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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휴대폰 액정이 다시 까맣게 변했다. 변백현에게서는 여전히 연락이 없었다. 먼저 연락해야 하나. 고개를 돌리니 밖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여섯시가 넘어 있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괜히 마른세수를 했다. 그 때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변백현이 열린 문에 기대 서 있었다.

 

 

퇴근 안 하냐?”

“...이제 할려고.”

저녁이나 먹자.”

 

 

담백한 목소리였다. 하루 종일 저를 고민하게 만든 얼굴 치고는 너무 평온해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제가 그럴 수 없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곧 자리를 정리하고는 백현을 따라 나섰다. 백현의 차 안은 어색한 기류만 흘렀다. 평소와 다르게 변백현은 지나치게 제게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 것은 식당에 도착해서 음식이 나올 때까지 계속 되었다. 백현은 아무렇지 않게 젓가락을 들고는 제 앞에 놓인 스시 하나를 입에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따라 젓가락을 들었다. 변백현은 곧 젓가락을 놓더니 제가 먹는 걸 지켜보기 시작했다.

 

 

박찬열.”

 

 

넘어가는 음식들이 꼭 모래라도 되는 것처럼 삼키기 힘들었다. 가까스로 삼키고는 시선을 마주했다. 마주한 시선은 어쩐지 공허해 보이기도 했다.

 

 

.”

파혼하자.”

 

 

백현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시 말해봐.”

파혼하자고.”

갑자기 왜 이래.”

집에는 내가 얘기 할게.”

내가 갑자기 애 가지자고 그래서 그래?”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갑자기 결혼하는 거 실감나서 그래? 아직 이삼년 있다 할 거 잖아.”

꼭 그것만 있는 건 아니야.”

꼬맹이 때문에 그래?”

“......”

내가 이만큼이나 참았으면 됐지. 아직도 부족해?”

니가 뭘 참았는데?”

니가 다른 사람 만나는 거 다 참아줬잖아.”

박찬열, 위선 떨지 마. 너 참은 거 아니잖아. 그냥 내가 어떻게 하는 결국 너랑 결혼할 거니까 방관 한 거잖아.”

그래, 너 어떡하든 내 사람 될 거니까 결혼하기 전이라도 니가 덜 갑갑해 했으면 좋겠어서 그런 거야.”

미안한데 박찬열. 내가 너한테 바란 건 그런 게 아니야.”

 

 

그 말을 하는 백현의 얼굴은 지나치게 지쳐보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까지는 알아서 가라. 너 지금 내 얼굴 보는 거 불편 할 거니까. 그리고 그는 문을 열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이 상황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갑작스런 그의 통보에 머리 속이 정리 되지가 않았다.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라 나갔다. 벌써 빠져나가는 그의 차에 급하게 택시를 잡아 따라갔다. 그는 자신의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 학교 근처의 주택가로 들어선 그는 차에서 내려서서 건물을 올려다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는데 곧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아-”

 

 

변백현의 꼬맹이였다. 그는 급하게 뛰어와 변백현의 목에 매달렸다. 그리고 변백현은 웃었다. 환하게. 내 앞에서는 보여준 적이 없는 웃음이었다. 변백현은 그를 가볍게 끌어안고는 눈을 마주하며 조곤조곤 말을 했다. 둘은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고 변백현은 그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허탈했다. 변백현의 웃음을 보는 순간. 생각해보니 열 살이 채 되기 전 만났던 그 순간부터 거의 이십년 가까이를 보며 변백현이 제 앞에서 그렇게 웃은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변백현은 항상 제 앞에서 심통 난 표정이거나 혹은 짜증을 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왜 한 번도 그걸 깨닫지 못했을까. 문득 열아홉 공허했던 백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때 너는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 너는 또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

 

 

 

 

19살이 되던 해였다. 모든 게 지겹기 짝이 없었다. 경종들과 중간종들은 저를 보이면 잘 보이기 바빴으며 집안에서는 제게 중종으로의 삶에 대해 지겹도록 떠들어 대고는 했다. 거기에 박찬열까지. 저와 다르게 바른 그 모습들은 볼 때마다 괜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더 짜증나는 건 그런 제 집안을 경멸하면서도 자신이 그 꼭대기에 있다는 것이었다. 희귀종이라는 타이틀까지 가지고 타인의 위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한 제 모습이 가장 경멸스러웠다. 무작정 서울역으로 가 기차를 탔다. 그리고 잠시 쉬어가려 이름 모를 작은 역에 내렸다. 역사 안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눈을 감았다.

 

 

 

까무룩하게 잠이 들려던 찰나 느껴지는 인기척에 눈을 떴다. 중학생은 됐을까한 꼬마였다. 하얀색 목도리를 둘둘 감아 보이는 거라곤 눈뿐이었다. 제 시선을 느낀 건지 마주해 오는 눈빛이 당돌하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대뜸 꺼낸 얘기에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형아도 가출 했죠?”

