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독스에요
너무 늦은 등장이 반가운 사람도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저는 제 독자여러분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네요
제 현실의 생활 속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어서 쉽사리 돌아오지 못했어요
마음 추스리고, 글 정비하고 이렇게라도 돌아온 절
따뜻한 손길로 반가운척이라도 반겨주셨으면 좋겠어요(비굴)
뇌물 아닌 뇌물이랄까,
로비 아닌 로비랄까.
오늘 들고온 럽랔슈는 역대급을 빵빵한 분량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거에요.
럽락슈는 13화를 끝으로 고딩 생활을 청산 할겁니다.
그리고 14화부터 청량한 대학 캠퍼스 생활을 시작 할거에요.
읽으시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미리 언지를 드리는 거니까 참고 해주셨음 해요
이젠 너무 늦지 않게 올게요
가끔 그리워서 인스티즈 접속해 우리 독자님들 댓글 읽고 힘얻고 나갔네요
사랑해요
너무 뜬금없지만 듣기엔 좋은 말이죠
너무 사랑하고 감사해요
이젠 한달 넘기지 않고 올게요(울먹)
고마워요
좋아해요
사랑해요
또 만나요
내사랑들
...
..
.
무언가에 ‘미쳤다’는 표현은 과연 옳은 표현일까?
혼자 있는 시간, 공상을 할 때면 나는 종종 별 필요 없는 생각들을 하곤 했는데 위의 문장이 이를 대표할 수 있는 예였다. 먼 허공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여 가면서 내 생각에 대한 근거들을 대어보고 해도 되는 이유와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합리화 시켰다. 다음도 그와 같은 예이다. 일단 사람에게 미쳤다는 표현을 써도 되는 지에 대한 도덕적 판단과, 사람이 과연 한 가지에 미칠 수 있는 지에 대한 논리적 이성이 미쳤다는 표현을 쓰게 하는데 방해를 했다. 그래서 나는 늘 정호석이 말하는 ‘운동에 미친 박지민’ 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했었고, 분명 박지민도 운동이 아닌 그만큼이나 다른 좋아하는 게 존재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한 가지에 미쳐 다른 것들을 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약한 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 해봐.”
“아, 아까 했잖아아.”
“아니 그래도 또 해봐.”
“못, 못하겠어.”
그런데 그런 나의 확고했던 생각이 근래에 들어서 뿌리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거둬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는데, 원인은 민윤기 때문이었다. 요즘 민윤기는 나를 자주 곤경에 처하게 하고는 했다. 난감해 하는 내 얼굴을 보면서는 뭐가 그렇게나 좋은지 세상 제일 신이난 사람처럼 웃어 젖혀서 나도 그 얼굴을 보면 마냥 따라 웃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말 나를 골리는 데에 미친 사람처럼 집착을 했는데, 나는 도무지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는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놀리기에 미친 것 같은 민윤기가 싫지 않다는 거였다.
“아까 잘 했잖아. 한번만 더 해봐. 어?”
“아까 해줬으니까 안 할래…….”
“아, 왜애.”
“부, 부끄럽다니까.”
“왜, 귀여운데.”
“……뭐래 정말.”
그중 나를 가장 난감하게 하는 건 듣기만 해도 간지러운 소리들을 자꾸 시켜대는 거였는데, 아무리 안한다고 내빼도 민윤기는 원하는 소리를 기어이 내게서 들어내고야 말겠다는 사람처럼, 농구를 할 때의 그 집념으로 나를 졸라댔다. 지금처럼.
“어? 다시 해봐. 자기야― 이렇게 해봐.”
“자, 자…….”
“그렇지!”
“아, 못하겠어.”
자꾸 나에게 ‘자기야’, ‘여보야’ 등 간지러운 애칭을 부르게 시켰는데, 사람 미치겠는 게 나는 그 말을 절대로 못하겠다는 거였다. 등에서부터 소름이 오소소 돋으며 목뒤로 지나와 양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으으, 소름끼쳐. 난 못해, 난 못해. 몇 번이나 백기를 들어도 민윤기는 못 본체 했다.
“아니 진짜 목에 가시가 돋친 것처럼 막 따끔거리고 몸이 꼬이고 그렇다니까? 윤기야, 나 진짜 못하겠어.”
“원래 사귀는 사이면 이렇게 부르잖아.”
“아니, 그래도. 너무 부끄럽고, 마음이 막 간지럽고.”
“마음이 간지럽다고? 마음이 어떻게 간지러운데?”
“그게, 그러니까. 막 여기가 이상하면서 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으하하, 진짜 김탄소 미치겠다. 귀여워서 미치겠어.”
