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이석민] Write Either Direct pro.
w. 뿌존뿌존
장항준, 봉만대, 스티븐 스필버그. 이들의 공통점은 영화감독이라는거다. 억, 하고 말하면 악, 하고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감독.
영화감독. 7살, 어린 나이부터 내 꿈은 절대 흔들리지 않고 쭉 영화감독이었다. 배우인 어머니, 방송사 피디인 아버지.두분 이야기는 꽤나 로맨틱한 사랑이야기임은 틀림없지만 내겐 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 라는 생각보단, 나도 엄마와 아빠 처럼 무언갈 예술적으로 표현하고싶어, 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던것 같다.
사실 꿈을 갖던 당시엔 사랑보단 영화가 먼저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오빠와 함께 엄마를 따라 영화 촬영장에 자주 가고, 아빠를 따라 편집실에 자주 가다보니 영화 감독이란 꿈은 저절로 생겼다. 물론 우리 오빠는 제외. 오빠는 예쁜 배우 언니들을 보겠다며 매니저를 꿈꿨고, 지금은 아주 큰 회사의 매니저가 되어있다. 요즘은 윤부장이라고 불린단다. (지랄)요즘 완전 잘나가는 디노라는 솔로가수를 아는가? 우리 오빠가 졸졸 따라다니면서 케어하는 애다. 배우 최승철, 문준휘도? 음, 그럼 됬다. 여튼 우리 오빠라는 애는 그런 사람이다. 여튼 난 그래서 세봉대 영화연출과에 입성했고, 그게 내 인생의 가장 큰 오류인것 같다. 씨, 상향 하나 더 써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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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화 연출과 17학번 윤세봉입니다"
"합격"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내 옆에 앉아있던 다른 응시생들도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임에도 이지훈, 이라고 쓰여있는 팻말을 앞에 두고 앉은 남자의 진지한 눈은 이 상황이 진짜임을 얘기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 지금 동아리 면접 와서 인사만 했는데 합격했다는거지? 그렇지?
"예?"
"네가 첫번째 면접생. 나는 첫번째로 면접보러 오는 애를 뽑기로 했거든"
이런 그지 같은 경우를 다 봤나, 내가 열심히 쓴 자소서, 예쁘게 찍으려고 노력한 증명 사진, 이 동아리를 위한 원대한 포부따위 다 집어치우고 그냥 내가 첫번쨰 응시생이라서 뽑았단다. 이지훈이라는 남자가 내 눈을 보지도 않고 연필 뒷쪽을 가볍게 씹으며 대답했다. 남자의 이에 연필 뒷꽁무니가 씹힐때마다 내 멘탈이 바스라지는 기분이었다. 좆같다는 말은 이럴때 쓰나보다. 아 좆같아. 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신발코만 바라보자 옆에 앉아있던 남정네 둘이 눈을 번쩍 거리며 들썩거렸다.
"저는요??"
"예, 저는요?"
"이름이?"
"이석민이요"
"전원우요"
"너희도 합격"
"왜요?"
"너희 셋이 전부거든. 지원한 거"
두번째, 세번째 응시생도 합격. 이유는 지원자 미달. 덜컥 합격되어버린 이 동아리에서, 바람잘 날을 바랬던 내가 미친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차리리 그렇게 생각하는게 나을 것 같다. 좀 더 잘 알아보고 지원할걸!! 어떤 동아리는 막 연예인이 찬조출연도 한다던데.. 그래도 나랑 함께 이 동아리에 붙은 전원우. 그래. 전원우라는 남자가 꽤나 잘생겨서 마음에 위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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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17학번 문창과 전원웁니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상한 방 안에서 시계만 들여다본지 몇분이 지났을까, 전원우라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눈만 도륵도륵 굴리는 어색한 분위기가 힘들었던걸까, 치, 그래도 지는 옆에 친구하나 있구만. 나는 옆에 아무도 없단말이다!
"아, 안녕하세요. 영화연출과 윤세봉이에요"
"우와! 영화연출과요??"
영화 연출과라는 얘기를 꺼내자 마자 전원우 옆에 앉아있던 똘마니 같은 남자가 책상을 쾅, 치며 내게 영화연출과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에 전원우가 좀 조용히 좀 해, 첫 만남이잖아. 라며 일침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한번 더 치였다. 예 맞아요, 라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똘마니가 박수를 짝짝, 치며 말했다.
"우와- 제 꿈이 그거거든요. 내 와이프는 피디, 나는 작가"
"............?"
"뭐 그런 눈으로 봐요, 부부가 함께 예술활동하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그죠?"
별 그지 같은 애를 다 보겠네, 라는 눈으로 똘마니를 한번 흘기곤 다시 시계를 들여다봤다. 5분이면 된다며, 망할 심사위원은 어딜 간걸까, 날 여기다가 박아놓고선. 내가 한번 흘깃 째려보자 하지 말랬지, 라며 타박하는 전원우의 목소리가 귓가를 기분좋게 간지럽혔다. 아, 또 치였다. 뭐 어떠냐며 소리를 빽뺵질러대는 똘마니의 뒷통수를 소리나게 갈기고 싶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심사위원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문을 발로 뻥 차곤 딱 봐도 수백장은 되어보이는 A4 용지를 낑낑거리며 책상 위에 던져놓았기 때문이었다. 종이 몇장이 날려 똘마니의 얼굴을 치곤 바닥으로 떨어졌다. 고소하다 고소해.
"안녕? 동아리 회장 이지훈이야"
"안녕하세요"
꽤나 긴 정적을 깨고 심사위원석에 앉아있던 노란 머리 남자가 방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언뜻 그 남자의 뒤통수에서 빛이 나는 것 처럼 보였지만 그건 그냥 역광이었다. 눈이 부셔 찡그리는 우리 셋을 보고 남자가 종종 걸음으로 걸어가 커튼을 쳤다. 커튼엔 물 자국인지 모를 이상한 갈색 자국이 가득했다. 커튼을 치자 퀴퀴한 방이 더 퀴퀴해졌다. 아주 어두워져버린 방에 똘마니가 오오~ 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 남자애에게 안 들리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발, 이 동아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좀 정상적이었으면. 내 표정을 읽은 건지 이지훈이라는 남자가 흥미롭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기 선배, 죄송한 말씀이지만 꽤나 중2스러운 표정이었어요.
"우리 동아리는 예술을 추구해.
유명한 연습생들 가지고 저급 로맨틱 물 만드는 다른 동아리랑은 달라"
이지훈이라는 사람이 씩 웃으며 우리의 앞으로 A4지 하나를 밀었다. 빼곡하게 적혀있는 글씨에 세명의 17학번들이 숨소리하나 내지 않고 빠르게 제목을 스캔했다. 파리, 찬란한 FLY. 프랑스 버논에서의 아침. 샤이닝 다이아몬드.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말들이었다. 게다가 파리, 찬란한 FLY라는 다소 과학채널 E 돋는 제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똘마니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게 뭐예요?"
"앞으로 우리가 찍을 영화들"
그리고 그 영화들 중 대부분의 출연진이 '동아리 신입생' 이었던건 내 착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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