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대형견 썰 내에서
겨울을 지나서, 봄을 지내고, 또 여름을 보낸 뒤 맞이한 가을이
굉장히 긴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제 기분 탓이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서늘한 바람에 흩날려진 나뭇잎이 짙은 붉은색, 아니면 선명한 노란색을 띄는 가을의 중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봄과 여름에는 꽃을 피워내었던 나무들이 이번에는 단풍이라는 새로운 꽃을 피워내는,
하늘은 저 위로 올라가 뜨거웠던 햇빛의 열기 대신에 서늘한 바람을 내려보내주는,
사람들의 옷차림마저 조금 더 길고 두터워지는
깊어진 가을의 한복판에
남준이와 윤기는 나란히 걸음을 마주한 채 걷고 있었으면 좋겠다.
얇았던 반팔 대신에 얇은 긴팔을 입고, 그 위에 각자 편한 겉옷을 걸치고
주머니에 손을 넣느라 굽혀진 남준이와 윤기의 팔뚝이 살짝 스치는 정도의 거리를 사이에 둔 채로.
남준이와 윤기가 도착한 곳은 문구점이었으면 좋겠다.
아기자기한 인형, 팬시, 문구류를 한 번에 파는 대형 문구점.
남준이는 문구점 특유의 잉크 냄새, 나무 냄새, 포장지 냄새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신기해했으면 좋겠다.
이제 또 꽉 채워버려 더이상 글을 쓸 수 있는 여백이 남지 않은 노트를 대신할 것과,
남준이가 부러뜨려서 잉크가 다 새어버려 또 그 펜을 대신할 것 등등
윤기는 머릿속으로 사야할 목록을 정리하면서 그 틈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불쑥 튀어나가려는 남준이의 옷깃을 얼른 잡아채었으면.
저기 구경하면 안 돼?
우선 살 거 사고.
구경하면서 사자.
사고 구경해.
남준이가 입꼬리가 살짝 삐죽 튀어나올 지경에 윤기가 손을 들어 남준이 입술을 아프지 않게 꾸욱 꼬집었다가 놓아주었으면.
그렇게 둘은 남준이가 원했던 팬시가 잔뜩 쌓인 곳을 뒤로 한 채 공책과 펜이 있는, 종이냄새가 짙은 쪽으로 걸음을 옮겼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윤기가 자신도 노트 한 두권 정도는 미리 사둘까 싶어 최대한 단조로운 표지의 노트를 골라내는 사이에,
남준이는 크기도 다양한, 종류도 다양한 노트를 하나하나 펼쳐서 살펴보았으면.
윤기 너는 진작에 노트를 다 골라놓고서 그런 남준이 옆에 가만히 서 있었으면 좋겠다.
중간중간 너를 부르며 노트에 그려진 캐릭터의 표정을 똑같이 따라하며 장난을 치는 남준이를 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었으면 좋겠다.
노트를 다 고르고 난 뒤에는 건너편에 있는 볼펜들을 둘러보았으면.
역시나 다양한 색의 볼펜에 남준이가 눈을 빛내면서 하나씩 색색의 볼펜들을 쥐어 밑에 붙어있는 하얀 종이 위로 윤기의 이름을 쓰며 테스트를 해보고,
윤기는 그 옆에서 남준이의 이름을 강아지, 멍멍이, 김남준 등 여러 호칭으로 써내려 갔으면.
의미는 없었지만 간질거리는 즐거움이 담긴 장난을 끝낸 뒤에서야
남준이가 원했던 문구점 구경이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준이는 제일 먼저 인형과 쿠션이 가득 쌓여있는 쪽으로 얼른 걸음을 옮겼으면 좋겠다.
성큼성큼 걸어가다가 자신의 근처에 익숙한 인기척이 안 느껴지면 뒤를 돌아봐서
저 멀찍이서 노트와 볼펜을 손에 쥔 채 느릿하게 걸어오는 윤기를 확인하고,
다시 성큼성큼 걸어갔다가
뒤로 홱 돌아서 자신을 따라오는 윤기를 확인했으면.
남준이가 여러 인형과 쿠션 앞에 멈춰서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자신이 요즘 좋아하는 캐릭터 인형이 보여 바로 집어들었으면 좋겠다.
딱 품에 안고 있기 좋은 푹신함과 크기에 눈을 빛내면서 이제 막 자신의 옆에 도착한 윤기에게 인형을 내밀었으면.
그러다가 윤기의 볼에 인형을 꾸욱 눌렀으면 좋겠다.
인형에 눌린 하얀 뺨과, 그 아래로 살짝 오므려진 입술을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며 웃어버렸으면 좋겠다.
푹신하지?
준아. 이거 떼.
푹신하지?
그렇다고 하면 사달라고 하려고?
안 돼?
기대감에 가득 찼던 눈이 추욱 처지며 실망을 내비치는 모양새가 꽤나 귀여워서,
윤기는 슬쩍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참아내면서 안 된다고 했으면.
이미 집에 쿠션이나 인형이 많지 않냐는 말로 남준이를 달랬으면 좋겠다.