민윤기는 또 귀엽다며 내 머리통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 ‘미치겠어, 너 때문에 미치겠어.’ 그리고 내 머리가 웅웅 울리도록 그 말을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니 뭔가에 미치는 일이 마냥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은 게, 민윤기가 나에게 미쳐 이토록 나를 사랑스러워 해줄 일이라면 열 번 정도는 더 미쳐줬으면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벗겨지기나 할는지 모를 콩깍지를 쓰고 헤픈 미소로 웃어주는 나를 보니, 나 또한 민윤기에게 미친 것 같은 일이기도 했고. 서로에게 미치고 미쳐 이렇게도 좋아 죽을 일이니 내가 미칠 노릇이고, 민윤기도 나한테 미쳤고, 그럼 우리는 같이 미쳤고. 미치도록 좋고, 좋아서 미치겠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진짜 미치겠고.
……미치다 못해 정신이 나갔나. 나 참, 미치겠네.
Love Like Sugar
W. 독스
11
민윤기는 흔히 들었던 보통의 남자 친구처럼 ‘처음’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맞이한 방학의 첫 날은 꼭 자기와 보내야한다는 철통 고집을 부리던 민윤기는 우리의 첫 여행 계획을 세웠다. 내가 외박이 되지 않는 관계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한 여행은 내가 그 토록이나 가보고 싶어 했던 기차여행이었다.
코드가 맞아 단번에 정한 여행 코스가 마음에 들었다. 산 보다는 시원한 바다나 청량한 계곡을 더 좋아한다는 내 말에 민윤기는 어쩜 좋아하는 것 마저 닮았느냐며 내 볼을 만지작거렸었다. ‘우리 아마 천생연분일까.’ 나지막하게 내게 말하며 수줍은 듯 웃어버리던 민윤기의 모습에 나 또한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었다. 몰랐었는데, 민윤기는 의외로 간지러운 소리들을 잘 했다.
다가온 우리의 여행 날. 나는 오늘 새벽, 설렘으로 가득 차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었다. 달력에 또 하나 그려질 동그라미와 가슴에 남을 추억이 벌써 반가워서 밤새 이리저리 들썩였다.
“어제 집안을 다 뒤집어서야 겨우 카메라 찾았다니까.”
“그렇게 힘들게 찾았으면 찾지 말고 그냥 오지. 핸드폰 카메라 있잖아.”
“에이, 그래도 너 이렇게 예쁘게 하고 나왔는데 사진도 예쁘게 남겨야지.”
민윤기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에 꺼내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전부 잊어버렸다며 아랫입술을 꼭 깨문 진지한 얼굴로 카메라를 구석구석 훑어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민윤기를 빤히 보는 것만으로 벌써부터 우리의 여행이 즐거울 거라는 걸 짐작했다. 날도 좋고, 바람도 괜찮게 불어와 우리의 데이트를 도와주는 것 같은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조금 황량한 듯 한 벌판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기분 탓일까― 생각에 잠기려다가 또 한 번 민윤기가 내게 속삭이던 말이 떠올라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나를 보자마자 민윤기가 내게 했던 말은 ‘예쁘게 하고 나왔네.’ 였다. 첫 여행에 조금이라도 더 예쁘게 보이고 싶어 이른 아침부터 서둘렀던 나를 알아주는 것처럼 밝은 미소로 말했다. 내숭을 부리며 평소랑 똑같이 나왔는데― 라고 말끝을 흐렸더니, 민윤기는 그냥 속아주겠다는 사람의 눈으로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문을 열며 손을 내밀었다. ‘알아, 평소처럼 예쁘단 뜻이었어.’ 그리고 꿈에나 나올 법한 로맨틱한 대사와 함께 내 손을 끌어와 잡았었다.
기차를 기다리며 내 머리칼을 만지던 민윤기는 사람들이 우리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나를 제 쪽으로 끌어 당겼다. 민윤기의 품에 안긴 듯 되어버린 것도 나쁘지가 않았다. 우린 누가 봐도 연인의 모습이었고, 여자 친구를 보호하려는 남자 친구의 모습임이 분명할거란 생각이 들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보호 받는 기분은 늘 좋았다. 그게 더더욱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느낀 기분이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차에 올라타 기대 가득한 발걸음으로 같이 예매한 티켓을 확인하며 자리를 찾아 앉는 순간까지도 웃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나란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두 자리. 그 두 자리는 나와 민윤기의 자리였다. 그 누구도 앉을 수 없는 우리의 자리.
“기차로 두 시간 정도 걸린대.”
“먹을 것 좀 들고 탈걸. 가는 동안 심심할 텐데.”
“글쎄, 너랑 있어서 안 심심 할 것 같은데.”
