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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남준] 새벽녘의 맹인 | 인스티즈 

 

 

BGM 필청 부탁드립니다! 

분량 많아요 

 

 

새벽녘의 맹인 

 

 

 

 

 

 

 

 

 

 해는 여전히 뜨고 있었다. 정확히는,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과정 중 하나를 내게 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매일 같이 보아도, 매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저 건물 모서리에 반쯤 가려져 있는 상태였고, 또 하루는 잔뜩 가지치고 있는 나무 사이에서 눈부신 빛을 쏘고 있었다. 항상 그랬듯, 저 모습은 내가 볼 수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과정 중 하나, 빙산의 일각이었다.  

 

 

 

 태양이 뜨는 것을 보며 나는 하루를 시작했다. 이제는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빛을 익숙하게 맞았다. 햇빛이 내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것을 꿈만 같다고 표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막 일어난 상태는 제 정신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몽롱하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도 쉽지 않으며, 가끔씩은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꿈이기도 했다. 특히나 더 분간이 가지 않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부른다. 남준아. 내게 얼굴을 보이지 않는 그의 넓은 등이 움찔거리기만 한다면 그것은 현실인 것이고, 왜. 라며 그의 대답이 달콤하게 들려온다면 그때는 꿈인 것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다.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 익숙해지는 때가 온다. 이제 나는 그로 인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단정 짓는다. 

 

 

 

 오늘은 다행히도 꿈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단정 지을 수 있었다. 정신이 또렷한 듯 몽롱하고, 나인 것 같으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몸 역시도 천근만근이었다. 현실이라는 건 지레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척 베개에 머리를 뉘려다 말았다. 내 옆의 그가 이미 꿈의 경계를 넘어 현실에 도달해 있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꿈속을 걷듯이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살갗을 뚫는 햇빛에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익숙하게 뜨거운 물을 부었다. 헤이즐넛 커피 향이 집안을 가득 매웠다. 집안의 중심이 된 것만 같은 부엌 공기가 농도 짙은 향을 곳곳으로 전달하기 바빴다. 식탁 의자에 앉아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커피를 바라보았다. 어찌 보면 하늘에서 투신하는 비 같기도 했다. 너까지도, 자살하려 투신하는구나. 몸을 녹여버릴 만큼 뜨거운 물에 떨어지는 커피를 보며 눈을 감았다. 나는, 왜. 아니, 그 전에. 너는, 왜. 

 

 

 

 저 멀리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가 거실로 나온 모양이었다. 딸깍. 컴퓨터의 팬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이어 그의 한숨소리도 섞여 나왔다. 감겨있던 눈이 뜨였다. 시선을 뒤로 옮기자 컴퓨터 앞 의자에 앉은 그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찼다. 더 이상의 소음은 없었다. 돌아가던 팬의 소리도 잠잠해졌으며, 그와 나도 말을 하지 않았다. 묵직한 적막과 진한 헤이즐넛 향이 집안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지배당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식탁 의자가 바닥을 잔뜩 긁으며 소음을 만들어냈다. 멀리서 그가 나를 응시했다. 눈이 마주치고, 약속이라도 한 듯 우리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진득하게 떨어지는 커피만 바라보았다. 내가 그를 보고 싶은 만큼. 왜 너는 내게 꿈과 현실 같은 경계를 두는 지에 대한 의문을 담아.  

 

 

 

 언제나 손에 들리는 잔은 두 개였다. 같은 양의 커피를 따랐다. 그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검게 찰랑이는 표면에 나는 종종 그것을 향해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실은, 그게 너 같아서 드는 생각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너는 너를 삼키고, 나는 너를 삼킨다. 너는 완전한 네가 되고, 나는 네가 되어간다. 그래서 나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가 컴퓨터 앞에 놓여있던 안경을 집어 들었다. 항상 작업을 시작할 때 쓰는 검은 뿔테 안경이었다. 나는 항상 의문을 가졌다. 그의 안경에는 딱히 도수가 있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안경을 쓰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차츰 멀어갈 나의 눈을 대신 해 주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 두 눈으로 나의 의중까지 꿰뚫어보겠다는 의미인지. 나는 죽을 때 까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남준아.” 


 “…….” 

 

 

 

 

 

 내 부름에 그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이내 그는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안착시켰다. 딱히 그의 대답을 바라고 뱉은 음절은 아니었기에 가만히 만년필을 손에 쥐었다. 생각이 많아 그의 이름을 불렀다. 어떻게 글자를 이어가야 할지 몰라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에는 그의 상념에 빠져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는 모호한 듯 명확했다. 너와 나의 경계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섞일 틈이 생기면, 뚜렷한 경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래서 나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너로 만들어 버렸다. 내 꿈과 현실 사이에는 네가 있다. 그렇게라도 나는 경계를 흩트리고 싶었다.  

