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4 B
=친9의 여자친9를 4랑했네
written SOW.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짓을 꼽으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짝사랑이라고 할 것이다.
덧붙여 애인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하지만 그 바보같고 병신같은 짓을, 내가 하고 있다. 이 잘난 김태형이.
2-1.
힘내세요. 두둥실. 댓글 알림 하나가 떠올랐다. 한 달 전쯤이었나, 민윤기와 김여주가 키스하는 걸 생라이브로
목격한 그날 새벽, 잠시 미친건지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한 달 후에나 위로받는 기분이 어떠냐고?
나쁘진 않지만, 또 좋지도 않다.
왜 쓸데없이 김여주는 착해빠져가지곤, 난 왜 김여주를 좋아해선 민윤기 그 놈을 떨쳐내지 못하는 걸까.
민윤기가 바람을 핀다는 건 이미 학과 내에서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 유명하고도 유명한 소문을 발넓은 김여주가 못 들었을리 없다.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저 호구는 그저 해맑게 웃는다. 뭐가 좋다고, 민윤기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너 안 좋아하는 놈한테 저렇게 매달려.
"야, 김여주. 내가 이런거 갖다 바치지 말라고 했지."
"싫어! 내가 이거 보자마자 너한테 씌우면 예쁠거 같아서 산거란 말이야. 한 번만 써주라, 응?"
민윤기가 질색하는 건 바로, 온전히 김여주 취향의 모자였다. 비니를 싫어하는 민윤기는 오직 모자라면 볼캡만 쓰고 다녔고,
그걸 모를리 없는 김여주마저도 이번엔 막무가내였다. 저러다 또 한 소리 들으려고.
"이거, 내 취향 아니야."
" ‥." 김여주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민윤기의 말은 모자를 향한게 아니라 김여주를 향한 말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는 것, 그건 모자에게도, 김여주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을 터. 머리만 쓸데 없이 잘돌아가는 민윤기는
언제나 제 더러운 성질머리를 이렇게 순화시키곤 했다.
"야, 그거 나 줘. 내가 쓸래."
"니가 이걸 왜 써, 윤기 껀데."
"민윤기가 안 쓴다 잖아."
"아니야, 쓸래. 나 줘 김여주."
씨발, 저 새끼 일부러 저러는 거다. 민윤기가 나를 통해 느끼는 김여주를 향한 감정은 질투가 아니다. 저건 명백한 '소유욕'이었다.
김여주는 내꺼야. 그러니깐, 너한텐 아무것도 넘겨 줄 수 없어.
"정말? 미안 김태형. 넌 내가 나중에 치킨사줄게."
" ‥ 그러던가."
목구멍까지 욕이 차올랐지만 간신히 삼켜냈다. 민윤기는 씨발놈에 씨발놈이다.
사람 마음 두 개를 제 손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놈. 하나는 김여주, 하나는 그 김여주를 좋아하는 내 마음.
눈치는 또 더럽게 빨라선, 전학와서 나랑 김여주랑 친해진지 일주일만에 나에게 이빨을 털었다. 너, 김여주 좋아하지?
그래, 민윤기는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김여주와 사귀었다. 친구임에도 원수였고, 라이벌이자 나의 우상이었다.
내가 막무가내로 민윤기에게 뭐라고 할 수 없는 이유는, 김여주는 오직 민윤기 앞에 있을 때만 환하게 웃기 때문이었다.
내 앞에서 웃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웃음. 그래서 빼앗을 수가 없었다. 온통 민윤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김여주에게
내 입으로 '민윤기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 라는 말을 한다는 건, 내가 김여주에게 절망을 깊숙히 박아 넣는 것과 같았다.
저것 봐, 민윤기가 모자 쓰니까 저렇게 환히 웃는데. 내가 저 웃음에 미치겠는데 ‥ 내가 어떻게 저걸 내 손으로 꺾어.
2-2.
"그래서 형은 어떻게 할건데여."
"내가 오죽하면 고3인 너한테 이 지랄을 하겠냐고, 좀 도와줘라."
얘는 전정국. 나이는 20살인데 사고치고 1년 꿇어서 현재 고3이다. 내 사촌동생이고, 이런말 하긴 민망하지만 ‥ 연애박사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전정국이 신입생으로 들어왔는데 얘 때문에 수능을 못친 여자애가 있을 정도로 '여자'에 관해서라면
아주 박사가 따로 없었다. 얘한테 과외 받았던 남자새끼들이 모두 여자친구가 생긴 걸로 보면, 나도 조금은 김여주를 꼬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자만감? 뭐, 이정도로 해두자. 전정국이 '여자'를 아는거지 '김여주'를 아는게 아니니까, 사실 별 기대는 안한다.
"내가 보기엔, 누나가 고자임에 틀림 없어여."
"여자는 원래 고자야 병신아."
"아니요, 그런 현실적인게 아니라, 뭐랄까. 정신적으로? 고자가 아닐까 의심됩니다."
"… 이유는?"
"객관적으로, 형은 존나게 잘생겼어요. 가끔보면 나도 뻑갈 때가 많 ‥."