또 한 번 민윤기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나란히 앉은 기차 안이 온통 내 심장 소리로 가득 찰 것만 같아서 애써 시선을 회피했다. ‘나 좀 봐봐. 예쁜 얼굴 좀 보여줘.’ 내 속을 알고서도 그러는 사람마냥, 민윤기는 개구진 얼굴을 하고서 내 옆구리를 찔러댔다. 움찔 거리며 몸을 떠는 내가 웃긴지 작게 웃다가 큰 손으로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는 민윤기는 어김없이 나를 사랑해 마지않는다는 눈이었다. 검고 깊은 눈동자 안에 내가 들어있었다. 민윤기는 으레 짓는 그 미소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다갈색 눈동자 안에도 너 하나만 있어, 윤기야. 텔레파시를 보내 듯, 머릿속으로 하고 싶은 말을 떠올렸다. 그러자 민윤기가 꼭 내 마음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 사람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내 손등위로 포개었다. 그리 덥지 않은 기차 안임에도 뜨거울 만큼 달아오른 내 뺨과, 또 그것을 꼭 닮은 민윤기의 미소가 첫 여행의 시작을 알렸다. 그 시작이 꽤 마음에 들어 나도 슬며시 입 꼬리를 끌어 올렸다.
“아마 기차에서 내리면 덥겠지.”
“큰일 났다. 나 더위 많이 타는데.”
“내가 손 부채질 해줄게.”
“너 그 조그만 손으로 부채질 하면 바람이 일긴 해?”
“그럼, 손 작아도 할 건 다 해.”
민윤기는 내 손을 펼쳐 그 위로 제 큰 손을 겹쳐 얹었다. 거의 두 마디쯤 차이나는 손가락 길이에 민윤기는 ‘귀여워.’ 라며 중얼거리고 배시시 웃었다. 그에게 귀여움을 받는 일이 좋았다. 그다지 사랑스럽지 않은 내게 늘 사랑스럽다 말해주는 민윤기가 좋았다.
하품이 쩍 하고 나오려기에 서둘러 입을 가렸다. 내 하품소리를 들은 민윤기는 손에 머물러있던 시선을 올려 나와 눈을 맞추었다. ‘졸려?’ 입 모양으로 묻기에 고개를 모로 저었더니 민윤기는 ‘에이, 졸린 것 같은데?’ 라며 내 볼을 톡톡 두드렸다. 사실 졸음이 몰려오고 있긴 했다.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다 기차를 타야하는 탓에 일찍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했던 게 피곤으로 쌓인 건지, 아니면 남자친구와 하는 첫 여행에 잔뜩 긴장했던 게 민윤기 앞에서 어느 정도 풀렸는지 자꾸만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있었다. 눈을 비비고 깜빡이기를 몇 번, 나를 빤히 보던 민윤기는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앉더니 내 머리를 끌어가 제 어깨에 기대게 했다.
“졸리면 참지 말고 기대서 좀 자도 돼. 도착하면 내가 깨울게.”
자상한 목소리였다. 나를 걱정하는 듯 한 말투와 목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줬다.
“너랑 이야기 하면서 가고 싶은데.”
“물론 나도 너랑 놀고 싶은데, 네가 피곤한 게 더 싫어.”
“나 잠들면 너 심심하잖아.”
“괜찮아. 너 자는 거 구경하면 돼.”
그 말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들면 못생겨 질지도 몰라.’ 작게 말했더니 민윤기는 피식 웃으며 ‘못생겨봐야 얼마나 못생겼겠어.’ 라며 내 손을 다시금 잡아왔다. 기분이 좋았다. 천천히 눈꺼풀을 밀어 올리고 흐릿한 초점을 맞췄다. 영영 이 손을 놓지 않을 거라던 민윤기의 목소리가 어렴풋하게 떠오르면서 단정하게 정돈된 손톱과 건강한 분홍빛을 띄우고 있는 손끝이 눈에 들어왔다. 기분이 좋아져서인지 아니면 밀려드는 잠에 취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입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난 너랑 손잡는 게 참 좋아.”
민윤기가 나를 내려다보려 고개를 트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제 어깨에 기댄 내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을 걸 알았다. 긴장이 풀려서 슬며시 미소가 새어나왔다. 그러자 내 광대도 힘 있게 밀려 올라갔다. 내 이마나 코끝만 보고 있을 민윤기가 눈에 훤해서 윤기야― 하고 괜히 이름을 불렀다. ‘어.’ 다정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어깨에 기댄 머리 안에서 그 다정함이 윙윙 울렸다.
“그냥, 그냥 불러봤어.”
“뭐야.”
“불러 보고 싶어서.”
“그래, 마음껏 불러. 한 번도 놓치지 않고 대답 해줄게.”
“윤기야.”
“응, 탄소야.”
“히히, 기분 좋다.”
내가 이렇게 윤기의 이름을 마음 놓고 부르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또 이렇게 윤기가 나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사람 일은 모르는 일이라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맞아, 엄마. 나는 윤기가 내 남자친구가 될 거라고 상상만 했었어. 간절히 바라고 원했더니 이루어진 내 상상이 꿈처럼 깨어버리진 않을까― 불안이 없는 건 아니지만, 꿈에서도 즐거우면 웃잖아. 그러니까 엄마,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게 나쁜 건 아니겠지.
