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다원(우주소녀) - 샤랄라 로맨스 inst (운빨로맨스 OST)
"이게 뭐야."
신경을 쓴 듯 안 쓴듯한 패션에 거의 티 나지 않는 옅은 화장, 을 노렸던 건데
"자다 일어나서 대충 머리 묶고 나온 백수 같잖아..."
제대로 판단 미스인 듯하다.
하얀 티에 검은 반바지. 바둑알이야 뭐야. 심지어 자연스러운 포니테일을 노린 건데 이건 뭐... 개털 수준인데?
옷을 갈아입을지, 머리를 다시 묶을지 고민하던 나는
[넘어와요. 창문 말고 담 넘어서. - 옆집 정전국]
정전국 씨의 문자에 결국 이 누추한 차림새 그대로 나가게 되었다.
아니지. 우린 그냥 옆집 사인데, 뭐. 신경 쓸 게 뭐 있어? 안 그래?
이렇게 된 거, 아예 누추한 컨셉으로 가자는 생각에 비올 때만 신던 삼선 슬리퍼를 직직 끌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내 눈에 보인 건.
"와 대박! 그쪽 집엔 이런 것도 있어요?"
마치 홈쇼핑에서 파는 캠핑용 그릴과 작은 원목 식탁.
"그럼 뭐, 바닥에서 구워 먹게요?"
"집에서 먹을 줄 알았죠."
"집에 기름 냄새 배는 건 딱 질색이라서요."
진짜 싫은 건지 고개를 세차게 젓는 그의 모습에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예전의 내가 생각났다.
왠지... 다음 날에도 집에서 고기 냄새가 나더라니.
"뭐 해요? 빨리 와요."
불판 위로 솟아오르는 불길에 고기를 막 올린 정전국 씨는 집게로 바로 앞의 담을 가리켰다.
"가요-"
처음엔 진짜 무서웠는데 이쯤 되니 이 정도 거리쯤이야. 식은 죽 먹기지.
"아!"
"... 어떻게 저런 곳에서까지 넘어져요, 그쪽은?"
사실 난 식은 죽을 잘 안 먹는다.
한쪽 발을 무사히 반대쪽으로 넘긴 나는 남은 발 한 쪽을 들어 반대쪽으로 가져왔고 그러다 그 자존심 상할 정도로 낮은 담에 발뒤꿈치가 쓸려버렸다.
혹시 몰라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난 식은 죽을 못 먹는 게 아니라 안 먹는 거다.
"참나... 여기요."
날 엄청 한심하단 표정으로 보던 정전국 씨는 주머니를 뒤적여 내게 연고를 건넸다.
손으로 바르자마자 느껴지는 따가움에 몸서리를 치자 보다 못한 정전국 씨가 내 상처 부위에 연고를 엄청나게 짰고
"그거 자원낭비에요!"
"그쪽이 밤에 화장실 갈 때마다 온갖 불이란 불은 다 키는 게 더 자원낭비에요."
내 말에 정전국 씨는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고 나는 상당히 뜨끔했다.
깜깜한데 그냥 화장실 가면 무서우니까 켠 건데... 내가 하루 종일 켜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는 뭐 밤에 화장실 갈 때 눈만 뜨고 잘 가나 보지?
..... 라고 말하려는 순간
"와서 먹어요,"
참 타이밍 좋게 다 구워진 고기에 그 말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럼. 화장실 갈 때 불을 안 켜는 사람도 있는 거지.
"근데 내가 밤에 불 켜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쪽 일찍 자는 거 아니었어요?"
고기를 한 점 집어먹던 내가 갑자기 생긴 궁금증에 그에게 말하자 그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요? 나 엄청 늦게 자는데?"
"아닌데? 맨날 11시쯤 되면 불 꺼져있던데요."
내 말에 정전국 씨는 박수를 짝 치더니 말했다.
"아- 불만 끄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쪽이 불 켜는 거 엄-청 잘 보여요,"
아. 자는 게 아니었구나. 그럼 그냥 그때 바로 정전국 씨한테 노트 줄걸. ...노트? 아, 맞다.
한동안 잊고 있던 노트의 존재에 앞에 고기가 있다는 것도 잊고 젓가락을 탁 내려놓자 막 고기를 집던 정전국 씨가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왜, 왜 그래요?"
"아, 그게..."
생각해보니 아직 뒷장 내용을 못 봤는데. 정전국 씨는 노트가 진짜 버려진 줄 아니까 말 안 해줘도 되겠지? 그렇겠지?
