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민석]내 어린 남자친구 01
킬링타임용으로 열심히 풀고있던 스도쿠잡지를 내려놓았다. 원래의 정사각형 모양 박스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잡지위로는 엉망으로 북북 그어져있는 선들만이 존재했다. 반 정도 채운 숫자들을 뒷면의 정답페이지와 대조해보았다. 혹시나는 역시나. 두어개 빼곤 모두 틀린것이 당연스러웠다. 그래, 내 머리로 풀려한 것 부터 이상했지. 똑딱이가 까만 흔하디 흔한 모나미볼펜을 손에 쥐고 뱅글뱅글 돌렸다. 궤도를 이탈한 펜이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펜을 주으려 허리를 굽혔다. 펜은 어디로 간 것인지 내 시야로 반질반질 잘 닦인 검은 구두의 앞코가 잡혔다. 가만보자. 머리 속의 작은 컴퓨터가 급하게 돌아가더니 데이터베이스 하나가 출력되었다. 마녀! 맙소사, 이대로 마녀의 사냥감이 되고마는가,
"루우한씨이?"
길게도 부르십니다 거. 그대로 허리를 숙인채로 투덜투덜 입을 삐쭉거렸다. 또 다시 후라이팬 위의 야채들처럼 달달 볶아질 것이 분명했다. 루한은 입꼬리를 슬쩍 당기고는 허리를 조심스럽게 펴보았다. 예상했던대로 구두의 주인은 마녀였다. 마녀는 팔짱을 비비 꼬고 루한을 아니꼽게 내려보고있었다. 피지배층과 지배층, 노예와 주인, 신민과 귀족, 노비와 양반까지 고대시대부터 존재했던 갑과 을의 관계는 몇만년이 흐른 지금,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루한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통탄스러움을 주체하지 못했다. 아마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랬듯이 미래에도 존재하겠지. 기분이 암울해졌다. 루한은 이리저리로 불안하게 움직이던 시선을 마녀에게 고정시켰다. 반사된 전등불에 코에 걸친 안경이 반짝하고 빛났다. 루한은 입꼬리를 더욱 당겨보았다. 볼이 파르르르 떨렸다. 자고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하 팀장님. 좋은 아침"
"원고는 아직?"
루한의 아침인사를 싹뚝 잘라먹고 마녀가 짜증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네? ..네"
멍청하게 한번 되물은 다음 머리를 긁적이며 오 예쓰를 외치는데 마녀의 두 눈이 다시 한번 서슬파랗게 빛났다. 아아, 무섭습니다 정말. 아무래도 그녀는 샛 노랗게 염색해버린 나의 황금빛 머리가 못마땅한 듯 했다. 난 검은머리보다 노란머리가 더 잘 받는다구요.. 그러나 장담컨대, 내 머리가 시꺼멓다못해 퍼랬어도 그녀는 나를 못마땅해 했을 것이 분명했다. 이를테면 사소하게 잡힌 와이셔츠 주름 따위를 보면서 말이다. 물론 그녀가 못마땅해하는 사원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였지만. 루한은 바지 위로 놓인 손을 꼼지락 꼼지락 대었다. 마녀가 화를 삭히듯 거칠게 숨을 들이쉬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복잡하기만했던 스도쿠잡지가 새삼 그리워졌다. 지금 이 순간 마녀에게서 벗어날수있다면 그까짓 스도쿠 3시간도 더 붙들을수 있을것같았다. 아니, 3시간은 너무 길라나.
"어떻게 좀 해보세요! 토,일,월.. 사흘후면! 바로 찍어내야 한단말입니다! 작가 옆구리를 찔러서 터트리는 한이 있어도 원고 받아오세요!"
"하하.."
거칠게 손가락을 접어보던 그녀는 짜증스러운 얼굴로 루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열변이 길어질수록 루한의 얼굴 위 시작된 장마가 길어졌다. 팀장님 그 붉은 립스틱 정말 안어울리세요, 팀장님은 그보단 코랄색이 어울릴것같아요! 하하하. 루한은 주제와 맞지않는 이야기를 당돌하게 내뱉고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 꿀꺽 삼켰다. 그치만 진짜 신경쓰인다구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루한은 일부러 곤욕스러운 표정을 잔뜩 지어보였다. 요령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했지만 사회생활 일년째만에 익힌 나름의 요령이었다. 어설프게 웃음을 만들어냈다. 마녀가 헛기침을 두어번했다.
"오늘 작가님댁에 한번 찾아가보세요. "
"네? 아, 주소가 있긴한데..."
"있긴한데?"
길게 늘어지는 루한의 말꼬리에 마녀의 눈썹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또 혼이 날까싶어 바쁘게 손을 놀려 파일 어딘가에 굴러다닐 작가의 프로파일을 찾아내었다. 아 여깄다! 거만하게 날 내려보고있는 마녀에게 서둘러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의문의 작가의 사정에 관해 설명했다.
" 저 그게, 작가님이 저얼대로! 방문이라던가 하는 것을 원하시지않는다 했거든요.. 그래서 줄곧 이메일로만 소통을 해온건데.. "
"아아 그래요?"
"네,넵"
"그렇지만 물론 그건 원고가 제때 보내졌을 때의 일이겠죠?"
"예에?"
"업무 끝나고 바로 찾아가보세요! "
헐 업무끝나고라니, 절망적인 소식이었다. 골뱅이무침과 생맥한잔! 오랜만의 깊고도 깊은 숙면! 사회생활 초짜에게는 과분한 일이었나보다. 요새 잠도 못자서 검게 죽은 내 얼굴 안보이세요? 흑흑.. 시간외 수당이라는 것에 대해 자세히 떠벌리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네에.."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자 그제서야 마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꼭 받아오세요!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하고선. 깊은 한숨이 우울함과 섞여 뿜어져나왔다. 시발, 때려치우던가 해야지.는 백조가 되기 싫어 하지못하는 말이었지만.
잘 부탁합니다ㅎㅎ 민석이는 2화정도 더 있어야 나올것같네요~ +)분량이 적은감이있네요 죄송합니다ㅠ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