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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4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24

 

 

 

 

 

 

 

 

 

 

할 일이 없었다. 난 이제 여자친구도 없고, 다른 여자들은 어찌 된 일인지 흥미가 안 생기고. 그렇다고 아미를 불러내 놀고 싶어도 회사에 가있으니 그저 침대에서 뒹굴거릴 수밖에 없었다. 심심해.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녀가 함께 먹어준 뒤로는 혼자 먹는 게 더더욱 싫어졌다. 맨날 내 앞에 앉혀놓고 같이 먹고 싶은데. 하지만 그녀는 회사에 가야 하니까. 그래도 그녀는 정말 나와 함께 몇 번이고 같이 밥을 먹어주었다. 그저 빈말인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그냥 한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출근을 해서 어쩔 수 없는 경우 말고는 꽤 잘 챙겨주었다. 남자를 무서워한다고 했으면서. 난 남자가 아닌가봉. 그래도 좋았다. 아니다, 조금씩 티가 났구나. 그녀는 우리 집에 들어오지 못 했다. 어쩌다 해보겠다며 들어왔을 때도 결국 못 참겠다고 숨을 헐떡이며 금방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래서 그때도 그랬다고. 저번에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도, 밀폐된 공간에 남자와 함께 있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보다 안 되는 게 많았다. 그래서 항상 밥을 먹을 때도 간단히 집에서 먹지 못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니 그녀가 해주는 음식은 아직도 먹어보지 못 했다. 분명 잘 할 것 같은데. 언젠가 꼭 먹어보리라. 

어쨌든. 할 일도 없는 백수놈은 그저 방에서 뒹굴거릴 뿐이지. 하루는 너무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밖으로 나왔다. 회사에 있는 것이 분명하겠지만 혹시나 하면서 그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혹시 만나면 안 되는 사람까지 마주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 근처는 큰아버지의 회사가 줄을 지어있었다. 그 중 한 곳에 다닌다고 했는데. 어딘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설마 그녀와 같은 회사는 아니겠지. 에이, 큰아버지 회사가 얼마나 많은데 설마 거기겠어. 얼굴을 본지 꽤 오래되었다. 큰아버지보다 더 오래. 실은 별로 본 적도 없고 말을 해본 적도 손을 꼽을 정도면서 보고 싶었다.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석호처럼 날 괴롭히지는 않았으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한번 보면, 아니다 보지 말자. 날 보기 싫어할 것이다. 

그렇게 그녀를 향한 레이더는 뿅뿅 터지게 해놓고 내 몸은 숨겨가며 근처를 계속 맴맴 돌았다. 그러다 운 좋게 한 카페에서 익숙한 모습이 보였고 몸이 얼른 움직였다. 회사에 있는 줄 알았더니 밖에 있었네. 역시 나오길 잘했어. 이렇게 잘 맞아, 우린. 

 

 


"김태형씨?" 

 

 


하지만 입꼬리가 금방 뚝하고 떨어지는 거지. 혼자 있거나 아님 회사 동료, 물론 여자, 와 함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은 웬 시커먼 남자 새끼였고 빠르게 내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그림이지. 난 어디 하나 건들지도 못 하게 했으면서 다른 남자 새끼랑은 마주 보고 앉아있는 것을 보니 화가 나서 미치겠는 것이다. 다 엎어버리고 싶고. 웃으며 뭐 하냐고 반갑게 인사를 하려 했던 방금 전 기분과는 달리 시궁창으로 떨어져 휩쓸려가고 있었기에 일하는 중이라는 그녀의 말도 무시한 채 마구 밀어붙여 결국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래도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끌고 나오고 싶었던 것을 순간 드는 생각 때문에 참아냈다. 

내게 화를 내며 다다닥 뱉어대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씩 열이 가라앉고 있었다. 또. 이번엔 조금 더 빨리 정신이 깼다. 전엔 분명 후의 일 따위는 상관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 내가 화가 나는 것이 중요하지 앞의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든 난 관심 없다고. 하지만 저번처럼, 이번 역시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급하게 들었다. 매번 다른 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내게 질린다고 하면 어쩌지, 내가 싫다고 하면 어쩌지. 그 여자들은 항상 지금과 같이 화를 내는 내게 질린다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만 좀 하라고, 이거 집착이라고. 그녀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미움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앞뒤 생각 안 하고 그녀에게 차가운 눈길을 쏘아주었건만 곧 눈에 힘을 풀고 자책을 하고 있었다. 나 방금 잘못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내게 일을 하고 있다며 몇 번이고 말해주었는데 그땐 그 말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꽤 중요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걸 망쳐버렸다고 날 미워하면 어쩌지. 금방 미안하다고 하는 것도 웃겨서 얌전히 다물고 있는 사이 그녀는 다시 카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그 남자 놈과 얼굴을 마주할 거란 생각에 그녀를 붙잡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내게 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그녀를 눈으로 잡을 뿐. 

어차피 그녀를 찾으러 나온 것이었고 좋게는 아니었지만 그녀를 만났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사과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잠자코 그녀를 기다렸다. 안이 훤히 다 보이는 창문 쪽에 딱 달라붙어 대체 뭘 하고 있나 감시라도 하고 싶었지만 또 그녀가 화를 낼 것 같아서 얌전히 기다렸다. 아니, 조금 거짓말이고. 안 보이게 힐끔 힐끔 그 안을 훔쳐보았다. 난 일을 해본 적이 없으니 저게 뭘 하는 건지는 모르겠고 하지만 일을 하는 건 맞는 것 같았다. 서로 열을 올리며. 중간중간 그녀의 미간이 찌그러지는 것을 보았고 앞에 남자가 있다는 사실에 참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마주하고 있는 건데 내가 그렇게 방해를 해댔으니, 그녀가 화를 낼 만도 했다. 병신이. 

벌써 시간이 꽤 되었는데도 그 일이란 건 끝날 줄을 몰랐다. 우리 아미 힘든데. 다시 한번 고개를 빼꼼 안을 쳐다보았고 이제 다 끝난 것인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끝났으면 얼른 나오지 뭐 또 할 말이 저렇게 많아. 일어서고도 서로의 입이 몇 번 움직였다. 어, 아미가 고개까지 숙인다. 허리 접히겠네.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고개를 저렇게 숙이나 싶었다. 뭘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슬쩍 째려주고 이제 나오겠지 문 앞으로 향했다. 

 

 


"남자친구?" 

