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김남준] 직장 상사와 담배의 상관관계
W.superwoman
02
"아 글쎄, 성사원이 말이야.."
김대리의 입털기는 줄어들 줄 몰랐다. 점점 소문이 크게퍼지는 건 당연했고, 내가 회사 안을 돌아다닐 때마다 느껴지는 시선도 매일 늘어갔다. 게다가 남자 직원들이 모여있는 곳이면 근근이 성희롱적인 발언까지 들려왔다. 김대리는 뭐가 그렇게 당당한지 사무실 안에서 날 마주쳐도 절대 피하는 법이 없다. 하나하나 반응하기도 지쳤다. 여태 내가 곱게 말 들었던 게 병신이지. 평소에 나에게 그렇게 원한이 많이 쌓인것도 아닌데 사람들의 흥미를 모으는 재미를 보더니 신났나보다. 계속되는 김대리의 시비에 지쳐 혼자 멍때리고 있을 때면, 팀장님이 가끔 어깨를 토닥여주곤 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도움되지는 않겠지만,"
"..."
"금방 지나갈거에요."
대충 이런 말들? 손수 커피까지 타준 날도 있다. 그때마다 빼먹지 않고 물어보는 담배. 담배는, 끊었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머릿 속에 박혀버렸다. 너무 많이 들어서. 근 2주동안 몇번을 들었는지. 오늘도 역시나다.
정말 김대리와 조금이라도 엮이는 업무는 안하려도 선배들을 설득하고, 매달리고, 피했건만. 물론 김대리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하지만 이번에는 빼도박도 못하고 김대리 업무에 보조를 해주게 생겼다.
"김대리랑 성이름씨 둘이 해줬으면 합니다."
회의실 제일 상석에 앉아 정확히 나와 김대리를 쳐다보며 말하는 저 팀장님 때문에. 팀장님의 단호한 말에 오히려 막내와 선배들이 더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아니, 내가 김대리랑 엮이기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는 사람이 이렇게 직접적으로 일을 주다니. 그래도 조금은 배려해주길 바랬는데. 자리에 돌아와서도 도무지 잘해낼 자신이 없어 얘기라도 해 볼 마음에 팀장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를 하자 안에서 네. 하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성이름씨."
"팀장님. 저 김대리님한테 주신 협력 업무.. 다른 분과 하면 안될까요?"
"왜 바꾸려고 하죠?"
"소문돌고.. 그런 거 때문에 김대리님이랑 사이가 좀 안좋습니다."
"개인적인 감정, 일 할 때는 배제하라고 했을텐데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금방 지나갈거라며 어깨를 두드려주던 팀장님이, 완전히 차가운 표정이 되어 나를 바라본다. 여태 위로해주던 사람 맞나 싶을정도로 다른 모습에 오히려 당황한 건 내 쪽이었다. 사실 회사 안에서만 예스맨이었지, 한 성격 하는 나였기에 순간 욱하는 감정이 올라와 주눅들지 않고 말해버렸다. 부모님을 욕보이는 김대리가 실수를 하면 내가 뒷바라지를 해주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
"제가 맡은 업무 보조라는 일이 김대리님이 해달라는거 하고, 가끔은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까지 다 하는 역할인데 김대리님한테는 그런 도움 주고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김대리님과 업무 할 수 없습니다. 팀 바꿔주세요."
"성이름씨. 개인적인 감ㅈ,"
"저는 화 낼 사람이 누군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사람들 보는 앞에서 부모님 욕하고 더러운 소문내는 상사랑 일 못한다구요!"
욱하는 감정이 커져 목소리까지 커졌다. 2주동안 나를 까느라 신나게 지냈던 김대리에게 당한 일들이 생각나 화가 누그러들지 않는다. 팀장님은 내가 꼭 김대리와 해야하는 일인것도 아닌데 생각을 바꿀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성이름씨. 아무리 찾아와서 얘기해도, 파트너는 변하지 않을겁니다. 나가보세요."
이렇게 갑자기 딱딱하게 굴거면 며칠동안 뜬금없이 잘해주지나 말던지. 내가 간곡하게 부탁하면 배려해줄 것 같이 만들어놓고 이제와서 공과사 구분도 못하는 직원으로 대우하는 모습에 스트레스가 빡 쌓이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회사에서 착하게 산다고 성격 좀 죽은줄 알았는데, 여전했다. 팀장실에 갔다와도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으니, 옆에서 내 눈치를 보던 막내가 말을 걸어온다.
"..선배. 팀장님이 안된대요?"
"..어. 진짜 나 그만둘까 막내야?"
"그럼 저는요..."
그만둘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니 자기는 어떡하냐며 우울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정국이. 그 모습이 누나가 안 놀아줘서 삐진 남동생 같아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늘도 올라갈 생각이 없어보이는 정국이의 어벙한 동글이 안경을 손수 올려주고 머리를 헝클었다. 그런 나를 보고 웃어보인 정국이 다시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런 막내 몰래 한숨을 푹 쉬었다.
어제는 집에서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세 개피나 줄줄이 태웠다. 지각 한번 한 적 없던 나는 오늘도 여유로운 시간대에 회사 앞에 도착했고, 그런 나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밤새 고민했던 내 마음가짐을 다잡게 해주었다.
