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이 엄마가 생겼다구요! 기다리는 병아리와 거짓말쟁이 엄마 - 4 w.오구오꾹
"왜 엄마가 없어질거라고 생각해?" "맨날맨날, 쿠키 옆에 없어쓰니까." 그러니까 이제 맨날맨날 쿠키 옆에 이쓰면 안돼? 윤기씨의 부탁대로 해가 달과 술래를 바꿀 때까지 정국이와 놀아준 게 전부였다. 온종일 집 안에서만 있어서인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만 있었다. 졸리다며 제게 칭얼거리는 정국이를 안아 재운 뒤 조심조심 침대에 옮겨 눕혔다. 도롱도롱, 정국이가 완전히 잠이 든 걸 확인한 뒤에서야 시원스레 숨을 돌리며 방에서 나와 소파 모서리에 널브러져 있던 가방을 챙겨들었다. 가방을 챙겨드는 제 앞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고개를 들자 윤기씨가 머쓱하게 웃으며 오늘 하루 정말 고마웠다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해왔다. 그런 윤기씨에 저도 덩달아 엉거주춤 일어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초면에 이런 곤란한 부탁 드려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래도 흔쾌히 들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오늘 하루 정말 고마웠고 조심히 들어가세요." "아뇨, 제가 더 감사해요. 언제 귀여운 윤기씨 아들이랑 하루 꼬박 놀아보고 그러겠어요. 저도 나름 재밌었는데요. 주무시고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윤기씨를 보고 옅게 웃었다. 신발장을 짚고 쭈구려 앉아서 신발 두 쪽을 다 신고는 현관문을 열고 완전히 집을 나오니 내일 아침 저를 찾을 것만 같은 정국이가 마음이 걸렸다. 쿵, 소리를 내며 닫쳐버린 현관문 앞에서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 겨우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1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췄는데도 나갈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다 닫칠려는 엘리베이터에 열림 버튼을 누르고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아파트 입구를 나오며 가방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찾으려 뒤적거리다 핸드폰이 아닌 정국이가 선물이라며 준 그림이 손에 잡혔다. 이거 정국이가 잃어버리면 혼난다고 했는데. 이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갔다. 빨리 걷기라도 하면 정국이 생각을 조금이라도 떨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집에 도착해 헉헉거리는 순간에도 곤히 잠들어 있던 정국이 얼굴이 생각났다. 저가 어딜 가든 졸졸 따라와 제 손을 잡아오던 정국이는 입 버릇처럼 저를 두고 가지 말라고 얘기해왔다. 엉마 계속 쿠키랑 여기 있으꺼지? 저 말을 할 때의 아이의 두 눈엔 곧 비가 내릴 듯이 물이 가득 차올랐다. 입꼬리를 추욱 내리며 울상을 지은 채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는 아이에게 저도 모르게 거짓말을 해버렸다. 내일도 엄마는 정국이 옆에 있을꺼라며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 말에 안심이라도 한 건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이를 안아들어 등을 토닥여주며 얕게 한숨을 쉬었다. 이후로도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나 더 물어오는 정국이에게 몇 번이나 더 거짓말을 했다. 그때마다 배시시 웃으며 저를 쳐다보는 정국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봐줄 수가 없었다. 미안해, 정국아. 생각해보니까 나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다. 정국이의 엄마는 내가 아니였으니까, 나는 그저 일일 엄마일 뿐이었는데. 원래 아무도 없는 집이 오늘따라 휑해 보였다. 좁은 원룸이라 그동안 허전한지도 모르고 살아왔는데 말이다. 겨우 오늘 하루 정국이랑 부대끼며 보냈다고 사람의 온도를 그리워 할 줄이야. 한숨을 포옥 쉬며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누웠다. 아이고, 피곤해라. 그 순진한 아이를 상대로 거짓말투성이인 하루를 보냈다.이제서야 한 발 느리게 죄책감이 들어왔다. 애초에 왜 윤기씨의 부탁을 들어줘서 이 난리일까, 역시 나 혼자서 갔던 것은 큰 실수였던 거 같다. 뒤늦게 켜본 핸드폰에는 남준 선배에게 몇 통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가 와있었다. 문자 답장을 할려고 자판을 키니 손가락을 움직일 힘도 없이 피곤하다. 