결국 그 앞에서 마음에 드는 모든 인형을 한 번씩 들었다가 내려놓은 남준이가 나름의 만족을 한 뒤에야 인형 코너 앞을 나오도록.
그 다음은 편지 봉투와 작은 유리병, 쪽지함 등이 진열된 곳에서 예쁘고 작은, 하지만 용도가 짐작이 안 가는 물품들을 골라내어 윤기에게 하나씩 묻기도 해보고,
큼직한 키링이나 엽서 등을 보면서 이건 색이 예쁘고, 이건 반짝거려서 예쁘고 등등을 윤기에게 하나하나 말하기도 하고,
끝자락에 벌써부터 진열이 되어있는 목도리를 보고 주인과 잘 어울리겠다며 윤기의 목에 둘러주면서 씩 웃기도 했으면.
문구점 가운데에 있는 할인 제품, 기획 제품, 캐릭터 상품 등을 보면서 또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제 마음에 드는 것을 슬쩍슬쩍 품에 안고 윤기를 따라갔다가,
금방 들켜서 윤기가 보는 앞에서 제자리에 두고 오기도 했으면.
캔들을 보고는 서로 하나씩 향을 맡으면서 두어개 고르기도 하고,
남준이가 포장용, 혹은 장식용인 리본을 보고 예쁘다며 하나 가져와 윤기의 머리에 달아주려다가 볼을 꼬집히기도 했으면 좋겠다.
대신 그 리본을 윤기가 남준이의 머리에 달아놓고 사진을 찍으며 크게 입꼬리를 올려 웃어서 남준이가 따라 웃기도 했으면.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문구점 구경이 그렇게 하나하나 다 이루어지고
마지막에는 계산대에서 계산을 끝내고 조금 묵직한 종이봉투를 받는 것으로 끝이 났으면.
딸랑이는 종소리를 들으면서 남준이가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을 바라봤다가
자신을 빤히 보며 걸음을 멈추고 있는 윤기의 옆으로 얼른 달려갔으면 좋겠다.
종이 봉투는 자신이 들겠다고 손을 뻗었다가,
윤기가 괜찮다며 남준이의 손목을 잡자마자
남준이는 그럼 이걸 잡고 싶다며 윤기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었으면.
윤기 너는 그대로 손가락을 접어 온전하게 두 손을 맞대도록 만들었으면.
문구점을 나와 다시 길거리를 걷다가 조금 센 찬바람이 윤기와 남준이를 살짝 밀어낸 뒤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
머리카락이 잔뜩 날리고 잠시 얼떨떨한 기분마저 들 정도의 바람에 윤기와 남준이가 눈을 꾹 감아내었다가 천천히 떴으면.
추위에 약한 윤기가 어깨를 움츠리며 부르르 떨면서 얼른 집에 가자고 걸음을 재촉했으면 좋겠다.
남준이 너는 윤기의 옆에서 발걸음 속도를 맞추면서 윤기의 목덜미에 제 얼굴을 부비적거렸으면.
왜, 갑자기.
많이 추워?
조금?
그러게 옷 두꺼운 거 입으라니까.
안 그래도 나오기 직전에 들었던 남준이의 걱정이 선명하게 다시 보이면 윤기는 멋쩍게 웃으면서 아무 말 없이 남준이의 머리를 쓰다듬었으면.
그래서 따듯하게 해주려고 이러는거야?
응. 근데 역시 사람 모습으로는 좀 덜 따듯하지?
글쎄.
집에 가면 더 꽉 끌어안아 줄게. 주인이 따듯해지도록.
작게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가
부드러움을 가득 담은 표정이
춥지 말하며 훤히 드러난 목덜미를 조심히 쓸어내리는 손길이
온전하게 저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이미 잔뜩 느껴져서 벌써 가슴 깊숙히부터 따듯한 무언가가 퍼지는 것을 느낀 윤기가
그저 편히 웃어버린 채 남준이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으면 좋겠다.
그래. 착하다, 준아.
머리를 쓰다듬는 손에 더 얼굴을 부벼 뺨까지 윤기의 손에 만족스럽게 부벼낸 남준이가 웃으며 윤기와 같이 걸음을 재촉했으면 좋겠다.
집에 들어간 윤기와 남준이가 사온 것들을 정리하고,
옷깃과 발걸음에 따라붙어온 바깥 내음들을 모두 털어내고,
따듯한 코코아와 커피를 마시고 나른함을 즐겼으면.
그리고 그 나른함의 끝에는 늦은 낮잠이 자리했으면 좋겠다.
나란히 침대에 누워 윤기를 품에 가득 껴안은 남준이와
그런 남준이 품에서 편하게 풀어진 얼굴의 윤기가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잠에 들어버렸으면 좋겠다.
그대로 좋은 꿈을 꾸었으면.
남준이도, 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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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귀여운 글씨와 그림 감사드립니다. ♥
예쁜 글씨 감사드립니다. ♥
귀여운 글씨와 그림 모두 감사합니다. ♥
귀여운 남준이 그림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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