“자?”
내가 생각에 잠겨 아무 말이 없어지자 민윤기는 괜히 나를 불러봤다. 일부러 대꾸하지 않았다. 잘 때처럼 고른 숨을 내뱉으며 내가 옆에 있음을 알렸다. 민윤기는 잡고 있는 내 손을 좀 더 힘 있게 잡았다. 따뜻하게 전해지는 민윤기의 체온도 내 옆에 그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옆에 있음을 확인하고 감사해 하는 일의 연속. 그게 바로 민윤기와 내가 하는 연애의 방법이었다.
*
도착한 바닷가는 우리처럼 놀러온 몇몇의 커플들 말고는 사람이 없는 한산한 해수욕장이었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만 가면 두통이 오는 나를 배려해 민윤기가 찾아낸 최적의 장소였다. 함께 손을 잡고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사진 몇 장을 찍었다. 민윤기는 손에 들린 카메라로 쉴 새 없이 내 사진을 찍어대다가 가끔 내가 함께 사진을 찍자며 핸드폰을 들어 올릴 때마다 옆으로 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남겨진 우리의 커플 사진. 핸드폰 화면을 이리저리 밀어보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지정했다.
“벌써 배경화면 바꿨네.”
“응. 나 왠지 못생기게 나온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사진이 너무 행복해보여서 마음에 들어.”
“너도 예쁘게 나왔어.”
‘이 사진 보내줘. 나도 배경화면 바꿀래.’ 민윤기도 나처럼 기분이 좋아보였다. 평소보다 조금 들뜬 민윤기는 여태 찍은 내 사진들을 확인하면서 몇몇의 잘 나온 사진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평소 사진에 관심이 있는 건지, 찍힌 사진들은 모델이 나라는 점을 빼면 정말 우수했다. 너 사진 잘 찍는다― 하는 내 물음엔 멋쩍게 웃으며 ‘모델이 예뻐서 잘 나온 거야.’ 라며 겸손을 떨었다. 그러다 저를 바라보고 선 내 눈빛을 못 이겨내고는 옆으로 와 나를 끌어 안아버렸다. 나를 품으로 와락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자꾸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아무리 나래도 그렇게 빤히 보면 부끄럽다고.”
나도 이제 제법 사랑을 받는 일에 익숙해진 건지도 몰랐다. 민윤기가 나를 이렇게 끌어안아 버릴 때에 아마 예전 같았으면 목석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었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민윤기의 허리에 둘러지는 내 팔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민윤기는 그럼 나를 더 세게 안았지만, 나도 결코 물러나는 일이 없었다. 민윤기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풍겨나는 기분 좋은 향을 맡으면 맡았지, 전처럼 바보 같이 멀뚱히 서 있지는 않는다는 말이었다.
민윤기는 전보다 표현이 많아진 내가 더 좋아졌다고 했다. 조금의 순수함을 잃은 대신에 천만금의 사랑스러움을 얻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난 순수함도 잃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민윤기는 원래 연애를 하다보면 순수함을 잃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뭔가 이상했지만, 왠지 모르게 민윤기에게 설득을 당해버리고는 이젠 원래 그런 거구나 납득을 해버렸다. 조금씩 닮아가는 구석도 생겨나고 있었다. 내 습관을 따라하는 민윤기나, 민윤기의 습관을 닮아가는 나를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나도 여기 점 생겼다.”
민윤기는 내 앞으로 팔뚝을 보여주며 말했다. 들여다본 민윤기의 팔꿈치 부근에 나와 똑같은 점이 작게 생겨나고 있었다.
“어? 원래 없었어?”
“응, 원래 없던 건데 오늘 아침에 샤워하다 발견했어. 너도 팔꿈치에 점 있잖아.”
“나 여기 오른쪽 팔꿈치에.”
“나도 오른쪽.”
신기하다는 듯이 보고 있는 나를 빤히 보면 민윤기가 피식 웃었다. 웃음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리니 나를 잔잔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는 민윤기의 얼굴이 보였다. 왜 웃어― 물었다. 민윤기는 고개를 슬쩍 젓다가 또 다시 나를 보고 웃었다.
“살짝 무서워졌어.”
“뭐가?”
“이렇게 하나하나 닮아가다가 나중에 전부 닮아 버리면 어떡해.”
“뭐가 어떡해? 닮으면 좋은 거 아냐?”
“아냐, 닮아야 될 부분만 닮아야 좋은 거지.”
“나는 네 전부가 좋으니까 네 전부를 닮아도 좋을 거 같은데.”
“진짜 바보 아냐? 물론 네 앞에서는 내가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으니까, 너는 내 전부가 좋을 수밖에 없는 거고.”