내 마음속의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소리가 내 심장을 쿵쿵거리며 울렸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역시 양심이란 게 없는 사람이었다.
"뭐예요. 놀랐잖아요."
"미안해요."
나름 미안함의 표시로 고기를 한 점 집어 그에게 내밀자 그는 자신의 젓가락으로 고기를 낚아챘다.
"내가 뭐 7살짜리 꼬맹이도 아니고."
"한 순간이라도 훈훈해져 봅시다, 우리."
"싫어요."
정전국 씨는 내 얼굴에 손바닥을 내밀며 강력한 거부 의사를 표했고 나는 그 손바닥이 너무 얄미운 나머지,
"아!"
그의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내 손가락이 고깁니까?"
"앞으로 내밀길래 난 또 고긴 줄 알았죠-"
엄청 얄미운 표정으로 그를 놀리자 그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고기를 야만적으로 씹더니 갑자기 씩 웃었다.
뭐야, 이 사람. 무서워.
"아, 여기 족발이 있었네."
"웬 족발 타령이에요?"
정전국 씨는 젓가락으로 내 손을 잡더니 위로 들어 올렸다.
"여기요. 족발."
내게 한껏 만족한 표정으로 메롱을 하고는 다시 고기를 집어먹는 그의 표정을 보며 나는 허공에 들었던 손을 주먹 쥐었다.
이대로 시간을 멈춰서 저 인간 한 대만 때리고 싶다.
저 잘난 주둥이를 확 쳐버리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갑자기 확 올라오는 그의 고개에 들었던 주먹을 황급히 내려놓았다.
"아, 술 마실래요?"
그는 내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잠깐만 기다리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곧 양손에 캔 4개를 들고 와선 내 앞에 내려놓았다.
"뭐예요. 왜 4개를 다 날 줘요,"
"나 캔 못 까요. 좀 까줘요."
정전국 씨는 내게 캔 하나를 들어 내밀었고 나는 그가 내민 캔을 따서,
"아니, 왜 그쪽이 마셔요!"
내가 마셔버렸다.
아까 그 망할 족발에 대한 복수다. 메-롱.
그는 내가 캔 하나를 다 마시고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놓을 때까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표정이 마치 뭐랄까. 당근 잃은 토끼 같달까. 그래서 결국 캔 하나를 까서 그의 앞에 놓아주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캔 하나를 다 비워냈다.
"키야- 이거지. 이거야. 역시 고기에는 술이죠. 안 그래요?"
나는 그의 말에 적잖이 동의하며 캔 하나를 더 땄고 남은 한 개도 따서 그에게 넘겨주었다.
"우리 건배 한 번 합시다. 건배-"
"건배-"
술을 마시는 순간 이 세상은 위-아-더-월드-라고 했던가.
그 말을 누가 했는진 모르지만 정말 완벽한 말이다.
"근데 나 술 잘 못 마셔요."
내 말에 정전국 씨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시방 뭐여. 그 표정은. 내가 술고래처럼 생기기라도 했다는 거여?
"그렇게 안 생겼는데. 의외네요."
"내가 뭐 어떻게 생겼다고... 그럼 정전국 씨는. 잘 마셔요?"
내 물음에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잘 못 마셔요. 나 벌써 취하는 것 같아."
그 말에 어쩐지 아까보다 붉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자 그는 뭘 보냐며 내 입에 고기를 가득 집어넣었다.
"짐 머하능 그에여!"
"뭐라는 거야."
나는 턱이 아플 정도로 씹고, 씹고, 또 씹고 나서야 입안에서 사라진 고기에 턱을 문지르며 그를 노려봤다.
"누가 고기를 한 번에 잔뜩 먹어요!"
"먹었잖아요. 그쪽이."
아, 그러네.
자꾸 그의 페이스에 밀려버리는 내가 정말 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젠 좀 적응이 된 것 같기도...
"근데 있잖아요."
"네."
"그쪽은 불 다 꺼놓고 뭐 해요, 혼자 방에서?"
내 말에 정전국 씨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핸드폰도 좀 하고, 가끔... 일기도 쓰고요."
"와, 일기도 써요? 되게 부지런하네."
내 말에 정전국 씨는 손사래를 쳤다.
"엄청 가끔이에요. 어쩌다 생각날 때만."
그의 말이 끝나고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누가 그랬던가. 술을 마시면 분위기가 진지해진다고. 지금 딱 그 상황이다.
"이봐요. 성이름 씨."
어느새 텅 비어버린 접시를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던 정전국 씨가 내 이름을 불렀고 내가 대답하자 그는 잠깐 망설이더니 물었다.
