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눈만 깜빡이며 가만히 서있자 전정국 씨는 내 뒤로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어쩐지 뜨거워진 주변 공기를 식혀주는 바깥바람에도 내가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전정국 씨가 내게 귓속말을 하듯 속삭였다.
"안 나갈 거예요?"
나가야죠. 나가야 되는데...
"오늘도 여기서 자고 갈 건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고 문을 얼마 남기지 않아 다시 그에게 손목이 잡혔다.
내가 그를 쳐다보자 그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고 가도 되는데. 뭐, 물론 자게만 둘 순 없겠지만."
"그게 무슨..."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거?
난 그의 손을 뿌리치고 그대로 집까지 뛰어 들어왔다.
이마도 뜨겁고, 볼도 뜨겁고, 입술도..... 미쳤나 봐. 뭐라는 거야.
침대까지 갈 힘도 없어 식탁 의자에 앉아 천천히 생각을 뒤짚어보기 시작했다.
저번에 여기서 딸기 먹었었는데. 그때도 마지막에 분위기 이상해져가지고... 다음에 딸기 먹자고 할까? 아니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귤이라고 했으니까...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가끔 날 놀리는 건 진짜 별론데 잘 보면 좀 츤데레란 말이야. 아닌 척 신경 쓸 거 다 써주고. 해줄 거 다 해주고. 우리 엄마가 나를 더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나랬는데 저 사람이 그런 타입인 것 같기도 하고.
누가 사귈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사람과 키스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랬는데... 뭐야. 난 이미 했잖아. 아닌가, 그건 뽀뽀인가.
일기에 적힌 것만 보면 날 되게 좋아해 주는 것 같긴 한데. 만약에, 진짜로 내가 저 사람과 사귀게 되면 저 일기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근데 만약에 사겼는데 나에 대한 마음이 식어버리면. 나만 손해 아니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식탁 위로 엎드렸다.
나 진짜 어쩌면 좋아.
똑똑.
짧게 울렸다 사라지는 저 소리는 분명... 창문이다.
산발이 된 머리를 손으로 빗어넘기며 걸어가 창문을 열자 바로 앞에 전정국 씨가 서있었다.
"왜요?"
미치겠다. 나 지금 저 사람 입술밖에 안 보여.
자꾸 그의 입술 쪽으로 내려가려는 시선을 애써 위로 올리는 이름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국은 뒷머리를 긁적이다 입을 열었다.
"저, 언제까지 이렇게 존댓말 할 거예요?"
"네?"
"아니... 우리 분명히 예전에 말 놓기로도 했고, 그쪽 이사 온 지 한참 됐는데 동갑끼리 존댓말 하는 것도 좀 웃기고. 심지어 내가 좋아한다고까지 했는데 계속 이렇게 존댓말 쓸 거냐고요."
"전 아직 존댓말이 편한데요."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앞으로 반말 써요. 아니, 반말 써."
신신당부하듯 검지를 이름이의 얼굴에 흔들거리는 정국을 보던 이름이 별안간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요?"
"노력은 해볼게요."
진짜 반말이 하고 싶었는지 눈에 잔뜩 힘을 준 정국의 얼굴에 웃음을 멈출 줄 모르던 이름을 보며 정국은 결국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한참을 웃던 둘은 웃음소리가 잠잠해질 때쯤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흔들었다.
"잘 자요. 아니, 잘 자."
"... 너도."
창문을 닫고 나서야 밀려오는 간질거림에 이름이는 소파 위로 철퍼덕 엎어졌다.
친구한테 반말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름이는 사라지지 않는 간질거림에 손을 가슴 위로 올리며 생각했다.
어쩌면 나도, 저 사람을 좋아하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후..... 할 수 있어. 성이름! 너는 할 수 있어!"
아, 여기 방음 안 된댔지.
이름이는 급하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화면에 떠있는 석진의 번호. 통화 버튼 위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는 이름이의 손가락.
"이제 진짜 해야 돼. 이게 벌써 몇 분째야."
이름이는 눈을 꼭 감고 화면을 꾹 눌렀다.
눈을 살며시 뜨자 조용한 방 안을 울리는 통화 연결음에 침을 꿀꺽 삼키던 이름이 생각보다 빨리 들리는 석진의 목소리에 놀라 그대로 사레가 걸려버렸다.