 

 


왜 니가 나와. 키만 멀대같이 큰 그 남자 놈이 먼저 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 눈이 마주쳤길래 잔뜩 째려주었더니 눈을 피하지 않고 땡그랗게 뜨며 함께 받아주고선 이내 입을 열었다. 

 

 


"니가 뭔 상관인데." 

"상황 재밌네. 우리 형 어쩌나." 

 

 


기분 나쁘라고 뱉은 말이었는데 오히려 그놈의 기분 나쁜 웃음 때문에 내가 더 짜증이 났다. 우리 형은 뭐고. 뭐가 재밌어 이 상황이. 넌 이 상황이 재밌을지 모르겠지만 난 굉장히 더럽거든. 나보다 키도 커. 자존심 상해. 내 앞에 섰는데 딱 봐도 내가 더 작아 보였다. 엄청 차이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조금, 아주 조금 더 컸다. 그녀가 이걸 보면 안 되는데. 얼른 꺼졌으면 했다. 

 

 


"좋아하면 더 아껴주고 이해해줘야지.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면 상대가 힘들어합니다. 그저 상대가 끄는 대로 오냐오냐, 질질 끌려오다 다리가 다 까져 상처투성인 것도 몰라주고 여전하다면 언젠가 그 끈을 잘라버리는 거라고. 상대가 분명 잘못한 행동이라도 이해해주고 용서해주고 그래야 더 깊어지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이치에 맞지 않는 짓까지 용서해주라는 건 아니고, 아." 

"뭐?" 

"또, 또." 

 

 


하며 제 입을 때려 더 나오려는 것을 막았다.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저 새끼가. 이 맥반석같이 생긴 게 가뜩이나 답답한 내 속을 더욱 긁어놓았다. 뭐 어쩌라고 그래서. 더 심한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아미가 그렇게 고개를 숙였던 사람인데 괜히 그랬다가 아미를 괴롭힐까 걱정이 되어 그러지도 못 했다. 운 좋았어, 너. 한 대 때리려는 것도 참았다. 

 

 


"그쪽은 다음에 또 안 봤으면 좋겠고." 

 

 


하며 또각또각 재수 없는 구두 소리를 내며 내게서 멀어졌다. 피차일반. 나도 너 같은 거 다신 보고 싶지 않아. 아미 앞에도 다신 나타나지 마. 가는 그놈 뒤로 그르릉 속을 긁으며 째려주곤 퉤- 침을 한번 뱉어주었다. 

금방 따라 나올 것 같았던 그녀가 나오지 않기에 다시 창문으로 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더니 언제 또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었다. 아직 할게 남은 건가. 덕분에 나는 다시 자리에 박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들어가면 방해되겠지. 꽤 중요한 것이라고 했다. 몇 분이 지나고서야 그녀는 드디어 카페를 나섰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그녀의 앞에 섰지만 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는지 처음엔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곧 굳히더니 아무 대답 없이 날 지나쳐갔다. 화났다. 그녀의 뒤를 졸졸 따랐다. 이름을 불러도 여전히 등만 보여주고. 화가 났냐 물어도 따라오지 말란 말만 하고. 그녀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그 앞에 멈춰 막아섰다. 그녀가 그놈에게 허리가 곧이라도 접힐 듯 숙인 이유는 나 때문이라고. 툭- 하고 미안하단 말을 던졌다. 난 몰랐어. 미안해. 순간 욱해서, 난 몰랐어. 

항상 궁금했다. 여자들은 대체 왜 내 잘못에 대해 한번 더 물어보는 걸까.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아님 니 죄를 니가 알렸다, 확인하려 그러는 건지. 내가 미안하다 사과를 해도 항상 돌아오는 것은 그 말이었다. 뭐가 미안한데? 그녀 역시 그렇게 물어보았고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을 고했다. 내가 멋대로 중요한 자리에 끼어들어서, 그래서 그녀는 화가 난 것이다. 내 대답을 듣고 눈썹을 한번 찡그리길래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싶었지만 이내 표정을 풀더니 짧게 한숨을 쉬곤 다음부턴 그러지 말라고 말했다. 알겠어. 다음부턴 안 그럴게. 그러니까 화내지 마. 다행히 화가 풀린 것인지 따라가도 된다는 허락을 해주며 그녀는 내게 슬쩍 웃어주었다. 그녀는 웃는 얼굴이 예뻤다. 입이 귀까지 찢어지며 환하게 웃어준 적은 없지만 그것도 예쁠 것이다. 언제 한번 꼭 보고 싶은데.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더 좋고. 앞으로 그녀를 화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로 인해 늘 웃게 해줘야지. 

 

 

 

 

 

 

 

 

 

그녀의 번호를 따냈다. 만족스럽게 '태형오빠♥'라는 이름으로 저장도 해두었고. 설마 바꾸진 않았겠지? 그때 생각했다. 만약 그녀와 연락이 닿을 수 있다면 그렇게 심심하지도, 애가 타지도 않겠구나. 잔뜩 화가 나는 마음에 멋대로 그녀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던 그날도 그녀에게 어디냐 전화 한 번만 했으면 그렇게 일이 커지지도 않았을 거라고. 단지 회식이 있었고 시간이 늦어서 데려다준 것뿐이라는 것도 후에야 들었다. 뭐, 오해는 풀렸지만 그것도 별로 마음에 들진 않았다. 지가 뭔데 데려다줘. 생긴 건 꼭 주물러놓은 떡 같았다. 어쨌든,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얼른 얻어왔다. 하지만 생각을 해보니 또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남자를 무서워한다고 했는데. 혹시 전화를 하는 것도 그녀에겐 힘든 일이지 않을까. 내 번호를 저장하기 위해 통화목록에 들어갔고 적혀있는 것은 혜주, 엄마, 혜주 밖에 없었다. 그 혜주란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여자라는 냄새를 풍기는 이름이었다. 그 분은 차차 알아가면 되는 것이고, 그래서 걱정이 되었다. 뭐, 남자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좋았지만 말이다. 그럼 나와도 연락을 하지 못 한다는 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얼굴만 붉힐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안 되는 거구나. 그럼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지 않을까. 반대쪽에서 내 목소리가 튀어나오지 않으면 괜찮지 않을까. 어떻게 해서라도 통화를 하고 싶었다. 난 그녀와 같은 회사에 다니는 것이 아니니까 서로 떨어져 있을 때 핸드폰을 붙잡고 그녀의 목소리라도 듣고 싶다고. 그러다 내가 그녀를 찾으러 밖에 나왔다는 것을 들켜버렸지만 말이다. 그래도 딱 잘라 안 된다고 하지는 않았으니 나름 긍정의 뜻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녀의 회사가 어딘지도 궁금했고 이대로 보내기도 싫었고 더 같이 있고 싶었지만 더 이상 함께 걷지 못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에게 정신이 팔려 있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혹시라도 정말 마주칠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녀의 번호는 땄으니까. 

