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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9 | 인스티즈

 

 

 

 

 

 

 

 

 

 

 

/

머릿속에 있는 메모장에 그 아이에 대한 것을 하나 더 추가해 적었다. '오렌지 주스를 좋아함!'
이번 역시 직접 물어보진 못 했지만 그래도 그 아이에게 조금 더 다가간 듯한 느낌이 들어 나름 뿌듯했다. 나서지 못 하고 늘 숨기만 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바보같이 얼른 몸을 피했다. 그 아이를 향한 내 마음을 혹시 들킬까 싶어서. 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입학 첫날 나와 눈이 마주치자 마치 세상을 환히 밝혀줄 것처럼 환히 웃어줬을 때부터 였을까, 아님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귀엽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였을까. 정말 내겐 그랬다. 세상도 환히 밝혀줄 것 같았고 그 아이는 귀여웠다. 정말 귀여웠는걸. 잘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 내 눈은 그 아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난 저 아이를 좋아하는구나!

말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맘에 들지 않게 소심했던 나는 쉽게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 한마디 건네지 못 했다. 어쩌다 내 쪽으로 다가와 말을 붙여볼 기회가 와도 너무 부끄러운 마음에 자리를 얼른 피하기만 바빴다. 그리고 나면 항상 후회했다. '바보! 멍청이! 겁쟁이!'

그 아이가 다른 남자애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때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내가 더 좋아하는데. 내가 많이 좋아하는데. 혹시 그 남자애가 먼저 채가면 어쩌나 무척 걱정이 되었다. 그 아이의 행동은 딱 보였다. 나 저 남자애를 좋아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티를 내고 있었다. 분명 곧 있으면 다른 주위의 아이들도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 

방금도 그랬다. 그 아이는 급식으로 나온 오렌지 주스를 먹지 않고 교실로 가져왔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는지 그 아이가 좋아하는 남자애가 그 아이의 앞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 하고 앉았다. 평소에 별로 친해 보이지도 않았는데 왜 저러지 싶었다. 순간 얼른 뛰어들어 당장 엉덩이를 떼지 못 하겠냐고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겨우 참았던 것 같다. 왜냐면 난 그럴 용기가 없으니까.

 

 


"너 이거 먹어?"

"어?"

 

 


난 그저 바보처럼 멀리서 지켜만 볼 뿐이었다. 잔뜩 불안해하면서. 안돼! 안돼! 속으로만 외쳐댔다. 내가 왜 이 장면을 목격했냐면, 오늘도 역시 그 아이를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뭐 스토커일 수준이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반도 아닌데 괜히 이 반에 내 친구를 찾는다는 핑계로 그 아이의 반에 자주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나름 안 보이게 힐끔힐끔 그 아이를 보고 있었다.

 

 


"나 이거 좋아해. 이거 나 주면 안 돼?"

 

 


귀여운 그 아이의 눈이 반짝거렸다. 갑자기 찾아와서 저게 무슨 소린지. 친하지도 않으면서 고작 오렌지 주스 때문에 친한 척을 해대는 그 남자애를 잔뜩 노려보았다. 내가 백 병이라도 사줄 수 있으니 얼른 떨어지라고 하고 싶었다. 난 말 한번 못 해봤는데. 나도 오렌지 주스를 핑계로 한번 걸어볼걸. 나중에 참고를 해야겠다.

 

 


"그래! 나도 사실 오렌지 주스 디게 좋아하는데 특별히 너 주는 거야."

 

 


하며 선뜻 그 주스를 남자애에게 건네주었다. 주지마, 주지마 속으로 외치고 있었는데 결국 그 병은 그 남자애 손에 넘어갔고 나도 모르게 입이 헉-하고 벌어졌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쉽게 넘겨줄 정도로 그 남자애를 좋아하는 건가. 금방 다시 시무룩해져 입술이 쭈욱 나왔다. 저러다 둘이 사귀면 어떡하지. 그럼 내 마음이 마구 찢어질 것이다. 마구 울어버릴 것이다.

 

 


"야, 뭐 해? 니네 반 안가냐? 이제 종 친다, 새꺄."

 

 


둘만 똑 떼어 놓은 듯 학교 드라마를 찍고 있는 모습을 허탈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정신을 깨우듯 핑계거리였던 내 친구가 어깨를 쳤고 어렵게 그곳에서 시선을 치웠다. 다음엔 내가 오렌지 주스를 사서 건네주며 말이라도 걸어봐야지! '너 이거 좋아한다며? 내가 특별히 사 왔어' 하면서.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9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9

 

 

 

 

 

 

 

 

 

 

 

-

다시 심장 쿵쾅거렸다. 살짝 벌어진 입으로 연신 '어... 어...'를 내뱉으며 어찌할 줄 모르고 방황하는 눈동자를 애써 박지민에게 꽂으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날 보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이는 박지민의 뒤로 아주 어린, 나보다 작았던 앳된 그의 어린 시절이 처음으로 겹쳐 보였다. 가끔 나와 눈이 마주치면 누구보다 깨끗하게 웃어주다 급히 모습을 피해버렸던 그때의 박지민을. 왜 기억을 못 했을까. 내가 왜 널 기억하지 못 했을까. 처음 널 보고 왜 알아보지 못 했을까.