"닥치고."
"넹. 일단 형 외모에 안 넘어가는 여자는 일단 고자 증거1 이에요. 그리고 형이 여주 누나집에서 자고, 뭐라했죠?
키스? 형 술버릇이 누나한테 키스하는거였죠?"
제발 꺼내지 않길 바랬지만, 사실이기에 부인은 하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 알았을까. 내 술버릇이
김여주한테 고백하고 키스하는 거였다는 걸.
"그렇게 지속적으로 키스를 당해왔는데, 형한테 아무 감정이 없다는 건 ‥."
"어."
"남자가 아닐까요?"
"씨발아."
전정국을 믿은 내가 병신이었다. 하긴, 김여주가 보통여자여야 해당하는 거지, 김여주는 그냥 김여주였다.
범접불가 내꺼. 어렸을 때 좀 더 확실히 약혼 해두는거였는데. 괜히 손가락 지장만 찍었다. 혼인신고서도 같이 찍을 껄.
"형, 형! 저 좋은 생각 났어요. 제일 흔한데, 제일 직빵인 방법."
"뭔데."
"사실 저는 안 쓰는 방법인데여, 일단 형은 좀 쓸 필요가 있어요. 내가 보기에는 형하고 여주 누나느 너무 편해요.
그러니까 여주 누나가 감정이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는 상황인거죠. 혹시나 감정이 생긴다 한들 그게 그냥 익숙해서 그런가보다 - 하고
넘어간다니까요? 형 생각해봐요. 누나한테 밀당한 적, 있어요?"
밀당이라니, 상상이라면 해봤지만, 실천은 할 생각조차 안한 플랜이었다. 당기기도 바쁜데, 민다는 건 정말
내 상식선에선 불가능 했다. 내가 밀다가, 김여주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쩔건데.
"없는데."
"그게 문제에요. 형은 좀 밀 필요가 있다니까요? 당기지만 말고 좀."
" ‥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래도, 속는 셈 치고 한 번 믿어보지 뭐.
2-3.
" ‥."
"뭐냐, 네가 왜 우리 동방에 있어."
민윤기는 답이 없었다. 아, 이어폰 끼고 있구나. 딱히 궁금하진 않았지만 친히 다가가 민윤기의 오른쪽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을 빼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너, 왜 여기있어.
물론 뒤에 나올 말은 언제나 그랬듯이 김여주의 행방까지 물어야 맞는 거지만, 지금 나는 (나름)밀당 중이었기에
김여주의 행방을 잊어야만 했다.
"권수아, 기다리는 중."
하마터면 손이 날아갈 뻔 했다. 뭐? 지금 누구를 기다려? 권수아? 내가 아는 권수아는 이리저리 꼬리치고 다니기로 유명한 애였다.
-나는 잘 모르겠지만- 예쁘장한 외모와 아담한 체구에 남자들이 꽤나 환장하는 것 같지만, 그 년에 비하면야, 우리 여주가 훨씬 예쁜데.
근데 지금 민윤기 이 씨발이 뭐? 권수아를 기다려? 그것도 김여주도 들어올지도 모르는 동방에서?
"너, 씨발 ‥ 후, 미쳤냐?"
"아니, 딱히."
"네가 제정신이라면, 니 옆에는 김여주가 붙어있어야 정상 아니냐?"
"왜? 너랑 붙어 있어야, 더 정상처럼 보이는데 김여주는."
비꼬는거다. 난생 처음 …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돌직구적으로 비꼼을 당할 줄이야. 엄연히 보면 내가 이 대화에서
갑이 되야하는데, 여자친구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 해야할 사람은 바로 민윤기인데, 왜 내가 더 이렇게 초조한지 모르겠다.
민윤기가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것 자체도 짜증나는데, 하필 타이밍 맞지 않게 들어온 김여주와 박지민에 돌아가지 않던
골이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아, 진짜 뒷골당겨.
"뭐야, 윤기 니가 왜 우리 동방에 있어? 혹시 ‥ 나 기다렸어?"
저 기대에 찬 눈빛, 오죽 김여주를 만나러 오지 않았으면 저렇게 사소한 것 마저도 기뻐할까. 나는 항상 먼저 다가갈 자신 있는데.
김여주 옆에 서 있던 박지민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는지 내게 신호를 던졌다. 뭐야, 민윤기 원래 이런 애 아니잖아.
"내가? 널?"
민윤기는 제게 초롱초롱 눈을 빛내고 있던 김여주를 보며 조소를 날렸다. 내가 널? 왜 기다려? 하는 말과 함께 아니라는 부정을 날린 거다.
저 미친놈은 상식을 안가지고 태어난건가. 누가봐도, 3인칭 시점으로 보면 남자친구가 동방에서 여자친구를 기다리는 그림이 아니던가.
실제로 그래야만 했고,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고달픈 법, 충격을 받은 듯 돌처럼 굳은 김여주의 뒤, 문이 활짝 열리고,
권수아가 들어왔다.
"어, 뭐야. 아무도 없다면서요."
"아, 갑자기 다 들어닥친거야. 나가자."