남준 선배에게 전화를 걸자 신호음 한 번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달칵- 전화를 받은 선배였다. "여보세요, 선배 저 이제 집 와서 너무 피곤해요." [뭐 하느라 이제 들어와요,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안 받더니 감시하는 사람없다고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날뛰고 다녔죠?] "제가 뭘 했건 선배 알아서 생각 하시구, 민윤기씨가 저희 회사랑 인터뷰 하고싶다고 조만간 일정봐서 연락 준다고 했어요." [거짓말 아니고 진짜?] "예, 진짜, 정말, 리얼이니까 한 번만 물어보세요." [이야, 김후배, 걱정했었는데 괜히 했네요.] "더 물어보실꺼 없죠? 끊을께요." [수고했어요, 잘자고 내일 회사에서 봐요.] 선배랑 전화가 끊기자마자 바로 잠이 들었나 보다. 추운 데서 자면 입 돌아간댔는데 이불도 안 깔고 장판을 켜지도 않아 찬 바닥이랑 뽀뽀하면서 잤다. 새벽 6시에 맞춰놓은 알람 소리를 듣고 분명 일어났던 것 같았는데 힘겹게 눈을 떠 휴대폰을 켜 시간을 확인해보니 7시 28분이였다. 하, 가기 싫다. 일어나기가 싫어. 끙끙 거리며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를 했다. 오늘 아침도 편의점 가서 간단하게 사 먹겠네.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면 굳이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는데 챙겨주는 사람이 없으니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거르게 된다. 가방 안을 정리하다 어제 피곤에 찌들어 잠드는 바람에 못 꺼내놓은 정국이의 그림을 이제서야 꺼내어 식탁 위에 두었다 괜히 곱게 접힌 종이를 펼쳐 다시 한번 그림을 봤다. 암마라고 써있는 글자는 봐도 봐도 웃기다. 꼼지락거리며 그림을 그렸을 정국이를 생각하니까 괜히 마음이 간질간질 거렸다. 제가 이걸 받아도 되나 싶었는데 정국이가 먼저 나서서 가방에 넣어주니 받아올 수 밖에.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때까지 그림에 눈을 떼지 못 했다. 하, 저 어마무시한 검은 기운을 뿜어 내고있는 건물이 내가 들어가야 하는 건물인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고있는데 저 멀리서 걸어오는 남준 선배에 급하게 손을 올려 입을 가렸다. 아나, 콧구멍 엄청 커졌을텐데... 아침부터.... 하아... "김후배, 하품 참 시원하게 하시네요. 하마 같았어요, 방금" "뭐요?" "입이 참 크네요, 콧구멍도 크고" "아침부터 시비트지 마요." "김후배, 삐졌어요?" "절대로 안 삐졌으니까 갈길 가시라구요." "제가 어딜가요, 우리 같은 사무실쓰는데." "아, 그러네." "정신 좀 차리세요, 김후배. 김후배 말 대로 민윤기씨네 소속사에서 다시 날짜 조정해보자고 전화왔었어요. 꽤 성공적이네요. 완전 잘했어, 김후배" "제 기자로써의 끼가 여기서 발휘되네요." 남준 선배의 칭찬에 잔뜩 신이나서는 홍홍 거리며 대답했다. 사무실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왜 남준이랑 김탄소가 같이 들어오냐며 이상한 눈빛으로 저를 쳐다봐오는 방선배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며 내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누가 봐도 장난이였지만 난 이상하게 방선배가 하면 더 기분이 더 나빠지더라. 그래서 특히 저 선배한테는 장난을 장난답게 못 받아쳐주겠다. 아, 눈 감았다 뜨면 퇴근시간이였으면 좋겠다. 컴퓨터 모니터 위로 어제 보았던 정국이의 귀여운 얼굴이 두둥실 떠다녔다. 지금 시간이면 일어났겠지? 혹시 나를 찾지는 않겠지. 옆자리 선배는 언제 또 내 어제의 활약 아닌 활약을 주워들은 건지 오전 시간 내내 김탄소 칭찬의 의미로 점심을 사준다며 큰소리 뻥뻥 나불 나불거리더니 점심시간이 되니까 어디로 튀었다. 역시, 짠돌이 방선배한테서 밥 얻어먹는다는건 애초에 기대 따위 안 하고 있었지 내가. 그렇게 아래층에 있는 제 동기 태형이와 함께 밥을 먹으며 어제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부풀려 얘기했다. "딱 문을 열자마자 인사를 하고 이야기 했지, 안녕하세요, 기자 김탄소입니다. 민윤기씨가 몸이 안 좋으시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빡! 절도있게 이야기 했다 진짜" 문을 열자마자 귀요미 아카쨩이 뛰쳐나왔었지 ... "오오, 김탄소 멋있다!" "내가 그렇게 깍듯이 인사를 하니까 민윤기 그게 웃으면서 나를 집안에 들이더라고" 존나 빡친 표정으로 나를 집에 들였었지 ... "민윤기 핵까칠이라며! 어떻게 했길래 웃으면서 집안까지 들이냐. 탄소 짱 대단해... 너가 내 동기인게 자랑스럽다. 크으-" "그래서 내가 말했지, 몸은 어떤가요. 괜찮으시면 오늘 인터뷰 일정을 다시 조정 해보는건 어떨까요? 라고 물어보니까 두말도 안하고 오케이 콜 나 할께요 했었다. 민윤기? 핵까칠이? 마성의 사포? 별거아니야- " 정국이가 아니였다면 난 고소당했을꺼야.... "와, 역시 탄소 짱이야! 내 행동모델을 너로 정하겠어, 나도 너처럼 열심히 일 할꺼야 이제!" "어, 응.... 