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이 엄마가 생겼다구요! 보통의 아빠와 씩씩한 병아리 - 7 오후 11시쯤에 보낸 메세지는 7시간이나 지난 지금도 답장이 없었다. 말풍선 옆, 1표시가 없어지긴 했는데 답장이 안오네. 지금쯤이면 정국이랑 둘이 집에 도착했겠지. 배고플텐데 저녁 먼저 먹으라고 할까. 끝나지 않는 촬영에 몸도 머리도 피곤에 찌들어 갔다. 힘들 때 특히나 더 간절하게 생각나는 제 귀여운 아들이였다. 보고싶어 죽겠다. 정국이 표 애교면 힘든 것도 다 잊어버릴 것 같은데. 대기시간 내내 무기력하게 앉아 오로지 제 아들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제 이름을 부르는 작가에 앓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기씨, 세트장으로 좀 나와봐! 세트장에 가까워지자 낯이 익을대로 익은 한 여자가 보였다. 우뚝, 걸음을 멈췄다. 촬영장 스테프들에게 빙 둘러 쌓여 눈웃음을 짓는 여자를 보니 속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여자친구 흉내라도 내는 것인지, 말끝마다 저의 이름을 달고다니며 촬영장 스테프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여자였다. 여자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방향을 틀어 되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제 행동이 무색하게도 등 뒤에서 폭삭 저를 안아오는 여자에 자동으로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 "윤기씨, 나 왔는데. 내 얼굴도 안보고 가요? 응?" "그래요, 윤기씨. 희주씨가 여기까지 와줬는데 둘이 근처 카페라도 가서 오붓하게 커피 한 잔 하고 오세요." "아뇨, 됐습니다. 희주씨 제 여자친구인 마냥 행동하고 다니지 마세요, 역겨워 죽겼으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직도 제 허리를 감고있는 여자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있는 매니저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 촬영 끝난거 맞죠? 가요. 건조한 음성이 정적이 흐르는 촬영장에 작게 울렸다. 이미 제 촬영씬은 끝났는데 가려는 저를 필시 잡아두었던 이유가 저 여자 때문인건가.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걷는 내내 욕을 읊조리며 가방과 옷가지를 챙겨 촬영장을 걸어나왔다.
촬영장까지 찾아와서는 이게 뭐하는 짓인지. 촬영장에서 완전히 나오자 그제서야 속에서 화가 들끓기 시작했다. 눈을 지긋이 감아 고개를 뒤로 젖혔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깊게 내쉰 한숨이 불어오는 저녁바람과 함께 날아갔다. 아, 생각하면 할 수록 화가 났다. 이마에 핏줄이 서는 것이 느껴졌다. 화를 삭혀보자는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저녁의 바알간 하늘은 잔뜩 울어 붉게 변한 정국이의 눈가 같았다. 내 아들 정국이. 터덜터덜, 주차 되어있는 차로 걸었다. 몇 분동안이나 차 안에 홀로 앉아있었을까, 곧 건물 출구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매니저가 운전석에 올랐다. 숨을 고르고 있는 매니저에게 미안하다 사과를 건냈다. 저의 사과를 들은 매니저는 저의 예상 밖으로 일절의 표정변화가 없었다. 화내거나 우는투로 대답해올 것 같았는데. 한참이나 입을 벙긋거리며 말을 고르는 듯한 매니저는 차에 시동을 걸며 말했다. "뭐, 한 두번인가요. 그리고 윤기씨 잘못 없잖아요. 그 여자가 유독 별난거니까. 돈 벌어 먹고 살기 차암 힘드네요. 그죠." "그렇게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생각이 짧았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현장분들한테 대충 둘러댔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사장님한테 혼날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화낸거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저도 보고 놀랬다니까요. 윤기씨가 욕을 할거같이 생겼지만, 실제로 또 욕 하는걸 보니까 되게 새롭더라고요. 하하." "매번 죄송해요." 시트에 몸을 기댄채 창 밖으로 정신없게 지나가는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답답한 가슴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영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기분에 정국이 사진이나 볼까 하며 튼 휴대폰이였다. 상단바에 가득 떠 있는 알림들을 주욱- 내려보다 탄소씨에게 온 메세지를 눌렀다. 이제서야 답장을 했네. [탄소] 외식은 조금 무리일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냥 집에서 시켜먹던지 해요! 