그 뒤로 한 번은 전화가 먼저 와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 종일 내가 핸드폰만 울리길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 줄 알아.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잡고 있었다. 혹시 벨소리가 울리길래 그녀일까 했지만 늘 아니었고, 그걸 받지도 않았다. 내가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고 있는 동안 그녀에 연락이 오면 어쩌나 하면서. 그래도 그녀에겐 한 번의 문자도, 전화도 오지 않았다. 그래, 쉬운 일이 아니겠지. 어쩌면 남자와 통화를 하는 게 내가 첫 번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위로를 해가며 참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위로를 하면서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거지. 난 당장이라도 그녀를 만나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참을 수가 없었다. 여느 날과 같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편의점에 들렸고 그날따라 삼각김밥이 끌리지 않았다. 그 길로 바로 편의점을 지나쳐 그녀와 함께 갔던 음식점으로 갔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거지. 두려움 반, 설렘 반. 뚜르르- 통화연결음이 끝도 없이 이어질수록 두려움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했다. 결국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음성이 흘러나왔고 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김태형이 아니라고. 혹시 바빠서, 아님 화장실에 다녀와서 핸드폰을 못 봤을 수도 있으니까. 다시 한번 숨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만약 이번에도 받지 않으면... 그럼 뭐, 포기해야지. 그녀는 통화하기가 힘든 거라고. 

또다시 통화연결음만 주야장천 울리길래 말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뚝- 그 소리가 끊겼고 그와 동시에 내 숨도 함께 끊겨버렸다. 숨소리가 그렇게 큰 것도 아니고 숨은 쉬어도 될 텐데 괜히 꽉 참아졌다. 그녀가 된다고, 괜찮다고 할 때까지 난 입을 꼭 다물고 있겠다고 했으니까. 난 약속을 지키는 착한 어른이다. 입이 근질근질, 빨리 뭐라도 말하고 싶었는데. 예를 들어, 넌 통화하는 목소리도 예쁘다던가. 목구멍이 간질거리길래 젓가락을 쥔 손을 방방 흔들고 있었는데 그녀는 금방 내게 말을 해도 된다, 허락해 주었다. 꽤 오래 걸릴 줄 알았더니. 

별말은 없었는데. 정말 별말 없었다. 그 흔하던 좋아해, 사랑해, 보고 싶어, 쪽쪽쪽도 없었다. 근데 왜. 왜 이렇게 심장이 콩콩 뛰는지. 그 어떤 통화를 끝마친 후보다 기분이 붕붕 떴다. 

 

 

너는 어쩜 목소리도 그렇게 좋아? 

 

 

 

 

 

 

 

 

 

전에 한번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의 첫사랑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처럼 어느 한쪽에 남아 따라다닌다고. 물론 나에게도 해당이었다. 애틋하고 아쉽고 곁에 없어도 항상 행복했으면 좋겠고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그런 존재. 솔직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첫사랑, 하면 떠오르는 사람. 남아있는 감정은 없었다. 그냥 문득 생각나면 조금 아플 뿐. 그 당시 내게 꽤 소중했던 사람이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고, 내 모든 걸 다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그녀는 결국 나를 떠났고 그 아픔은 꽤나 오래갔다. 그리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사랑하던, 날 사랑해주던 사람들도 평생 함께 있어준다 꼭 그렇게 말하더니 금방 떠나버렸고 그럴 때면 항상 같은 눈빛을 보내오던 것. 집착 덩어리인 괴물, 같다고. 역겹다고 무섭다고 질린다고. 그런 그녀는 꼭 내게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게 아니었다. 끝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으니. 그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자주 가던 클럽에 가도 찾아볼 수 없었고 학교도 나오지 않았다. 나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서 하늘로 승천해버렸나 했었다. 

 

 


"어...?" 

 

 


그녀와 비슷한 사람이다. 아니 그녀가 맞는데. 너무 지루했던 까닭에 사람 구경이나 하자, 거리를 여유롭게 걷고 있었고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정말 살짝 흘린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녀가 맞다는 생각에 순간 정신을 놔버리고 그 뒤를 따랐다. 사람들에게 치여 어깨가 빗나갔지만 얼른 잡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보고 싶던 사람도 아니었고 내게 상처만 남겨준 여자였는데. 그래도 아직 한편에 조심스럽게 남아있는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아님 날 그렇게 버리고 가더니 잘 살고 있나 싶은 마음이었을까. 보통 날 버리고 떠나간 다른 여자들이었다면 내 앞에 나타나건 말건 침 한번 뱉어주고 자리를 떴을 것이다. 어차피 이제 내 사람도 아닌데. 하지만 그녀는 조금 달랐다. 그녀가 내 첫사랑이어서 그랬을까, 내게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누나." 

"... 어...?" 

 

 


사람들 속으로 자꾸 숨어들어가는 그녀를 겨우 따라잡았다. 내가 제대로 봤지. 누나가 맞았다.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누나는 그대로였다. 생긴 것도 그대로. 아, 스타일은 조금 달라졌네. 그래도 그녀는 예뻤다. 아미보다는 아니지만. 

나를 알아봤는지 살짝 입을 벌리더니 이내 표정을 잔뜩 구기길래 잘못 붙잡았구나 싶었다. 그래, 그녀는 날 떠났었지. 내게 온갖 모진 말을 뱉어대며 떠났었다. 병신. 아무 생각도 없었지. 그저 반가운 마음이었다. 

 

 


"회장님, 먼저 가계세요. 아는 동생인데, 오랜만이라. 금방 갈게요." 

 

 


온 신경이 누나에게 쏠려있어서 차마 보지 못 했다. 옆에 웬 두꺼비같이 생긴 한 아저씨의 팔짱을 끼고 있었던 것을. 방금까지 날 보며 구겼던 표정은 어디 가고 금방 생글생글 웃으며 그 두꺼비를 차에 태워 먼저 보냈다. 뭐지, 누구지. 아빠인가. 그러기엔 딸이 너무 이쁜데. 머릿속을 돌돌 굴리며 무슨 사이일까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호기심, 그뿐이었다. 몇 년 전, 누나가 날 떠났던 이유처럼. 대체 왜 남자 새끼랑 같이 있어, 다 죽여버릴 거야.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두꺼비 아저씨가 왜 누나 옆에 있나 궁금해서. 난 화도 나지 않았다고. 