후에 친구들에게 들은 말이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당하고 정신없이 병원에 잡혀있던 그날 그들 역시 병원 신세를 지었다고. 큰 싸움이 있었다고. 내가 받은 충격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 하는 동안, 그들도 병원에서 앓으며 벌을 받고 있었다고. 정확한 건 듣지 못 했다. 누구와 싸웠는지,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들은 원래 불량했으니까. 내게 그 몹쓸 짓을 다 하지 못 해 밀려드는 짜증을 누군가에게 풀다가 싸움이 났겠거니. 그렇게 넘겼다. 근데 그게 너였어. 니가, 니가 왜. 왜 그랬어.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는데.

 

 


"박지민."

"이제 기억나?"

 

 


실은 한 번도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었다. 그리 친했던 사이도 아니었고 게다가 같은 반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그저 혜주처럼 건너 건너 얼굴과 이름만 아는 그런 사이.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다. 끔찍하기만 했던 중학생 때의 의외인 인연들을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혜주나, 너나.

이제야 기억이 나는 그때의 그 얼굴과 이름에 또박또박 그를 불렀고 내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박지민은 더욱 환하게 웃어 주었다. 응. 이제 기억나. 자기 보호였는지 아님 그저 내 기억력이 안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살면서 하나하나 중학생 시절의 기억은 지워버렸기에 그때의 기억은 대부분이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박지민을 오랜만에 마주하고도 그에 대해 전혀 기억을 못 하고 있었던 것도 그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워낙 적었던 부분이었는데 꽤 깊은 기억까지 지워버렸으니 박지민이 남아있을 리 없었다. 그래도 박지민은 기억했어야 했는데. 내게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 꼭 기억해주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나였기에 그를 조금도 기억해줄 수 없었다.

기억이 나느냐 물어오는 박지민에게 미안함이 몰려와 차마 눈을 계속 맞추지 못 하고 푹 숙인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미안해.

 

 

 
"입이 간질 간질거려서 혼났네. 어떻게 내가 말할 때까지 모를 수가 있어-."

"미안해...."

"어, 미안하라고 그러는 거 아닌데. 고개 좀 들어봐."

 

 


차마 고개가 들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눈치를 챘어야 했다. 입사 첫날 나를 보자마자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반짝 떴을 때, 그저 기분 나빠했을 게 아니라 혹시 어디서 본 적이 있는지 잠시 생각이라도 해보았어야 했다. 처음 본 사람인데도 금방 살갑게 다가오는 박지민에게 그저 친화력이 무척 좋은 사람이구나 하며 넘겨버리지 말고 어떤 인연이라도 있는 것인지 지워버린 기억을 꺼내려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다. 내가 숨긴 오렌지 주스를 들켰을 때, 언제부터였냐고 물어오는 박지민을 조금이라도 의심했어야 했다.

 

 


"나 기억 못 해줬다고 서운하거나 기분 나쁘거나, 그런 거 아니야. 나 화도 안 났는데."

"...."

"그러니까 좀 봐주면 안 돼?"

 

 


그렇게 다정하고 나긋하게 말을 건네주면 나는 더욱 미안함이 번지는 것이다. 물론 알고 있다. 너는 지금 내게 서운하지도, 기분이 나쁘지도, 화나지도 않았다는 것을. 너는 참 착하다. 같은 학교에 다녔을 때, 비록 말 한번 섞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때도 너는 착했을 것이다. 끔찍한 상황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를 멋지게 구해주었고 지금도, 나처럼 위험에 빠져있는 어떤 사람을 구하다 꼴이 이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자신을 봐달라며 고개를 숙여 내 표정을 보려 하는 박지민을 위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럼 역시나 밝은 웃음으로 답해주고 있었다. 내 얼굴을 요리조리 둘러보며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내가 조금 힘들어진다고.

 

 


"오랜만이다-."

"응."

"큼큼. 안녕? 나는 박지민이라고 해."

 

 


살짝 쥔 주먹을 제 입으로 가져가 몇 번 목을 가다듬더니 척- 하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이게 뭐 하자는 건가, 뭐냐는 표정으로 박지민을 쳐다보면 당연하다는 듯이 그는 대답했다.

