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Romance
Real
(가상, 허구가 아닌) 진짜의, 현실적인, 실제의, 실재하는
Romance
남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 또는 연애 사건.
Real Romance
(부제; 아픈 날)
EP 25. 탄소가 아프면,
“배 아파…”
배도 아프고, 온 몸에 기력도 없는 게 무언가 싸했다. 작은 병치레가 없는 대신 1년에 한번 정말, 크게 아팠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번 년도에는 단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다. 그래서 설마설마 했는데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지 못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숨만 쉬었다. 병원이라도 가야하는데 침대에 앉는 것조차 힘겨웠으니… 물론 병원도 싫어하지만.
그렇게 정신없이 자는 도중, 조심스러운 손길에 눈을 떴을 때엔 점심시간 집 근처에서 일하시는 아빠가 오셔서 약과 죽을 사오셨다.
자주 아프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아픈 걸 끝까지 말하지 않는 탓에 유난히 내가 아프면 가족들 모두가 걱정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걸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내 속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아프다는 것을 알리지도 않는 사람인지라. 만약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다면 아프다는 걸 절대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딱히 내키진 않았지만 일하시는 아빠가 자신의 점심시간에 시간을 내 와주신 것이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먹으려는데 몸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결국 나중에 조금 더 나아지면 먹겠다고 하였다.
아빠 때문에 잠시 잠이 깼지만 여전히 몸은 뜨겁고 힘은 없었다. 그렇게 천장만 멍하니 쳐다보다 점점 잠겨오는 두 눈에 또 잠이 들고 말았다.
눈을 떠보니 어느새 어둠은 찾아왔고, 방 문 넘어 미세한 빛이 들어왔다. 여전히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러다 침대 옆 협탑 위에 놓인 핸드폰이 빛을 냈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자려는데 자꾸 반짝거리는 게 신경 쓰여 결국 손만 내밀어 더듬더듬 휴대폰을 집었고, 그 휴대폰을 열었을 땐 강한 빛에 다시 닫았다. 또 다시 더듬더듬 스탠드를 켰고, 다시 한 번 휴대폰을 열었다.
수많은 전화 기록과 문자에 놀랐다. 그 사람이 태형이라는 것에도 놀랐고, 내가 태형이에게 연락하지 못했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그 안에 내용으로는,
‘돼지야 뛰어라 4분 후 출석임ㅋㅋㅋ 07:46AM - 태태♡’
‘이거 또 걱정하게 만드네.ㅋㅋ… 08:05AM - 태태♡’
‘설마 오는 길에 무슨 일 생긴 건 아니지? 08:14AM - 태태♡’
지금까지 학교출석에 신경 쓰던 내가 안 오니 걱정하는 듯한 문자가 수두룩했다. 천천히 읽고 있는데 마지막 문자에 심장이 쿵,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너희 집 앞이다 나와 09:03 PM - 태태♡’
그 문자를 보자마자 핸드폰 액정 위에 있는 시간을 봤을 땐, 이미 9시 30분이었다. 그 다음 문자가 없었던 걸 보니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당장 뛰어 내려갔을 것이고 만약 없다면 태형이 집까지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미안하다고 전화를 하려고 큼큼 거리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 상태로 전화를 하면 아프다는 게 들킬 것이 뻔했다. 결국,
‘미안해 태형아. 못 내려가. 빨리 집 가 늦었다. 09:35PM'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태태♡’
전화가 왔다.
고민을 하다 받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옆에 부모님이 있어서 전화를 못 받는다고 문자를 하였다.
‘왜 오늘 연락이 안 돼? 내가 걱정할 거라고는 생각 안했어?
그래도 내가 너 남친이잖아. 나도 하루 종일 너 연락 안 받아볼까?
그래서 지금 못 나오고 전화도 못한다고?
09:38PM - 태태♡'
울분을 토하는 듯한 문자에 그저 미안하다는 문자밖에 보낼 수 없었다. 그 문자에 태형이는 답하지 않았다.
미안한 마음에 왼쪽 벽면을 바라보며 홀로 아프고 어두운 밤을 지새웠다.
한 번에 모든 아픔이 폭발하듯, 첫째 날에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팠고, 둘째 날에는 겨우 침대에 앉을 수 있을 정도로 아팠고, 셋째 날에는 집 안에서 거동이 가능했다.