 

 


"뭐야, 너." 

"... 어?" 

"뭐냐고. 너 아직도 그러고 다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너 아직도 나한테 미련 남았냐? 왜, 또 깽판이라도 쳐보지? 저 새끼는 누구냐고, 또 주먹 한번 날려봐." 

"누나 난," 

"아, 거의 다 왔는데. 너 때문에 저 새끼 못 잡으면 옛정이고 나발이고, 다 뒤집어 버릴 줄 알아." 

"누나." 

"뭐. 할 말 있어? 근데 어쩌냐. 난 다 했는데. 누나가 지금 좀 바쁘거든? 우리 태형이 착하지. 얌전히 있자." 

"...." 

"나 이거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따라오지 마. 존나 소름 돋으니까." 

 

 


다시 내 곁에서 멀어졌다. 떠나갔다. 내가 쫓아가지도 못 하게 빨리. 그때처럼 내게 침을 뱉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하. 지금 뭐가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진 거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고 정신이 멍멍했다. 난 그럴 생각 없었는데. 그냥 난 반가웠을 뿐인데. 안녕,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그 몇 마디만 나누고 싶었던 것뿐이었는데. 누나는 끝까지 내게 상처만 주었다. 끝까지. 내가 뭘 잘못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지. 왜, 대체 왜. 다시 그런 소리를 들어야 했지. 누나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 했고, 알고 나서도 아무런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누나가 기억하는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저런 오해를 멋대로 해버리는 걸까. 누나에게 난 정말 괴물로 남아버린 걸까. 아님 난, 진짜 괴물인 걸까. 

 

 

 

솔직히 집으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멍한 기분으로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더니 어느새 집 앞이더라. 아니, 그녀의 집 앞이더라. 순간 먼저 든 생각은 아미였다. 겁이 났다. 그녀에게도 내가 괴물로 남으면 어떡하지. 날 떠나면 어떡하지. 항상 버림만 받아왔다. 결국, 결국은 다 버렸다. 항상 내 곁에 있어 줄 것처럼 나만 사랑해줄 것처럼 그랬으면서. 누나 또한 그랬다. 나만 사랑할 거라고, 오직 나뿐이라고 그랬으면서. 그때의 표정은 기억도 나지 않았고 아까 전과 같은 표정만 둥둥 떠다녔다. 다른 사람들도, 결국은 다 똑같은 표정을 보이며 날 버리고 떠나갔다. 내 곁엔 지금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모두가 떠나갔다. 그런 나 자신을 곱씹을 때마다 내 속은 잔뜩 뒤틀렸다. 만약 그녀마저 내 곁은 떠난다면, 이미 잔뜩 구멍이 나 억지로 꿰매놓은 내 상처들이 그녀의 한방으로 갈기갈기 찢어져 더 이상 꿰맬 수도 없게 될 것만 같았다. 상상만으로도 이렇게 아프고 쓰린데. 그녀만은 절대, 내 곁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보고 싶었다. 언제부터 잔뜩 애를 쓰며 나와 눈을 맞춰주려 했고 날 보며 웃어주었다. 그런 그녀가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벌써 퇴근 시간이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걱정이 밀려왔다. 혹시 무슨 일이 생겼나, 아님 저번처럼 다른 남자와, 아니 그런 생각하지 말자. 그러면 안 돼. 그러면 그녀마저 내 곁을 떠나갈 것이다. 참아야 돼. 어디에 있는지 대체 뭘 하는지 당장 전화라도 하고 싶었다. 아님 저번처럼 무작정 찾아헤매든 뭐라도 하고 싶었다. 속이 너무 타서 가만히 앉아있기도 힘이 들었으니. 하지만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모습이 보이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이제부터 참으면 되겠지. 전처럼 그러지 않으면, 그녀는 떠나가지 않겠지. 꾹 참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속은 더욱 까맣게 타들어갔지만 그녀가 떠나가는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그러니 참아야지. 가만히 기다려야지. 

결국 못 참고 현관 앞으로 자리를 옮겨 다시 몇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참자고 다짐했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몇 마디 튀어나갔다. 지금이 몇 시냐고, 일찍 일찍 좀 다니라고. 자신을 기다렸냐는 그녀의 물음에 살짝 울컥했던 것 같다. 지금 내 속이 얼마나 아픈지 아냐고. 얼마나 타들어갔는지 아냐고. 이미 내 속은 다 타버려 재가 이리저리 날리고 있었다. 그래서 또 몇 마디 꺼내놓고 말았다. 이러다 있는 말, 없는 말 다 꺼내버리겠구나 싶어 얼른 몸을 돌렸다. 얼른 집으로 숨어버려야지. 그녀가 안전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봤고. 신경 안 쓰려고 했지만 또 남자를 데려온 것이 아니라 혼자 돌아온 것도 보았으니. 실은 니가 또 남자를 데려왔을 때 과연 참을 수 있을까 솔직히 걱정됐거든. 

무슨 일이 있느냐 묻는 그녀의 말에 속이 다시 흘러내렸다. 어떻게 알았어. 나 지금 너무 아파. 니가 떠나갈까 봐 걱정도 되고. 그럴까 봐 참고 있는 것도 너무 힘들어. 나 지금 너무 힘들어. 하지만 밖으로 꺼낼 수가 없었고 마저 발을 움직였다. 

 

 

 

한숨만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배고파. 오늘 한끼도 못 먹었는데. 하지만 속으로 뭘 밀어 넣어도 곧 다 게워낼 것 같았기에 뭘 먹을 수도 없었다. 그저 마른 배를 몇 번 문지를 뿐. 속이 너무 뜨거웠다. 머리도 복잡했고. 그대로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옷을 벗지도 않고 그대로 그 앞에 서서 내리는 물줄기를 맞이했다. 이러면 마치 비를 맞는 것 같잖아. 그날, 우산 하나 들지 않고 그 작은 손으로 트렁크를 끌며 빗속을 걸었을 때 같잖아. 두 눈을 감고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고 있으니 그래도 조금은 가라앉는 것 같았다.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았고. 때려대는 물줄기가 따갑고 차가웠지만 내 속을 식혀주기에는 딱 적당했다. 