'성이름님 여기는 J그룹 인사지원팀 입니다. 얼마 전 지원하셨던 1차 지원에 합격하셔서 2차 면접 참여 여부를 조사하려고 연락 드렸습니다.'
김대리가 나에게 화를 낸 다음날, 멍하게 웹서핑을 하다 눈에 들어온 채용 공고에 될대로 되라!하며 넣은 지원서인데 덜컥 합격을 해버렸다. 솔직히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와 규모 차이도 별로 없고, 연봉 차이도 거의 없었기에 합격한다면 더이상 김대리가 있는 이 회사를 다닐 필요가 없었다. 1차 지원이 까다로워서 2차땐 거의 합격하니 꼭 참석하라는 안내원의 말이 떠오르자 글자를 적고있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반은 확정이니, 김대리의 얼굴을 더이상 보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서서히 출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직원들도 한사람 한사람 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일분 전에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김대리는 자리에 앉아서도 업무가 있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저거 또 나한테 떠넘기려고 그러는가보다, 싶어 어처구니가 없다. 사직서. 라고 정갈하게 적힌 봉투를 만지작거리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내가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애써 무시하고 팀장실에 노크하고 들어갔다. 긴장한 내 표정에 팀장님이 무슨 일이냐는듯 쳐다본다. 조용히 다가가 흰 봉투를 내려놓았다. 정갈하게 적힌 세 글자에 팀장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죄송합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해주세요."
"..."
"지,지금 뭐하시는..!"
처리해달라는 내 말에도 말없이 사직서만 내려다보던 팀장님은 그대로 봉투를 찢어버렸다. 물론 안에 들어있던 사직서도. 내가 놀란 것은 보이지도 않는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결재서류를 읽는다.
"제 말 안들리세요?"
"가서 일 보세요."
진짜 뭐하자는거지. 어이가 없어 멍하게 서있다, 나는 할거 다 했다는 결론을 냈다. 사직서를 냈고, 그걸 팀장님이 봤고. 그럼 끝. 난 이제 더이상 이 회사 직원이 아니다. 한숨을 내쉬고 팀장님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가 인사하자 나를 쳐다보는것 같기도 했는데, 바로 뒤돌아 팀장실에서 나왔다. 팀장실에서 나오자 마자,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김대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 저 얼굴 안봐도 된다. 곧장 내 자리로 가 가방을 챙기니, 옆에서 막내가 급히 내 팔을 잡는다.
"선배, 선배 어디가요?"
"...정국아."
"네?"
"나 사직서 냈어."
단호한 내 말에 놀라 눈이 한가득 커지는 막내다. 막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난 그만둬야겠다. 최대한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봤던 광경이지만, 말끔히 정리된 나의 집에 들어서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J그룹 면접은 내일 모레. 나는 꼭 붙어야했다. 오늘 한 일이라곤 사직서 쓴 것 밖에 없는데 왜 이렇게 힘이 쭉쭉 빠지는지. 핸드폰에선 진짜 그만두는 거냐고 물어오는 막내의 문자가 계속 왔지만 대답할 기운도 없이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부스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저녁 일곱시다. 몇 시간을 잔거야.. 벌써 어둑해진 밖을 멍하게 바라보다 세수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저녁마다 습관적으로 피던 담배를 찾으려 주머니를 뒤적거리는데, 없다. 아..어제가 마지막이었지. 세 개나 피운게 원인이었다. 어쩌나, 사러가야지. 오늘도 세 개피는 태울 심정인데. 검정색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고 집 앞 편의점으로 향했다. 프랜차이즈이긴 한데, 규모가 좀 작은 지점이다.
"아주머니, 저 매일 사가던거 있어요?"
"어쩌나..그거 다 나갔는데.."
으. 예감이 안좋더라니. 10분만 걸으면 다른 편의점이 있긴 한데, 회사 앞이라 고민된다. 에이, 설마 마주치겠어. 오늘은 담배를 피워야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으니 산책이나 할 겸 갔다오자, 하고 생각했다.
"안녕히가세요-"
친절한 알바생의 인사를 받고, 익숙하게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려는데, 나를 부르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봤다.
"성이름씨."
"..."
"담배 끊으라고 했는데."
"..."
"상사 말, 무시합니까?"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사직서 냈으니 이제 직장 상사도 아닌데 내가 담배를 피던 말던 무슨 상관인지. 정말 내 사직서는 처리하지도 않은건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 한숨을 내뱉었다. 나와 그 사이를 가리는 뿌연 연기에, 팀장님이었던 사람의 인상이 더 깊어졌다. 그 모습에 난 미소를 지어보였다.
"사직서 분명히 냈습니다."
"제가 분명히 찢어 버렸습니다."
"..하."
"성사원. 출근하세요."
팀장님과 전보다 가깝게 지낼 때 깨달았던 것 중 하나는, 사무실의 직원들 중 팀장님만 유일하게 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었다. 처음으로, 성이름씨. 가 아닌 성사원. 이라고 불렸다. 내 앞의 사람에게. 그 호칭은 어찌보면 당연한건데, 낯설고 묘한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정갈하게 묶여있던 넥타이를 살짝 풀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꽤 오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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