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이 엄마가 생겼다구요! 기특한 엄마와 뿌듯한 병아리 - 6 내가 엄마행세를 하고다녀도 괜찮은지 모르겠네. 몸에 탁-. 하고 힘이 풀려버리는 것 같았다. 속이 따끔거리는게 마음 한구석에 바늘밭이라도 자라고 있기라도 하나보다. 어린이집 선생님께 저를 엄마라 씩씩하게도 자랑하는 정국이를 보고 요만큼도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얼굴 근육이 어색하게 굳어갔고 정국이가 모르게 선생님을 보며 고개를 두어번 저었다. 정국이가 신발을 벗고 유치원 놀이방으로 들어 가는걸 보고서야 궁금증이 그득한 얼굴로 저를 쳐다 보고 있는 선생님에게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정국이가 저를 엄마처럼 잘 따라주네요. 하하. 기계적인 웃음소리를 내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제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웃고만 서있던 선생님께 급하게 인사를 드리고 빠르게 유치원에서 멀어졌다. 기분도 마음도 좋지가 않다. 어쩔 수 없는거라고 합리화를 해봐도 그 작은 어린애를 상대로 엄마놀이라니. 저를 엄마라 칭하며 좋아해주는 정국이의 웃는 얼굴을 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후에 윤기씨나 저를 위해서는 이렇게 말을 해두는 것이 맞지 않을까. 입을 모았다, 늘렸다 의미없는 행동을 반복하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이게 잘 한 짓인지, 못 한짓인지 분간도 안된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걷다가 가방안에 웅웅 거리는 휴대폰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찾았다. 도대체 이 작은 가방은 도라에몽 주머니라도 되는건지, 꼭 찾는게 아닌 엄한 물건만 잡혀온다. 이씨. 전화가 오는 것인지 끊기지 않는 진동에 겨우 휴대폰을 찾아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덜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탄소씨, 출근중이예요?] "아 윤기씨예요? 정국이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이제 회사로 걸어가고 있어요." [정국이가 어린이집 안간다고 땡깡은 안 부렸어요?] "정국이 말 잘 들었어요. 착한 새나라의 어린이예요. 최고예요, 최고." [고마워요. 이렇게 또 신세지네.] "고맙다, 미안하다고 좀 하지마세요. 앞으로 이럴 날이 많을텐데 매번 그럴꺼예요?" [그래도 고마운걸 어떡해요. 앞으로 노력은 해볼께요. 일 잘 하고 와요.] "네에, 끊을게요." 윤기씨와 전화통화 도중 저 멀리서 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남준선배에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허둥지둥 휴대폰을 가방에 다시 넣고 어색하게 웃으며 제가 하는 모양을 그대로 쳐다 보고있던 남준선배에게 인사를 건냈다. "뭐야, 왜 몸이 그렇게 뻣뻣하게 굳어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녜요." "김후배 민윤기씨랑 뭐 있어요? 어제 윤기씨가 회사로 전화까지해서 김후배 전화번호 물어봤다던데." "아, 안그래도 어제 윤기씨한테 연락 받았어요. 아무리 그래도 선배도 참. 윤기씨같은 슈스랑 일개 기자인 저랑 뭐가 있다고." "왜? 김후배면 슈스라도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에이 왜 그래요, 놀리지 마세요. 진짜 그런거 아니니까 말이라도 그러지 마세요." 칼 같은 대꾸에 남준선배는 머쓱해진건지 뒷머리를 살살 긁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기분이 상했냐며 커피라도 사줄까? 라고 물어오는 남준선배에게 고개를 설레설레 저어 보이고는 마침 멈춰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무슨 그런거 가지고 기분이 상하겠어요. 나를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오른 남준선배를 물끄러미 쳐다 보다 엘리베이터 벽에 몸을 기대 고개를 숙였다. 아, 벌써부터 피곤해 죽겠다. 