닫지 않은 욕실 문밖으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고, 그러든 말든 받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소리는 계속해서 내 귀를 때려댔고 순간 혹시나 그녀일까 싶었다. 내가 받지 않는다고 평생 먼저 전화를 걸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방금 전에도 그녀를 지나치며 먼저 집으로 들어오는 못된 짓을 했지만 내일이면 다시 그녀를 보며 웃을 생각이었는데. 만약 내게 화가 났다면 싹싹 빌 생각이었는데. 얼른 욕실을 빠져나와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전화가 절대 아니었던 거지. 화면 속 날 부르고 있던 사람은 그녀가 아닌, 석호였다. 몇 년째 연락 한번 안 하더니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게 뻔하잖아. 아직도 서로 연락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랐지만 누나가 낮에 있었던 일을 말한 거겠지. 속이 다시 뒤집어지고 열이 올랐다. 뭐라고 했을까. 김태형, 그 미친 새끼가 아직까지 정신 못 차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고. 또 남자 새끼랑 있냐고 앞뒤 생각 않고 뛰어들어 괴물 같은 짓을 했다고. 끊어질 줄 모르고 자꾸만 동동 떠있는 그 이름이 역겨웠다. 내 벨소리가 이렇게 시끄러웠었나. 쾅. 딱딱한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된 핸드폰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졌다. 울리던 벨소리가 사라지자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타고 있는 내 속은 여전했다. 애써 가라앉혀놓은 것인데. 젖은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좆같아. 병신 같아. 

그리고 애써 조용하게 만들어버린 집안도 다시 시끄러워지는 것이다. 쾅쾅- 전화 안 받는다고 집 앞까지 찾아온 건가. 하지만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아미였다. 무슨 일 있냐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문을 쾅쾅 두드렸다. 저럴 애가 아닌데. 한 번도 저런 적이 없었는데. 뭐가 그렇게 급한 건지. 근데 나 지금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이미 기대가 한번 꺾여버려서. 자꾸만 문을 두드려대길래 일단 문을 열긴 했지만 말이 그다지 달콤하게 나가지 않았다. 아까 내가 핸드폰을 던져버리는 바람에 났던 큰 소리 때문에 달려온 듯싶었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한 걸음에 달려온 것 같은데 왜 그런 그녀에게 다정해질 수 없었는지. 상관 말라고. 모진 말이 나갔다. 

문을 닫기 위해 시선을 떨어뜨렸고 그 사이 차가운 바닥에 딱 붙어있는 그녀의 맨 두 발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내 속은 더욱 무너졌다. 사내새끼가 병신같이 울면 안 되는 건데. 왜 자꾸 울컥하는지. 넌 날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대체 왜 그런 꼴로 날 위해 무작정 달려온 건데. 오늘 하루 너 때문에 나 많이 아프고 힘들었는데 미워할 수도 없잖아. 넌 분명 날 더 아프게 할 뿐인데, 나에게 해로운 독일 텐데 니가 그러면 난 너를 끊어버릴 수가 없잖아. 

완전히 마음이 무너지기 전에 얼른 문을 닫았다. 그 차가운 바닥에 그녀를 더 세워두고 싶지도 않았고. 너 그러다 감기 걸려. 문을 닫자마자 바닥에 주져앉았다.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니가 자꾸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게 맞는지 아닌지 그것만 확실해지면, 그때가 되면 내가 먼저 그녀를 떠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내가 버림받는 것은 아니니까. 그녀에게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그녀 역시 날 좋아하지 않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그녀가 날 떠나지 않고 기다려줬으면. 내 마음이 확실해질 때까지만. 하지만 니가 자꾸 그러면. 그러면 난 어떡해. 아파도 쓰려도 힘들어도 자꾸 곁에 있고 싶으면 어떡해. 

 

 

니가 정말 좋아져버렸나 봐. 

 

 

 

 

 

 

 

 

 

보고 싶었지만, 당장 그녀를 눈앞에 데려다 놓고 질릴 때까지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녀의 앞에 나타날 수가 없었다. 너만 보면 자꾸 아파. 너만 보면 자꾸 힘들어.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은 마냥 달콤하고 좋은 것인 줄로만 알았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하지만 그녀는, 잠깐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심장이 욱신거리며 아려왔다. 이러니 내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겠냐고. 평소 내가 느껴왔던 감정들과 전혀 다른 감정이었는데 내가 그녀를 좋아한다, 쉽게 인정할 수 있었겠냐고. 이제라도 알아차려서 다행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그렇게 다행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걸 알아버린 지금의 나는,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 맞나 혼란스러웠을 때보다 더욱 머리가 복잡했으니까.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그 사실은 별로 복잡하지 않았다. 단지 그 누군가가 '그녀'라는 것이 문제였지. 좋아하는 사람을 내 곁에 두고 싶은 건 당연한 거잖아. 더 깊어지고 사랑해주고 싶은 건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그녀는 그럴 수 없으니까. 날 좋아해 주지도 사랑해주지도 못 하니까. 그래서 이제 와 그녀에 대한 내 마음을 접어보려 해도 그것마저 쉽지가 않았다. 한 번 깨달은 뒤로는 더욱 상태가 심각해질 뿐 약간의 망설임도 들지 않았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니가 좋았다. 

핸드폰만 쥐고 살았다. 전화를 할까 말까. 딱 한번, 그때를 빼고는 그녀가 먼저 내게 전화를 걸어 준 적이 없었으니 별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솔직히 조금 기다렸다. 먼저 해주길. 하지만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힘든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보고 싶었다.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 보고 싶은데 차마 보지는 못 하겠는 거, 그런 기분 알아? 너무 보고 싶은데, 막상 보면 내가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 같고 속이 너무 아프고. 그래서 연락 한번 못 해보고 회사에 가있다며 안심하곤 그녀의 집 앞에서 한참을 서있던 것도 벌써 몇번이었다. 그렇게 그녀를 눈 안에 담지 못 하고 며칠이 흘렀다고. 안 보이면 좀 덜해질 줄 알았더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더 애틋하고 더 보고 싶고 더 안고 싶고. 그저 속으로 그녀를 그릴 뿐이었다. 아, 보고 싶다. 