 

 


"우리 한 번도 말해본 적 없잖아. 인사도 해본 적 없고. 이게 우리 첫인사야."

 

 


박지민의 우스운 정식 첫인사로 우린 다시 그때의 중학생으로 돌아가 있는 것 같았다. 내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 처음 박지민과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때로.

하지만 그 기분도 잠시였지. 분위기는 그렇게 흐르고 싶다 해도, 내 몸은 그때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도 자꾸만 망설여졌다. 그가 내민 손을 잡아줘야 하는데. 내색은 안 했지만 아까부터 해왔던 긴장 때문에 꽉 맞잡은 두 손은 앞으로 나가지 못 하고 안에서만 꾸물거렸다.

 

 


"괜찮아. 나 다 알아."

 

 


분명 내가 굳이 말해주지 않았어도 나에 대해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혜주도 알고 있었는데. 모든 학생들 중 반에서 조용한 몇몇 아이들 빼고는 죄다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쿵저러쿵 맞지도, 맞지 않는 이야기들도 오고 갔겠지. 박지민이 나에 관한 어떤 이야기까지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무슨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어떤 것들을 겪고 있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꼭 나와 같은 학교에 다녀서가 아니라, 날 구해주었다는 굉장히 고마운 자격으로도.

아무런 뜻 없이 그냥 내밀었던 손이었는지 어색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다시 자신의 쪽으로 집어넣으려는 박지민의 손을 얼른 꽉 붙잡았다.

 

 


"와- 진짜 많이 좋아졌네."

 

 


하며 박지민은 다시금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려 살살 쓰다듬었다. 사실은 이것도, 누군가 한번 해주지 않은 처음 해보는 일인데. 악수도, 내 머리에 손을 올리는 것도. 내가 그를 기억하지 못 했다는 미안함과 나를 구해주었다는 고마움을 그렇게 보답하고 있었다.

서로 맞잡은 손을 몇 번 위아래로 흔들다 박지민은 금방 내 손을 놓아주었다. 거기까지만 해줘도 난 족해, 라는 표정으로. 그리고 그제야 제 터진 입술의 아픔이 느껴졌는지 손을 입술로 가져가 피를 쓱 닦으며 눈썹을 일렁였다.

 

 


"그러게, 왜 그랬어."

"아냐. 나 하나도 안 아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왜 그렇게 무모해."

"...."

"그냥... 경찰이라도 부르지."

 

 


안 아프긴. 아직도 붉은 기를 머금고 있는 볼은 빨리 약이라도 발라 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데 말이다. 내 말에 얼른 입술에서 손을 떼며 당당하게도 말했다. 다 큰 어른인데도 이렇게 맞아왔으면서 그때는 얼마나 다쳤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게 몹쓸 짓을 했던 그들은 병원 신세까지 지었다고 들었는데 아무리 제 입으로 싸움을 잘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여러 명이었고 박지민은 혼자였을 텐데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아무 죄도 없고 심지어 넘치게 착한 너는 왜. 니가 왜 그렇게 다쳤어야 했냐고. 그게 답답하고 안쓰럽고 미안했다. 날 발견했으면, 그 여자를 발견했으면 얼른 핸드폰을 들어 경찰에 전화를 했어야지. 왜 무모하게 몸부터 나가냔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집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못난 꼴을 만들고.

 

 


"난 무모하지 않아."

"... 뭐?"

"오늘은, 그때 니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그랬던 거고."

"...."

"난 그날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내게 밴드를 건네느라 잠시 내려놓았던 연고를 집어 박지민에게 건네었더니 받아들고는 가만히 쥐고 입을 다시 열었다. 방금까지 생글생글 웃었던 것은 어디에 가고 잔뜩 진지해져서는.

 

 


"좋아했어."

"뭐?"

"좋아했어, 너를. 참 많이."

"...."

"좋아하는 사람이, 그런 끔찍한 상황 속에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다시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박지민의 입에서 나온 말이 정말 내 귀로 똑바로 들어온 것이 맞는지. 그럼 그는 내게 확인사살이라도 시켜주듯 다시 강조해주었다. 나를 좋아했다고.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해주는데 다시금 그날이 떠오르는지 살짝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순간 정신이 멍멍했다.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좋아한다, 그것도 나를. 말이 되질 않았다. 니가 왜. 니가 나를 왜 좋아해. 어떻게 좋아해. 그냥 착각했던 거겠지. 착각이겠지. 내가 뭐라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럴 수 없다. 지금은 물론이고 어린 날의 나도, 누군가가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아이가 아니었다. 나 자신이니까.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고백도 한번 못 해봤는데."

"...."

"근데 넌 어떻게 그런 날 두고 전학을 가버릴 수가 있어."

"...."