 

 

 

 만년필의 촉이 닿은 종이 아래로 검은 점이 생겼다. 나는 내 글자 속에 너를 투영시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했다. 너를 향한 내 치부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야 나는 겨우 착각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알았다. 나는 다른 이들의 이름을 빌려, 너에게 애원하고 있는 중이라고.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네게 하고픈 말은 수 없이 많았으나, 정작 할 수 있는 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들어 옆에서 타이핑 중인 그를 보았다. 나는 항상 부드러운 극세사가 깔린 소파에 앉아 글을 썼고, 너는 차가운 가죽 의자에 앉아 타이핑을 했다. 네 키보드 옆에 놓인 내 글씨로 빼곡하게 채워진 종이가 꼬깃거렸다. 너는 모니터와 내 종이를 번갈아 시선을 옮겨가며 타이핑했다. 내 삐뚤삐뚤한 서체가 딱딱한 서체로 바뀌어 흰 배경을 채우고 있었다. 내 손으로 쓴 삐뚤빼뚤한 서체는. 그의 손에서 다시 백색 모니터를 채워나가는 단단한 서체는, 내 눈이 멀어버릴 그 언젠가를 미루기 위함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네게 내 조각난 심장을 꺼내어 보여줄 것이다. 그때도 너는, 여전히 감흥 없는 얼굴일까.』 

 

 

 

 

 너의 글자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검은 색 커서만 여러 번 깜빡이고 있었다. 네 손가락이 가만히 멈춰 있었다. 더 이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그가 어떤 단락을 읽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올곧은 시선이 닿은 끝을 알고 싶었다. 내 글에서는 감흥 없는 얼굴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의 표정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무언가를 깊게 담고 있으면서도, 나는 읽을 수 없었다. 네가 멈춰있는 이유는, 네 시간이 멈춰버린 이유는 나일까. 내 글자들이 사실은 모두 너에게 향하고 있던 것을 이제야 눈치채버린 것일까. 눈치 빠른 그가 이미 알고 짐짓 모르는 체했을까. 어찌됐건, 시간이 중요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도 더 중요했다. 그의 시계의 시침은 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돌아갔다. 나는 그것을 붙잡아두고 싶었다. 

 

 

 

 검게 번진 잉크는 내 아래 자리하고 있었다. 펜촉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한 글자, 한 글자 채워나가야 했다. 옆에서 그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의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여전히 모니터의 커서는 움직임 없이 깜빡이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는 감흥 없는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미동도 없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밀려났다. 아래 달린 바퀴 덕에 소음은 없었다. 바닥에 그의 슬리퍼가 쓸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방으로 들어갔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내게 머물러 있는 것은 진정한 네가 아니라, 네가 남기고 간 잔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은 아니었다. 형체가 없는 너라도, 나는 사랑할 것이었다.』 

 

 

 

 

 안방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자를 이어가려던 손도 함께 멈췄다. 느리지만 빠르게, 부엌으로 다시 걸어갔다. 아직 식지도 않은 커피를 뒤로한 채 다른 컵에 미지근한 물을 따랐다. 반쯤 채워진 물 컵을 들고 안방으로 향했다. 약병을 손에 든 그에게 물을 건넸다. 그가 자연스레 그것을 받아들였다. 습관이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지독한 습관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나에게 그가 필요하듯, 그에게도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습관 같았다.  

 

 

 

 약병 속 약을 손바닥에 덜어낸 그가 입 속으로 털어 넣었다. 물이 넘어감과 동시에 그의 목젖이 꿀렁거렸다. 그의 손에 들린 컵을 다시 내가 옮겨 들었다. 그의 시선이 온전히 내게 닿았다. 다시 익숙하게 우리는 짧게 입을 맞췄다. 이것 역시도 습관이었다. 그가 내게 입을 맞출 때면 그의 영혼이 내게로 들어오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입술을 통해 흘러들어온 네 영혼이 내게 숨을 불어 넣는다. 나는 활력을 얻고, 너는 활력을 잃는다. 거칠어진 그의 피부가 그것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입맞춤을 거부하지 못한다. 거부하지 못한다, 거부하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내가 그의 입맞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변치 않을 사실이었다. 그러니 어휘 선택으로 고민할 이유조차도 내게는 과분했다. 내게 입을 맞추는 짧은 시간 동안 너는 ‘김남준’ 그 자체였다. 내가 사랑하는 그. 그래서 나는 거부할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라서.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지는 해를 보며 창가에 섰다. 그는 괜히 집안의 장식품들의 위치를 바꾸어 놓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다시 뒤를 돌아보면 모든 것들은 제 위치에 놓여있었다. 언제 그의 손길이 닿아있었냐는 듯이. 그렇지만 나는 먼지 한 톨도 쌓이지 않은 장식품들을 보며 적막한 그의 손길을 느꼈다. 

 

 

 

 

 

 “남준아.” 


 “…왜.”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대답을 들으면 나는 언어를 잊어버린다. 그는 나를 벙어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어쩌면 내게는 악랄했다. 내 언어를 앗아가 버린다. 나는 그에게 매달린다. 내 언어를 되돌려 달라고, 내 목소리를, 내 사랑을. 너를 향한 내 영악한 사랑을….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장식장에 놓여 있던 시계가 돌아갔다. 어차피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도 아니었으며, 오직 장식을 위해 놓은 시계였다. 겉 부분의 나무 장식 위로 금테가 둘러져 있었는데, 지금 그의 시선에는 금테로부터 자신의 얼굴이 비칠 것이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시계를 몇 번 문지르더니 시침을 손가락으로 돌렸다. 끼리릭, 끼리릭. 무언가가 잘못 맞물리는 소리가 났다. 시침이 뒤로 돌아갔다. 끼리릭, 끼리릭. 그의 손가락이 멈추지 않고 시계를 뒤로 돌렸다.  

 

 

 

 

“시간을 돌리고 싶어.” 


 “응?” 


 “…시간을, 돌리고 싶다. 아미야.” 

 

 

 

 

 

 나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는 들었을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돌아가는 시침의 소음에서 내 목소리를 들었을 터였다. 내가 시침에 매달려 나아가는 시간을 멈추고 싶어 했다면, 너는 돌아가는 시침을 반대로 휘감아 버리고 싶어 했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점이었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다만.  

