傾國之色
어디가 그렇게 예쁜가 도란도란 살펴보면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다. 오목조목 미운곳 하나 없이 조화가 잘 되어있지만 썩 화려하진 않았다. 그래도 마을 여인네들이 빨래터에 모여 방망이질을 하고 있노라면 저혼자만 애틋한 사연이 있는 듯, 그 아련한 눈빛이 지나가는 이의 발목을 붙잡았다. 저 혼자만 달빛을 받은 활짝 핀 달맞이 꽃마냥 그렇게 눈에 띄었다.
또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다면 흔한 농부의 여식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계집의 아비는 몰락한 양반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비가 먼저 자처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그야 그 양반은 성질이 여간내기가 아니었으니. 어느정도냐 꼿꼿하냐 물으면 그것또한 말이 길어진다. 계집의 아비는 중앙관직 끄트머리에서도 대감, 그건 아니옵니다. 대신들에게 일침을 가하기 바빴다. 입바른 말을 잘하는 건 또 대신들을 향한 것만이 아니었다. 왕앞에서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며 함구하고 있을때에 저 혼자 나서서는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제 뜻을 펼쳤다. 아마 입바른 말 잘하기로는 성균관 유생들도 그를 못이기겠지 싶다.
그러다 속세에 지쳐서인지 그는 관직을 내팽겨치고 작은 마을에서 유유자적 내려와 살았다. 제 딸자식 하나 데려와서 오순도순 살았다. 에그에그, 양반 꼴이 저게 뭐람. 손에 흙이나 묻히는 꼴이라니. 주변의 수근거림에도 그는 모종을 고르며 땀을 한바가지 쏟았다.
그런 제 아비를 닮은 모양인지 계집도 특출났다. 아비가 고지식한데서 특줄났다면 계집은 영특한데에서 아주 톡톡 튀었다. 동네어른들의 사랑을 함뿍 받으며 자랐다. 오죽하면 그 고울의 수령이 다과상을 받을때마다 거, 여주좀 불러와라. 해서 손에 한과를 쥐어주었을까. 하면 계집은 그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을 통통 튀기며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나리!"
그리 말하며 고 작은 손에 한과를 소중하게 받아들였다가 당돌하게도 그 작은 몸을 높으신 나리 곁에 붙이고 앉았다. 한과는 잠시 상옆에 내려두고 대신 빈손에는 붓을 쥐어들었다. 작은 손이 쥐기에는 너무 큰 붓이라 팔이 저릴법도 한데 먹으로 종이를 적셔나갔다.
"나리를 닮은 난이어요."
사군자의 하나. 난초라함은 깊은 산속에서도 제 향기를 은은하게 퍼뜨린다, 해서 그것이 꼭 나리와 같다. 어린 것이 감사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하더라. 그러니 다과상을 받을때 계속해서 그 작은 계집을 부르며 이것도 그려보아라, 저것도 그려보아라 시키며 말동무를 삼았을테지.
또 그 어여쁜 얼굴로 이를 내보이며 웃으면 그 모습이 또 그리도 예쁜지 다과상에서 다시 약과를 두어개 더 집어들어 손에 들려보낸다. 하면 계집은 농삿일을 하는 제 아비에게 달려가 진득한 한과를 먹기좋게 똑똑 끊어 입에 댄다. 그 모습이 또 그렇게 기특해서 마을 사람들 눈에는 사랑이 똑똑 흘러넘친다.
계집이 자랐다. 일없이 흘러내린 머리를 쓸어넘기는 섬섬옥수가 가녀리다. 말려올라간 입꼬리는 잘 익은 꿀사과마냥, 톡 건드리면 꿀이 금방이라도 줄줄 흘러나올 것 같다. 핑그르르 올라온 벚꽃잎 두뺨을 보면 어떤이라도 제 뺨을 부비고 싶을 것이었다. 그리 사랑스럽게 자랐다. 계집은 세상에 걱정이 없는 사람마냥 또 그렇게 웃는다. 그런 제 모습이 얼마나 어여쁜지. 또 얼마나 꽃같은지 가늠도 하지 못하고.
“허면 부인께서 향기 없는 꽃입니까.”
“제겐 단내가 이리도 지독하게 풍기는데.”
벌따위가 향을 맡고 달려들까, 전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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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영
“욕심나는 건 하나도 없다.”
“왕좌따위, 그게 뭐 별거라고.”
“너.”
내 꽃, 내가 유일하게 원하는.
최한솔
“당신이셨습니까.”
“제가 지금 묻지 않았습니까. 당신이었느냐, 그리 물었습니다.”
왜 이리 제 속을 태우십니까.
윤정한
“불공평하구나.”
“눈도, 코도, 입도. 못난 곳이 하나 없으니.”
그러니 내 맨날 지기만 하는 것일테지.
이석민
“도망가실래요.”
“둘이 손잡고 도망쳐서 숲속에서 집짓고.”
오순도순 농사나 지으면서 그리 사실래요.
홍지수
김여주
차라리 네가 기생이었으면 더 좋을 뻔했다.
이리 얼굴보기도, 손 한번 잡기도 힘들줄 알았으면.
그러는 편이 더 나았을뻔 했다.
그리워도 못볼 때는 오직 그립다고 생각하는 것뿐이었는데
잠깐 보고 이별한 정은 구곡간장이 다 멈추는 듯하구나
저 임아 내가 한 말잊지 말고 변함이 없으시라
꽃을 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