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최승철 01 .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던 때는 입시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신입생들의 입학식과 새로 오신 선생님들을 소개한다며 강당으로 이동하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친구들과 고삼인데 꼭 가야하냐며 불평을 했었다. 새로 온 선생님이라고 해봤자 다 늙은 아저씨나 아줌마 뿐이겠지, 하고 심드렁하게 앉아있던 내 등을 퍽퍽 치던 친구의 손 길에 고개를 들었을 땐 검은셔츠를 입은 왠 잘생긴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새로온 체육 선생님이자 내 남편인 최승철이었다. 남편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우리학교로 발령을 받아왔다. 26살이라는 젊은 나이와, 잘생긴 외모는 사춘기 여고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엔 충분했고 남편의 등장과 동시에 강당은 난리가 났었다. 모두가 남편을 쳐다보며 제 각각 상상에 빠져 있을때 나는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친구들아, 우리 고삼이야. 고삼이 체육은 무슨. 그러나 우리의 남편은 남 달랐다. 당연히 자습을 줄 줄 알았던 체육시간은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운동장으로 모였다. 비가 올 때면 강당으로, 이론수업 역시 운동장 두바퀴는 돌고 나서. 그 당시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체육시간에라도 운동을 해야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나 뭐라나. 남편이 오고나서 우주충하던 체육시간은 180도 달라졌다. 물론 나만 빼고. 원래 운동을 싫어하기도 했고, 못하기도 했으며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남편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관심이 없을 수 밖에. 어떻게든 남편에게 한 번이라도 잘 보이려고 아둥바둥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딱히 그와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었다. 그런 나를 보고 친구들은 공부만 하더니 드디어 정신이 나간게 분명하다고 했었지. 그랬던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우리들 사이에서 남편을 칭하던 별명이 있었는데 '승행설 (최승철선생님의 행동은 설렌다)' 이라고 그 행동에 나 역시 넘어가고 말았다. 나는 평소에 생리통이 심한 편이었는데 가장 심한 날 체육수업이 든 게 화근이었다. 조퇴를 하고 싶었지만 쉽게 조퇴를 시켜주지 않는 담임덕에 수업을 꾸역꾸역 듣다가 체육수업이라도 보건실에서 쉬려고 교무실로 남편을 찾아갔었다. 그러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남편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고 쉬는 시간은 끝나가고 통증은 점점 더 해가는 상황 속에서 나는 속으로 남편을 욕하며 하염없이 그를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포기하고 교실로 돌아가려던 내 어깨를 다정하게 잡아오던 손길에 나는 멈칫했다. 드디어 왔다, 망할놈.
"칠봉이 왜? 선생님한테 볼 일 있어?" 하지만 막상 남편에게 생리통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러워 우물쭈물 거리며 대충 배가 아프다고 둘러대곤 보건실에 있어도 되냐고 묻자 남편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도 목례를 하고 교무실을 나가려는데 남편의 손에 붙들린 팔 덕분에 그러지 못했다.
"그... 보건실가서 핫팩으로 배 따뜻하게 하고, 아, 초콜릿. 선생님 먹으려고 했는데 너 먹어. 아프지 말고. 잘가" 내 손에 초콜릿을 쥐어주며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나는 말 없이 두 볼을 붉혔다. 보건실 침대에 누워 있을때도 계속해서 생각나는 남편의 모습에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아이씨... 망했어. 그때부터 아마 남편을 좋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