저는 치킨이 먹고 싶은데 정국이는 피자가 먹고싶데요 윤기씨는 부자니까 두 개다 사줄 수 있죠? (동영상) 정국이 오늘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노랜데 윤기씨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시켜봤어요. 혹시 일 하는데 방해한거면 죄송합니다 ㅠㅠㅠ 동영상을 눌러보니 제 아들 정국이가 저를 부르며 웃고 있었다. 그러다 정국이 오늘 배운거 아빠 보여주자!라고 말하는 탄소씨의 말에 꼬물꼬물 율동까지 춰가며 노래를 부르는 정국이에 굳어있던 얼굴에 절로 미소가 걸렸다. 방금 화가나서 욕을 했던 사람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로. 저를 힐끔 쳐다보는 매니저에게 동영상을 재생시켜 매니저 얼굴에 들이댔다. 내 아들이지만 너무 귀여운 것 같아, 진짜. 저 지금 운전중이거든요? 그럼 보내줄테니까 집가서 봐요. 그럴 필요까지야 ... ... 매니저가 무어라 중얼거린 것 같았는데 딱히 궁금하거나 신경쓰이지 않았다. 집에 가는 차 안이 정국이의 노래소리로 가득찼다. 몇 십번이나 동영상을 다시 돌려본 저는 매니저에게 정국이가 피자를 먹고싶어 한다고 집 들어가기 전에 피자랑 치킨 좀 사가고 싶다고 말했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매니저의 뒷통수를 쳐다보다 동영상 속 정국이가 생각나 허파에 바람들어간 사람 마냥 웃었댔다.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귀엽데? 정국이 덕분에 다행이 전보다는 한결 나아진 기분이였다. 어두워진 날 때문에 까매진 창문은 창백할 정도로 하얀 제 얼굴이 비췄다.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보다 이마가 보이게 정갈하게 올린 머리가 다시봐도 어색한 것 같아 이리저리 매만지다 손을 내렸다. "내일은 몇 시에 나와야 돼요? 새벽 스케줄은 없죠." "정국이 유치원 데려다주고 와도 될 것 같아요. 그나저나 오늘은 정국이 집에 혼자 갔대요? 데리러 간다는 말이 없길래." "아, 그게 당분간만은 봐준다는 사람이 있길래 좀 부탁했어요." "잘 됐네요." 매니저의 말에 말 대신 고개를 두어번 끄덕거렸다. 이게 잘 된 일인지는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 라는 뒷말은 삼킨채. 7시 30분이 조금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8시가 넘어 도착할까 마음이 급했었는데. 차에서 내려 매니저에게 잘가라며 인사를 한 뒤, 양 손에 치킨이 담긴 봉지, 피자 박스를 들고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뛸 때 마다 부시럭거리는 봉지소리를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몇 분, 몇 초라도 빨리 집에 가서 정국이가 보고싶었다. 두 손 가득 힘겹게 짐을 들고는 문 앞에 섰다. 문 밖으로 도란도란 새어나오는 사람 소리가 생소했다. 아빠앙-! 문을 열자 저를 향해 도도도 달러오는 토끼같은 제 아들을 보니 절로 웃음이 지어졌다. 저를 반기는 아들과 그 뒤에 서있는 탄소씨. 잘 다녀 왔어요? 라고 물어오는 탄소씨에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국과 같이 현관문 앞에 서서 퇴근한 저를 반겨주는 탄소씨를 보니 정말로 가족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어와서. "조금, 늦었죠. 미안해요, 일이 생겼어서." "안 미안해도 된다니까요. 저녁 먹었어요? 정국이가 아빠랑 같이 밥 먹자고해서 윤기씨 기다리고 있었는데." 탄소씨의 말에 제 다리에 매달려있는 정국이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저와 눈이 마주치자 꺄르륵 웃는 정국이에게 안으로 들어가자 말했다. 쪼르르 탄소씨의 손을 잡고 거실로 걸어가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니 여러 생각이 들어왔다. 미안하고, 고맙고. 매번 들어오는 생각과 감정의 끝은 늘 사랑이였지만. 내일은 제가 어린이집 데려다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편하게 출근하세요. 잠든 정국이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있는 탄소씨에게 말했다. 제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탄소씨는 정국이가 잠든걸 확인하고 나서야 가방을 챙겨서 일어났다. "윤기씨는 좋겠어요. 정국이 같이 말도 잘 듣고, 속도 깊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있어서. 오래 본게 아니여서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 제가 느끼기엔 그래요. 엄마 역할 해줄 맛이 난달까." 저와 눈을 맞추며 개구지게 웃는 탄소씨를 보다 나도 아무 말 없이 씨익 웃었다. 오늘 저녁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끝이 아닌거 알죠? 그럼 쉬세요. 저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서는 탄소씨의 손목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데려다 줄게요." "괜찮아요, 윤기씨 일반인 아니잖아요. 왜 파파라치한테 건수 잡힐 일을 사서 할려그래요. 그리고 엄청 멀리 사는 것도 아닌데요, 뭘." "그래도, 여자 혼자 밤 길은 위험하잖아요." "정 그러면 택시타고 가면 되죠. 