 

 

 

 해는 이미 저 너머로 넘어가 흔적도 없이 죽어버렸다. 해는 죽어버렸다. 내일이 되면 새로운 해가 뜰 것이다. 죽어버린 해가 아닌, 또 다른 해가. 다시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이 진득하게 달라붙었다. 그의 눈빛에 녹아내리는 것 마냥 몸이 늘어졌다. 또 다시 뜨거운 물을 내렸다. 헤이즐넛 향이 후각을 자극시켰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커피에 입맛만 다셨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시침만 연신 뒤로 돌리던 그가 현관으로 걸어 나가 문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잡지사 기자였다. 원래는 4시 경에 오기로 했었으니, 대략 3시간 정도나 늦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기자를 탐탁치 않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부터 그는 인터뷰를 반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기자는 젊은 여성이었다. 웨이브가 들어간 긴 머리가 가슴께에서 찰랑거렸다. 뒤를 돌아 집안을 살피는 그녀의 검은 정장치마는 허벅지 부분이 주름져 있었다. 나는 그녀를 내가 평소에 작업하던 소파로 안내했다. 그는 내가 안내하는 것을 보면서도 팔짱을 낀 채로 서있기만 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검은 눈이 한 번 깜작였다. 나도 그를 따라 눈을 감았다 떴다. 소리 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그가 가죽 의자에 앉았다. 나는 부엌으로 가 세 잔의 커피를 따랐다. 그녀의 취향은 물어보지 않았지만, 내가 대접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었다. 

 

 

 

 

 

 “헤이즐넛 향 커피. 좋아하세요?” 


 “아, 네.” 

 

 

 

 

 

 실은, 좋아하지 않아도 건넬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녀의 표정은 밝았다. 무거운 공기를 뚫고 앉아있는 그녀가 대견스러울 참이었다. 그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두 번 두드렸다. 자연스레 그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나는 왜인지, 그녀의 시선이 허공에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뷰, 시작할게요.” 

 

 

 

 

 

 그녀가 자신의 검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어 들었다. 그녀의 핸드폰으로는 이미 녹음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무작정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하는 타입인 듯 했다. 그녀의 시선이 모니터에 머물러 있었고, 그의 시선 역시 모니터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시선을 둘 곳을 몰라 이리저리 허공을 맴돌았다. 다시금 그와 시선이 부딪혔다. 

 

 

 

 

 

 “이번 년도 초에 출간되었던 「영악한 사랑」이 아직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물러 있어요. 작가로서 기분이 어떠신가요?” 


 “좋아요. 별 다른 말이 더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내 말에 그가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기자는 빠르게 타이핑했다. 계속 내게 더 많은 표현을 요구했으나, 나는 더 이상 답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할 말이 없었다. 「영악한 사랑」은 사실, 내가 그에게 수 없이 가졌던 많은 생각 중 하나를 풀어 썼을 뿐이니 말이다. 그리고 내 상념의 주인공인 그는 내 글을 직접 필사했다. 

 

 

 

 

 

 “그렇다면, 작가님께서는 글을 따로 타이핑 해주시는 분이 계시다고 들었어요. 지금 옆에 계신 이 분이 맞으신가요?” 


 “네, 맞아요.” 


 “굳이 따로 타이핑을 해주시는 건지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그에게 눈짓을 했다. 대신 답해달라는 의미였다. 그가 아닌 다른 이의 동정은 필요 없었다. 그가 말한다고 해서 그녀가 나를 동정하지 않을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찌됐건, 내 입으로 말을 꺼내느냐, 그의 입에서 말이 나오느냐는 실로 다른 의미였다. 그것도 매우. 그는 다행히도 내 눈빛을 알아들었다. 실은, 다행이라고 할 것도 없이 항상 그래왔기에 이제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행동들이었다.   

 

 

 

 

 

 “눈이 점점 멀고 있어서요. 완전히 시력을 잃는 날을 미루기 위해 제가 대신 모니터를 봅니다. 아무래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요.” 


 “네? 그렇다면….” 


 “병원에서도 녹내장 같은 질병은 아니라고 해서요. 그냥, 멀고 있고. 언젠가는 완전히 멀어버릴 것이라고. 그것만 알고 있어요.” 

 

 

 

 

 

 그녀의 타자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그가 그녀를 비웃었다. 기사를 쓰는 것에 집중하고 있던 터라 그녀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녀의 질문은 없었다. 나는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내 언어와 다르게 그의 언어는 오직 그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언어를 앗아가지 못했다. 그는 앗아가 버린 내 언어까지 함께 간직해놓고 무자비하게 낭비했다.  

 

 

 

 

 

 “저 역시도 죽어가고 있죠.” 


 “그게 무슨….” 

 

 

 

 

 

 필시 그녀는 당황한 상태였다. 귀 언저리가 붉게 달아오르고, 시선 처리가 명확하지 못하며 허공을 떠다니는 듯 했다. 그는 그녀를 놀리는 것 같아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 공기의 묵직함이 어깨를 짓눌렀다. 아니,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그는 그녀를 빨리 집에서 내쫓아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죽어가고 있어요. 곧 죽을 거예요.” 