정국이를 조금이라도 빨리 데려가기 위해 차장님께 퇴근시간 조정을 부탁드렸다. 기사 집필은 집에서 차차 하면 된다고 빌다 싶이 말하는 저를 탐탁치 않게 내려다보는 차장님에 입이 바싹바싹 말라 들어갔다. 당분간만 이라는 조건에 차장님은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탄소씨, 일 잘해서 허락해주는거야. 우여곡절 끝에 퇴근시간이 2시간 정도 앞 당겨졌다. 너무 저 혼자 앞서 나가나 싶다가도 저를 찾는 정국이를 생각하면 그저 제 행동이 기특한게, 웃음만 나온다. 짧은 시간이라도 엄마에 대한 상처와 트라우마를 더 이상 만들어 주고 싶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책상 앞에 앉아서 타이핑을 하다가도 드문 드문 들어오는 정국이 생각에 바보같이 피식거렸다. 옆에서 계속 흥흥거리며 코웃음을 내는 제가 거슬렸는지 방선배는 애잔한 눈빛으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후배, 오늘 나사 나간 사람처럼 왜 그래? 꼴 보기 싫은 선배의 태클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컴푸터 모니터에 콕, 시선을 두었다. 제 말을 들은 척도 안하는 제 옆에 한참을 서 있었던 선배는 자리로 돌아가 손톱을 깎기 시작했다. 에휴, 저 아저씨는 언제즈음 집과 회사를 구분할까. 혀를 차며 틱ㅡ하고 제 책상 위로 날라온 손톱을 이제는 익숙하게 손으로 집어 방선배 쪽으로 던졌다. 시간도 보고 몇 백개씩이나 밀린 카톡들을 확인 할 겸 켠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의외의 사람의 이름이 떠있었다. [연예인 민윤기] 오늘 정국이 탄소씨가 데리고 올꺼예요? 이제 탄소씨 우리집 어딘지 알죠. 비밀번호는 정국이 생일 0901 추운데 나 올때까지 문 앞에서 기다릴까봐 노파심에 연락했어요. 뭐 먹고싶은건 없어요? 일하고 있는 사이에 참 많이도 보냈네. 윤기씨한테서 줄줄이 온 카톡을 보며 뭐라고 답장할지 한참을 고민하다 그냥 휴대폰을 껐다. 나중에 생각나면 답장해야지. 그나저나 집 비밀번호까지 알려주는걸 보니 오늘도 늦으려나. 하긴 벌 수 있을 때 많이 벌어놓아야지. 지금이 민윤기씨 몸 값이 최고로 높다며 침을 튀기며 말해주던 김태형의 얼굴이 생각났다. 정국이는 아빠가 부자라서 좋겠다. 별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다 약간 몽롱해지는 머리에 커피나 마셔볼까 라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 쪽으로 걸어가자 반짝거리는 여러 쌍의 눈들이 느껴졌다. 커, 커피 드실 분ㅡ? 6시가 조금 넘어서야 가방을 챙겨 슬금슬금 사무실을 나왔다. 어린이집에서 저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정국이 때문인지, 아님 정국이가 보고싶어서인지 그리 늦은 것이 아닌데도 마음이 급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쌀쌀한 밤 공기가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얼마나 지나야, 밤도 따듯한 봄이 될려나. 코를 찡긋이며 열심히 길을 걸었다. 걷고 걸어 도착한 어린이집 문을 열자 신발장 옆에 쭈구려 앉은 채로 해벌레 웃으며 저를 반기는 정국이에 입이 떡- 벌어지게 놀랐다. 저가 올 때까지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던거야?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지 왜 문 앞까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아직 추운데." "요기서 기다리며언...- 엉마 더 빨리 볼 수 있짜나" "아 정국이 데리러 오셨구나, 정국이가 엄마 기다린다고 기어코 문 앞에 있을꺼라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정국이 왜 선생님 말 안들었어. 찬데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 "그래두 ..." "다음번에도 여기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으면 엄마 울꺼야." 울어버린다는 제 말에 잔뜩 눈을 키워 놀라는 모습이 꼭 만화 캐릭터 속, 아기 토끼 같았다. 엄마는 울지말라며 되려 울먹거리는 정국이를 보며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애는 애구나. 