"그럴 줄 알았으면 그냥 말해볼걸. 차이든 미움 받든, 한번 해볼걸."

 

 


자꾸만 속에선 부정을 하고 있는데 박지민은 계속해서 무어라 내게 전달하고 있었다. 정말 나를 좋아했던 것처럼. 말이 되질 않는 게 분명한데 그럼에도 자꾸 내게 자신의 감정을 때려대는 박지민 때문에 나는 살짝 흔들렸던 것 같다. 정말, 정말일까. 그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받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때의 박지민은 나랑 친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말 한번 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긴, 나도 그랬다. 별로 친하지도 않고 말 몇 번 오간 적이 없던 그 아이를 혼자 좋아하고 있었지.

분명 날은 이제 슬슬 가을로 넘어가려는 것인지 꽤 쌀쌀해졌는데 둘만이 나란히 앉아있는 우리 집의 공기는 어느새 약간 뜨겁게 올라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닐걸. 마치 그때의 수줍은 나처럼 상처가 아닌 핑크색으로 살짝 올라와 있는 그의 볼이 또한 그렇다 말해주고 있었다.

 

 


"와... 이거 되게 부끄럽다."

 

 


하며 제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누군가에게 나 당신을 좋아했다, 고백하는 사람의 모습은 이리도 순수해 보이고 예뻐 보이는 거구나. 그제야 나도 조금은 그때 박지민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생소하고 신기하고. 누군가 나를 좋아할 수도 있구나.

 

 


"아, 근데 그놈들, 너 그렇게 전학 가고 정학 먹었다? 내가! 아, 아니다... 해서 뭐 해, 걔네 얘기. 시간 낭비지."

 

 


흐르는 분위기가 쑥스러웠는지 말을 돌려보려 했으나 그 주제가 둘에게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는 무슨 말을 더 꺼내려다 꾹 막았다. 하며 잔뜩 부끄러워 붉어진 볼을 살짝 식히고 고개를 다시 떨구었다.

 

 


"나는 니가...,"

"응."

"멀쩡히 다른 사람처럼... 잘 살고 있는 줄 알았어. 그러길 바라기도 했고."

"...."

"입사 첫날 널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데."

"...."

"근데...."

 

 


멀쩡히 다른 사람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그전엔 한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그 어린 날엔 내가 남들과 똑같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건가, 난 좀 특별하게 살았으면 좋겠는데 하며 생각했던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흘러가는 삶이 얼마나 값지고 힘든 일인지. 철없는 그때는 한치 앞날도 모르고 마음대로 그렇게 떠들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후회를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만은. 그래도 만약 과거로 돌아가 다시 그때의 나에게 남들과 다른 삶을 살겠냐 물어본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뜯어말려 아니라고 대답하게 만들겠다.

갑자기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둘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축축 가라앉았다. 둘 다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고개만 바닥으로 박고는 각자 뭐라 뭐라 속으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겠지.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불쌍하고 안타까울까.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못 하고 등신처럼 살아가는 내가 불쌍할까. 문득 박지민을 알아보지 못 하고 행했던 여러 장면들이 스쳤고 그제야 조금씩 창피해지기 시작했다. 내 과거를 알고 있는데, 것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얼마나 안쓰럽고 불쌍했을까.

 

 


"많이, 힘들었지."

"...."

"많이 아팠지."

"...."

"그때 내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

"미안해."

 

 


다시 내게 눈길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고 나도 슬쩍 고개를 들어 그런 박지민과 눈을 맞추려 하면 그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튀어나왔다. 니가 왜 미안해. 그 정도면 충분했다. 더 큰일이 나기 전에 날 도와주었고. 나를 위해 복수라도 해주듯 그들을 대신 혼내주기까지 했다. 좀 더 빨리 날 발견해주었더라면, 하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 없었다. 지금도 충분히 고마운데 너무 표현을 못 해주었는지 내 앞의 박지민은 그저 이렇게 살고 있는 내가 안쓰러운 듯 잔뜩 눈썹을 내렸다.

 

 


"니가 왜 미안해. 너는 충분했어."

"...."

"고마워. 니가 아니었으면, 난 지금 여기 없었을지도 몰라."

 

 


만약 그때 박지민이 끝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상황이 생각하기도 싫은 밑바닥까지 치고 내려갔더라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이런 더럽고 무서운 세상에서 살가기가 두려워 끊어버리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불쌍한 우리 엄마 때문에 그런 생각을 밀어버릴 수 있었고. 결국 심한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그런 생각까지 했던 걸 보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끔찍하지. 그때의 기억만으로도 아직 소름이 끼치고 무서운데. 박지민이 오지 않았더라면. 그 뒤는 생각도 하기 싫다.

