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소년과 국어 소녀
ver. 탄소가 정국이와 동갑이라면?
"...한 번만 다시 설명해주라."
"너 보고 있긴 한 거지?"
반에서 수학을 가장 잘한다는 전정국에게 시험 일주일 전부터, 과외 아닌 과외를 받게 됐다. 전정국은 선생님들이 성적 확인을 하라며 돌린 성적 확인표를 보면, 언제나 독보적으로 수학은 '100'인 아이였다. 안타깝게도 국어는 - 늘 답이 없었지만. 나는 전정국과 완전히 반대인 상황이었다. 국어가 100 점. 수학은 - 뭐. 전정국 국어 점수보다 더 낮은 정도? 한 마디로 더 답이 없었다. 그래서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별로 친하지 않은 전정국에게 서로를 돕자! 라고 제안을 했는데 - 내 예상과 다르게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드린 아이였다.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동네 도서관에서 서로의 공부를 봐주는데, 함께 공부를 한 지. 딱 삼 일 째가 되는 때부터, 내가 이상했다.
제법 잘생긴 외모로 여자 애들에게 인기가 꽤 있는 아이였지만, 내 이상형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정말로. 결단코 맹세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수학 문제를 설명하면,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좋아서 미소를 짓게 되고. 덥다며 제 와이셔츠를 걷어 올리고 샤프를 무심하게 돌릴때면, 시선은 그의 단단한 팔뚝 위로 가 있었다. 공부 때문에 미쳤나 - 싶었는데, 공부를 하지 않을 때에도. 잠들기 직전까지, 아니 꿈에서 조차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정국은. 덕분에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의 수학 설명에 여전히 정신을 못차렸다. 나는.
그는 내게 보고 있긴 한 거냐며, 문제집을 제 손가락으로 툭툭 - 건드렸다. 전정국은 대답 없는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내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야, 야. 하며. 나는 순식간에 코 앞까지 가까워진 그에 정신을 차리며, 잠시만 쉬었다 하자고 답했다. 아이는 '정신 좀 차려라.' 하며, 잠깐 음료수를 뽑아 오겠다고 자리를 비웠다. 나는 그에게 대충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심호흡을 했다. 정신 차리자. 김탄소. 제발. 정신 차리자! 나는 그가 내게 알려주던 문제로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제법 빼곡한 필기를 적어뒀는데, 뭐 설명을 들었어야 이해를 하지. 스스로가 한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책상에 아프지 않게 머리를 살짝 박았는데,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나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뒤를 바라봤다. 그러자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한 채로 딸기 우유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옆 학교의 교복이었다. 남자는 내게 '아니... 이거 먹고 하면, 좋, 좋을 것 같아서!' 하며 내게 우유를 건넨다. 이게 인터넷에서만 보던 도서관 로맨스...? 귀엽게 생긴 남자 아이는 저를 가만히 쳐다만 보는 내게, 혹시 딸기를 싫어하냐며 조심스럽게 물어온다. 나는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전정국을 잊은 채로, 아니야! 하고 답하며 그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내 손은 딸기 우유에 닿지 못했다. 그 사이를 가로 막은 건 코코팜을 들고 있는 전정국이었다. 남자는 나와 전정국을 번갈아 바라봤고, 나 역시 그를 바라봤다. 너 뭐해? 하며. 그러자 전정국은 '더워 죽겠는데, 뭔 우유야.' 하며, 남자아이가 들고 있는 우유를 다시 한 번 단단히 - 남자 아이의 손에 쥐어줬다. 남자 아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뭐ㅇ."
"우유 상한다. 빨리 먹어라."
"아니. 그ㄱ"
"그럼 수고."
전정국은 가볍게 남자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는 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코코팜을 따서 내게 건넨다. '넌 모르는 사람이 주는 걸 넙죽넙죽 받아먹냐?' 하며. 나는 그가 건네준 코코팜을 받아 들면서도, 남자 아이의 손에 들린 딸기 우유를 바라봤다. 나 딸기 우유 완전 좋아하는데... 나는 괜히 모난 마음이 들어, 그에게 '남이사' 하며 코코팜을 그의 앞으로 다시 돌려주었다. 갑자기 왜 이런데 - 사람 헷갈리게. 그러자 전정국은 '안 먹어?' 하고 묻는다. 나는 지우개로 그가 풀어둔 풀이를 지우며, 대답했다.
나 코코팜 알러지 있어.
그런게 어딨냐며 내게 뭐라 하는 게 내 머릿속의 예상 시나리오였는데, 전정국은.