캑캑대는 이름이의 목소리를 들은 석진이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묻자 겨우 진정한 이름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혹시 오늘...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잠시 말이 없던 석진은 그래요. 라는 답과 함께 저녁에 잠깐 들리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고 이름이는 전화가 끊겼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오늘따라 시간은 왜 이렇게 안 가는 건지.
봤던 드라마를 또 보고, 재미없는 예능 프로도 보고, 오랜만에 가요 프로그램도 챙겨보며 시간이 가길 기다려도 왜 한 시간이 하루처럼 천천히 가는지.
한참을 놀고, 먹고, 자기 바쁘던 이름이는 저녁이 다가오자 갑자기 빠르게 느껴지는 시간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요. 저는 석진 씨의 고백을..."
거울 앞에 앉아 오늘 석진에게 할 말을 연습해보기도 하고.
"이게 낫나? 저게 낫나? 그냥 하지 말까?"
작은 액세서리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고, 또 골랐다.
잠시 후에 내려오라는 석진의 문자에 이름이는 가볍게 심호흡을 몇 번 하곤 정국이 준 향수를 옷에 뿌렸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단을 내려가자 보이는 석진의 차에 이름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석진의 차 앞에서 이걸 차를 타고 얘기해야 할지, 그냥 여기서 얘기할지 고민하던 이름을 보던 석진이 차에서 내려 이름이에게 다가왔다.
"타요."
"잠시만요."
자신에게 문을 열어주려는 석진의 팔을 잡은 이름이 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래요, 그럼."
이름이는 석진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곤 바닥으로 시선을 내렸다.
차마 그의 얼굴을 보며 말을 할 순 없을 것 같았다.
"저... 석진 씨 고백 말인데요."
할 수 있어. 해야 돼. 해야만 돼.
"죄송해요. 못 받았을 것 같아요."
이름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살짝 들었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허탈하게 웃는 석진의 표정이 보였다.
"전정국 씨 때문이에요?"
"네?"
생각지 못한 정국의 이름이 석진에게서 나오자 놀란 이름이 눈을 크게 뜨고 석진을 보자 석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었어요. 그 사람이 이름 씨 좋아한다는 거. 그리고 바로 옆집이라는 것도."
아. 그때 집 앞에서 한 얘기가 설마 그거였나.
석진의 말에 한참을 생각하던 이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꼭 그것만은 아니에요. 석진 씨는 정말 좋은 분이에요. 그런데 저는 석진 씨한테 어울리는 여자가 아닌 것 같아요. 석진 씨가 지금까지 사주신 음식도 옷도, 제게는 안 맞는 것 같아요."
이름이의 말에 석진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름 씨 생각이 정 그렇다면... 저도 어쩔 순 없죠. 어머니껜 제가 잘 말씀드릴게요. 그럼..."
석진은 잠깐 머뭇거리다 이름을 살짝 끌어안았다.
"갈게요."
미련 가득한 모습으로 멀어지는 그의 차를 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저 사람이 나 같은 건 기억도 남지 않을 만큼 좋은 여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집에 들어온 이름이는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곧장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을 벌컥 열자 막 씻은 건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던 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정국은 갑자기 열린 창문에 한 번, 바로 앞에 서 있는 이름이의 얼굴에 또 한 번 놀랐다.
"깜짝이야! 놀랐잖아."
정국은 수건을 대충 의자에 던져놓고 창문으로 걸어왔다.
이름이는 창턱에 몸을 기대며 입을 열었다.
"소원대로 됐네."
"뭐?"
이름이는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어리둥절한 표정의 정국에게 다시 말했다.
"거절했어요. 아니, 거절했어. 김석진 씨 고백."
정국은 이름이의 말에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내리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근데 뭐. 칭찬이라도 해줘?"
"아니, 칭찬은 됐고."
이름이는 창턱에 올린 정국의 팔을 끌었고 둘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서로 닿을 듯한 거리에서 서로를 마주 보게 되었다.
"우리 만나. 이웃 말고, 애인으로."
이름이의 고백에 정국은 멍하니 있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름이에게 다시 되물었다.
"뭐?"