 

 


"그런 말하는 거 아니야! 왜 그런 말을 해!"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는 박지민 때문에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 역시 갑자기 크게 벌어진 입으로 상처가 더 터졌는지 눈을 찌푸리며 손을 입술로 가져갔다. 아직 밴드하나 붙어있지 않고 처음 봤을 때 안타까운 꼴 그대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를 뽑아와 그런 박지민에게 다가가 패기 넘치게 입술 옆에 맺혀있는 핏방울을 닦아주려다 딱- 하고 멈추었다. 이미 나간 손이 무안하게. 그래서 숨을 한번 꾹 참고 톡톡 조심스럽게 그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그런 나를 박지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했고 때문에 나는 그와 눈 한번 맞추지 못 하고 허공을 찾았다.

 

 


"나한텐 굳이 안 그래도 돼."

"... 뭐?"

"억지로 안 그래도 된다고."

"...."

"너 힘든 거 아니까."

"...."

"물론 니가 나아졌으면 좋겠지만, 힘들어하는 건 싫어."

 

 


더 이상 휴지에 피가 묻어나지 않을 때까지 톡톡 두드리다 아까보다는 조금 가까이 그에게 당겨 자리에 앉았고 내내 조용하던 박지민의 입이 열렸다. 내가 힘들어하는 게 보였던 모양이었다. 그 말에 말문이 콱- 하고 막혔다. 미안함과 고마움 때문에 더 참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했던 행동들의 이유를 다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창피하기도 했고. 혹시 내가 아직도 보통 사랑들처럼 행동하지 못 하는 것 때문에 더 빨리 오지 못 한 자신을 탓할까 그러질 않길 바랐던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 과하게, 행동하고 있었고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그걸 딱 잡아버렸다.

 

 


"아, 이제 가야겠다."

"너 아직 얼굴,"

"이제 괜찮아-.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그래도...."

"실은, 니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내게 자신의 앞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해주기에 쥐고 있던 피 묻는 휴지를 더욱 꽉 쥐며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자리를 툴툴 털고 있어났다. 아직 얼굴은 상처 난 그 채로. 아직 꼴을 다 정리하지도 않았는데 괜찮다며 갈 준비를 하길래 나도 따라 일어났더니 다시 나를 꽉 묶는 말을 뱉었다. 김태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사람이 착각을 하게끔 훅훅 들어오는 말들을 참 잘 뱉는 것 같았다. 단지 전에 나와 너 사이에 벌어졌던 일이 다시 반복되어 내가 생각난 김에 자신을 끝내 기억해내지 못 하는 내게 힌트를 주기 위해 왔다는 말일 텐데 괜히 그 말에 심장이 콩콩 뛰었다. 그리고 왜 갑자기 날 좋아했다는 말이 쓱- 다시금 스쳤는지. 더욱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 내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조금 숙인 뒤 잡을 곳을 찾지 못 하고 눈알만 굴리고 있었는데 결국 실패를 했는지 박지민의 입에선 웃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가야겠다."

 

 


창피해. 이건 박지민이 남자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뱉은 말 때문이라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겠지. 날 보고 한번 싱긋 웃어준 뒤 박지민은 현관으로 가 신발에 꾸깃꾸깃 제 발을 끼워 넣었다. 같이 따라나서며 속으로 계속해서 고민을 해댔다. 어디까지 배웅을 해주어야 하지. 딱딱하고 매정하게 현관문을 닫아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꼴도 그리 좋지 않았고.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한 번씩 돌아볼 모습인데 이대로 혼자 집까지 걸을 박지민이 슬쩍 걱정이 되었다. 옷이라도 갈아입었으면. 하지만 따로 방법이 없으니 머쓱할 뿐이었다. 내게 남자 옷이 있어, 아님 그의 옷을 빨아줄 수가 있어. 난 그저 그의 입술에 맺힌 피를 닦아준 게 다였다.

 

 


"그럼 나 갈게."

"아냐. 데려다줄게."

"어? 정말?"

 

 


신발을 다 신었는지 날 보고 똑바로 서서 인사를 하려 길래 데려다준다는 말을 뱉고 먼저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나를 따라오는 박지민을 뒤로하고 앞장을 서며 당당히 엘리베이터 버튼도 눌렀다. 박지민이 건물로 들어온 뒤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쓰지 않았는지 아직도 우리 층이었고 버튼을 누르자 문이 바로 열렸다. 열리는 문으로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발을 내밀었고 그런 나를 보며 당황을 했는지 입을 뻥긋거리며 구경만 하던 박지민은 문이 닫히려 하자 얼른 안으로 몸을 들였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

 

 


이제 많이 괜찮아졌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지난번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그런 모습을 비추었고 이미 애를 쓰는 나를 파악한 듯 보였지만 말이다. 회사를 생각하니 다시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제 박지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평소처럼 대할 수 있을까. 무척이나 신경이 쓰이겠지. 내게 자신의 앞에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지만 더 신경이 쓰일 것이다. 팀장이 나에 대해 알고 있다 말해주었을 때는, 그리 크게 신경이 쓰이진 않았는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지만 박지민은 조금 달랐다. 내 과거까지 알고 있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

역시나 별로 높은 층이 아니어서 문은 금방 열렸다. 지난번처럼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문이 열리자 나보다 먼저 박지민은 엘리베이터에서 튀어나갔고 고개를 한번 기울인 뒤 그를 조용히 따랐다. 그러다 입구에 다다르자 박지민은 몸을 돌려 날 돌아보며 길을 딱 막았다.