민윤기는 지레 겁먹은 듯 한 얼굴로 진지한 목소리를 냈다. 뭐가 걱정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나는 고개를 갸웃 틀었고, 민윤기는 조금 더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내 머리를 털어내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했다. 영문도 모르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민윤기가 내게 말하지 않은 뭔가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일까 몰라서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민윤기에게 능청스럽게 사진을 찍자고 했다. 카메라 어플을 실행시키는 나를 알 수 없는 얼굴로 보고 있던 민윤기는 그만 픽 웃어버리고는 그러마고 내 얼굴 옆으로 제 얼굴을 들이밀었다. 생각해보니 전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나의 분위기 전환에 민윤기의 말마따나 내가 조금의 순수함을 잃었다는 걸 깨닫게 했다. ‘연애도 눈치가 좋아야 하는 거야.’ 여자 애들이 하던 말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서로의 기분을 먼저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최대한으로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게 눈치를 보는 것. 그 또한 연애의 일부분임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걷다가 맛있는 거 나오면 사먹자. 좀 배고픈 것 같아.”
“그래, 그러자.”
사진을 마저 저장하고 주머니로 핸드폰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먼저 손을 잡았다. 민윤기는 살짝 놀란 얼굴이었지만, 이내 이에도 적응해야 한다는 듯 내 손을 마주 잡으며 한 발 먼저 걸음을 떼었다. 민윤기의 조금 뒤에서 따라 걷기 시작한 나는 넓은 그의 등을 바라보며 보폭을 조금 더 크게 했다. 민윤기의 뒤가 아닌 옆에서 걷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너 걸음이 너무 큰 것 같아.”
“그래?”
“응. 내 다리가 짧은 건지 몰라도, 같이 걸으려면 힘들어.”
“알았어. 좀 천천히 걸어줄게.”
“고마워.”
함께 걷는 것과 연애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보폭을 확인하고 내 보폭을 맞추는 것. 그리고 나란히 마주한 어깨의 높낮이를 같게 하는 것. 결국 서로의 걸음걸이마저 닮아버리고 마는 것. 연애는 어쩜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처럼 아장아장, 민윤기의 걸음을 닮아가려 애를 쓰고 있었다.
*
[애들이랑 잡은 약속 취소하지 마. 어젠 내가 미안했어.]
문자를 확인하며 걷는 길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어떤 답장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입술을 뚱 내밀고 핸드폰을 가방 안으로 넣어 버렸다. 나는 지금 나름대로 심통이 난 상태였다. 귀엽게 말하자면, 그래. 나는 지금 민윤기한테 삐진 상태였다.
사귄지 겨우 한 달 남짓 지났는데, 우리에겐 영영 없을 줄만 알았던 다툼이 어제 저녁 발발하고 말았다. 원인은 흔한 커플들이 싸우는 이유와 같게 사소한 것 때문이었는데 우리 둘 중 누구도 양보를 하지 않아서 일어난 다툼이었다. 시작은 내가 박지민, 정호석과 함께 약속을 잡은 것 때문이었는데, 내가 보기엔 그냥 민윤기가 그 놈들을 질투 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통화 상으로 민윤기는 차분하지만 단단한 말투로 그 약속에 나가지 말았으면 한다고 했었다. 이유를 물으니 이유 같은 건 딱히 없다는 말에 핀이 어긋나 내가 기분이 상해버린 거였다. 그래도 내가 아무 말 하지 않고 넘어갔었다면 이렇게까지 소란스럽진 않았을 테지만, 당시에 내가 욱 해서 홧김에 아무 말이나 해버린 게 화근이었다.
‘너무 해. 너도 친구들 다 만나면서 나는 만나면 안 돼? 어쩌면 너보다 나랑 더 친한 애들일 수도 있는데, 나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
“아, 바보 멍청이. 그래도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윤기 기분 나빴겠지? 진짜, 미쳤어. 연애 안 해 본 거 티내나봐.”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자친구한테 ‘어쩌면 너보다 더 친한 애들’이라고 말을 해버리다니. 연애를 안 해봐도 한참 안 해본 거였다. 잠깐 침묵을 유지하다 알았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던 민윤기의 숨소리가 아직 생생했다. 밤새 얼마나 속을 끓였을까. 먼저 미안하다는 연락을 못한 소심한 내 성격도 못내 한심했다. 바보 같아, 정말. 한심한 나를 탓하는 말이 끊임없이 외워졌다.
핸드폰을 꾹 쥐고 신발 코로 땅을 걷어찼다. 민윤기와 다투기까지 해서 나온 약속인데 짜증나게 정호석과 박지민은 지각을 하고 있었다. 약속 시간을 10분 넘긴 시계는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열심히 째깍대며 미래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심심한 얼굴로 시계를 보다 고개를 들어 올리자, 멀리서부터 열심히 뜀박질로 오고 있는 박지민과 정호석이 눈에 들어왔다.
“야, 너희 진짜 죽을래?”