"나 두 번은 말 안 해."
이름이는 잡았던 정국의 팔을 놓으며 미련 없이 창문을 닫았다.
무사히 말을 전달한 자신에게 감출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던 이름이는 다시 열린 창문에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환하게 웃는 표정의 정국이 이름이의 이름을 부르며 두 손으로 이름이의 볼을 감쌌다.
이내 아까처럼 가까워진 서로의 얼굴에 이름이는 직감적으로 눈을 감았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별 느낌이 없는 입술에 눈을 뜨자 재밌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정국의 얼굴에 약이 올라 정국의 손을 쳐냈다.
아니, 쳐내려고 했다.
이름이의 손이 정국의 손과 맞닿는 순간, 정국은 그대로 이름이에게 더 다가갔고 둘의 입술은 어제보다 더 길게 맞부딪혔다.
자신의 입술을 건드리는 정국에 이름이 살짝 입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밀려오는 정국의 온기에 이름이 덥다고 느낄 즈음, 둘의 입술은 떨어졌다.
"잘 자."
마지막으로 이름이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춘 정국이 먼저 창문을 닫고 들어갔고 이름이는 한참이나 멍하니 창문을 쳐다보다 천천히 창문을 닫았다.
민망하면서도 좋고. 부끄러우면서도 간질거리는 게. 이래서 사람들이 연애, 연애 하는구나, 를 깨달은 이름이 창문을 타고 흘러오는 정국의 환호에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름이는 문득 여전히 소파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정국의 노트를 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저 사람과 연애해도 괜찮겠네.
정국에 뷔온대 사담 |
제가 말씀드렸죠? 얘네 이번 편에 사귈 것 같다고. 아 참, 어떤 독자분이 소원권 장면에서 응칠이 생각나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사실 응칠을 안 봐서... 방금 그거 찾아보고 왔거든요. 서인국에게서... 이름이 보여요... 맞다! 그리고! 누가 얘네 0cm 때 사귄 댔습니까! 벌써 사귀는걸요! 그리고 0.5cm 단위로 가자는 의견이 있던데 ㅋㅋㅋ 그건 아니 됩니다. |
신청하셨는데 암호닉이 없거나 잘못되어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너와 나, 30cm 암호닉 |
ㄱ 간장밥 / 갓찌민디바 / 고무고무열매 / 구가구가 / 국쓰 / 귤 / 꽃오징어 / 꾸꾸♥ / 꾹꾸까까 / 낑깡
ㄴ 나의별 / 너를위해 / 늘봄 / 늘품
ㄷ 다미 / 다정 / 달콤윤기 / 둥둥이
ㄹ 랄라 / 레드 / 로즈 / 루이비
ㅁ 마름달 / 목소리 / 무네큥 / 미니미니 / 민슈팅 / 밍뿌
ㅂ 방소 / 뱁새☆ / 범블비 / 분수 / 블라블라왕 / 비림 / 비비빅 / 비븨뷔 / 뷔밀병기 / 빠밤 / 빡찌 / 뾰로롱♥ / 뿡침침슈 / 쀼
ㅅ 사이다 / 소진/ 순생이 / 슙큥 / 스타일 / 쓰니워더
ㅇ 연꽃 / 오렌지 / 오월 / 용가리침침 / 윤기야 / 융융힝
ㅈ 전정쿠키 / 정꾸기냥 / 정연아 / 정전국 / 정쿠다스 / 제리뽀 / 주황자몽 / 쩡구기윤기 / 쫑냥
ㅊ 참기름 / 채린별 / 초코아이스크림 / 침치미 / 침침이< / 침탵
ㅋ 카모마일 / 코코몽 / 콘칩 / 쿠앤크 / 큐큐/ 크슷 / 큄
ㅎ 항암제 / 환타 / 희망빠
숫자, 문자 030901 / 0320 / 0917 / 1234 / 6018 / ♡율♡ / ♥옥수수수염차♥ |
p.s. - 암호닉은 http://www.instiz.net/bbs/list.php?id=writing&no=2743458&&noinput_memo= 이곳에서 받고 있습니다!
p.s.2 - 이번에 또 석진이 워더해가시는 분은 마라핫으로 목욕하시면서 용암으로 세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