 

 


"여기까지!"

"더 데려다줄게."

"아냐. 이제 들어가."

"...."

"내가 애도 아니고. 혼자 갈 수 있어-."

 

 


그는 씩씩하게 웃으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 아파 보이는 박지민의 얼굴이 영 찝찝했다. 박지민의 상처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눈썹을 찡그리고 있는데 그는 씨익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나,"

"응?"

"아직도 너 좋아해."

 

 


오늘 몇 번이나 말문이 막히는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것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곧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새로 알게 된 것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내 마음을 쥐고 마구 흔들어댔다. 그저 과거형인 줄 알았지. 아직까지 박지민이 내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으리라곤 상상도, 기대도 안 하고 있었다.

 

 


"너한테 뭘 바라는 건 아니야."

"...."

"그냥 좋아한다고. 그것만,"

"...."

"꼭 말하고 싶었어."

 

 


다시금 볼이 따뜻하게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여전히 내 입에선 다른 무슨 말이 나가지 않았다. 뭐라고 해주어야 할지,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아 입을 열수가 없었다. 이젠 정말 박지민은 전과같이 대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과거에 나를 좋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소와 같은 행동이 나가줄지 의문이었는데 그 마음이 여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 지금은, 더욱 복잡해졌다.

 

 


"그럼 선배님, 월요일에 봬요-."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미 전과 달라진 나와 달리 어느새 그는 인턴 박지민으로 돌아가 있었다. 늘과 같이 내게 꾸벅 인사를 해준 뒤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이 해맑게 웃어주곤 등을 돌렸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9 | 인스티즈

 

 

 

 

-
이걸 어떻게, 어디부터 정리를 해야 하는지. 혼자 있음에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한 칸씩 느릿느릿 계단을 올랐다.

지금까지 나와 일했던, 평범한 인턴인 줄 알았던 사람이 실은 나와 아는 사이였다니. 그것도 나를 구해준 굉장히 고마운. 그리고 그는 내게 오늘 고백을 했다. 나를 좋아했다고, 나를 좋아한다고. 목이 탁탁 막혔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지. 그 어린 날엔 뭣도 모르고 나를 좋아했다 치자. 그럼 지금은. 대체 왜 나를 좋아할까. 분명 나보다 예쁘고 착하고, 무엇보다 아직까지도 치료되지 않은 이상한 것을 달고 있는 나와 달리 멀쩡한 여자들이 차고 넘칠 텐데 말이다. 그리고 박지민이라면 그런 사람들 중 꽤 좋은 사람을 스스로 고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만 해도 인기가 많은 편이었으니까. 나를 선택한 그는 실패를 한 것이다. 당장 월요일이라도 그를 보게 된다면 말해주어야지.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고, 니가 착각하는 게 분명하다고.

하며 바라는 것이 없다, 그저 그것만 말하고 싶었다, 하는 박지민의 말에 심장이 쿡쿡 찔렸다. 지금 내 마음과 같았으니까. 김태형을 향한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분명 내 앞엔 박지민이 있었는데 왜 뜬금없는 김태형이 떠올랐는지 의문이었지만 말이다. 내 의지도 아닌데 박지민이 내 속을 어지럽혀 놓을 여러 이야기들을 뱉을 때도 자꾸만 떠올랐다. 이것저것 그와 비교해가면서. 김태형은, 김태형이라면. 이러면서. 방금까지 나를 좋아한다 해주었던 박지민에게 미안한 짓을 하고 있었다. 나도 참 답이 없지. 그래도 자꾸 떠오르고 걱정되고 신경이 쓰이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박지민이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면서 김태형에게 나에 대한 감정을 바라는 것도 모순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럼 김태형은. 그는 어떻게 나를 좋아해 주겠어. 역시나 말이 안 되는 바람이었다. 그러니 바라는 것이 없다는 박지민의 말이 더욱 공감이 되는 것이다. 박지민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뱉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만약 내가 보통 여자들과 같았으면 달랐을까. 그럼 김태형은 날 좋아해 주었을까. 괜히 오늘따라 그날이 더욱 후회가 되었다. 그렇다고 박지민이 날 더 빨리 발견해주었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아니다. 그냥, 그냥. 내가 그날 그 길로 가지 않았더라면. 아님 그전부터 그들의 먹잇감으로 찍히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되돌리지 못 하는 과거를 후회하고 있었다.