그래... 밥 먹자, 태형아. " 너무 부풀려 말했나? 저를 우러러 쳐다보는 김태형에 더 신나서 없던 일까지 지어내서 떠들었다. 역시 난 거짓말쟁이가 맞나 봐. 밥을 먹고 김태형과 헤어지는 순간에도 김태형은 나에 대한 극찬을 하다 사무실로 들어갔다. 순진한 새끼 ... 태형이를 보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더 위에서 내린 나도 밍기적거리며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 옆자리 선배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나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김탄소, 너 내가 점심 사준다고 했는데 안보이더라? 오늘 김탄소 잘 했다고 점심부터 위에 기름칠 시켜줄려 했는데." "아, 예 ..." 오늘따라 말하는 거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특히 더 깐족거리고 얄미운지 모르겠다. 물론 평소에 알밉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평소보다 더 알미워 죽겠다. 진짜 내가 저 감자탕 집 단골손님처럼 생긴 선배랑 전생에 개와 원숭이 사이였나 보다. 오늘도 난! 한다, 퇴근! 8시가 가까워지자 엉덩이가 들썩들썩 거리기 시작한다. 미리 가방을 챙기고 있는 도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을 챙겨들며 저는 이만 가볼께요!를 외치며 총총 사무실을 나왔다. 전화를 받자 왜 이렇게 전화를 늦게 받냐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씅을 내는 목소리에 놀라 그대로 굳어 장난전화인가 한참을 생각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왠지 익숙한데. "혹시 민윤기씨?" [예, 저 민윤긴데요. 죄송한데, 탄소씨 지금 저희 집 앞에있는 놀이터로 올 수 있으세요? 정국이가 아침부터 엄마 찾더니 오늘 어린이집도 안 간다면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었어요.] "많이 울었어요?" [지금 밖에서 4시부터 엄마 기다린다며 고집부리고 앉아 있어요. 저녁도 안 먹고 코 찔찔 흘리면서 서있어요. 진짜 미안한데 탄소씨 여기로 와서 정국이 좀 달래주고가면 안될까? 애 이러다 감기 걸릴 것 같아요. 밥도 안먹고] "아, 알겠습니다. 갈게요. 조금만 기디리세요" [탄소씨, 미안해요. 나도 무슨 방법이 없어서.] "금방 갈게요." 제가 예상했던 것처럼 아침이 되자마자 정국이는 저를 찾았나 보다. 봄이라도 해도 아직 밤은 꽤 추운데 4시부터 지금까지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니, 조급해지는 마음에 돈이 아까워서 일 년에 서너번 탈까 말까 한 택시를 불렀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하루 종일 밖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것도 밥도 안 먹고 말이야. 윤기씨 말대로 감기라도 들면 아파서 어떡하지? 생각이 짧았다. 어제의 윤기씨의 부탁은 들어주지 말았어야 했다. 들어줘선 안됐다. 어제 한번 왔다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아파트 입구에 내려서 종종걸음으로 놀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놀이터 앞에 켜진 가로등 불빛 아래로 노란색 원복을 입고서 쭈구려 앉아 서럽게 울고있는 정국이와 그 옆을 지키고 서 있는 윤기씨가 보였다. "정국아!" "엉마야? 쿠키 엉마?" 저를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서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정국이는 어두운 밤인데도 어떻게 저인지 알아본 건지 눈물, 콧물을 매단 채로 저에게 달려와 한품에 안겼다. 맞잡은 손이 차다. 저의 목 언저리에 닿아있는 볼이 차다. 저에게 안기자마자 더 서럽게 끙끙거리며 울고 있는 정국이에게 늦게 와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우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제가 이 어린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머릿속이 하얘지고 죄책감에 가슴이 콩콩 거렸다. "쿠키, 코야하고 일어났는데에 옆에 엉마가 없어져써... 으응...- 엉마는, 거짓말 안 한다구 쿠키한테 그랬자나아, 그래서... 그래서..." "미안해 정국아 ..." "그래서, 엉마 기다려써... 쿠키 혼자서..." "엄마가 미안해, 정국아 ..." "쿠키 혼자서 기다려써... 엉마야 올 때까지...- " "그만 울자, 뚝. 정국이" "엉마는 거짓말... 흐으, 안한다구 그래쓰니까... 쿠키 옆에 계속 있으꺼라고 해쓰니까...- "
- 항상 감사합니다 -♡ 3화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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