쪼끄만게 어디서 벌써부터.”

, 뭐 가출 한 건 똑같으면서.”

 

 

귀엽게 생긴 외모와 다르게 당돌한 말들에 웃음에 나왔다. 유난히 눈이 까맣고 하얀 예쁜 눈이었다.

 

 

형아는 뭐 때문에 가출 했어요?”

그냥, 너무 갑갑해서?”

난 왜 가출 했는지 안 물어봐요?”

참 나. 왜 가출했는데?”

엄마랑 아빠랑 이혼한데요. 그리고 엄마는 미국 가서 다시는 안 올 거래요. 나 보러도 안 올 거래요.”

 

 

점차 수그러든 고개와 그에 목소리마저 물기에 젖어 들어갔다. 씩씩한 척 하고 있어도 애는 앤가보다 싶었다. 조심스레 들어 올린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 있었다. 조심스레 닦아주고는 품에 안고 다독였다. 유난히 또래보다 작은 몸이었다. 괜히 안쓰러워졌다. 꼭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다독이는 손길에 소리를 내어 울던 작은 몸이 잠잠해져 확인해 보니 제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는지 깨지도 않고 자는 모습에 결국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 어린 몸을 업고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왔더랬다.

 

 

 

열아홉 철없던 나와 열 넷 어리던 도경수의 처음이었다. 그 날 이후 도경수는 내게 일종의 도피처였다. 언제든 열아홉 무모하게 집을 나섰던 그날처럼. 그리고 정확히 사년 후 제게 사랑이라는 열병을 앓고 있던 도경수를 품었다. 그리고 삼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도경수에게로 왔다.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꼭 열아홉의 그 모습과 닮아 있었다.

 

 

 

 

-

 

 

 

 

오랜만에 자취방이 아닌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풍경이 저를 반겼다. 저를 반기는 엄마의 호들갑에도 시큰둥하게 대꾸하며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뉘었다. 낮에 만난 도경수 때문에 기분이 급격히 나빠져 있었다.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헤집었다. 갑작스레 문이 벌컥 열렸다. 형이었다.

 

 

웬일이냐, 집에 다 오고.”

나가.”

뭐가 또 불만이래. 밥 먹으러 나와.”

 

 

정성스레 준비했을 엄마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 거리들을 미뤄두고 부모님은 산책을 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집에는 저와 형 둘만이 남아있었다. 그러자 형이 저를 떠보기 시작했다.

 

 

기분이 왜 이렇게 다운 됐냐.”

몰라도 돼.”

연애가 잘 안 되나 보네?”

연애를 한 적이 있어야지.”

그럼 그냥 엔조인가 보네.”

 

 

키득거리는 그 얼굴에 다시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하얗고 말간 얼굴은 꼭 제 속을 뒤집어 놓고는 했다. 그래서 더 얄미웠다.

 

 

왜 뭐가 문젠데?”

그만 만나고 싶대.”

깊은 관계 아니었음 별 문제 없잖아.”

근데 난 걔가 좋은데 어떡해.”

경수한테 남자 있는 건 알아?”

첫사랑?”

김종인 너 그 사람한테서 경수 뺐어오려면 고생 꽤나 할 거다.”

짜증나니까 꺼져.”

 

 

제가 던지는 베개를 가볍게 피한 준면이 방을 나서며 즐거운 듯 이야기했다.

 

 

진짜 뺐고 싶으면 상대방을 잘 알아야지. 경수가 왜 원나잇 했을 거 같아? 잘 생각해봐.”

 

 

그리고는 문이 닫혔다. 도경수가 원나잇을 한 이유? 그런 걸 알 리가 없었다. 자신도 그 원나잇 상대 중 하나였을 뿐이었고 그에게 반한 제가 그 관계를 연장시킨 것일 뿐. 괜한 한숨만 터져 나왔다.

 

 

 

 

 

 

+암호닉

세모네모 댱 딸기밀크 그린티 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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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잘보고갑니다! 찬열이하고백현이는파혼했네요ㅠㅠㅠ앞으로어떻게될런지기대됩니다!
10년 전
독자2
텐더입니다 찬열이와백현이 파혼하면 어케될까요???ㅜㅜ잘보구가요ㅎ
10년 전
독자3
헐 ㅜㅜ 파혼이라니 ㅜㅜㅜ 안돼요 ㅜㅜㅜ
10년 전
독자4
댱이에요ㅠㅠㅠㅠ
뭔가 예상치 못한...ㅠㅠㅠㅠ

10년 전
독자5
아그그 좋아요ㅠㅠㅠㅠ 저도 조심스레 암호닉 신청해도 될까요? 슈니발렌으로 ㅎㅎ
10년 전
독자6
파혼......찬열아 백현이를 웃게해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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