헐. 미안해.
하면서 코코팜을 저 멀리 휴지통까지 가서 버리고 온다. 제 옆에도 바로 휴지통이 있는데.
진짜 바보. 전정국.
*
좋아하는 애였다. 김탄소는. 하지만 같은 반에서 쭉 지켜봐온 걔는 철벽도 그런 철벽이 없을 정도로, 자신을 좋아하는 아이들을 내치기 바빴다. 그래서 쉽게 용기를 내지도 못했고. 그런데 그런 아이가 내게 먼저 함께 공부를 하자고 제안해왔다. 그 날 집에 가서 쇼핑했다. 비록 검은색과 흰색의 무지티를 다섯 개 산 게 전부였지만. 그래도 교복 안에 티라도 새거 입으면... 아. 너무 꾸민 티 나려나...?
김탄소는 수학을 알려주면 곧잘 따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다른 데에 둔 것 같았다. 내 설명이 어려운가 싶어서, 여러 가지의 풀이를 적어두는데 -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뭐하냐' 하고 다그치면, 안 그래도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미안! 하고 대답하는데. 그게 또 그렇게 귀엽다. 걔는. 오늘도 여러 풀이를 해줬지만, 잠시만 쉬었다 하자며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나를 툭하고 건드린다. 아니. 이러면 내가 미안하잖아. 나는 시무룩한 김탄소한테 음료수라도 사줘야겠다 싶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무슨 망개떡을 닮은 애가 김탄소 근처에서 딸기 우유를 든 채로 알짱거렸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그쪽으로 걸어가며, 둘 사이의 분위기를 살피는데. 김탄소가 딸기 우유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니. 안 돼. 나는 망개떡 같은 애의 말을 다 무시한 채로, 탄소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퉁명스럽게, 아무나 주는 걸 받아먹냐며 또 미운 말을 했는데. 아이는 내 말에 토라진 듯, 제게 건넨 코코팜을 내 쪽으로 밀어냈다. ...왜 안 먹지? 코코팜... 이름 귀여운데... 탄소처럼... 나는 하마터면 뱉을 뻔한 속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척 '안 먹어?' 하고 물었다. 그러자 탄소는 코코팜 알러지가 있다며, 나를 바라봤다.
...코코팜 알러지
나는 아이의 말에 반사적으로 일어나서 코코팜을 버리러 갔다. 원래는 도서관 밖의 휴지통에 버릴까 했는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망개떡이 또 올까봐. 탄소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코코팜을 버리고 왔다.
...내가 두 번 다시 코코팜을 먹나 봐라. 나쁜 코코팜.
그렇게 몇 개의 문제를 더 풀고, 이제 각자의 문제를 풀자고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슬쩍 곁눈질로 바라본 김탄소는 잠에 든 건지, 제 고개를 꾸벅꾸벅하며 졸고 있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책상에 머리를 박을 것 같은 김탄소 때문에, 책상 위로 손바닥을 가져댔다. 머리 떨어져도 안 아프게... 하지만 김탄소는 목 아프게 고개만 꾸벅일 뿐이었다. 이러고 자면 안 되는데... 나는 조심스레 책상 위에 두었던 손을 들어 김탄소가 내 어깨에 기대게끔 만들었다. 내 어깨에서 새근새근 잠 든 탄소는, 참 예뻤다. ...심장 터질 거 같아.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났을까. 망개떡은 공부를 다하고 나가는지, 나와 탄소 쪽을 힐끔거리며 문 쪽으로 향했다. 나는 망개떡을 향해 입모양을 뻥긋거렸다.
내꺼야. 꺼져.
탄소는 내 작은 달싹거림에, 제 몸을 살짝 움직였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탄소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 자. 자자. 코오 자자. 자장자장.
*
안녕하세요. 겨울 소녀입니다.
사실 원래 오늘 21화가 올라왔어야 하는데, 쓰던 중에 노트북이 업그레이드가 됐어요ㅜㅅㅜ (쓰던 게 다 날아갔다는...)
미안해요. 정말로.
그래서 어떡하지... 하다가 시험 기간인 독자 분들이 많으셔서, 단편 2개로 나눠서 시험 공부(를 빙자한 썸) 이야기를 적어보려고요.
- 사실 이것도 너무 급하게 적어서... ㅜㅅㅜ 안 오는 것보다는 나을 듯 싶어, 올려요.
꼭. 주말에 그리고 남은 평일에 더 부지런히 이야기 할 게요 - 정말 정말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