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생각해봐, 내가 잘생겼지 강동원이 잘 생겼어?"
"어! 완전!"
"뭐?"
"그러니까 리모콘 내놓으라고! 김민규!"
'"..."
결국 리모콘을 뺏긴 민규가 말없이 식탁에 앉아 축 늘어져있어.
한참 드라마를 보던 네가 결국은 민규가 신경쓰여 티비를 끄고 식탁으로 가지.
"삐졌어요?"
"..."
"삐졌냐고!"
"...여보가 잘못했잖아!"
"..."
제일 뚱한 표정을 짓던 민규가 결국엔 벌떡 일어나 방으로 휙 들어가버려.
아무말도 못하고 어버버, 멍때리던 넌 쾅 닫힌 문에 조금 쫄지.
진짜 많이 화났나? 하고 슬쩍 일어나 문을 열려고 하는데 그 순간 철컥, 하고 문이 잠겨버려.
"... 지금 문 잠궜어?"
"..."
방문에 대고 말해봐도 대답없는 목소리에 결국 넌 다시 거실로 나와 풀썩 앉지.
10분, 20분이 지나도 안나오는 민규에 넌 살짝 불안해해.
원래 삐져도 이렇게 오래 삐진적은 없었는데, 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곤 눈을 감고 몇분을 더 기다리니 쾅 하고 방문이 열려.
"..어디가요?"
"가출!"
가방에 짐을 한가득 싸들고 나온 민규가 가방을 꽁꽁 싸매곤 바로 현관문으로 향해.
기가 막힌 넌 그 모습을 보고만 있지.
"가출?"
"그래, 여보가 잘못했으니까 가출한다! 연락하지마!"
가출을 제 부인한테 말하고 가는 사람이 김민규 말고 더 있을까.
화가 난다기보단 그냥 웃긴 넌 민규가 신발 신는 모습을 구경해.
"..안 말려?"
"네?"
"나 가출하는데 안 말리냐고!"
"..."
민규가 손잡이를 잡고 뒤를 돌아보더니 너한테 물어.
그냥 귀엽기만한 넌 우쭈쭈하며 빨리 가출하라고 장난을 치지.
세상에서 제일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민규가 입을 꾹 다물곤 문을 쾅 열고 나가버렸어.
"가출 했다고?"
민규가 '가출'한지 한 30분 후?
바리바리 먹을걸 싸들고 온 '구 2학년부'가 네 얘기를 듣더니 깔깔대며 웃어.
한참 민규 뒷담화를 하다가, 선생님들의 근황토크가 시작됐어.
"원우쌤은 학원 차렸다면서요."
"아, 응. 미술학원 차리는게 꿈이었는데 어쩌다보니까 차리게됐어."
"와, 나중에 우리 애 낳으면 미술학원 꼭 보내야겠다."
"민규 손재주를 닮았는데 미술이 될것같아?"
"...."
권쌤의 단호박 담긴 말에 모두가 웃지.
하긴, 민규 손재주는...
"여보! 이거 이상해!"
"???"
"으아"
"????"
자신이 저녁을 차려보겠다는 말에 신이 나서 허락을 해줬더니, 주방 입성 2분만에 들려오는 불안한 소리.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냄비 물이 끓어 넘치기 일보직전인 모습에 넌 얼른 민규가 다칠까 민규를 밀어내고 불을 껐어.
물 끓이는걸 도와주자 자신도 할수 있다며 찡찡대는 모습에 결국 넌 불안했지만 주방을 나왔어.
그러자 또 바로 뒤에서 들려오는 외마디 비명에 결국 민규는 주방에서 퇴장.
"...다음부터 어떻게한다?"
"..저녁은 여보한테 맡긴다.."
"내가 없을땐 밥 어떻게 한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시켜먹는다..."
"요리는 어떻게 한다?"
"민규는 하지 않는다.."
결국 베인 민규의 손에 밴드를 붙여주며 손도장까지 쾅 찍어 약속했다는 후문.