냅다 소리부터 질렀다. 정호석은 박지민의 등짝을 때리며 이럴 줄 알았다며 호통을 쳤다. 맞은 등을 어루만지던 박지민은 멋쩍은 얼굴로 남은 거리를 삐죽삐죽 걸어왔다. 금방 내 옆으로 달려와 박지민을 노려보고 선 정호석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왜 늦었어!”
“박지민이 고집 부려서 늦었지, 뭐.”
“무슨 고집?”
“과자 같은 거 그냥 만나서 사도된다니까 기어이 중간에 마트 들러서 과자를 사야 된다잖아.”
“지금 과자 때문에 늦었다고?”
얼토당토않은 이유에 정호석에게 두었던 시선을 박지민 쪽으로 돌렸다. 매서운 내 눈짓에 움찔 하던 박지민은 등 뒤로 숨기고 있던 비닐봉투를 내 앞으로 내밀며 흔들었다. 그 봉지와 박지민의 얼굴을 번갈아 노려보는 내게 크흠 목을 가다듬던 박지민이 천천히 이유를 설명했다.
“아니, 너 허니버터칩 좋아하잖아. 어제 집에 가다 들렀는데 그 마트에 있길래.”
이유가 핑계 같지는 않아 보였다. 정말 내게 허니버터칩을 사다주고 싶어서 그랬다는 얼굴. 그 순수해 보이는 얼굴에 나는 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입을 앙 다물고 노려보다 깊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신같이 박지민은 무슨 일 있느냐며 먼저 물어왔다. 이러니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었다. 박지민은 내 얼굴만 봐도 기분을 깨알 같이 알아차렸다.
“아니, 아무 일도 없어.”
“무슨 일이 있는 얼굴로 아무 일도 없다고 하면 아무도 믿을 사람 없어.”
“얼, 박지민. 라임 쩔었다.”
내 얼굴을 힐끔대던 정호석도 괜히 분위기를 풀어보려 박지민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정호석 때문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고, 조금 딱딱했던 내 얼굴이 누그러듦을 확인한 정호석도 무슨 일이냐고 물어왔다.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정호석은 나와 윤기가 사귀는 사실을 알지 못하니, 시원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머리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가기로 했던 놀이동산에 빨리 가자고 조르는 내 성화를 못 이기고 정호석과 박지민은 몸을 돌렸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내내 내 눈치를 봐대는 박지민 때문에 옆얼굴이 화끈 거릴 지경이었다. 눈치 보지 말라고 팔을 툭 쳤더니 내 어깨로 팔을 걸친 박지민이 빙그레 웃었다. ‘정호석이 자유이용권 싸게 끊을 수 있대. 짱이지.’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같은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학년들 수능 백일인가 남았다더라. 시간 진짜 빠르지 않냐.”
“그러니까. 엊그제 이백일이라고 친한 형들한테 뭐 사다준 거 같은데.”
“내말이. 그때 누나가 초콜릿 사주라고 그래서 돈을 얼마나 썼는지. 양심은 있는지 이번엔 사달라는 소리 안하더라.”
정호석을 시작으로 수능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도 머지않아 곧 수험생이 될 몸이었다. 고삼 올라가기 전에 미친 듯이 놀아놓자는 정호석의 말은 누가 들으면 밥 먹으러 학교 다니는 사람 같았지만, 정작 정호석은 내신등급도 모의고사 등급도 빵빵한 엘리트였다. 불태울 듯 한 기세로 놀 거라 말하는 정호석을 보는 내 속은 좀 심란했다. 이제 슬슬 진학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되었긴 했다. 박지민도 마찬가지인지 작게 한숨을 몰아쉬었고 그 사이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차례로 들어가 나란히 앉은 우리 셋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대학 어디가지.”
“우리 벌써 그런 생각 하지 말자.”
“벌써 라니, 어떤 애들은 지금부터 수시 준비 하던데.”
“걔네가 빠른 거지, 결코 우리가 늦은 게 아닐 거야.”
“정호석, 너 말은 그러면서 벌써 대학 갈 준비 끝내 놓은 거 아니야?”
“개 짖는 소리 하지 마. 그런 얼굴로 보이냐? 그러고 있다 하기엔 너무 얼굴이 반지르르 하지 않니.”
정호석은 턱 밑을 문질렀다. 이제 슬슬 고민을 안아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멍하니 창밖을 보다 문득 민윤기가 생각났고, 우리가 다퉜단 사실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서로 다른 대학을 진학해 우리가 헤어지게 되어버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한참 이런저런 생각중인데 옆에 앉은 박지민이 내 머리칼을 쭉 잡아 당겼다. ‘야, 정호석이 너 부르잖아.’ 박지민의 부름에 그제야 나를 보고 있는 정호석이 눈에 들어오고, 나를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 왜― 늦은 대답을 하는 나를 수상하단 눈으로 보던 정호석은 헛기침을 큼 하고 했다.