주말이 되었고 오늘은 회사도 안 갈 테니 집 앞에 서있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한 채 그저 자리에 앉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밥은 먹었으려나. 함께 밥을 먹은 지도 오래되었는데. 그러고 보니 너 요즘 약속 안 지켜. 혼자 안 먹게 같이 먹어준다고 했으면서. 그래서 나 요즘 밥도 잘 못 먹고 살만 쪽쪽 빠져간단 말야. 들리지도 않을 텐데 애먼 벽을 뚫어보며 투정을 부렸다. 그러다 갑자기 들리는 낮은 저음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우리 건물은 방음이 그다지 좋지 못 했다. 조용한 밤에는 옆집에서 도어락을 여는 소리마저 현관문을 뚫고 들어왔으니. 밤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은 너무나도 고요했고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무슨 소리가 들리긴 했다. 그녀의 목소리와 어긋나는 어떤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목소리를. 몸이 벌떡 했다. 누구지. 택배기사인가. 아님 경비 아저씨.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도 자꾸만 드는 의심이, 저번에 우리 건물까지 왔던 그 남자라든가 아님 또 다른 소개받은 남자라든가, 것도 아님 그때 보았던 맥반석이라든가. 당장 뛰쳐나가 무슨 상황인지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안돼. 참아. 그녀가 싫어할 거야. 의심하지 말자. 괜한 걱정하지 말고 정말 택배기사나 경비 아저씨라고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베란다에 지키고 서서 누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지 보고 있었다. 택배 기사든 경비 아저씨든, 아니면 좋겠지만 다른 남자든. 하지만 곧 내 바램은 땅으로 곤두박질 처졌다. 시간이 흘러도 나오지 않길래 불안감은 더해만 갔다. 그냥 찾아가 볼까. 그러던 중 누군가 우리 건물에서 나가는 것이 보였고, 꽤나 익숙한 뒷모습이었다. 확실히 기억해, 저 뒷모습. 생긴 게 꼭 주물러놓은 떡처럼 생겼던 저번에 그놈. 확실했다. 그놈을 보자마자 더 참지 못 하고 몸이 멋대로 움직였다. 문을 열고 집 밖을 나서자마자 탁탁 느린 발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의 주인은 그녀일 거라, 생각이 들었다. 그 새끼가 대체 뭐라고. 배웅까지 해준 거야? 대체 그놈이랑 집에서 뭘 했지, 왜 집까지 찾아왔지. 난 한 번도 아니, 딱 한 번 들어갔던 그녀의 집에 대체 니가 왜 어떻게 들어갔지. 대체 넌 뭔지. 당장 뛰쳐나가 그놈의 면상을 마구 쳐버리건, 느리게 걷는 건지 아님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건지 얼른 올라올 생각을 않는 그녀를 끌고 올라오건 하곤 싶었지만 그녀가 내 앞에 나타나 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꾹 참고 참았다. 지금 당장도 화가 나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누르고 눌렀다. 그녀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으니까, 버림받고 싶지 않으니까. 난 그녀를 좋아하니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건들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길래 그런 생각도 싹 들어갔다. 왜 그러냐고, 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이내 그녀는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펑펑. 또 살짝 깜빡하는 바람에 내가 그녀를 만져서 우는 건지, 아님 아까 간 그 새끼와 무슨 일이 있어서 우는 건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그저 내 앞에서 무너지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기가 힘들었다. 참아야 하는데, 저번처럼 그녀를 두고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던가 해야 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그녀의 팔을 잡았기 때문에 우는 것이라면 더욱더 그래서는 안되는 건데. 제 몸에 있는 물을 죄다 뽑아낼 것처럼 소리 하나 없이 끅끅 대며 울고 있는 그녀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꽉- 내 품에 가둬버렸다. 저번처럼 또 발버둥을 치거나 날 마구 때려대거나 할 줄 알았더니 잠시 울음을 멈추며 놀라는 것 말고는 괜찮아 보였다. 그래서 더 꽉 품에 안았다. 내가 널 얼마나 안고 싶었는데, 내 품에 얼마나 담고 싶었는데. 어디도 가지 못 하게 꽉 안아주었다. 

토닥토닥. 그녀는 내 품에서 몇 분을 얌전히 울어댔다. 차라리 소리라도 내지. 속으로 삼켜냈다. 그러면 안 좋은데. 더 꽉 안아주었다. 울고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되는 건데, 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은은하게 찌르는 그녀의 향기가 좋았다. 며칠간 앓고 앓으며 아팠던 것은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좋았다. 그 아픔마저도 좋았다. 내가 널 이렇게 좋아하는데. 너만큼은 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제 다 운 것인지 몸의 흔들림도 흐느낌도 사라졌지만 그녀를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저 이대로 시간이 딱 멈춰버렸으면. 난 그래도 좋으니까, 지금 순간이 너무 좋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야속하게도 놓아달라며 날 자꾸만 밀어댔다. 싫어. 이러고 조금만 더 있자. 

약속이 있다고 했다. 무슨 약속. 갑자기 웬 약속. 무슨 약속인지 모르겠지만 나랑 같이 있자. 나랑 계속 같이 있자. 뭐 때문에 운지는 모르겠지만 난 너 울게 안 할 테니까 나랑 같이 있자. 하지만 그녀는 그런 내게 모진 말을 뱉어댔다. 내가 왜 그래야 하냐고.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게 왜 그런 말을 해. 대체 왜 그런 말을 해. 방금까지 너무 좋았는데. 분위기도 너도 다 좋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왜 그런 말을 해. 멋대로 안아버린 내게 화가 난 걸까. 자꾸만 놓아달라는데 그러지 않고 더욱 당기기만 했던 내게 화가 난 걸까. 지금까지 아팠던 것도 상관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는데 그녀의 말 한마디로 다시 심장이 쿡쿡 찔렸다. 

 

 


"가, 그럼. 가버려." 

 

 


더 이상 그녀를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대체 무슨 약속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넌 정말 날 조금도 좋아하지 않아, 맞지. 그녀를 두고 집안으로 들어와버렸다. 

 

 


병신 새끼. 그렇게 들어오면 어떡해. 사과를 했어야지. 멋대로 안아버려서, 놓아주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어야지. 순간 너무 아파서 그녀를 두고 등을 보이고 말았다. 날 미워하면 어쩔 거야, 이젠 다시 보기 싫다고 하면 어쩔 거야. 마구 날 때려댔다. 