민윤기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권수아를 데리고 나갔다. 어깨를 감싸안은 채, 김여주의 곁을 지나며.
그리고 오늘은, 심지어 김여주가 준 비니를 쓰고 왔다. 저, 씨발 …
찌질한 짝사랑남은 그저 그 상대를 죽어라 패는 수 밖에 없다. 그래, 나도 지금 그러려고 했다.
남의 일도 아니고 바로 김여주 일이었다. 온갖 혀 끝에선 육두문자가 달려있는데, 그걸 뱉어내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김여주가 앞에 있으니까.
"야, 태형아. 가지마."
문을 열고 민윤기와 권수아를 따라가려 했지만 내 팔목을 잡는 여린 손에 발걸음이 멈췄다.
넌, 왜 이렇게 약해선.
"어차피, 네가 민윤기를 죽어라 패도."
" ‥."
"쟨 나한테 안와."
좆같지 않냐, 짝사랑.
김여주 너도, 나도.
2-4.
전정국과 함께 짠 '밀당'플랜은 짜여진지 이틀만에 접었다. 누가 뭐래도 내겐 김여주가 최우선이었다.
아무리 잡아당겨도 끌려오질 않는데, 밀어봤자 역효과가 날 뿐 이었다.
" 태형아, 나 사실 알고 있었어. 민윤기가 권수아랑 …."
"알아, 그만해. 너만 힘들어."
둘 다 술이 어느정도 들어갔음에도 정신이 말짱했다. 뭐, 김여주가 간접적으로 민윤기에게 차인거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기뻐해야하는게 맞는거지만,
김여주는 미련스럽게도 민윤기가 좆같이 나와도 사랑할거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확률이 더 컸다.
하지만 , 난 지금 김여주랑 단 둘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네가 민윤기에게 데이고 와도, 난 널 언제나 감싸주겠지.
지금처럼.
" 분명 윤기랑 사귀는데, 나만 윤기를 좋아하니까. 윤기는 나를 안 좋아하니까 ‥너무 힘들어."
"..."
"알고 있었어, 윤기가 나를 안 좋아한다는 것 쯤은. 내가 호구가 아닌 이상 그딴식으로 여자친구를 대하는 남자친구가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고."
"근데 왜, 안 헤어지는건데."
안다. 사실 알면서 물어본다, 김태형 이 병신이.
"너무, 좋아하니까."
그렇게 또 비수를 꽂는다. 아는데, 니가 민윤기랑 헤어져도 나한테 안 올걸 아는데.
난 그래도 니가 내 앞에서 우는게 왜 이렇게 좋냐.
"처음,엔. 그냥 윤기가 나랑 사귄다는게 너무 기뻐서 … 나만 좋아하는 연애일거라곤 상상도 못했는데."
"응."
눈물은 테이블에 잔뜩 흘려가며, 간간히 흐끅 거리며 말하는 김여주는 ‥ 아, 이런 타이밍에 말하면 안되는거지만.
너무 야했다. 내가 울린게 아니라는게 한스러울 정도랄까.
"내가 윤기를 좋아하는게 너무 커서, 그게 안 보였는데."
"..."
"이젠 좀 보이는거 같아."
무슨 말일까, 이젠 좋아하는게 좀 작아졌다는 얘기? 아니면 … 그저 현실을 깨달았다는 얘기?
여전히 김여주는 알 수 없는 화법으로 내게 수수께끼를 날렸다. 저렇게 말하면, 나는 또 홀로 소설을 쓴다.
이런 해석도, 저런 해석도 해본다. 누가 해석본을 하늘에서 뚝- 떨어뜨려주면 좋으련만, 나는 결말이 정해진 소설에
언제나 나의 주옥같은 말을 떨어뜨린다.
"무서워, 윤기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할까봐."
술을 따르기도 귀찮아져선, 그저 소주를 병나발로 불었다. 말하는건 넌 데, 왜 목은 내가 더 마르냐.
"근데, 헤어지고 싶어. 행복해지고 싶어."
"헤어져."
"헤어지면, 나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 그거, 내가 하게 해줄게. 그러니까 ‥."
헤어져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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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전개에 당황하신 분들도 있으실거 같네여. 근데 994는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뭐 대충 스토리를 말씀드리자면
윤기는 오직 자기꺼라고만 생각했던 여주와 헤어집니다. 하지만 홀가분 ㄴㄴ
그래서 후회는 졸라게하면서 티는 못내는 스타일.
여주는 자기에게 전부였던 윤기와 헤어집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태형이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불알친구니까요.
태형이는 모두들 아시다시피 여주를 졸라게 좋아합니다. 티도 졸라게 내죠, 불도저도 이런 불도저가 없는데요.
근데 좀 안 뚫리죠 여주 철벽이? 그 여주의 철벽을 불도저 태형이가 부시는 과정이 994의 포인트입니다.
이것만보면, 태형이가 남주라고 생각하실수도 있는데요. 윤기가 개과천선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시면 안됩니다.
이게 바로 994의 거지같은 관전 포인트!
이상, SOW였습니다. 새벽에 올리고 자러가요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