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 작사 그남자 작곡 10
w. 예하
어느나라 국경에서는 끊임없이 총성이 울리고
어딘가에선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누군가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
그런데 그래도
그래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
전쟁 반대편에 사는 사람 누군가는 크루즈 여행을 만끽하고
자연재해를 겪어본 적 없는 사람은 재앙이 일어나는 영화를 팝콘과 함께 즐기고
누군가가 소중한 사람을 잃을 때 다른 누구는 영원한 사랑을 약속한다.
세상은 그런거다.
그리고 자신 또한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온다.
일찍 돌아오거나 늦게 돌아오는건 개인의 차이일 뿐.
이창섭은 음악방송도 출연하고 예능에도 나온다.
데뷔곡은 공개된 후 각종 음악차트의 상위권에 머물며 '괴물 신인'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가창력, 예능감 어떤 것도 빠지는게 없어 많은 사랑을 받는다.
내가 도망쳐버렸던 쇼케이스날
어김없이 이창섭에게는 밤새 카톡이 왔고
난 그 카톡이 온지 알면서도
이틀 뒤에야 겨우 확인했다.
[이름아 왜 그냥 갔어]
[오랜만에 나 좀 보고가지]
[바쁜 일 있어?]
[다음에는 그냥 가면 안돼]
꿈을 이룬 친구에게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답했다.
[미안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다음에 꼭 다시 보자]
다음에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잠시 혹 했었던거라 믿고있다.
오랜 친구에게서의 연락은 언제나 떨리니까
그래서 잠깐 설렌거라고 생각한다.
한낱 꿈같이 허망할 뿐이고
이젠 현실로 돌아와야했다.
그렇다고 이창섭이 나의 현실에 없다는 말은 아니다.
현실은 맞는데, 꿈같은 현실이다.
나에겐 언제든 만날 수 있고
언제든 마음 놓고 사랑한다 고백할 수 있는 임현식이 있다.
내가 이창섭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것들을
현식오빠에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할 수 있다.
나는 지금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알아도 모른척 하는게 아니라
알아서 아는척 할 수 있는 그런 사람.
임현식은 나의 현실이고
이창섭은 꿈이다.
금방 깨어버릴 꿈일 뿐이다.
나의 현실에는 조명이 반짝이는 무대가 아니라 작은 내 방이 있고
나를 향한 박수갈채가 아니라 취업은 언제하냐는 눈빛이 있고
그냥 앞으로 먹고 살 일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이 있다.
친구의 꿈같은 현실은 그의 것이지 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꿈을 꾸지 않은지 꽤 오래되었다.
눈을 감으면 끝없는 암흑이 반복되다 눈을 뜬다.
꿈을 꾸면 자꾸만 뒤척여서 잠을 깊게 자지 못해서 싫었다.
꿈을 꾸지 않으면서부터 나는 잠을 푹 자게되었다.
잠을 푹 자니까 가사도 더 잘 써지는거 같고
학점도 잘 받는거 같고.
더이상 꿈에서 놀라 깨지 않아도 되고
알람을 끄며 일어나면 된다.
여러 작곡가들과 소속사에 내가 쓴 가사를 제출하고
올지도 모르는 연락을 기다리는게 요즘 내가 하는 일이다.
가끔은 어린 작사가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주는 친절한 작곡가들도 있다.
조금 더 섬세한 표현이 필요하다.
여성스러운 표현을 사용했으면 좋겠는데 가사가 너무 투박하다 등등
근데 난 하나도 새겨듣지 않았다.
꾸미지 않음의 아름다움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투박함과 서툴은 감정들이 얼마나 예쁜지 아는 작곡가를 만나길 바라며
계속해서 가사를 쓰고 제출했다.
그러다 한 작곡가에게서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름은 정일훈이고, 아이돌들의 소위 주옥같은 수록곡들을 작곡한 경험이 있는 작곡가였다.
"오빠! 나 연락 왔다!"
"진짜? 어유 이뻐죽겠어. 내가 말했잖아 너 알아봐주는 사람 분명히 있다고."
"히히 드디어 나타났나봐. 나 다음주부터는 오빠 자주 못볼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지?"
"그럼. 오빠는 학원에 있으니까 보러오면 되고. 그 분 되게 실력있는 분이니까 많이 배우고 와."
"응!"
정일훈이라는 사람의 작업실은 낡은 건물 지하에 있었다.
오후 4시 이후로 오라고 해서 정확히 오후 4시에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인기척이 없다.
똑똑.
아무도 없나?
"정일훈 작곡가님 저 이번에 같이 작업하게된 성이름 입니다. 안에 계세요?"
그래도 문 건너편은 조용했다.
정일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문에 바짝 귀를 갖다대자 안에서 들리는 전화벨소리.
안에 분명 있는거 같은데.
막 쓰러져있고 그런거 아니겠지?
똑똑똑똑
"작곡가님 안에 계신거 맞죠? 대답 좀 해보세요!!"
문을 쾅쾅두드리며 크게 소리치기를 몇 번
문이 벌컥 열리고
얼굴 이쁘고 몸매 좋은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같은 여자가 봐도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를만큼 파인 옷에 짧은 치마.
짜증난다는 듯이 눈을 찌푸리며 말을 건넨다.
"일훈오빠 자고있으니까 한 8시쯤 되면 와요."
그리곤 문을 쾅 닫아버린다.
이 사람 뭐야.
아무래도 내가 을인 것 같아 대충 보이는 카페로 들어와 현식오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빠"
"응 이름아."