"만약에 그 김석진인지 뭔지, 그 사람이 고백이라도 하면. 받을 거예요?"
어, 생각해본 적 없는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김석진 씨는 좋은 사람이다. 나에게 엄청 잘해주고, 친절하고, 좀 더 보자면 잘생겼고, 키도 크고, 돈도 많다.
한참을 생각하다 고개를 들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의 눈길에 놀라 다시 시선을 밑으로 두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솔직히 내가 살면서 그렇게 능력 좋은 사람을 또 언제 만나보겠어요."
정전국 씨는 내 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죠?"
정전국 씨는 그 말을 끝으로 한참을 말이 없었고 계속 이어지는 적막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전국 씨."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뭘 하나, 싶어 고개를 들자 내 앞엔 빨랫감처럼 축 늘어져있는 정전국 씨의 모습이 보였다.
그새 입까지 크게 벌리고 식탁에 엎어져선 잠이 든 그를 보다 별안간 웃음이 터졌다.
아무튼. 생각도 못한 곳에서 허술한 사람이다.
준비는 정전국 씨가 다 했으니 정리라도 좀 도와줘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것도 다 자원 낭비인데."
나는 일회용품으로 가득한 쓰레기봉투를 보며 아까의 상황을 생각했다.
내가 불을 켜는 게 더 자원 낭비니, 뭐니 하더니만. 자기는 접시도 일회용품, 젓가락도 일회용품. 내가 연고를 그렇게 잔뜩 짤 때부터 알아봤어.
나는 문 앞에 쓰레기봉투를 내려놓고 발뒤꿈치를 살폈다.
다행히 피가 멈춘 상처에 안도하며 뒤를 돌았다.
저 거대한 성인 남성을 어떻게 옮길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선 그냥 여기에 두고 가고 싶지만 이웃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순 없지.
나는 정전국 씨에게 다가가 그를 살짝 흔들었고 그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
아무리 세차게 흔들어도 일어날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그의 숙면에 감탄하며 결국 그를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현관문을 열고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아 힘을 줘 올리면!
"완전 무거워."
안 들어진다.
나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 들어 올리지 말고 끌고 가야겠다.
나는 아까처럼 그의 허리를 꼭 감싸 안고 안간힘을 줘 그를 바닥에 질질 끌었다.
천천히 끌려오는 그의 몸에 '달밤에 체조'라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뭐, 이건 체조보단 훈련에 가까운 것 같긴 하지만.
겨우 그의 신발장 앞까지 그를 끌어온 나는 그대로 그를 내팽개쳤다.
무슨 사람이 그동안 한 번을 안 일어나냐.
그의 신발을 벗겨 그를 거실 한복판에 내려놓은 나는 소파 위에 있던 빨간 체크무늬 담요를 그의 위에 덮어주었다.
오랜만이네, 이 담요.
불과 며칠 전의 그날을 생각하며 몸서리치다 갑자기 뒤척이는 그에 놀라 몸이 얼어버렸다.
"이불... 이부울....."
진짜 가지가지 하네.
나는 그의 방에서 이불을 끌어와 그의 위에 덮어주었다.
그제야 만족한 건지 이불을 잔뜩 끌어안고 자는 그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그를 구경하다 이제 가야겠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갑자기 나를 확 잡는 손길에 놀라 바닥에 주저앉고 보니 날 잡은 사람은 다름 아닌 정전국 씨였다.
몸을 뒤척이다 내 옷에 걸린듯해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고 다시 일어났다.
"좋아해."
그 말에 흠칫해 뒤를 돌자 세상 편하게 자고 있는 정전국 씨가 보였고, 이내 그 말이 잠꼬대라는 걸 알아차렸다.
"좋아... 너 좋아..."
갑자기 확 뜨거워지는 얼굴에 뒤를 돌아 급하게 그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저 사람 주사가 고백하기인가 보지. 그래, 그런가 보지.
나는 이유 없이 진정되지 않는 심장을 손으로 감싸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좋아해. 좋아해...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꼭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잖아!
아무리 진정하라고 말을 해도 전혀 듣지 않는 심장에 침대에 풀썩 드러누웠다.
오늘 잠은, 다 잔 것 같다.
정국에 뷔온대 사담 |
이름아. 그거... 사랑이야. 여러분도 열대야 조심하세요. 짱 더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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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 30cm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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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암호닉은 http://www.instiz.net/bbs/list.php?id=writing&no=2743458&&noinput_memo= 이곳에서 받고 있습니다!
p.s. 2 - 정전국 아닙니다. 전정국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