그리고 셋째 날 친언니의 도움으로 병원을 가, 열을 쟀을 때 39도가 나왔다. 그 정도로 열이 났고 아팠다.
병원에 갔다 온 후로 약간은 나은 기분이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 핸드폰을 열었을 땐 전과 다르게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태형이 마음이 이해는 가지만 조금은 미웠다. 그 마음도 잠시, 학교 점심시간에 맞춰 전화를 걸었다. 한참이고 신호음이 가다가,
- …여보세요.
시끌벅적한 소리가 나다 곧 조용해졌다. 어디론가 들어간 것 같았다.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체감 상 오랜만에 듣는 태형이 목소리에 입꼬리가 자연스레 올라갔다.
“태형아.”
- ……
“그 날은 내가 미안.”
- …너답지 않게 왜 목소리에 힘이 없어.
괜찮아진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를 귀신같이 잡아내는 태형이었다. 그 말에 순간 멈칫했지만 미안해서 그런 거라고 둘러대었다.
- …아픈 건 아니고?
“응.”
- …학교 끝나고 갈 거니까 집 앞으로 나와.
“알겠어.”
- 먼저 나와 있으면 죽는다. 전화하면 나와.
학교가 끝난 시간에 맞춰 샤워를 했다. 아픈 동안 제대로 씻지 못하고 땀만 빼서 온 몸이 땀에 쩔어 있는 기분이었다.
간단하게 선크림과 틴트만 바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태형이에게 전화가 왔고, 곧바로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교복을 입은 태형이가 우리 집 대문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태형이를 볼 생각에 마냥 들떴었는데 막상 얼굴을 보자 괜히 울컥해 뒤돌아 문을 잠그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 울면 진짜 바보가 될 것만 같아서.
내려가는데 그에 따라 태형이 눈동자도 함께 내려갔다. 태형이는 아무렇지 않은 행동이었고, 지금까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행동인데 왜 오늘따라 슬픈지.
태형이 앞에 서자, 지긋이 내려다보는 눈길에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긴 한가보네.”
“……”
‘아까 기분 다 풀렸는데. 그만 미안해하지?’
고개를 들었을 때에 바보처럼 히ㅡ 웃어주는 태형이가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웃었다.
“근데 살이 좀 빠진 거 같은데?”
“아니야.”
“…목소리도 좀 이상한데?”
“아니라니까.”
“아팠던 거 같은데?”
“아니야, 진짜.”
태형이는 팔짱을 낀 채, 허리를 굽혀 눈을 마주치려 했다. 아픈 게 아니냐며 잔뜩 의심 가득한 눈빛이었다. 어떻게든 아니라고 해야 했다. 아픈 걸 들키기도 싫었지만, 지금 와서 아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며 화낼 게 뻔했기 때문이다. 한참이고 말 없던 태형이가,
“혹시나 아프면 바로바로 말해라. 괜히 들켜서 오빠한테 호되게 혼나지 말고.
아무리 내가 너한테 장난을 많이 쳐도 너 남자친구 인 건 안 변하는 거 알지?”
“…알아.”
“가끔 기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난.”
“……”
“너라면 뭐 늘. 기대주면 땡큐지.”
그 말에 또 울컥해 허리에 팔을 감아 안겼다. 평소 같았으면 ‘이 여자가 징그럽게 왜이래ㅡ’ 라며 밀쳐내다가 꽉 안아줬겠지만 오늘은 그냥 포근히 안아주었다.
너랑 만약에, 진짜 만약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 때는 단 하루도 안 아팠으면 좋겠어.
EP 26. 태형이가 아플 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반 친구들은 물론이고 다른 반 아이들도 나에게 몰려와 ‘태형이 많이 다쳤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무슨 소리야? 태형이 다쳤어?”
“뭐야 너 여친 아니야? 왜 몰라?”
“뭐, 뭐… 몰라. 뭔 일인데?”
“김태형 어제 밤에 오토바이 타다가 다쳤대ㅡ”
쿵ㅡ,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기분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싶었다. 모든 생각 회로가 멈춰버린 것 같았다. 아니 멈췄다.
분명 어제 밤 태형이는 공부 한다고 했는데 말이다.
