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타의적으로 멈추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버렸네요.
이게 다 현생 때문이야. 라고 조심히 변명해봅니다.
나 알바할거야.
저녁시간. 한참 밥을 먹고, 뒷정리를 끝낸 참인 조금은 부산한 시간.
갑자기 들려온 윤기의 말에 남준이는 잠시 놀랐으면 좋겠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으면.
방금 윤기가 한 말이 무엇이었나.
어떤 형태의 언어였나.
내가 이해한 뜻이 맞나.
그러니까, 일을 하겠다고?
어째서? 왜? 갑자기?
남준이는 한번에 밀려들어오는 생각에 어지러워했으면 좋겠다.
짧은 한 마디에서 파생된 수많은 글자가 남준이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뒤에야 남준이가 조심스럽게, 아마도 가장 중요한 물음을 던졌으면.
갑자기 무슨 일이요?
그냥 알바나 일.
남준이의 미간이 살풋 찡그려졌으면 좋겠다.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하는 분위기 속에서, 최대한 담담히 남준이는 다시 물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왜
일을 하고 싶어하는 거냐고.
남준이의 물음에 윤기는 발장난만 치고 있었으면 좋겠다. 손을 들어 바짝 올라갔던 하얀 토끼 귀를 잡아 내려 슥슥 쓸어내렸으면 좋겠다.
머릿속으로는 자신이 이러한 대답을 내놓았을 때의 남준이의 반응,
어떠한 대답을 내놓았을 때의 다른 반응 등을 그리고 있었으면.
그러느라 쉽사리 말을 하지 못했으면. 그러면 남준이 네가 먼저 가장 크게 짐작이 가는 이유를 입에 올렸으면 좋겠다.
돈 때문에 그래요?
그 이유도 있긴 한데.
그러면 됐어요. 하지 마요. 내가 형 끝까지 책임진다고 했잖아요.
그렇다고 날 무조건적으로 보살필 필요는 없잖아.
윤기 형. 무리해서 일 하려고 하지 마요.
무리 아니야. 정말 하고 싶어서 그래.
의문에 조금 굳어있던 얼굴이 이내 윤기의 눈동자 안에서 구겨진 얼굴로 변해 그려졌으면 좋겠다.
이 일로 형이랑 또 필요없는 말다툼을 하기 싫어요.
이게 왜 필요없는 말다툼이야. 내가 하고 싶다니까. 나 할거야.
윤기의 고집에 남준이도 울컥했으면 좋겠다.
스스로가 얼마나 아직 윤기를 온전하게 보살피기에 부족한지,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얼마나 없는지 등등은 제일 잘 아니까.
다만 자신이 더 아끼다가, 그러다가 나중에 빨리 취직을 해서 온전하게 윤기를, 좀 더 풍족하게 자신의 토끼를, 연인을 보살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만이 자존심을 대신해주었던 것이 윤기의 말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했으면.
그 무너짐에 대한 방어로 남준이는 화를 냈으면 좋겠다.
윤기가 의도한 건 그게 아니었음을 알면서도.
돈 때문이라면 하지 마요. 형이 굳이 할 이유 없잖아요.
돈 때문만은 아니야. 나 일 할 수 있다니까.
형 주민등록증은 있어요? 신분은?
있어. 예전에 태형이의 형이 힘 써서 만들어 준 거. 태형이도 그 신분으로 지금 일 하고 있잖아.
뜻을 조금이라도 굽히지 않은 올곧은 눈에 남준이는 그저 고개를 저었으면 좋겠다.
그럼 귀는요. 조금만 놀라도 형 귀랑 꼬리 다 튀어나오잖아요. 들키면 어쩌려고요.
나 연습 많이 했으니까 괜찮아. 왜 꼭 내가 아예 일을 못하는 사람처럼 말을 해? 나도 일 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냥 집에 편하게 있으면 안 돼요? 태형 씨처럼 완벽하게 감출 수 없다면서요. 발정기라도 중간에 와버리면 또 어떡하려고요.
무너진 자존심의 잔해가 다른 자존심을 건드렸으면 좋겠다.
사실은 자존심 안에 숨겨진 트라우마, 혹은 약점, 혹은,
상처라고 불리는 것을.
윤기는 그제야 담담한 말 속에 숨어있었던 날선 감정을 느끼고 눈을 부릅 떴으면.
그건 내가 알아서 해. 정 힘들면 그때 미리 윗사람한테 말을 해도 되고. 너 만나기 전에도 일 멀쩡하게 했었어. 근데 왜 지금 안 된다고 하는데?
나는….
돈 때문이 아니야. 그런 거 아니라고. 널 무시하는 것도 아니야.
윤기 형.
남준이의 부름에 윤기가 씩씩거리면서 남준이를 바라보겠지. 잠깐의 정적이 또 흘렀으면 좋겠다.
마른 세수를 한 남준이가 이 짧은 언쟁에 지쳤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 애써 술렁이는 마음을 잠재웠으면 좋겠다.
다음에 이야기 해요. 지금 우리 둘 다 이런다고 결론 안 날 것 같은데.
아니. 지금 이야기 해. 난 일 할거야. 이미 지원서도 다 써놨고. 전화도 다 넣어놨어.
토끼야.
나는 온전한 토끼가 아니야. 네가 마냥 보살피고 책임져야 하는 애완동물 같은 게 아니라고.