그녀는 아까 약속이 있다고 했으니 나갔을 것이고 이따 오면 사과를 해야지 그녀를 기다렸다. 또 이곳저곳 찾으러 다녔다가 그녀가 화를 낼지도 모르니까.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때 뚝뚝- 밖을 보니 어두웠던 하늘에선 빗방울을 짜내고 있었다. 비 온다. 바로 밖으로 향했다. 현관에 서서 손바닥으로 빗방울을 받아냈다. 우산은 가져갔으려나. 내 우산은, 그녀의 집에 잘 있겠지. 그녀의 우산 또한 우리 집에 놔두고 싶었지만, 그녀가 제 것이라며 가져가버렸다. 나중에 준다니까 꿋꿋이 들고 갔다. 내가 자신의 우산을 가지고 있는 것도 싫었을까. 아니야. 너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말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손바닥만으론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발짝 발을 더 내어 온몸으로 빗방울을 받아냈다. 시원해. 실은 일부러 그런 것도 있었다. 저번에, 머리가 하도 뜨거워서 물을 마구 끼얹던 날. 물론 시끄럽게 울린 소리 때문에 뛰쳐나왔겠지만. 신발 하나 제대로 신지 못 할 만큼 날 걱정해주었다. 혹시 이번에도, 그래주지 않을까. 내게 아무리 화가 났어도, 내가 불쌍해서 안타까워서 내 곁에 있어주지 않을까. 그 차가운 비를 몸으로 받아냈다. 

그리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아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고 자신을 기다린 날 보며 인상을 조금 구겼다. 내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는 건가, 아님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하지만 그녀는 내게 화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말만 짧게 툭툭. 뭐가 잘못된 거지.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와 함께 애써 참으며 엘리베이터를 타주는 것을 보면 그렇게 화가 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내 표정이 좋지 못 했다. 자꾸만 붉은 제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자신이 밉지도 않냐고. 어떻게 니가 미워.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분명 아까 내게 모진 말을 했지만, 며칠 동안 날 아프게 했지만 난 니가 밉지 않은데. 그건 니 잘못이 아니니까. 내가 다 잘못한 거니까. 난 그녀를 미워할 수 없다. 자꾸만 더 좋아지는데 내가 널 어떻게 미워해. 그런 그녀는 또한 내게 내 잘못이 아니라고, 다 자기 잘못이라고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파하지 말라고. 이거 봐. 이런 너를 내가 어떻게 미워하겠어. 

 

 


"그리고 나는요." 

 

 


그 뒤로 그녀는 잠시 말이 없었다. 너는. 그리고 너는 뭐. 대체 무슨 말이었는지 결국 끝까지 다 뱉지 않고 그저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그 말만 남긴 채 자신의 집으로 숨어버렸다. 너는 내게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하지만 그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게 고맙다고 했어.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쓰윽- 모든 것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화가 난 게 아니었어. 날 미워하는 게 아니었어. 내 걱정도 해주었고. 그럼 된 거라고 생각했다. 

 

 

너만은 날 떠나지 마. 

 

 

 

 

 

 

 

 

 

또, 또 너야. 벌써 세 번째야. 아미 옆에 있었던 게 벌써 세 번째라고. 내가 본 것만 벌써 세 번째야. 제정신을 잡을 수가 없었다. 참자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몸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면 아미가 싫어할 거라는 것을 아는데, 멈출 수가 없었다. 아미 친구라고, 아미를 좋아한다고. 그 말을 듣자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니가 뭘 해? 난 한번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 하고 참고 참았던 말이었는데, 니가 뭔데 그런 말을 해. 화가 미친 듯이 끌어 올랐고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냐고, 남자친구라도 되냐고 묻는 그 자식의 물음에 입이 딱 막혀버렸다. 그래, 난 그녀에게 아무것도 되지 못 하니까. 남자친구도 뭐도 아니니까. 그저 내가 그녀를 너무 좋아하는 것뿐이니까. 그녀는 나를 좋아하지도 않으니까. 그녀는 단지 내가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내 곁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그걸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 더욱 입을 열수가 없었다. 

 

 


"아무 사이도 아니면서 함부로 참견하지 마요. 아미 힘들게 하지도 말고." 

 

 


마지막으로 내 속을 세게 할퀴고는 그녀의 말림에 그 남자는 자리를 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 맞는 말이야. 나와 그녀는 아무 사이도 아니다. 난 그녀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저번처럼 내게 화를 낼 것 같았던 그녀는 오히려 내게 아무 말도 없었다. 이번엔 정말 크게 화를 낼 것 같았는데. 그래서 걱정이었다. 이미 통제하지 못 하고 행동이 나가버렸지만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왜 함부로 참견하냐고, 자격 없는 짓을 하냐고.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내게 화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왜 화가 나지 않는 건데. 그만큼 난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넌 이제 내 전부가 되었는데, 난 너에게 아무것도 아닌 귀찮은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일일이 화를 내기도 귀찮고 질리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 그녀는 다시 눈앞에서 사라졌다. 

지민이라고, 그렇게 불렀다. 내겐 항상 김태형씨 그렇게 불렀으면서. 그렇게 친해진 거야, 그렇게 친했던 거야. 난 니가 괜찮아질 때까지 언제고 기다릴 수 있었는데, 넌 결국 그때가 되면 그 남자한테 갈 거야? 난 이제 아무것도 아니고 그 남자가 좋아진 거야? 안 되는데, 그러면 안 되는데. 너만은 날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니가 그러면 난 정말 무너질지도 몰라. 너무 아파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문득 연필꽂이 꽂아두었던 커터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그녀는 날 안타깝고 불쌍하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그녀에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지만, 지나가다 눈에 띈 거지가 조금은 불쌍해 보이는 것처럼, 그런 감정은 남아있겠지. 주윽- 그어버린 금을 비집고 빨간 액체들이 쏫아올랐다. 빨갛게 물들어가는 손바닥이 따끔거렸지만 그녀를 생각하며 느꼈던 아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날 버리고 떠나갔을 때 받을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동정이라도, 그런 거라도 괜찮았다. 그런 걸로 그녀를 내 옆에 잡아 둘 수 있다면 이따위 따가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붉은 피가 차오르는 손바닥이 벌벌 떨렸다. 아까부터 몸도 뜨거웠던 거 같고 잠깐 정신이 아찔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죽으면, 그녀를 다시 못 볼 텐데. 

