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의 미열 난 분명 폐말고도 안 좋은 부분이 따로 있다. 환자복을 입고 걸어가는 저 동그란 뒤통수만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뺨이 붉어지는 걸 보면, 체온 조절이 힘든 걸거야. 그리고 궁,궁- 울리는 심장소리. 뭐야, 나 심장도 안좋은가봐. "엄마, 옆방 남자애." "응. 왜?" 어젯 밤 내가 피를 토해서인지 엄마의 얼굴이 수척해져 있었다. 엄마의 초췌한 모습을 차마 눈 뜨고 볼 자신이 없어 눈을 밑으로 깔았다. "걔는 어디가 아픈거래?" "글쎄, 근데 흉부외과 선생님이 진찰하는 건 봤어." "..그래?" 흉부외과라니. 걔도 많이 아픈 애면 어떡하지. "엄마 졸리면 자." "응? 왜?" "어젯밤에, ...피곤했을 거 아냐." "엄마는 괜찮아." 거짓말.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어렸을 때부터 곱게 자란 엄마가 병수발이 익숙할리가 없잖아. 요즘따라 나날이 헬쓱해지는 엄마 모습이 가슴를 콕콕 찌르는게 폐도 따꼼해지고 배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 같다. "나 나갔다 올테니까 눈 좀 붙이고 있어." "어디가려구?" 엄마의 걱정어린 목소리. 자기 몸 상해가는 건 걱정도 안하지, 으이구. "옆방에 마실."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며 눈빛을 보낸다. "엄마 딸 연애사업하러가." 이 젊은 날을 병원에서 썩힐 수야 없지. 그치? 엄마가 푸슷 웃는다. 오랜만인 것 같다. 엄마 웃는 모습. * 막상 문앞에 오니까 너무 떨려! 발을 동동구르며 문 앞에서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드르륵 문이 열렸다. "어라.." 공중으로 흩어지는 목소리. 갈 곳 잃은, 갈피를 못잡은 두눈이 얽힌다. 하필 이때 나올게 뭐람. "음, 안녕!" 문 앞에서 망설이던 사람치고는 꽤나 낭랑했던 첫인사였다. 그런데도 곁눈질로 날 흘긋보더니 고개만 까딱- 움직이고는 묵묵히 제 갈길을 가버렸다. 무정한 사람. 입술이 자연스럽게 비죽였다. 사람 무안하기 그러는게 어딨어. 묵묵히 걷는 뒤를 밟아 총총 걸어갔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어딜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야! "야." 궁시렁거리던 생각들이 공중에서 분해됐다. "나? ...요?" 혹시 나? "왜 자꾸 따라다녀." 짙은 눈썹이 불만을 담고 꿈틀거렸다. "아하하! 따라다닌다니! 그냥 뭐, 마실 겸 건강을 위한 산책정도?" "그럼 네 갈길 가던지." "..." 냉정하게 고개를 휙돌려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뒷모습이 매정하다. 와, 냉혈한도 저런 냉혈한이 없다. "저기," "..." "나 좀 심심한데 따라가도 되나?" "..." "안되겠지?" 또 한번 짙은 눈썹이 움직였다. * "어? 이런 데에 어항이 다 있네." 대답은 고사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흥, 기대도 안했다. 그가 올라간 곳은 옥상이었다. 되게 엄청난 곳 가는 체 하더니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그래도, 가슴이 탁 트이는게 조금 시원하다. 아 의사선생님이 찬공기 가급적 마시지 말라셨는데. "...금붕어하니까 생각난건데." "..." "예전에 유치원에서 금붕어를 키웠었거든. 아, 그땐 건강했어. 근데 누가 물을 잘 못 갈아 준 건지 금붕어가 도통 움직이지도 못하고 시름시름 앓기만 하는거야." 태클을 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용히 들어주기에 말을 이었다. "근데 같이 걱정하던 친구가 아파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아프다면서 죽이자고, 막, 그랬다?" 중간중간 끊기는 내 목소리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내게 눈길을 주는 그였다. "그리고는 어항을 휘적이다가 금붕어를 두손에 쥐고는 뛰쳐나가 버렸어. 그 후로 금붕어는 못봤어." "...." 네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내가 병이 지금보다 더 심해져서 너무 괴롭고 힘이 들면 죽는게 편할까?" "..글쎄." 네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다. 그러게, 정말로 글쎄. 너도 쉽게 대답해 줄 수 없는 질문일 것 같아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너또한 착찹한 표정이었다. "최한솔 환자분!" "네." "오늘 진찰있으니까 6시까지는 병실에 계시라고 부탁했잖아요!" "죄송합니다." 