"나있지.. 지금 어떡해야할지 모르겠어."
"왜? 막 작곡가 그 사람이 뭐라 그래?"
"아니 그건 아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현식오빠는 그냥 그 사람이랑 작업하지 말라 그랬다.
어떻게 잡은 기횐데.
차마 놓칠 수가 없어서 오빠한테 일단 한 번 가본다 그랬더니
그럼 혼자 못보낸다고 같이가자 그래서
밤 8시인 지금
현식오빠와 나는 정일훈의 작업실 앞에 서있다.
"오빠 내가 문 두드릴게."
똑똑
"정일훈 작곡가님 계세요?"
그러자 문이 살짝 열리고
왜소한 몸매와는 다르게 힘있는 눈빛의 남자가 나왔다.
"성이름씨에요?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그런데 뒤에 계신 남자분은 오기로 했던 분이 아닌거 같은데."
"안녕하세요. 임현식입니다."
"아아 가수지망생이에요! 같이 작업하면서 배울 점이 많을 거 같아서 데려왔는데... 괜찮으세요?"
"...방해만 안하면."
그리곤 쌩 뒤돌아 작업실로 들어간다.
작업실은 좁고 어두웠다.
장비들과 큰 의자. 그리고 두 명이 누워도 충분히 공간이 남는 소파.
"편하게 앉아요."
"네!"
"음악작업 해본 적 있어요?"
"아... 작업해본적은 있어요. 두..번 정도?"
"보내준 가사 읽어봤는데 좀 촌스러워. 내가 작곡한 곡들 들어본적 있어요?"
"그럼요. 제가 좋아하는 곡들이던데요?"
"이름씨는 촌스러운게 취향인가? 본인이 쓴 가사처럼 촌스러운 곡 쓰는 사람이에요 내가."
"아...하하 그런가요?"
"앞으로 나랑 작업 할꺼죠? 계속."
"네네."
"거기 옆에 임...임.."
"임현식입니다."
"그쪽은 나한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가수지망생이라며. 난 당신 데뷔시켜주고 그런 사람은 아닌데."
"네 알고있습니다. 작곡면에서 도움 좀 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작곡은 내가 알아서 하는데."
"아아 작곡가님 어 이 오빠는 그냥 배우러 온거에요 배우러! 그냥 가만히 작업하는거 볼꺼에요."
"필요한 거 있음 시키고 그러면 되는거지?"
"네네!"
최근 데뷔한 한 남자아이돌의 수록곡 한 자리를 차지하는게 우리의 목표였다.
이런 저런 데모오디오들을 들어보며 편곡 방향, 가사의 컨셉에 대해 논의했다.
논의라기보다는 비위 맞춰주기에 가까웠지만 이것도 다 경험이라 생각하며 있었다.
현식오빠는 정말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말 그대로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작업실에서 5시간을 있다가 새벽 1시가 되서야 밖으로 나왔다.
현식오빠와 내가 작업실에서 나올 때
낮에 본 그 여자와는 다르게 생겼지만 비슷한 노출 수위의 옷을 입은 여자가
작업실로 들어갔다.
"오빠 피곤하지.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구. 그냥 다음부턴 나 혼자 올게."
"이런 시간에 저런 놈이랑 너랑 둘이 있게 두라고? 내가 12시간을 앉아있더라도 따라갈꺼야."
"오빠 내일 학원도 나가야되고, 너무 피곤할거같은데?"
"아 오빠 괜찮아. 넌 여자애가 안 피곤해? 야 근데 정일훈인가 뭔가하는 사람 너무 싸가지없다."
"음악하는 사람들 예민하잖아. 오빠가 이해해."
"나도 음악하는 사람이야. 예민해도 정도가 있지 사람 무안하게 만들고..."
"처음봐서 그런 걸 수도 있어! 몇 번 같이 작업하다보면 친해질껄?"
"아휴... 저 사람이랑 이번 작업만 끝나면 다신 같이 작업하지마.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오빠 우리 노래들으면서 갈까?"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인기순위차트를 재생시키자
최근 발표된 이창섭의 후속곡이 흘러나왔다.
가끔은 꿈을 꾸고싶다.
얼룩말이 하늘을 날고 달걀이 말을 거는 그런 말도 안되는 꿈을 꾸고싶다.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꿈을 꾸고 잠도 좀 뒤척이고 싶고
동화에서도 주제로 삼지않을 만큼 말도 안되는 꿈을 꾸고싶다.
꿈을 안꾸니까
자꾸 자꾸 잠을 푹 자니까
잠자고 눈뜨면 일하는
감성따위 없는 사람 같아서 싫다.
꿈은 필요한거구나.
금방 깨어버리는 꿈이라도, 그래도 꿈을 꿔야겠다.
*
안녕하세요 예하입니다:)
설은 잘 보내셨나요! 이제 연휴 끝이에요 ㅠㅠ
창섭이 썰은 20화 안에는 끝날꺼 같아요 ㅎㅎㅎ
쓰고싶은 소재들이 너무 많아서 ㅠㅠ
일단 육성재썰 지르긴했는데 더 파격적이고 격정적이고
조직물 그런거 있잖아요 퇴폐분위기 낭낭한거
그런거 한번 써보고 싶네욯ㅎ....
혹시 원하시는 주제있으면 신청해주세요!
짧게 단편으로 써볼게요 ㅎ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그리고 오늘 브금은 걍 제가 듣고싶은 노래 했네요 ㅎ...
안어울리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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