 

 

 

 

 

 나는 그의 말이 듣고 싶지 않았다. 지금 당장 귀를 틀어막을 수만 있다면 틀어막았을 것이고,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내 귀를 도려내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네가 하는 그 말이 싫었다. 그는 시간을 돌리기를 원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임을 모르는 듯 했다. 아, 이건 기사에 쓰면 안 되는 거. 알죠? 그의 말에 기자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책에 관한 내용은 대충 대답해주었으니, 알아서 살을 붙여 글을 쓸 것이다. 내가 나의 감정에 살을 붙여 글을 썼던 것처럼. 아아, 어쩌면 내가 쓴 글은 살을 붙인 글이 아니라, 잔뜩 피를 흘린 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자는 결국 커피를 반이나 남긴 채로 집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아직 커피는 미약한 열을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그녀가 도망치듯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이내 그녀가 마시고 있던 커피를 들어 개수대에 들이부었다. 유난히도 물 흐르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나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마냥 일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있을 곳을 찾은 것처럼. 그렇게 하면 그도 다시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처럼 아무 말 없이. 내가 사랑하는 그 얼굴로, 내가 사랑하는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은 채로. 나는 이제 그에게 어떠한 야속함도 느끼지 못한다. 네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게 언제였던지.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이 흐릿했다. 사랑해. 그렇게 말하고 너는 웃었던가? 아마, 내 헤진 기억 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사람이 네가 맞다면. 너는, 울고 있었다. 나는 다시 먼 기억 속의 그를 곱씹는다. 내게 사랑을 고백하고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던 그. 너는 왜 그래야만 했었나, 나는 왜 그런 너를 안아주지 못했나.  

 

 

 

 나를 봐줘. 내 낡은 펜촉의 끝은 애처롭게도 너를 향하고 있었다. 내 뭉툭한 펜촉이 네 심장을 쿡쿡 찔러도, 너는 아는 체 하지 않았다. 실은, 아까 네 목소리가 기자를 괴롭히기만을 위한 게 아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괴로운 것은 나, 그리고 가장 괴로울 사람은 그. 너는 왜 그랬나. 나는 감히 너를 이해하려 들고 있다. 네가 제어하지 않으니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니 어서, 네가 나를 제어하길 바랐다. 

 

 

 

 

 『그럴 거면 차라리 죽어버려라. 그렇게 말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은 그게 아니다. 나는 네게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해 살아줘라. 네 몸뚱아리를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죽음들을 내가 해치울 테니, 너는 그저 바라만 보라고. 나는 네 죽음들의 사망을 빌었다.』 

 

 

 

 

 오랜 필기에 아린 손목을 주무르다 고개를 돌리자 그는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 왼손을 들어 검은 뿔테 안경을 한 번 올렸다. 내 펜촉이 긁히는 소리가 멎자, 그의 타자 소리만이 집안을 울렸다. 빈 종이에 꾹꾹 눌러 담은 내 감정들과 글자들을 너는 타이핑했다. 내 감정들만을 차갑게 버려두고. 

 

 

 우리의 식사시간은 언제나 조용하다. 기껏해야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내 안에 ‘김남준’ 그가 들어찼기 때문이 아닐까. 익숙하게 그의 앞에 물컵을 내려놓으면, 그는 약과 함께 물을 삼켰다.  

 

 

 

 식사가 끝나버렸을 쯤에는 죽어버린 해 시체의 잔해가 밤하늘에 떠올랐다. 은은하게 들어오는 빛에 눈을 감았다. 아침의 햇빛마냥 살갗을 뚫고 들어오는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침대 옆 창문에서 그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언제나 그는 내 이름을 불렀다. 아미야. 내 뒤에 있는 그의 몸이 느껴질 때쯤이면 그는 내 볼에 입을 맞췄다. 내 몸을 돌린 그가 다시 내게 입을 맞춰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기도 했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은 드물었다. 내 안에 그가 가득 들어차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완전한 그가 아니었다. 

 

 

 

 방의 불을 끄고 나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은 스탠드의 불빛뿐이었다. 그는 항상 가죽 다이어리에 무언가를 적었다. 단 한 번도 그의 다이어리를 훔쳐보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기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라든지. 그의 손길이 닿은 새로운 문장들이라든지. 그러나 매일 밤 펼쳐놓는 것을 보며 나는 그것이 일기라고 생각을 굳혔다. 그의 펜이 만들어내는 문장에 대한 궁금증이 솟아올랐다. 네가 만든 경계의 네 세계. 그곳에는 내가 있을까. 

 

 

 

 그렇지만 내 궁금증들을 모르는 체하며, 나는 먼저 눈을 감았다. 새로 맞이할 해를 위해서였다. 내 시커먼 속내를 드러내자면, 내가 눈을 감은 동안 그가 그의 세상에서 나를 깨워주길 바랐다. 스탠드의 불빛이 꺼지고, 이내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내게는 곧 익숙해져야 할 암흑의 세계였고, 그에게는 곧 발을 들이게 될 암흑의 세계였다.  

 

 

 

 나는 눈 감은 네 옆에서 상념에 잠긴다. 나는 왜 너의 어두운 바다에 잠겨 허우적대는가. 나는 왜 너의 바다에서 헤엄치지도 못한 채로 빠져 죽는가. 그것은 나의 눈물바다일지언정, 행복일리는 없건만 나는 왜 한 치의 발버둥도 없이 더 깊게 빠져 들어가는가. 왜 내 세상은 네가 지배하고 있나. 내 사랑은. 내 영악한 사랑은 너를 향해….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네게는 돌릴 수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었다. 네 다이어리는 벌써 몇 페이지나 넘어가 있었다. 네 다이어리가 들어있는 서랍을 열었다. 침대 옆 서랍장의 세 번째 칸이었다. 나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나며 네 다이어리가 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널 닮은 검은색 가죽이 닳고 닳아 부드러운 결을 하고 있었다. 손을 뻗어 가죽을 연신 쓰다듬었다. 차가움 위로 부드러운 감촉이 내 손을 붙잡고 늘어졌다. 빨려 들어가듯 손을 뗄 수 없었다. 가죽에서 너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남준아.” 