 

 


"저번에 그 새끼지."

 

 


언제 나왔는지. 역시 그는 집에 있었다. 박지민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는 걸 며칠째 내게 잔뜩 걱정만 안겨주었던 김태형이 자신의 집이 아닌 우리 집 문 앞에 기대서서 물었다. 한동안 연락도 없고 얼굴도 보여주지 않더니. 꼭 이럴 때는 어떻게 알고 내 눈앞에 나타나는지 그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 우리 집 문 앞에 떡하니 서서 잔뜩 구겨진 표정을 지었다. 김태형 역시 내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박지민이 이곳에 또 왔다는 것이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다. 내가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그는 조금이라도 알고 있을까. 그래도 그의 얼굴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저 구겨져 있다 뿐이지 달리 걱정해야 할 얼굴은 아니었다. 혜주와 만나고 올 때까지도 연락이 없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려고까지 했는데 그런 수고는 덜어도 되었다.

 

 


"비켜줘요."

 

 


하지만 지금 내 상태는 김태형을 상대해줄 만하지 않다는 것을. 그가 멀쩡하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니 이제 나는 끝난 것이다. 가뜩이나 몰랐던 사실을 여럿 알아버려서 머릿속이 복잡한데 김태형과 또 감정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내게 품고 있는 김태형의 감정에 대해서도 잔뜩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었고. 불안하기도 했고. 기대를 하고 오해를 하는 것이 단지 나를 괴롭히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오늘은 더 이상 그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있고 싶어도 그와 뭐라 말을 섞다 보면 곧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걱정을 하고 있었던 김태형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가슴이 콱- 막혔던 것 같다.

 

 


"지난번에도. 원래 그래, 너?"

"나 피곤해요."

 

 


그렇게 말해도 발 한번 치우지 않고 그대로 문 앞을 막고 서있는 것이다. 어디로 밀어버릴 수도 없는데. 그저 그 앞에서 비켜줄 때까지 나 또한 똑바로 서있을 뿐이었다. 원래 뭐. 남자를 자주 집에 데려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가뜩이나 마음이 좋지 않은데 그는 자꾸만 나를 찔렀다.

 

 


"대체 표정은 왜 그렇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인데."

"상관 마요."

"걱정되잖아."

 

 


가뜩이나 울컥거리는데,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김태형은 기름을 콸콸 부어댔다. 대체 왜 내 걱정을 하냔 말이다. 내가 금방이라도 울거나 말거나. 표정이 좋거나 안 좋거나. 왜 맨날 오지랖 넓게 참견이냐고. 날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제발 내 마음 좀 흔들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그만 좀 흔들라고.

 

 


"아까 그 새끼가 이런 거야?"

"아니에요."

"봐봐."

 

 


당장이라도 툭 건드리면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참으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면 김태형은 손을 올려 내 얼굴을 들려고 했다. 날 걱정해서 그런 거라는 거 잘 아는데, 잔뜩 예민해진 마음에 나도 모르게 또 다정하게 잡아오는 그 손을 뿌리쳐버리는 것이다. 내 마음과는 다르게. 생각과는 다르게. 원치 않는 행동에 나 자신도 상처받고 내 앞에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내비치는 김태형 또한 상처를 받았을까 싶어 꽤나 깜짝 놀랐다. 그렇게 왈칵,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한다. 그러게 건들지 말랬잖아. 나 좀 내버려 두랬잖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 만지는 거 싫어하는 거 아는데."

"뭐가 미안한데, 뭐가."

 

 


그 말에 차마 손으로 다 닦을 수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콸콸, 정지 버튼이 고장이라도 난 듯.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답답했다. 속이 뭔가로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쪽이 뭐가 미안한데. 잘못한 거 하나 없는데, 도대체 니가 뭐가 미안하냐고. 습관적으로, 반사적으로 손을 쳐냈던 내가 너무 미워서. 바보 같고 한심해서 눈물이 흘렀다. 그 잠깐을 참지 못 하고. 방금까지 박지민을 위해 꽤 많은 것들을 일부러 참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렇게 참고만 있어서 답답했던 몸이 작은 것에 반응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다. 그래도 왜 하필, 왜 하필 김태형이었냐며. 예쁘고 멀쩡한 모습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말이다.

더욱 나 자신을 원망했다. 다른 여자였다면 걱정되는 마음에 닿았던 손을 그렇게 처버린진 않았을 것이다. 절대로. 왜 나는 그렇지 못 했는지, 보통 여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지 그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오늘따라 그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울지마."