하마터면 큰일날뻔했던 날을 생각하며 넌 한숨을 쉬지.
모두가 민규의 손재주를 알고있기에 미술은 빠르게 포기.
"나는 ! 다른 학교로! 갔지!"
"어? 진짜?"
민규와 결혼한 이후로 교직에서 잠시 나온 넌 친구들의 근황에 신기해해.
"어디로 갔는데?"
"옆에 만세고."
"아, 만세고? 좋은데 갔네."
"만세고는 무슨죄..."
"?"
"부승관이 가면 망할텐데.."
"?????"
쟤네는 어떻게 몇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지, 예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 싸우는 모습에 아마 여기에 민규까지 있었다면 집이 폭발했을거라고 생각한 너야.
"근데 지수쌤은 왜 안왔어요? 최쌤이랑 지훈쌤도 왔으면 좋았을텐데."
"셋이 여행갔어."
"에에?"
"갑자기 셋이서 열심히 카톡하더니 여행가던데."
"맞아, 그 쌤들은 걷잡을수가 없음."
"..."
역시, 저 셋도 한결같구나...^^
한참을 떠들다가, 삐비빅 하고 들려오는 현관문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현관문으로 쏠려.
"여보.. 내가 잘못했-"
밖이 많이 추웠는지 코가 다 빨개져서는 현관으로 들어서던 민규가, 선생님들 모습을 보고는 급정색을 하더니 다시 뒷걸음질 쳐서 현관을 나가버렸어.
10초도 안걸린 이 상황에 선생님들 모두가 당황+황당.
"...쟤 지금 뭐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ㅋㅋㅋㅋㅋㅋㅋ"
"저게 뭐하는건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도 어이가 없던 넌 얼른 현관으로 나가 다시 문을 열어보는데, 엘레베이터는 이미 1층에 도착.
민규의 제 2차 가출에 넌 결국 빵터져서 다시 집으로 들어오지.
"우리 있어서 당황했나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간 김민규.."
민규가 가출한지 어느덧 2시간, 아직 밖이 많이 추워 걱정된 넌 얼른 선생님들을 돌려보내.
"민규 집에 못들어오니까 얼른들 가요. 나중에 다시 오면 또 초대할게! 정식으로!"
"여행간 세명도 같이 데려올게, 민규 또 가출하게 하지말고!"
"네, 알겠어요. ㅋㅋㅋㅋㅋㅋ"
"갈게, 잘 있어-"
"오랜만에 봐서 좋네. 많이많이 놀러와요."
"응, 진짜 간다. 빠이!"
시끌벅적했던 거실이 다시 조용해지니, 넌 문득 쓸쓸해졌어.
얼른 다시 교직으로 가고싶기도 하고, 옛날 세봉고 시절이 그립기도 하고.
쇼파에 가만히 앉아 선생님들 흔적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으니, 갑자기 카톡이 울려.
"엥?"
[ 짱친 톡방 ] 9
부승관 : 님
부승관 : (사진)
부승관 : 이거 님 남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너봉 : ????????????
미리보기로 보이는 민규의 처량한 실루엣에 넌 얼른 사진을 눌러봐.
사진을 눌러보니 집 앞 벤치에 앉아서 가방을 꽁꽁 싸매들곤 코를 훌쩍이는 민규가 있어.
전원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원우 : 나가려고 하는데 있길래 몰래 찍어왔어
이석민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석민 : 사스가 김민규... 쟨 정말 바보가 분명해
권순영 : 아니 가출했다고 집앞에서 저러고 있는애가 어딨음
전원우 : 그냥 가출을 너봉이한테 말하고 간거부터가 쟨 이미 바보
"하여간... 김민규..."
김너봉 : 민규 아직도 있어요?