 “…….” 

 

 

 

 

 

 닫혀있던 방문이 열렸다. 그의 모습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다이어리로부터 손을 멀리할 수 없었다. 그의 시선과 마주했다. 뜨거운지, 차가운지 그 어떠한 온도도 나는 느낄 수 없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다이어리가 걸려있었다. 그의 발소리가 내 앞에서 멈췄다. 그의 슬리퍼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석고상처럼 굳어 있을 뿐이었다. 고개를 들었으나, 그의 얼굴을 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네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고 싶다. 네 감정들을 남김없이 모두 집어 삼키고 싶다. 

 

 

 

 

 

 “남준아.” 


 “왜 불러.” 


 “…그냥.” 

 

 

 

 

 

 그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 손길이 닿은 다이어리를 빼앗지도 않았다. 원래 내 것이었던 것처럼. 그는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닐지도 몰랐다. 그가 무엇에 시선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네 이름을 하염없이 부르면 떠나려다가도 돌아오지 않을까. 그래서 부른다, 네 이름을. 네 시선의 끝은 나여야 한다고. 내게로 돌아오라고. 네게 거는 주술이었다. 효과 따위는 바라지도 못하는 터무니없는 주술이었다. 

 

 

 

 

 

 “…그래.” 


 “…….” 


 “읽어도 돼.” 

 

 

 

 

 

 서랍장 위로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큰 손에 매달린 안경이 위로 딸려 올라갔다. 네가 다시 내게서 멀어졌다. 내 손 아래로 잠들어있는 네 다이어리에서는 뜨거운 온도를 느꼈다. 간혹 보이던 네 눈길처럼 뜨거워, 화상을 입을 것만 같았다. 이미 네 눈길에 화상을 입어, 나는 내성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굳은살로 변해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네 온도를 피하지 않는다. 다시금 문이 닫혔다. 남준아, 김남준. 네 이름을 되뇌었다. 너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불같은 네 다이어리에서 손을 떼곤 서랍장을 닫았다. 나는 아직 그의 다이어리를 읽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무언가가 적혀있든, 별 영양가 없는 헛소리라도 네 글자라면 나는 아직 그것을 엿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하는 것도 결국엔 모두 너라서 나는 겁을 낸다. 네가 가진 용기를 욕심낼 뿐, 가지지는 못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 생각했다.  

 

 

 

 잔뜩 쭈그리고 있던 몸을 펴고 일어서니 일시적으로 눈앞이 검게 변했다. 두개골이 깨지기라도 하는 듯 고통이 내 전신을 에워쌌다. 머리칼을 세게 움켜쥐었다. 반대쪽 손으로는 입을 틀어막았고, 코로는 가쁜 숨을 내뱉었다. 그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죽을 때까지 나는 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눈알이 빠질 듯이 아파왔다. 수십 개의 바늘이 안구의 정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꾹 감은 눈에서 비죽 눈물이 흘러나왔다. 손등으로 벅벅 문질렀다. 그렇게 나는 다시 억지로 세상을 되찾았다. 

 

 

 

 거실로 조심스럽게 걸어 나갔다. 있지도 않은 그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그의 손에는 ‘F magazine’이라고 크게 쓰인 잡지가 들려있었다. 어두운 낮, 켜진 조명 아래로 그의 손가락 사이에 붙들려 있는 잡지가 빛을 반사해 잠시 번쩍였다. 평소처럼 소파에 앉자 그가 앞에 놓인 원고 위로 잡지를 올렸다. 그러곤 검지로 톡톡거리며 잡지를 두드렸다.  

 

 

 

 

 

 “몇 페이지야?” 


 “138쪽. 스탠드 켜줘?” 


 “아니.” 

 

 

 

 

 

 몸의 무게중심이 뒤틀리며 상체가 옆으로 기울여졌다. 그가 소파에 앉았기 때문이었다. 138을 찾는 내 손 위로 그의 손이 올라탔다. 그의 손동작에 따라 잡지는 그의 입맛대로 이리저리 펼쳐졌다. 「‘영악한 사랑’의 저자, ‘김아미’ 그녀를 인터뷰하다.」 큰 글자들이 제멋대로 문장을 이루고 있었다. 전에 우리를 찾아왔던 그녀의 손에서 태어난 문장들이었다.  

 

 

 

 

 

 “읽어줘?” 


 “아니. 내가 읽을 수 있어.” 

 

 

 

 

 

 그렇게 말하곤 아픈 눈을 세게 감았다 떴다. 이상한 형체가 내 시야를 가렸다. 그의 손가락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눈가의 물기를 완전히 앗아갔다. 그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나 역시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번들거리는 잡지를 더욱더 앞당겼다. 힘없이 끌려온 잡지를 손으로 눌러 고정시켰다.  

 

 

 

 

 

 「출판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등극,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하다 못해 상승하는 인기. ‘영악한 사랑’의 저자, ‘김아미’. 3년 전 이맘 때 출판된 ‘규격 잃은 도시’로 신인 작가 데뷔에 강렬하게 성공한 뒤, 차츰 명성을 쌓아가던 그녀가 ‘영악한 사랑’으로 정점을 찍었다. 언제나 그녀의 책은 누군가의 인생을 가득 담고 있다. 우리, 혹은 주위의 누군가들, 겪어보지 못한 자아의 만남을 경험하게 한다. 최근 들어 또 다른 작품을 집필 중인 그녀를 만나보았다.
 