"...."

"울면 못생겨지는데."

"...."

"내가 닦아줄 수가 없잖아."

 

 

 

박지민을 그렇게 보내고도 내내 불편했던 마음이 잔뜩 얹혀있었는데 거기에 더 큰 감정이 눌러앉아 어찌할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눈물을 아무렇게나 소매로 훔쳤다. 복도를 울리는 내 울음소리가 시끄러울 만도 한데 언제부터 어떻게 배웠는지 늘 그렇듯 속으로 끅끅 삼켜 소리 없이 울고 있었기에 조용함을 유지했다.

 

 


"그만,"

"...."

"그만."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훔치고 있으면 아직 뚫려있는 귀로 김태형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흐릿한 눈앞엔 역시나 부들거리며 꽉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보였다. 화가 나는 걸까. 이유를 설명해주지도 않고 무작정 울어대는 내게 화가 나는 걸까. 다 큰 어른이 마냥 어린아이처럼 울어버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님 고작 얼굴에 손 한번 가져간 것을 차갑게 쳐버리며 또 남처럼 굴어버리는 내게 화가 나는 걸까. 그가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질려 하면 어쩌지 걱정이 되었다. 그만 울어야지 참으려 해도 자꾸 그런 마음이 올라와 더욱 눈물이 새어 나왔다. 미움받고 싶지 않은데. 날 좋아해 주진 않아도 미워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는데.

 

 


"미안해."

 

 


그 한 마디가 들리고 세게 한번 더 주먹을 꽉 쥔 뒤 손이 펴지더니 몸이 김태형 쪽으로 당겨졌다. 그렇게 아까처럼 내 습관이 나가기도 전에 그 사람의 품에 안겼다. 순간 보이는 낯선 남자의 품에 눈이 번쩍 뜨였다. 방금까지 차마 다 닦아낼 수도 없이 줄줄 흘렀던 눈물도 멈춰버릴 만큼. 그리고 그는 나를 더욱 자신의 품으로 당겼다. 처음 닿는 남자의 품에, 그 온기에 정신이 아찔했다.

 

 


"참을 수가 없었어."

"...."

"안 되는 거 아는데. 조금만 참아줘."

 

 


아까 꽉 쥔 그 손은 내게 화가 나서가 아니라는걸. 그가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안심이 들자 잠시 멈췄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마음 놓고 엉엉. 그럼 그는 내 등을 느린 박자로 토닥여주었다. 토닥토닥. 날 더 자신의 품으로 가둬버리며 제 온기를 내게 불어넣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인데, 내가 지금 남자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처음 안겨 본 남자의 품은 포근했다. 그게 다른 남자도 아닌, 김태형의 품이라서 그런 건지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다. 좋은 느낌이었다. 항상 생각했던 불쾌하고 더럽기만 한 냄새도 나지 않았고 늘 살랑살랑 풍겼던 김태형의 향긋한 냄새만이 코로 들어왔다.
그렇게 몇 분을 김태형의 품에 안겨서 울어댔다.

 

 

 

 

 

 

 

 

 

 

 

 

 

 

 


 

암호닉

암호닉은 재업이 끝난 후 다시 받겠습니다.

 

통통 / 눈부신 / 태태 / 인사이드아웃 / 령아 / 초딩입맛 / 슙디 / 태형오빠 / 군주님 / 민트 / 태태이즈뭔들 / 이현☆ / 똥맛카레 / #RealV / 소녀 / 침을태태 / 김석진 / 거창왕자태태 / 개학전날밤 / 코코팜 / 슙숨 / 공감 / 태태야 / 슈탕 / 두부 / 딸기빙수 / 요정 / 카라멜 / 태형이안에♡ / 미니언 / 피카피카 / 침침 / 알라 / SAY / 이부 / 깨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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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으어어어 지민이가 여주 진짜 좋아하나봐요 근데 너무 순수해ㅠㅠㅠㅠ 귀여워ㅠㅜㅠ
7년 전
비회원126.162
ㅠㅠㅠㅠㅠㅠ 진짜 여주 너무 불쌍한것 같아요 ㅜㅜ 그래도 마음따뜻한 사람이 둘이나 곁에 있으니까 다행 ㅜㅜ
7년 전
독자2
인사이드아웃에요 작가님 ㅋㅋㅋㅋ 어서 시즌투가 시작되길 유후 완전가다돠오 진짜 본격시작이라
7년 전
비회원51.117
흐헣......지민이더 너무 설레고 태형이도 너무셀레여 .. 누굴선택하죠 ㅋㅋㅋㅋ핳ㅎ
7년 전
독자3
너무 재밌어용 하하..워허우..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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