권순영 : 응 있어
권순영 : 내려가봐 ㅋㅋㅋㅋㅋㅋㅋ
김너봉 : ㅇㅋ
세상에서 제일 바보 김민규를 데려가기위해 목도리까지 꽁꽁 둘러싼 넌, 아까 후드집업 하나만 걸치고 나간 민규를 생각하곤 목도리 하나를 더 챙겨.
핫팩도 챙기고, 패딩도 챙기고.
민규가 첫 가출을 한 기념으로 -사실 기념일이라고 하기도 뭐하지만- 민규 삐진걸 풀어주기 위해 외식까지 생각한 넌 얼른 민규 차키와 네 지갑을 들고 나가지.
밖을 나와보니 엄청 쌀쌀해.
이런 날씨에 후드집업 하나만 입고 나갔으니 당연히 집에 들어오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아까 사진 속 장소를 찾아봐.
다행히 그 쪽으로 가자 처량하게 혼자 앉아있는 민규가 보여.
아이고, 저 바보. 하면서 민규 몰래 그 쪽으로 가려는데 갑자기 왠 여자 한명이 민규에게 말을 걸어.
"헤에?"
놀란 넌 얼른 나무 뒤에 숨어 민규와 그 여자를 몰래 쳐다보지.
여자가 민규에게 무언갈 얘기하고, 민규는 가만히 듣더니 손을 흔들면서 무언갈 거부해.
여자가 계속 얘기하더니 민규의 완강한 거부에 결국은 가버렸어.
"오올, 김민규. 짱인데."
뭔진 몰라도 오랜만에 보는 진지한 모습에 괜히 뿌듯해진 넌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있었어.
그때 갑자기 민규가 자리를 옮기고, 당황한 넌 얼른 목도리를 들고 민규 뒤를 따라가지.
민규가 아파트 단지를 나와 성큼성큼 걷고있어.
얼떨결에 민규의 가출에 동참하게 된 넌 민규가 추울까봐 뒤에서 안절부절.
민규 가는길을 따라가보니, 꽤 익숙한 길이야.
민규는 아무래도 지금 세봉고로 가고 있는것같아.
네 예상대로 민규가 세봉고에 도착했어.
몇년전만 해도 함께 여기서 체육대회를 했었던 기억이 생각나 너도 괜시리 마음이 찡해지지.
생각이 많은것같은 민규가 천천히 운동장 한바퀴를 돌아.
겨울방학이라 그런지 텅비어있는 운동장에 넌 조용히 교문에서 민규를 바라보지.
그러다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재채기를 하는 민규를 보고 결국 넌 쭈그려앉아있는 민규 뒤로 몰래 다가가 목도리를 칭칭 감아버려.
"흐엑!"
"너, 너 뭐야!"
"뭐긴 뭐야, 니 부인이죠."
"어,어떻게 왔어?"
"아까부터 따라왔는데, 누가 겨울에 그렇게 춥게 입고 나가래요."
네가 하얀색 목도리를 칭칭 둘러주며 핀잔을 주자 입을 꾹 다물곤 미운 표정을 지어.
"여보가 나 안말렸잖아."
"허어."
"패딩이라도 던져주지."
"그래서 가져왔잖아, 여기."
"오!"
네가 민규가 자주 입는 롱패딩을 건네주자 얼른 받아서 입곤 널 패딩안에 가둬 안아버려.
"으어."
"가출해서 미안.."
"..."
"앞으로 여보 말 잘들을게, 진짜."
"나도 잘못한거 있으니까 그냥 봐주는거에요. 한번만 더 가출하면 혼나!"
"응, 알겠어."
"그러니까 오늘은 외식."
"오?"
"삐졌잖아요, 맛있는거 먹고 화 풀어요."
"헐, 아싸!"
신이 나서 방방 뛰는 민규와 함께 차를 타러 다시 아파트 단지로 향해.
걸으면서도 쌀쌀한 날씨에 넌 민규에게 핫팩을 쥐어주지.
"아, 근데 아까 그 여자는 누구였어요?"
"응? 무슨 여자. ..아-"
"아까, 벤치 앉아있을때 그 여자."