 

 

 영악한 사랑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어요. 최근에는 네티즌이 선정한 최고의 책 1위로도 등극했어요.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 좋아요. 뭐라 더 표현할 수 없죠. 많은 분들께서 제 작품을 사랑해주신다는 얘기니까요. 저라는 사람. 김아미의 인생을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서 더 좋기도 하고요. 

 

 

 

 작가님의 인생이라니.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 제 작품들은 모두 제 인생이에요. 제 삶이고, 제 생각들이죠. 그래서 가끔씩 제 글들을 읽으시다보면 ‘어! 나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라고 느끼셨을 지도 몰라요. 아닌가?(웃음) 어지럽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아무튼 그게 모두 제 생각들을 두서없이 나열했기 때문일 거예요. 저도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야기가 이상하게 샜네요. 요점만 말씀 드리자면 저는 제 작품에 제 인생들을 담고 있어요. 

 

 

 

 확실히 소설이라고만 하기에는 누군가의 인생을 엿보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혹시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한다, 라는 부분 기억하시나요?
 - 제가 집필했는데요. 물론 줄줄이 꿰고 있죠. ‘가끔은 네가 나를 죽이는 상상을 하곤 한다. 너는 그 큰 손으로 내 목을 조른다. 나는 허옇게 질린 얼굴로 네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너는 더 억센 힘으로 내 숨통을 옭아매는 것이다. 아주, 완벽한 상상이었다.’ 이 구절 맞나요? 

 

 

 

 맞아요. 읽는 순간 전율이 느껴지는 문장이었어요. 제가 가장 궁금했던 구절에 대해 잠시 질문 드려도 될까요?
 - 네. 좋아요.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아니, 살았으면 좋겠어. 실은 죽어버리기를 바라. 살고 싶어. 죽어야만 해. 내면에서는 수차례의 전쟁을 치렀다. 너와 나의 생존과 죽음을 내걸고 승리의 깃발을 꽂은 것은 바로.’라는 구절이 있어요. 제 기억으로는 ‘영악한 사랑’의 마지막 문장이었는데 이 문장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 정확히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너무 모호하네요. ‘영악한 사랑’에서 처음부터 끝가지 다뤘던 내용을 함축적으로 나타낸 거나 다름없어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그 문장을 위해 끌고 달려온 거죠. 

 

 

 

 승리의 깃발을 꽂은 게 누구인지는 말씀해 주실 수 없나요?
  - 아마도 그렇겠죠.(웃음) 현재 집필 중인 ‘BLIND'라는 책을 보시면 한결 이해가 쉬우실 지도 몰라요. 문제라고 하면,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는 게 문제겠죠.  

 

 

 

 'BLIND'라고 벌써 제목을 이야기 해 주셨네요. 작가님의 인생을 담은 작품. 많이 기대가 되고 있어요.
 - 그렇게 많은 기대를 해 주신다니 쑥스럽네요. 정확히 ‘BLIND’가 출판될 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기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시간은 없어요. 그 짧은 시간동안 제 모든 걸 끝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정처 없이 잡지 위를 배회하던 그의 손가락이 마지막 문장에서 멈추어 섰다. 짧은 시간…. 그가 단어를 곱씹었다. 내 얼굴로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참 많이도 풀어 썼네. 그가 말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꽤나 많은 분량이었다. 예상컨대, 그녀는 분명 짧은 내 대답을 듣고 한참이나 고민하다 이리저리 풀어썼을 것이다. 나는 평소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길게 말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생각하지만, 이건 다 그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하곤 한다.  

 

 

 

 평소보다 늦게 일어난 터라, 내 모든 시간은 뒤로 밀려났다. 그는 이미 아침을 햇살을 맞았을 것이었다. 냉장고를 열어도 줄지어 있는 것들은 생수뿐이었다. 찬 기운과 그의 타자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냉장고의 문을 닫았다. 개수대로 시선을 옮겼다. 쌓여있어야 할 그릇들이, 혹은 이미 깨끗하게 씻긴 물기 가득한 그릇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여태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아무 것도 안 먹었어?” 


 “…어.” 

 

 

 

 

 

 그의 목소리가 여러 갈래로 갈기갈기 찢어져 내게로 꽂혔다. 한 가닥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그가 마른 눈을 손으로 연신 비볐다. 너까지 눈이 멀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만 해. 말하지 못했다. 먹을 것이라고는 밥솥을 채우고 있는 밥뿐이었다. 쌓여있던 식빵도 자취를 감췄다. 그의 눈치를 보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는 내가 핸드폰 화면을 보는 것조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고요한 침묵이 나를 다그치면, 나는 그저 그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날이 날인지라, 주문할 내역들을 심도 있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언제나 그의 생일만 되면, 아주 늦게 일어났다. 새로이 자라나는 해는커녕 죽어가는 해를 봐야 할 때였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곁눈질로 그의 행동을 빠르게 훑었다. 고개를 돌린 그와 시선이 맞물렸다. 그는 눈을 감고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나는 핸드폰을 뒤로 숨긴 채로 다시 방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경첩 소리가 울리며 문이 열렸다. 밖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의 손버릇이었다. 그의 소음에 맞추어 키패드의 숫자를 터치했다. 숫자가 빈 공간이었던 화면을 메웠다. 멍하니 떨어지는 해만 응시하자, 다시 방문이 열렸다. 그의 표정에서 나는 무엇도 느낄 수 없었다. 내게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읽을 수 없었다. 나는 진정한 그가 아니기에. 