간호사는 앙칼진 말투로 쏘아붙였다. 거, 참. 성격이 어지간히 까탈스럽구만. 조용히 따라나서는 최한솔의 뒤통수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그나저나 이름이 한솔, 최한솔.. 잘 어울린다. 동글동글한 한솔이란 이름이 내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기에 계속해서 입에서 굴렸다. 한솔.. 한소올... 옥상 난간 너머로는 붉게 물든 하늘뿐이었다. . . . 살금살금 병실문을 열자 엄마가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의 얼굴은 푸석푸석했다. 괜히 이불을 가슴 끝까지 올려 덮어드리고는 나와버렸다. 그래도 가슴이 갑갑해져 버린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쓰게 웃으며 아까 그와 함께 있었던 곳, 옥상으로 올라가버렸다. "엇, 한솔..!" 헐 나 미쳤나봐. 한솔..이래. 푸흡. 난간 근처에서 서성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최한솔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반겼다. 최한솔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휙 지나쳐 옥상 난간에 기대어섰다. 내가 있던 없던 개의치않아 하는 모습에 왠지 심술이 났다. "금붕어는 행복했을까?" 아까 일그러진 너의 표정이 생각나서였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지만. "글쎄." 아까랑 똑같은 대답이었다.그리고 말미에 문장을 더 덧대고는. "네가 병아리였으면, 어땠을 것 같은데?" 이번엔 내 표정이 일그러졌다. 애써 외면하려 했던 내 상황때문이었다. 늘어나는 내 병원비에 자꾸만 친정에 손을 벌리는 엄마, 회사를 마치면 밤새워 대리운전을 하느라 수척해진 아빠. 원래 가난한 집은 아니었지만 내 병원비를 감당하는 건 쉽지 않을 일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일인걸. 게다가 의사선생님과 상담하고 와 헬쓱해진 엄마의 두 뺨이라던가. 내가 겔룩거리며 피를 토할 때의 허망한 눈매, 갈 길을 잃고 작은 소용돌이를 이는 엄마의 눈동자를 보면 나는 자꾸만 금붕어가 생각이 난다. 대답을 미루는 날 보고도 최한솔은 대답을 재촉하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다. 바보같은 일임을 알지만 나는 꽤 신중하게, 또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만약," "..." "만약에 내가." "응." "금붕어같은 상황이 되면," "...." "네가 날 들고 나가줘." "..." "그때 그 친구처럼." "내가 왜." 내가 왜. 간단명료하게 대답한 최한솔의 말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정말 무미건조하기 짝이 없게도. 다른 누군가라도 그랬을 것이다. 솔직히, 내 숨을 끊어달라는 건데. 그런 바보같은 질문이 어딨어. 하지만 최한솔은 무미건조한 아까의 어투와 달리 내 어깨와 팔을 톡톡 토닥여주고 있었다. 톡톡. 그렇게. 톡 톡 톡 톡 톡 톡 . . . 중환자 실이었다. 어두운 공간 속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색-색-하는 무거운 숨소리들. 숨결은 중력에 못 이기는 척 무겁게 소년의 발등에 내려 앉았다. 검은색 삼선 슬리퍼에 흰 양말. 그는 숨을 헉,하고 몰아쉬며 최대한 숨을 죽이고 발걸음 소리를 낮췄지만, 그 낮고 투박한 소리가 한 소녀에겐 강력한 충격이라도 되는 듯 눈을 떴다. 소년은 소녀 앞이 멈춰서 고개를 숙이고는 소녀의 얼굴을 관찰했다. 두번. 느리게 깜빡이는 눈꺼풀. 소년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인공 호흡기에 손을 얹었다. 불규칙적으로 생기는 희뿌연 입김이 수증기가 되어 인공호흡기를 뿌옇게 가렸어도 소녀의 미소는 가릴 수 없었다. 소년은 호흡기를 소녀에게서 뗐다. 소녀는 붉게 충혈 된 눈을 감고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친구에 대한 감사함의 표시였다. 소년은 다시 한번 소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뿐만 아니라 이마에 입술을 꾹 내리 찍었다.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작별인사였다. +) 우와아.. 안녕하세요(: 결국 저질러버렸습니다! 인티 글잡에 글을 올리는 날이 진짜 올 줄은 몰랐는데.. 미숙한 글인데 재밌으셨으려나 모르겠네요. 부디 마음에 드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