냈다. 그리고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그릇을 내미는 모습이 영락없는 유치원생 아이같았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옮기다가 이번에는 현관문에 눈길이 갔다. 집에 가기 싫다며 문 앞에서 한참이나 쭈뼛거리던 모습이 떠올라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여전히 웃음을 내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딜 가던, 어디에 있던 전정국이었다. 뭘 하고 있던 전정국이 떠올랐고 이내 전정국이 그리워졌다. 언제부터인건지 짐작할 수 없을만큼 빠르게 어느새 전정국은 내 일상에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다시 시작한 카페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몸은 기억한다는 말을 몸소 증명하듯 나는 꽤나 능숙하게 일을 해냈다. 다시 알바를 하면 나를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무리인 것 같기도 했다. 벌써 2년이나 지났고 그저 알바생에 불과한 나를 기억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런 소득 없이 이어지는 시간들이 그만 포기하라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밀려오는 아쉬움에 반쯤 체념한채로 카운터 앞에서 무기력하게 서있었다. 맑은 종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밝은 머리색의 남자가 문 앞에 서있다. 어서오세요. 형식적인 말로 인사를 하고 남자의 주문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 남자는 한참이나 나를 뚫어지게 쳐다만 보고있다. 남자는 나를 멍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나는 그런 그를 경계에 찬 눈빛으로 쳐다봤다. 남자에게 주문은 안하냐고 물으려던 찰나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 아는 사람이다. 나를 아는, 그리고 내가 알고 있었을 사람이다. 그 생각이 들자 남자를 바라보던 내 시선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 사람은 누굴까. 내가 어떻게 알던 사람이며 나는 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할까. 저 사람과 내가 공유한 기억은 대체 뭘까. 속으로 여러 질문들만 떠올리고 있는데 남자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카운터 쪽으로 걸어왔다. "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 " ... " " 저기요. 주문 안 받아요? " " 아, 아 네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 얼이 빠져있는 내게 허둥지둥 대답하자 남자는 내게 돈을 내밀었다. 돈을 받고 커피를 만들면서 내 머릿속에는 의문이 피어올랐다. 아는 사람이 아닌가? 아무 사이도 아닌데 그냥 내 착각이었나.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고개를 돌려 남자를 힐끗 바라보니 곧바로 눈이 마주친다. 당황한 나는 다시 고개를 돌린다. 근데 왜 저렇게 쳐다보지. 뭉개뭉개 피어오르는 의아함에 고개를 두어번 가로 젓고 완성된 커피를 남자에게 건넸다. "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 " 감사합니다. " " 저 손님, 혹시 쿠폰 있으세요? 도장 찍어드릴게요. " 내 말에도 남자는 묵묵부답으로 응한다. 아무런 반응이 없기에 쿠폰이 없다고 혼자 결론지은 나는 쿠폰 하나에 도장을 꾹 찍어 남자에게 내민다. 자기에게 내밀어진 쿠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남자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린다. " 있어요 쿠폰. " " 아, 그럼 이리 주시면 도장, " " 네가 가지고 있잖아요. " " ...네? " " 내 쿠폰 너한테 있다고요. 너한테 맡겼는데 그거 가지고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어떡해요. " 남자는 내게 살짝 웃으며 말했다. 아까보다 훨씬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남자와는 상반되게 이번에는 내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정말 아는 사람일 줄이야. 그것도 꽤나 친한 사이였던 것처럼 말을 걸어오는 남자에게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로 물었다. " 저... 아세요? " " 기억을 잃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그래서 갑자기 사라진거겠구나 짐작도 했고. " " ...누구세요? " " 각오는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더 당황스럽고 그러네요. 진짜 다 잊어버렸네. " 내 질문에 대한 답은 안 하고 자기 말만 내뱉는 남자에게 조금은 화가 났다. 나는 지금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당신이 누군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마치 나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가 결코 편할리가 없었다. 내 복잡한 마음을 대변하듯 남자에게 향한 내 말은 꽤 신경질적으로 나갔다. " 저기요, 누구시냐니까요? " " ... " " 말씀 좀 해보세요. 제가 지금 답답해서 미치겠, " " 생각중이에요. " " ... " " 어떻게 말해야 제일 안 슬프게, 안 아프게 할 수 있을까. " " ... " " 도대체 어떤 식으로 나를 소개해야할까. " " ... " " 내가 누구라고 말해야 네가 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 남자의 말에 내 입이 굳게 다물어졌다. 내가 남에게 신경질을 낼 처지가 아니었다. 자신은 잘 아는 사람인데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하는 나는 남자에게도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일임이 분명했다. 나를 향해 고정된 남자의 시선을 바라봤다. 나는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복잡한 그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렸다. " 좋아했어요. " " ...네? " " 내가 너를 좋아했다고요. " " ... " " 그리고 아마 너도 나를. "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 듣게된 남자의 말은 얼핏 봐도 복잡해 보이던 우리 관계를, 내 마음을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태꿍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어요!(빠밤)과연 누굴까요?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빠르게 돌아온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오늘만 같아라... 항상 기다려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화에서 또 만나요♡
암호닉 사랑한다고 전해라~~^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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