 

 

 

 

 

 “남준아.” 


 “…….” 


 “남준아, 김남준.” 


 “왜. 왜 자꾸.” 

 

 

 

 

 

 그가 검은색 코트에 팔을 끼워 넣었다. 버릇처럼 나는 말려들어간 옷깃을 정리했다. 그의 향수 냄새가 더욱 진하게 풍겨져 나왔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칼을 정리했다. 그의 다부진 가슴팍에 얼굴을 박았다. 진한 향기가 코를 타고 흘러 들어왔다. 이대로 내 눈이 멀어버렸으면 좋겠다. 어차피 죽어야만 한다면 눈이 멀어버린 나를 네가 얼싸안고 함께 죽어버리자 제안했으면 좋겠다. 그 가슴팍에 가려진 세상은 무엇도 볼 수 없었다. 네 심장과 가장 가까이 있었으나, 네 마음을 볼 수도 없었다. 그의 심장 고동소리를 들으려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 박동에 맞춰, 내 심장도 함께 뛰었다. 내게 찾아올 암흑이 너라면 받아들일 준비 없이 갑작스레 날 맞이한대도 반갑게 환영할 것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너를 사랑하는 게 죄악이라 한들 너를 사랑한다. 어째서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게 죄악일까. 이러한 물음 따위는 가지지 않겠다. 숭고한 희생이 될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랑일지라도, 너를 향한 내 영악한 사랑일지라도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사랑은, 너를 향한 내 사랑은 아주 지독하게도 영악하기 때문에. 너는 내 영악한 사랑의 피해자. 

 

 

 

 차라리 나를 죽도록 원망하길. 왜 내 사랑의 피해자는 무고한 너여야만 했는지, 왜 나는 한 치의 쉴 틈도 없이 네 목을 조르는지. 왜 하필이면, 내 사랑의 대상이 너인지 원망해라. 네가 원망해도 좋으니, 내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면. 증오의 대상으로라도 네 가슴 한켠에 자리 하기를. 

 

 

 

 

 

 “날, 날 사랑해?” 


 “…….” 


 “남준아, 너는 날 사랑해?” 


 “……아니.”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강한 힘이 내 어깨를 짓눌렀다. 가슴팍에서 내 얼굴을 떼어낸 그가 갑자기 내게 입을 맞췄다. 평소와 같은 입맞춤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이 세게 부딪혀 서로의 치아가 충돌하는 고통이 일었다. 등허리부터 스산하게 소름이 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어깨에서 내 뺨으로 두 손을 올린 그가 다시 강하게 입을 맞췄다. 거친 그의 입술이, 더운 숨이 날 간질였다. 그의 손가락이 내 두 뺨 위에서 바르작거리며 떨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가 내 아랫입술을 약하게 깨물었다. 벌어진 틈 사이로 그가 새어 들어왔다. 짙은 입맞춤이었다. 창 밖에서는 해가 죽어가고 있었고, 우리 둘 역시도 죽어가는 태양빛을 맞으며 죽어가고 있었다.  

 

 

 

 문득, 네 죽음들의 부재를 느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더니, 나와 함께 숨 쉬고 있었다. 아니, 우리의 숨이 멎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갑작스런 짙은 입맞춤에 숨이 부족했다.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내 정신을 붙잡은 건 그였다. 내게서 떨어져 나간 그가 숨을 몰아쉬며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암흑 같던 세계가 깨지던 순간이었다. 그가 자신의 뒷머리를 손으로 헤집었다. 방에서 나가는 그를 따라 나섰다. 그가 검은 워커를 신는 중임에도 나는 그를 막아설 수 없었다. 어찌 나는 너의 고요한 침묵이 될 수 없는가. 

 

 

 

 

 

 “돌아올 거지?” 


 “죽지 않고 살아서 올 테니까.” 


 “…….” 


 “걱정 말고 기다려.” 

 

 

 

 

 

 열리는 현관문 새로 찬바람이 떠밀려 들어왔다. 그가 떠나고 나서도 나는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찬바람과 함께 그의 향수냄새가 같이 밀려들어와 내 전신을 에워쌌다. 사슬처럼 날 묶은 그의 찬기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리고, 주문했던 식재료들이 배달됐다. 그가 초인종을 누를 리 만무했음에도 문이 열렸을 때 그가 보이길 기대했다. 감정의 쓰레기통 속 내 굳은 마음이 둔하게 떠올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받아든 재료들을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달걀을 거꾸로 돌려 바구니에 차곡차곡 옮겨 담았다. 마지막으로 손에 들린 달걀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콰직, 발밑으로 깨진 계란이 끈적끈적하게 흘렀다. 개수대 옆에 걸려있던 걸레를 집어 들었다. 바닥을 문지르자 빳빳하게 말라 있던 건조한 분홍색 걸레가 더 짙게 물들었다. 무미건조한 얼굴로 걸레를 빨았다. 손에 물이 묻어도 이제는 축축한 걸레가 다 흡수하는 것 마냥 건조하게 느껴졌다. 무겁게 울리던 타자소리도 없었다.  

 

 

 

 부스럭거리는 봉투에 담겨있는 닭고기에서는 냉기가 느껴졌다. 손질된 고기에 칼집을 넣으려 나무 도마에 붉은 기가 도는 고기를 올려두었다. 칼집이 가득한 도마에 그가 플라스틱 소재의 도마로 바꾸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진즉 바꾸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며 식칼을 손에 쥐었다. 날카로운 칼이 고기를 베어 들어갔다.  