학교에 퍼진 이 이상한 소문은 단지 소문일 뿐이라고.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믿었다. 아닐 거라고. 하지만,
“태형이가 어제 밤에 오토바이를 타다 다쳤다네. 아는 사람 뒤에 타다가 차랑 부딪힌 모양이더라. 그 사람이 어른이고 태형이 헬멧을 껴서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너희! 오토바이 그런 위험한 거 탈 생각하지 마라!”
담임선생님 말에 소문이, 소문이 아니었다.
그 날 하루 종일 집중하지 못했다.
많이 다쳤을까, 왜 나한테 거짓말 했을까, 설마 머리로 떨어지진 않았겠지, 나를 까먹은 건 아니겠지.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학교 수업을 끝마치고 담임선생님께 찾아가 태형이가 있는 병원을 알아내 곧바로 그 병원으로 찾아갔다. 동네 작은 병원인 게, 그렇게 크게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병실로 들어서자 침대에 기대어 TV를 보고 있는, 환자복을 입은, 낯선 태형이가 있었다. 간호사 누나인 줄 알았는지 문 열리는 소리에도 쳐다보지도 않다가,
“미쳤지 김태형.”
곧바로 문 쪽을 바라봤다. 잔뜩 놀란 듯 했다. 처음에는 태형이를 보면 때릴 거라고 다짐했는데 막상 팔과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는 걸보니 아무런 말이 나오지 않았고 그저 눈물만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그 자리에 서서 울고 있는데,
“나 지금 다리 때문에 이렇게 가까운데도 너한테 못 가니까 그만 울어. 마음 아파.”
“미안해. 내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어.”
김태형은 왜 이렇게 한 마디 한 마디 아프게 하는지.
겨우 추스르고 가까이 다가가자 크게 다치지 않은 듯한 왼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어주었다.
“이번 일에 대해선 내가 할 말이 없어. …실망했어?”
“어. 탄 것도 화나고, 연락도 안 하고.”
“어떻게 풀어줄까. 근데 연락은, 이렇게 돼 버려서.”
태형이는 액정이 나간 핸드폰을 흔들어보였다. 그 까만 액정을 바라보니 어떻게 된 거길래 저렇게 까지 나갔나 싶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알아 챘는지,
“그렇게 심하게 다친 건 아니야. 정신도 멀쩡하고. 물론 팔 다리는 다쳤지만.”
“자랑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너가 너무 걱정하는 거 같길래.”
“진짜 환자만 아니였음 너 때렸어.”
“때려도 돼. 별로 크게 다친 거 아니야.”
그러면서 자신의 등을 보여주는데 목 부근에도 잔뜩 멍이 들어 있었다. 살짝 목덜미 부근을 내리자 등에도 멍이 들어 있는 게 보였다. 한숨을 쉬자, 아차 싶었던 지 곧바로 손을 잡아 ‘헿ㅡ’ 바보처럼 웃었다.
“진짜 너 때문에 늙을 거 같아.”
“…그래도 내꺼니까 괜찮아.”
“장난 치고 싶냐?”
“장난 아닌데. 그래도 예쁜데.”
아픈 와중에도 입만 살아서는.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귀여운 모습까지 보여주는 게 많이 미안하긴 미안하구나 싶었다. 또 마음이 약해져 그냥 딱 이번만.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앞으로는 절대 안 돼.”
“앞으로는 절대 안 탈게.”
“뒤에도 타면 안 돼.”
“안 타, 안 타. 아까 너 우는 거 보자마자 후회 했어. 그러니까 안 타.”
“앞으로 탄다는 소리 들리면 나 너 안 볼 거고 바로 헤어질 거야.”
“……”
“타지 마.”
“못 타겠다. 너랑 헤어질 순 없어.”
예쁘기도 하고, 괜히 진지해진 분위기에 볼에 짧게 입맞춤해주자, 또 바보처럼 헿ㅡ 웃더니,
“자기야 나 밥 먹여죵ㅡ”
저리 꺼져 이 멍청아
오랜만에 찾아온 Real Romance
독자님들 머리속에서 잊혀질만 하면 돌아온다는 그 Real Romance ㅡ
과연 몇 명의 독자님들이 기억하고 계실 지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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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뷰ㅡ
P.S 그래서 저의 닉네임이 오토방구입니다.
이 글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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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으면 최대한 고려해서 가져올게요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