그녀는 내 손을 붙잡고 기겁을 했다. 그래, 성공한 거지. 반강제로 들어오긴 했지만, 내쫓지는 않았으니까. 얌전히 그녀의 집에 내 자리를 만들고 앉았다. 남자를 무서워한다고 했으면서, 만지는 것도 싫다고 했으면서. 그런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내 손을 잡고 손수 치료까지 해주었다. 난 그저 날 걱정해주는 그녀의 표정으로만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내 손을 열심히 주무르고 있는 그녀를 아낌없이 눈에 담았다. 떠나지 않으면 안 돼? 내 옆에 있어주면 안 돼? 날 버리지 않으면 안 돼? 이미 빨간색이 아닌 하얀색으로 덮여진 내 손을 여전히 잡아주었다. 니 손은 언제나 따뜻했어. 그 손을 영원히 잡고 싶었는데. 빨간 피를 벌컥벌컥 쏟아냈던 내 손바닥보다 가슴이 더욱 아팠다. 난 니가 너무 좋은데. 

또 한번. 내게 물었다. 자신을 좋아하냐고. 나 까짓 게 뭐라고, 아니 너는 내 전부야. 전부가 되어버렸는걸. 나는 너를 좋아해. 하지만 너는 내가 그저 불쌍할 뿐이겠지. 부모도 없는 고아 새끼에, 제 감정 하나 컨트롤하지 못 해서 몸에 상처까지 내는 내가 병신 같고 불쌍하겠지. 

 

 


"좋아해요." 

 

 


순간 내 귀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지금,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설마 내 생각을 읽은 건가. 널 좋아한다고.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데.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뭐...?" 

"좋아해요.." 

"...." 

"내가 김태형씨를 좋아한다고. 김태형씨 때문에 얼마나 속이 타고 아픈지 알아요?" 

 

 


그녀는 똑똑- 맑은 눈망울에서 눈물을 떨구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지. 너 방금 나를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해준 게 맞지. 정신이 멍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거 꿈은 아니겠지. 당장이라고 볼을 세게 꼬집어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내 손을 쥐고 있는 제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김태형씨가 나 안 좋아해도, 난 상관없어요. 내가 꼭 곁에 있어줄게요. 그러니까 다시는... 다시는 이러지 마요." 

"...." 

"나는 다른 사람처럼 절대 안 떠날게요. 김태형씨 곁에 꼭 있어 줄 테니까," 

"다시 말해봐." 

"네?" 

"다시 말해줘." 

"...." 

"나 좋아한다고. 맞지? 그렇게 말했지, 방금." 

 

 


정말 꿈이 아니겠지. 그러길 바랐다.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곁에 꼭 있어주겠다고. 내가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었는데. 얼마나 바랐는데. 몸에 열이 더욱 오르고 속이 터질 것 같았다. 너무 좋아서. 벅차서. 나 너무 힘들었는데. 니가 떠날까 봐, 그 남자한테 갈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그런데 니가 날 좋아한다고 말해줬어. 날 떠나지 않는다고 말해줬어. 지금 내가 얼마나 기쁜지 알아? 니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여전히 고운 그녀의 얼굴에서 마지막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렸고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미야." 

"... 네." 

"정말 나 안 떠날 거야? 나 안 버릴 거야?" 

"...." 

 

 


그녀는 또 한번 아까보다 더욱 세차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하- 속이 내려앉았다.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지. 너란 애를 어떻게 하면 좋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워서. 니가 너무 좋아서. 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와, 나 지금 꿈꾸는 것 같아. 어떡하지. 너무 좋아서, 니가 너무 좋아서." 

"...." 

"나 너한테 못된 짓 할 것 같은데." 

"네?" 

"나 지금 너한테 키스할 거야." 

"...." 

"해도 돼?" 

 


나도 모르게 자꾸 뱉고 있었잖아. 근데 왜 몰랐을까. 사랑스럽다고. 나는 너를 사랑해.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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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사망)ㅜㅠㅠㅠ작가님 항상 잘보고있어요ㅜㅠㅠ글 내용하고 필력하고 전부 넘나 제취행인것 항상 좋은글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줍..
7년 전
비회원126.162
작가님 글 읽을때마다 마음이 먹먹해져요 ㅠㅠㅠㅠㅠㅠ 둘이 가지고있는 상처가 서로를 보듬어 주고 이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네요.. 태형이 시점에서 보니까 생각보다 많이 아픈 사람인 것 같아서 너무 맴찢이었어요 ㅜㅜ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더운데 힘내세요 ㅜ ♥♥
7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ㅜ후.. 이제 완결을 향해 달리고 있네요.. 언제나 다시봐도 너무 좋은것..ㅜㅜ
7년 전
독자3
작가님 인사이드아웃이에요 ㅠㅠ 진짜 작가님글은 봐도봐도 재탕해도 꿀잼
7년 전
독자4
오늘 1화부터 쭉다봤어요! 진짜 재밌게 훅훅 봤네요. 소재가 완전 취적..♡ 작가님 혹시 지금은 암호닉 안받으시는 상태이신가요..? 다음편두 기대하고있을게요!!ㅎ
7년 전
독자5
헐 작가님 1화부터 쭉 보고 있었던 독자입니다! 암호닉은 안 받으시는 거 같아서 신청 안 하고 있었는데 항상 여주의 시선으로 태형이를 바라보다가 태형이의 시선으로 여주를 바라보니 서로가 서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어서 참 좋은 거 같아요. 그나저나 이제 태형이랑 여주랑 행쇼만 할 일이 남은 거 같아서 기쁘네요 ㅠㅠ 얼마나 바래왔던 순간인지! ㅜㅜ 감동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작가님!
7년 전
독자6
와 진짜 설레서 미칠 거 같아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와 빨리 다음편 보고파여...
7년 전
독자7
1화부터 정주행 하고 왔어요 이 작품은 정말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닌 것 같아요 탄소의 마음이 이해가 가서 어떻게 보면 나랑 조금 비슷해 보여서 더 몰입을 하면서 본 것 같아요 이런 글을 왜 이제야 봤을까 후회도 되지만 이제라도 본게 어디예요 그쵸? 히ㅣ히 빨리 다음편 보고 싶어요 정말 작가님 글 너무 대박인 것 같아요 너무 글 잘쓰세요 정말로 이 작품은 몇번을 봐도 여운이 남을 것 같은 그런 작품이예요 이런 글 써주셔서 감사해요♥
아 그리고 혹시 암호닉 신청이 가능하다면 [태태다잉태태]로 신청할게요! 늦었지만 좋은 밤 되세요

7년 전
독자8
함부로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내용의 글이라 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거 같아요 태형이의 시점으로 보니 여주의 시점이랑 다른 느낌이 확 들어요
여주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신 못하는 것도
예뻐해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 하는 것도 다 안쓰러워요ㅠㅠ BGM이랑 글 내용이 너무 잘 어울려서 글 읽는 내내 이입이 더 잘 된 거 같아요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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