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라인
임현식X이창섭
[식섭] As sweet as sugar
131113 ~?
w. 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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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졸린 눈을 비비며 습관처럼 카페로 향하였다. 모처럼의 쉬는 날 이였지만 이렇게라도 한번 가주지 않으면 가장 마음이 불편한건 자신이였다. 예전에는 항상 아무곳도 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몇 분이라도 눈에 담지 않으면 그 날 하루가 불안하고 초조한 곳이 되어버렸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긴 한숨이 바람을 타고 흩날렸다.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않는 가로수 길을 걸으며 꽃샘추위에도 굳건하게 싹을 틘 새싹도 한번 칭찬해주고 오늘은 카페에서 무엇을 시켜야 할지도 생각해보며 발걸음을 천천히 늦추었다. 하도 많이 가다보니 이젠 메뉴판 없이도 목록들을 달달 외울 지경이였다. 지난번에 먹고 의외였던 화이트 카라멜모카를 먹을지, 나오기 전 일훈이 추천해준 망고 바나나 스무디를 먹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걷고있는데 벌써 시야에 카페 간판이 보인다. 진작에 집에서 생각 좀 하고나올 걸. 뒤늦은 후회를 하며 창섭은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카페 문에게 화풀이를 하듯 세게 열었다.
쾅-
돌아오는 것은 카페의 문과 벽이 만나 나는 마찰음이 아닌 굳게 닫힌 문과 창섭의 머리와의 낭랑한 하이파이브 소리였다. 귀찮음까지 떨쳐버리고 나왔더니 쉬는 날 이였다니. 난생 처음으로 아메리카노를 원샷 하였을 때보다 더 씁쓸해진 창섭은 문을 한번 째려보곤 머리를 매만지며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아, 아니다.맨날 카페만 허겁지겁 들렸으니 오늘은 느긋하게 동네구경 한번 하고가자 생각하며 옆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창섭의 무의식적인 버릇이였다. 몇년 안된, 누군가와 같은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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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향초 냄새가 방안에 가득찼다. 내 인생에서의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고 난 후부터 여태까지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사둔 향초들에게 계속 불을 붙이다 보니 은은해야 할 향은 진흙처럼 뭉쳐져 도리어 불면증에 각성제 같은 역할을 한 셈이 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키곤 집안 구석에 널부러져있던 모자를 꾹 눌러 쓴 체로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에 보는 햇빛에 눈이 시렸다. 조금 어색한 길에 두리번 거리다 이내 눈과 귀를 닫고 복잡한 신경을 억누른 체 로 천천히 발걸음을 내딛였다. 아직 다 낫지않은 왼쪽 발목이 시큰거렸다. 주변의 빈 벤치를 찾아 앉아 발을 약하게 동동 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도하게 꼭꼭 쌓아만 두었던 감정이 흔들어 둔 콜라뚜껑을 여는 것 처럼 펑하고 터져나왔다.
아이씨, 갑자기 왜 이런데.
옷 소매로 눈을 계속 비벼봤지만 한번 터져나온 것은 멈출 줄을 몰랐다. 꼴에 지나가는 사람신경을 쓴다고 입을 틀어막고서 소리없이 울었지만 새어나오는 탄성과 회의감은 창섭, 자신이 느끼기에도 매우 큰 소리였다.
"저기요. 왜 우세요?"
"음, 혹시 커피 좋아하세요?"
정신없이 울다보니 가까이 오는 발소리 조차 못 들었다. 내가 우는 모습을 누가 보다니. 나름 남자랍시고 새끼발가락이 문지방에 찧여도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던 창섭은 이 순간이 매우 당황스럽고 민망하였다. 고개를 숙여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남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체 급하게 일어섰다.
"아니에요. 저 커피, 못 마셔요."
"이번 기회에 한번 드셔보실래요? 방금 갓 내려서 만든 아메리카노인데. 이런 기회 흔치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와중에 창섭의 손에 온기가 가시지 않은 따뜻한 머그컵을 쥐어주는 남자 때문에 결국 착잡한 표정으로 컵 속의 까만 커피를 쳐다보았다. 아 진짜 커피 마셔본 적 없는데. 어쩔 수 없이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에 커피를 입에 한가득 털어놓았다.
"아뜨뜨, 너무 써"
"많이 써요? 달콤한 걸로 줄 걸 그랬나?"
생각보다 진하게 강한 쓴맛에 두 눈에 그렁그렁하게 눈물이 맺혔다. 혀에 계속 남아있는 쓴맛에 창섭이 정신을 못 차리자 재밌는 듯 눈이 사라질 정도로 웃는 남자다. 자신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자지러지게 웃는 남자가 괜히 미워 컵을 벤치에 내버려두고 집까지 뛰어왔다. 다친 발목이 다시금 차가운 바람에 아파오긴 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지도 몰라. 그와 창섭의 첫 만남은 카라멜마끼아또같은 달콤함보단 아메리카노처럼 쌉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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