“아, 나 너한테 할 말 있다.”
정호석을 빤히 보다 입을 열었다. 언젠가는 정호석도 알게 될 이야기를 지금 하려던 참이었다. 나에게로 쏠린 시선에 입술을 한번 축이고 박지민을 힐끔 보았다. 박지민은 꼭 내가 무슨 말을 하려하는 지 아는 사람처럼 보였다. 기다리던 정호석이 내 이름을 부른 후에야 나는 박지민에게서 눈을 뗄 수 있었다. 자꾸 박지민 앞에 서면 벌거벗은 사람 마냥 속을 다 들킨 기분이 들었다.
“나 윤기랑 사귄다.”
“헤엑?”
생각했던 대로 정호석의 반응은 엄청 났다. 난리라며 경악을 금치 못하는 정호석 옆에서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박지민이 이상했는지 정호석은 ‘설마, 너는 알고 있었어?’ 라며 박지민 코앞으로 삿대질을 했다.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는 박지민을 보자마자 경련을 일으키듯 ‘배신자 새끼들’ 이라는 말만 되뇌던 정호석은 한참 동안이나 말도 안 돼―를 외치다 잠잠해졌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고백을 받았냐며 나를 추궁하다 ‘아니지, 이런 건 이런 분위기에서 이야기 하는 게 아니지.’ 라며 손을 휘저었다. 조금 있다 기대하라는 예고를 끝으로 조용해진 정호석에 나는 이제야 숨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해냈다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박지민은 고생했다며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야, 우리 여기서 내려야해.”
떠드는 사이 목적지까지 열심히 달려온 버스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던 정호석이 부저를 눌렀다. 무릎위로 내려놓았던 가방을 챙기는 내 옆으로 손을 내미는 박지민을 영문 모를 얼굴로 바라보니 짧게 ‘가방’ 이라고 말한다. 머뭇대다가 들고 있던 가방을 어물쩍 넘겨줬다. 내 백팩을 제 어깨로 들쳐 메고 먼저 일어선 박지민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미터 더 굴러가던 버스는 놀이공원 근처에서 멈춰 섰다.
이제 막 버스에서 내려 방향감을 상실한 우리는 주변을 빙 둘러 보았다. 그 사이 내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이 짧게 진동을 했고, 핸드폰을 꺼내보니 민윤기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재미있게 놀고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는 꼭 연락해.]
문자를 받으니 마음이 더 싱숭생숭 해져버렸다. 괜히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내가 기분이 상해 있었던 걸까. 아니면 삐졌다는 이유로 연락을 말아 버렸던 내 속이 좁은 건가. 입술을 삐죽이고 서있었더니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박지민이 내 이름을 불렀다. ‘안 와?’ 고개를 들어보니 정호석은 벌써 저만큼이나 멀어져 있었다. 정호석은 빨리 가서 티켓 줄을 서야 한다고 먼저 가겠다고 했단다. 어쩌다 또 박지민과 둘이 걷게 됐다. 박지민은 놀러 오는데 뭣 하러 이런 큰 가방을 메고 왔느냐고 물었다.
가방 안엔 먹을 과자들만 잔뜩 있었다. 애들이랑 나눠 먹으려 집에 있던 과자들을 챙겨왔었다. 박지민은 내 가방을 흔들어 보더니 ‘안에 과자 있지.’ 하고 단번에 맞췄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웃으며 내려다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어색하게 웃어 보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밟은 보도블록들이 일정한 모습으로 내 아래를 지나갔다. 반복되는 모습에 자연스럽게 공상을 하게 되었다. 길을 걷다 딴 생각에 빠져버리는 게 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신발 코끝만 보고 걷는 나를 확 잡아채는 박지민의 손에 놀라 고개를 쳐드니 내 옆으로 아슬하게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앞은 보고 걸어.’ 박지민은 내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잠깐 놀란 가슴이 진정 되어가던 차에 박지민은 헛기침으로 목을 가다듬었다. ‘근데 있잖아.’ 그리고 입을 열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어? 왜?”
“표정 계속 안 좋은데.”
“아…….”
아직까지도 내 표정이 굳어 있었는지, 박지민은 곁눈질로 나를 보다 시선을 돌렸다. 작게 경련이 이려는 볼을 만지다가 억지로 광대를 밀어 올렸다. 탱탱하게 밀려 올라가는 피부와 동그랗게 모이는 광대가 그다지 어색하진 않은 것 같은데. 박지민은 어떻게 내 기분이 별로라는 걸 알았을까. 입맛을 다셨더니 박지민은 말하기 힘든 일이냐고 물었다. 딱히 그렇진 않아서 고개를 저었다. ‘그럼 별로 말해주기 싫은 거야?’ 박지민은 다시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말 못할 일은 아니니. 박지민에게 말해 나쁠 건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냥, 윤기랑 다퉈서 기분이 안 좋았어.”