"너 나 벤치에 있을때부터 봤어?!"
"핸드폰 확인해봐요."
민규가 네 말에 핸드폰을 확인해봐.
승관이가 올린 제 사진에 경악을 한 민규는 이게 뭐냐며 찡찡댔지.
"아니, 추워서 그냥 앉아있는데 갑자기 번호를 달라 그래서-"
"허얼."
"그래서 내가 나 결혼했다고, 예쁜 부인 있다고 그랬지."
"오구, 잘했네."
"근데 계속 뻥치지말라고 하면서 번호달라고 하길래 안된다 그러고 도망쳤어."
"그래서 바로 일어나서 가버렸구나?"
"응."
"역시! 우리 남편!"
네가 엄지를 들고 칭찬해주니 또 좋다고 실실 웃는 민규야.
"...아, 맞다."
"응?"
"아까 걔네 왜 온거였어?!"
"아, 선생님들?"
"어, 나 진짜 깜짝놀랬다고!"
차를 타고 이동해 같이 저녁을 먹으면서 민규의 가출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웃겼던거 있지?
원래 민규는 아예 하루동안 안들어오려고 했는데, 밖이 너무 추워서 결국 한시간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대.
집에 들아와서 너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미안하다고 하려고 했는데,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꽉 차보이는 집에 당황한 민규는 애교부릴새도 없이 다시 밖으로 뒷걸음질.
엘레베이터를 타면서도 너무 당황해서 상황파악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하도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서 같이 놀자고 하고싶었는데, 막상 또 가출까지 했는데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엔 제 자존심이 허락을 안했다며 결국은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다가 벤치에 앉아있었대.
물론 후드집업만 입고 나온 자신을 저주하면서.
후드집업을 뒤져보니 천원짜리가 나오길래, 집 앞 슈퍼에 가서 너에게 줄 사탕도 하나 샀대.
남은 돈으로 자신은 50원짜리 불량식품을 하나 까먹고, 코 훌쩍이면서 언제 들어갈지 고민했다는 민규.
이게 정녕 내년이면 서른살이 되는 남자의 가출후기인가 싶어 넌 한참을 웃었어.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민규 때문에 한참을 끙끙댄 넌 민규가 제일 좋아하는 저녁을 먹으면서 제일 행복한 하루를 보냈지.
"고등학교는 왜 갔어요?"
"아, 그냥 발걸음이 거기로 가길래.."
"사실, 나도 오늘 선생님들보면서 교직 많이 그립더라."
"그치, 옛날 엄청 그립다. 진짜."
"아- 다같이 세봉고 있던 시절이 진짜 좋았는데."
"지금 다 다른데로 전근 갔대?"
"아, 원우쌤은 미술학원 차렸대요. 승관이는 만세고 갔고."
"다른 쌤들은?"
"아마 다른 쌤들도 다 다른 학교로 간것같던데. 아마 지금 세봉고에 최부장님이랑 석민이밖에 없을거에요."
"헐.."
한참 옛날 얘기를 하던 너와 민규가 잔뜩 추억에 젖지.
둘의 늦은 청춘이라면 청춘이라고 할 수 있었던 지난 세봉고에서의 많은 추억들을 생각하면서.
먹먹한 기분이 든 넌 말없이 밥만 먹는데, 민규가 네 모습을 보더니 씩 웃어.
"우리도 갈까? 세봉고?"
"에, 어떻게 가요."
"가면 되지, 왜 못가?"
"치, 휴직하자고 한 사람이 누군데."
"가자! 내년부터."
"..."
"다른 학교 말고, 꼭 세봉고로, 둘이 같이."
"..."
"응? 가자~"
"...생각 해보고."
네가 싫지는 않은 표정을 짓곤 말하자 헤헤 웃으며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걸 네 밥위에 올려줘.
"아, 그리고 한가지만 더 물어보자. 너봉아."
"응?"
"나야, 강동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