앉아있는 정국이를 향해 두 팔을 뻗자 울상을 한 채로 아장아장 걸어와 품안에 들어와 안겼다. 코를 훌쩍이는 정국이의 머리를 손으로 매만졌다. 다음부터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야 돼, 엄마랑 약속. 우웅, 약소옥. 선생님께 인사까지 하고 나서야 어린이집을 나왔다. 제 손을 잡고 유치원에서 배운 노래를 부르는 정국이를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진짜, 아유 이뻐죽겠다. 박수를 쳐주니 더 신나서 율동까지 추는 정국이였다. 나중에 아빠 앞에서도 한번 해줘야 돼, 이 귀여운 재롱을 혼자보기가 너무 아깝다. 엄마도 나 키울 때 이런 마음이셨을까, 그저 정국이를 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딴 생각을 하는 중이였다. 언제 저 만큼 걸어 간건지 저보다 한참 앞서 깡총깡총 뛰어가는 정국이를 따라잡아 팔랑거리는 손을 힘주어 잡았다. 그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어쩔려고 그래. 이제 부터는 안 뛰께. 손을 잡아오는 저를 올려다보던 정국이는 해사하게 웃으며 이제부터 안 뛴다고 약속했다. 맞잡은 손에 나비가 앉기라도 한 듯 간질거렸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자기가 버튼을 누를꺼라며 까치발을 들고 바둥거리던 정국이를 안아 버튼 앞에 가져다 대주었다.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혀서야 만족스럽게 웃는 정국이를 보다 나도 따라 웃어버렸다. 집 앞에 도착해 윤기씨가 알려준대로 비밀번호를 눌렀다. 문을 열기 무섭게 열린 틈으로 쪼르르 먼저 들어가 신발을 벗고 소파로 달려가 눕는 정국이였다. 앙증맞게 소파로 도도도 달려가는 정국이의 뒷모습을 보고 서있다 뒤늦게 신발은 벗고 정국이 누워있는 옆에 살포시 앉았다. 가방을 맨 채로 누워있는 정국이의 가방을 잡아 약하게 흔들며 말했다. "정국아, 어린이집 가방은 좀 내려놓고 오자." "아, 맞다. 쿠키 엉마한테 줄거 이써" 매고있던 가방을 내려놓는 정국이는 지퍼를 열어 가방 속에서 냅킨으로 쌓여진 토마토를 제게 건내었다. 이거, 엉마 주고싶어서 챙겨와써. 근데 하나 뿌서졌다. 빵실하게 웃는 얼굴이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정국이가 가방을 맨 채로 누워버린 탓인지 냅킨 안에서 터져버린 토마토를 보니 그게 뭐라고, 그것마저 귀엽고 고맙다. 작은 두 손을 모아서 제게 건내는 토마토에 눈을 떼지 못 하겠다. "고마워, 정국아. 진짜 고마워." "웅, 쿠키도 고마워요" 맑게 웃으며 제게 안겨 볼을 들이대는 정국이에 뽀뽀를 해주었다. 내가 네 생각을 할 때, 너도 내 생각을 했구나. 정말 이 이쁜걸 어떡하지. 품에 안겨 제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고 있는 정국이의 토실한 엉덩이를 두어번 토닥거렸다. 동네 사람 여러분들, 제 아들램이 이렇게 기특해요! 번외 ) 병아리와 토마토 "오늘 간식은 동글동글 귀여운 방울 토마토에요! 우리 친구들 선생님 앞으로 한 줄로 예쁘게 서서 토마토 받아가세요-"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선생님 앞에는 방울토마토가 수북하게 쌓인 큰 바구니가 놓여있었다. 우웩-, 어마무시한 토마토 무더기를 본 정국이의 얼굴이 점점 시무룩하게 굳어갔다. 다른 친구들이 쫄래쫄래 선생님 앞으로 줄을 서는 동안에도 그 자리에 굳어서는 움직일 생각이 없어보이는 정국이에게 같은 반 친구 호석이가 눈을 동그랗게 하고서는 정국이에게 물었다. "정국아, 너는 왜 줄 안서?" "우웅... 쿠키는 토마토 시른데 ...-" "그래도 받아야 대! 빨리가서 줄 스자~" 울상이 돼가는 정국이의 표정을 못 본 것인지, 기어코 정국이의 손을 잡아 끌어 같이 줄을 선 호석이였다. 진짜 먹기시러.. 토마토 시른데 ...- 혼자서 끙끙거리는 정국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북히 토마토를 담아주는 선생님이였다. 일회용 접시에 담긴 빠알간 토마토가 먹기 싫어 눈물이 찔끔 날 뻔 했다. 다른 친구들이 쩝쩝 거리며 토마토를 먹던지 말던지, 한참을 입을 꾹 다물고 앉아있던 정국이의 머릿속에 생각난 저의 예쁜이 엄마. 엉마를 갔다주까? - 항상 감사합니다 - ♡ 5화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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