“사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싸워?”
“아니, 싸운 건 아닌데 그냥 내가 좀 일방적으로 삐진 거지.”
“먼일이래. 김탄소가 삐지기도 하고.”
박지민은 정말 의외라는 듯 나를 빤히 보았다. 괜히 민망해져서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나는 삐지면 안 되냐.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에 박지민은 푸스 웃으며 그런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박지민이 멘 내 가방에서 과자들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그리고 박지민이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도 과자봉지들이 서로 부딪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바스락 부스럭. 그 소리들이 주변의 소음을 잊게 만들었다. 놀이동산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이상하게 과자봉지 소리만 커졌다.
“예쁜 연애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다.”
“싸웠다니까 무슨 예쁜 연애야.”
“싸울 사람이 있는 거잖아. 서로 기대하고 실망하고 토라질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또 애늙은이 같은 소리 한다.”
“애늙은이가 아니고 철이 든거지, 바보야.”
박지민은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아침부터 고데기로 말고 온 머린데 왜 흩트리느냐고 소리를 빽 질렀더니 박지민은 헤벌쭉 웃으며 아무래도 못생겼어― 라며 나를 놀렸다. 반으로 접힌 그 눈에서 악의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어서 눈을 흘기고는 말았다. 박지민은 한참이나 나를 내려다보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박지민의 눈빛이 점점 읽을 수 없게 깊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도 기분별로야?”
“아니. 그래도 너희랑 있으니까 좀 잊게 되는 거 같아.”
“화해는.”
“해야지.”
내말에 박지민은 의미 모를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서 잘 하겠지. 김탄소가 누군데.’ 라며 괜히 나를 추켜세웠다. 나도 맞장구를 쳐주며 ‘맞아 내가 누군데?’ 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걷다 보니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왔고, 그 사이에 서서 우리를 발견하고 손을 붕붕 흔드는 정호석이 보였다. ‘정호석 저기 있다.’ 손끝으로 그쪽을 가리키던 박지민은 걸음을 잠깐 멈추더니 제가 들고 있던 비닐봉지에서 과자를 꺼냈다.
“먹을래? 여자들은 먹으면 기분 좋아진다고 하던데.”
그리고 그 과자를 내 앞으로 내밀었다. 노란 봉지가 유난스럽게도 눈이 부셨다. 멍하니 과자만 내려다보다 손을 들어 건네받았다. 고마워. 개미만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박지민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웃으며 먼저 정호석에게로 걸어가 버렸다. 멀어지는 박지민의 등을 보다 왜 가슴이 먹먹해졌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 민윤기에게서 느꼈던 챙김의 기분을 박지민에게서도 느끼는 게 잘못된 일인지 자연스러운 일인지 조금 헷갈렸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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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지 못했다
시간은 창을 넘어 거꾸로 달리고
잡으면 달아나는 지평선처럼
마주본 만큼 땅은 넓어져
눈물방울 떨어진 곳 남은 세월 가둬질까
* 오랜만에 와서 너무 어색하고 부끄럽네요. 이런 저도 사랑해주실거죠? 저 여러분을 쉽게 버리지 못하겠어요.
* 모든 분들의 댓글에 덧댓을 달아드리고 싶지만 너무 많아져버렸어요.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네요.
이번화는 모든 분들에게 덧댓 달아드릴거에요. 저 어려운 사람아니니 마구마구 구애애주세요(찡긋)
* 암호닉 신청은 연재된 맨 마지막 글에 해주세요! 그래야 발견할 확률이 노.. 높아져버렷!
암호닉 신청하셨는데 명단에 빠지신 분들은 다시 신청해주세요!
암호닉 분들 정말 다 사랑해. 나중에 뭐 이벤트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지 몰라요(책임감)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쪽) 오타나 탈자는 애교로(찡긋) 댓글로 알려주시면 더욱 좋아요
* 암호닉 신청 방법은 따로 없어요. 그냥 던지고 도망가시면 쫓아가서 뽀뽀해드립니다. 지구 끝까지(쪽)
* 깜빡 잊을 뻔 했네요!
그동안 배경음악을 궁금해하시던 분들이 많아서 이렇게 정리해서 들고 왔습니다!
1, 2화 # Sam Ock - Love (Re:Plus Remix)
3화 # Sam Ock - Love
4화 # Re:Plus - Autumn Leaf
5화 # Re:Plus - 4AM (Feat. I Hate This Place)
6화 # Sam Ock - Meet Me
7화 # 센티멘탈 시너리 - Faded Note
8화 # 센티멘탈 시너리 - 지금 여기, 이곳에서 (inst.)
9화 # 센티멘탈 시너리 - Epic
10화 # 피아노 소년 - 행복 열쇠
11화 # Yellow & Gray - A Walk In November
글만큼이나 배경음악도 신중히 고르는데, 알아주셔서 감사해요(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