토끼야. 말이 심하잖아요. 진정 좀 하고.
나는 토끼지만 사람이기도 해. 토끼처럼 살고 싶지만 사람처럼도 살고 싶어.
….
너처럼 학교를 다니거나, 태형이처럼 온전한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고 해도 나도 사람처럼 살고 싶은 그런 생각이 있어. 이게 말도 안 되는 욕심이야?
윤기 형.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아. 내가 스스로도 불안하다는 거 알아. 제 몸하나 제대로 조절도 못하는 병신이라는 것도 안다고!
민윤기!
날 항상 책임만 져야하는 애완동물마냥 생각하지 마! 나도 내 스스로 무언갈 하고 싶어. 그래서, 네 애완동물이나 기생충마냥 네 아래에 붙어있는 게 아니라 네 옆에 당당히 서고 싶다고 말하고 있잖아!
어깨가 들썩이면서 모든 감정을 토해낸 윤기가 붉어진 눈가를 애써 참으며 남준이를 바라보았으면.
예전에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마저 두려워해서 도망치듯 나가버렸으면서,
이제는 당당하게 제 마음을 모두 드러내면서 눈을 마주쳐오는 토끼, 아니 한 사람. 제 연인을 보면서 남준이는 잠시 말을 이어가지 못했으면 좋겠다.
뒷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그저 멍한 얼굴로 윤기의 얼굴을 제 눈 안에 담고 있었으면.
그 사이 윤기의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졌으면 좋겠다.
꼬인 머릿속 사이에서 스치는 선명한 감정들에 입술을 꾹 깨물었으면.
태형이가 일하는 모습이 담겨있던 앨범을 보고 느꼈던 부러움,
아무도 없는 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무력하게 보내는 것에서 오는 스스로에 대한 미련함, 무력감, 한심함.
자신 몰래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돈을 더 부쳐줄 수 있겠냐며, 잔소리를 들으면서 멋쩍게 웃던 김남준을 보고 느꼈던 미안함.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이가 자신때문에 곤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심. 어쩌면 당연한 마음.
네가 허락 안 해줘도 난 할거야.
저렇게 입술 다 짓씹으면 다칠텐데. 앞 니를 내어 아랫입술을 꾹 깨물면서도 저를 바라보는 윤기의 모습에
남준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으면 좋겠다.
이걸 안타깝다고 생각해야 할까, 미안하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저렇게나 자신만을 바라봐주는 마음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야 할까.
결국 남준이는 가볍게 두 손을 들어올렸으면 좋겠다.
그 뒤에는 손을 뻗어 윤기의 등을 끌어안아 품에 안았으면 좋겠다.
아직도 급하게 몰아쉬는 숨이 느껴져서, 천천히 진정하라는 듯 너른 등을 쓸어내렸으면 좋겠다.
마냥 작고 하얗다고 생각했던 토끼는 자신의 생각보다 더 단단히 두 발로 설 줄도 알았고,
이렇게나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고,
우리 둘의 관계에 욕심을 가질 줄도 아는.
아, 토끼가 아니라 정말 온전한 사람이다. 민윤기는.
진짜 형한테는 못 이기겠네요. 아까 말 함부로 해서 미안해요.
아냐, 나도 잘한 거 없으니까.
윤기가 고개를 숙여 남준이의 어깨에 눈가를 짓누른채로 느릿하게 고개를 움직여 얼굴을 부볐으면 좋겠다.
조심히 남준이의 허리춤을 꾸욱 그러쥐었다가 똑같이 등을 끌어안았으면 좋겠다.
저 못지않게 큼직하고 남자다운 손이, 제 허리를 끌어안는 것이 느껴져 남준이가 작게 웃었으면 좋겠다.
고개를 내려 윤기의 붉어진 눈가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손을 올려 윤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렸으면.
팽팽하게 당겨졌던 감정의 끈이 그제야 느슨히 풀려 내려왔으면 좋겠다.
짧은 포옹으로 이렇게나 풀린 것이 신기할 만큼. 그러면서 당연하다 생각될 만큼.
무슨 알바할 건데요? 시간은?
남준이가 손을 잡은 채 침대로 이끌면서 담담한 말투로 묻자 윤기도 그제야 살짝 볼을 상기시킨 채 자신이 눈여겨 보고있었던 알바들을 하나하나 남준이에게 이야기를 했으면.
노트북을 열고, 둘이 나란히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알바를 마저 찾기 시작했으면.
금방 불이 타올랐다가, 또 금방 내려와 다시 평상시의 모습이 된 것도,
너무 늦게 끝나는 일자리를 보고는 이러면 내가 형을 데리러 가야겠다는 말에 윤기가 귀를 잡아 볼을 꾹 눌러버리는 것도,
앞으로 조금 변할 남준이와 윤기가 가진 연애의 모습들 중에서도 유독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서툰 감정이 서툴게 부딪치다가, 노을이 모두 내려앉은 밤이 되어서야 온전히 맞물렸으면 좋겠다.
짧았던 어긋남이 그렇게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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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자랑
귀여운 민트토끼 윤기 그림 감사합니다. ♥
초콜릿 좋아하는 귀여운 민트토끼 윤기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귀엽고 아기자기한 글귀 감사합니다. ♥
귀여운 윤기 그림 정말 감사합니다. ♥
예쁜 부농부농한 윤기 그림 선물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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