감사해요. 그럼 내일 봐요." 요즘은 택시도 위험한데. 이미 현관문을 닫고 가버린 탄소씨는 제가 뭐라 더 말 할 틈도 주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뒤따라 갈까 하고 외투와 차키를 챙기다 칭얼거리는 정국이에 놀라 정국이 옆에 나란히 누워 정국이의 가슴을 토닥였다. 그새 저 멀리 차 낸 이불도 끌어다 덮어주고 이마에 가닥가닥 붙어있는 머리를 쓸어주었다. 선잠이 들었다. 지끈거리는 머리에 눈을 떴다. 그새 잠이 들어버렸네. 살짝 상체를 들어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3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몸이 물 먹은 솜마냥 축축하고 무겁다. 잠꼬대를 하며 제 품을 찾아 손을 뻗어 더듬거리는 정국이를 한 품에 안아 다시 눈을 붙였다. 서툴게 불러나가는 자장가 소리가 방을 울렸다. 아침 밥 준비는 여전히 고역스럽다. 저 혼자 살면 아침밥 정도는 거르고 출근을 하겠지만, 어린 제 아들을 굶길 수는 없으니 귀찮고 솜씨가 없어도 상을 차려야만 했다. 막상 도토리를 까먹는 다람쥐 마냥 입안에 잔뜩 밥을 떠 넣어 오물거리는 정국이를 보면 혼자 끙끙거리며 밥을 차린 것에 대해 보상받는 기분이 든다. 생각했던대로 눈을 뜨자마자 엄마를 찾는 정국이에 아침 운동을 갔다며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쳤다. 전처럼 울며 엄마를 찾을 까봐 내심 걱정했었는데 그렇구나.. 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국이에 놀랐다. 애는 훌쩍훌쩍 큰다더니. 퉁퉁 부은 눈을 양손으로 비비며 제게 걸어와 안기는 정국이의 볼에 뽀뽀를 했다. 이잉- 아빠 치임... ㅡ 여유있게 준비를 끝냈다. 정국이의 손을 잡고 매니저가 오기를 기다렸다. 입구에서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차에 정국이는 방방 뛰면서 매니저 아져씨!를 외쳤다. 혹시 몰라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탄소씨가 어제 잠깐 일러준 파파라치가 혹시나 있을까 싶어서. 차가 멈추기 무섭게 정국이를 안아들어 차에 태웠다. "정국이 안녕." "매니저 아져저씨 안녀엉" 삐죽, 오른쪽으로 잔뜩 뻗친머리를 만져주었다. 나오기전에 물도 묻혀서 빗질도 했었는데 지금 보니 또 붕하니 떠있다. 머리를 만지고 있던 제 손을 작은 두 손으로 꼬옥 겹쳐잡은 정국이는 저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오늘도 엉마가 데리러와?" "에? 엄마라구요?" 정국이의 말에 매니저가 놀란 말투로 제게 물었다. 정국이 입단속을 시킨다는게 깜빡했더니 일이 이렇게 돼버리는구나. 눈미러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매니저의 눈치를 보다 정국이에게 말했다. "응, 엄마가 갈꺼래." "쿠키 엉마야 보고시퍼요..-" 제 소매를 꼬옥 쥔채 엄마를 찾는 정국이의 볼을 약하게 꼬집었다. 엄마가 그렇게 좋아? 응응! 세차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히-하고 웃는 정국이의 머리를 아무 말 없이 쓰다듬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어린이집에 정국이 대신 들고있었던 가방을 챙기며 내릴 준비를 하였다. 차가 멈추고 문을 열어 정국이를 품에 안은채로 차에서 내렸다. 자신의 양 귓볼을 만지작 거리며 장난을 쳐오는 아들의 엉덩이를 두어번 토닥거렸다. 베시시 웃으며 제 볼에 뽀뽀를 하는 정국이가 사랑스러워 죽겠다. 어? 쿠키 엉마다 놀란 듯, 커진 정국이의 목소리에 저도 정국이의 고개가 향하고 있는 쪽으로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정국이의 말대로 저와 정국이에게 웃으며 인사를 해오는 탄소씨가 서 있었다. 엄마한테 가고싶다고, 내려달라며 꿈틀꿈틀 발버둥을 쳐대는 정국이가 버거워 땅에 내려놓으니 그대로 총총총 달려가 탄소씨에게 한 품에 안긴다. "혹시나 걱정돼서 와 봤어요. 근데 정국이, 엄마 없이도 씩씩하네?" "엉마아 - 보고시퍼써" 탄소씨의 목 언저리에 통통한 볼을 부비적 거리며 어리광을 부리는 제 아들의 모습이 귀엽기도, 한편으로는 괜히 안쓰럽기도 하여 다물고 있던 입 안이 쌉스름 해졌다. "고마워요. 정국이 생각해줘서." "저 사실 정국이 보고싶어서 왔어요. 요 귀여운 얼굴 안 보고서 하루를 시작하자니 도저히 기운이 안 나서요." 탄소씨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도 그러니까. 그새 언제 탄소씨 품에서 내려온건지, 양 손에 저와 탄소씨 손을 잡아 어린이집으로 앞장서 걸어가는 정국이에 탄소씨의 표정에서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이 훤히 보였다. 그런 탄소씨를 보며 옅게 미소지으며 작게 탄소씨를 불렀다. 탄소씨, 지금은 엄마잖아요. 정국이가 그토록 원하고 그리고 바래왔던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였다. 정국이에게 잠깐이라도, 이렇게라도 실현해줄 수 있다면야. 아빠는 기꺼이 따라 줄께. - 항상 감사합니다 -♡ 6화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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