 

 

 

 

 

 “아.” 

 

 

 

 

 

 눈앞이 컴컴해졌다. 요새 들어 일시적으로 눈이 머는 주기가 잦아졌다. 따끔한 고통이 이는 손가락이 축축했다. 칼에 베인 모양이었다. 따가운 손가락에 신경 쓸 틈도 없이 눈을 손등으로 꾹 눌렀다. 바닥으로 무릎을 떨어뜨렸다. 시린 바닥에 무릎이 아렸다. 안구를 칼로 도려내는 듯 소름이 끼쳤다. 진통제가 어디 있는지도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떤 암흑에 있는지, 어디 쯤 있는지 나는 볼 수 없었다. 

 

 

 

 지금 내게는 왜 네가 없는지, 그를 원망할 수도 없었다. 내가 그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원망이 아니었으며, 또한 조금의 야속함도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둠이 깨지길 소원하는 것뿐이었다. 어둠이 깨진 것은 내 손에 흐르던 피가 굳어버린 후였다. 차라리 그가 없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수도꼭지에서 따뜻한 물이 흘러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개수대에 물 닿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흘러나오는 물에 굳은 피가 씻겨 내려갔다. 

 

 

 그가 서랍장에 밴드를 두었던 행동이 떠올랐다. 방에 있던 서랍장의 첫 번째 칸을 열자 맨 위에 올려진 밴드가 눈에 들어왔다. 곽 안에 들어있는 밴드의 종이를 벗겨냈다. 검지에 밴드를 돌돌 말아 붙였다. 그러다가도 서랍장의 마지막 칸이 눈에 들어왔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짙은 밤. 짙은 어두움. 너는 내게 짙은 빛일지니. 나를 어서 짙게, 짙게…. 

 

 

 

 형광등을 켜야만 했다. 인조적인 빛에 눈을 찌푸렸다. 평소와 같은 헤이즐넛 커피 향이 퍼지지 않았으며, 매콤한 닭볶음탕의 향이 퍼졌다. 오랜만에 집안에 퍼지는 음식 냄새였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끓고 있는 미역국이 있었다. 불을 끄고, 식탁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작은 소음이 생겼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직각을 이루고 있었다. 9시였다. 

 

 

 

 같이 배달되었던 케이크도 꺼내어 올렸다. 미역국과 닭볶음탕은 굳이 올려두지 않았다. 잘게 떨리는 손으로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단단한 초가 케이크에 꽂혀 들어갔다. 내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마냥. 성냥에서 불이 타올랐다. 쉬이 타올랐다, 쉬이 꺼질 것만 같은 불꽃을 빠르게 초로 옮겼다. 성냥을 든 손을 흔들어 불을 껐다. 촛농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네 탄생을 축하하며.” 

 

 

 

 


  
 촛불의 불이 꺼졌다. 사실, 초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나는 아직도 초에 불을 붙이는 의도를 알 수 없었다. 탄생일에는 초에 불을 붙이고, 기일에는 향에 불을 붙이며. 나는 네 탄생일에 네 죽음들의 기일을 맞이하여 향에 불을 붙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네 시작과 끝이 되고 싶다. 

 

 

 

 케이크를 앞에 올려둔 상태로 식탁 위에 팔을 베개 삼아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그동안 항상 그에게 바라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이 많았다. 지금처럼. 그가 내 앞에 존재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내가 없는 너를 대신해 초를 끄는 이유도 단 하나였다. 네가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말했기에. 나는 언제나 네 말을 믿었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를 그를, 거짓일지도 모르는 그의 말을 나는 맹신한다. 

 

 

 

 건조한 눈을 깜빡이며 다시 일어섰다. 케이크도 다시 상자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가 있었더라면 조각내어 내어 줄 것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럴 이유조차도 없었다.  

 

 

 

 안방에 있던 서랍장 맨 마지막 칸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눈을 감고 미지의 세계 문을 열 듯 조심스럽게 서랍장을 당겼다. 그의 검은 색 가죽 다이어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그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손에 든 그의 다이어리는 꽤나 무겁게 나를 짓눌렀다. 

 

 

 

 쉽게 펼칠 수 없어 심호흡을 했다. 땀으로 축축한 손으로 그의 다이어리를 열었다. 절반가량 지난 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다.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어디에선가 들려온 소리였다.
 떠돌아다니는 소리를 다시 돌려보내려다, 가만히 묶어두었다.
 누군가는 울음을 그치지 못할 것이고, 나는 그제야 울음을 그칠 거였다.』 

 

 

 

 

 그의 정갈한 서체가 흰 종이를 메웠다. 눈앞이 흐렸다. 나는 그의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함께 글을 써오던 그가, 글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쓴 글일까. 페이지를 넘겼다. 

 

 

 

 

 『정작, 울고 있는 건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울부짖음을 방치하는, 방관자였다.』  

 

 

 

 

 그녀는 나를 뜻하는 것일까. 혹은 그의 글 속의 그녀를 뜻하는 것일까. 내 글 속의 그는 너인데, 네 글 속의 그녀는 누구일까. 페이지가 넘어갔다. 

 

 

 

 

 『죽음은 언제나 내 곁을 맴돈다.
 나는 죽는다.
 그 전에, 그녀의 눈이 멀어버릴까.
 
 내가 먼저 죽는 것이 좋을까.
 그녀의 눈이 먼저 멀어버리는 것이 좋을까.
 
 차라리 미래가 없기를 소망한다.』 

 

 

 

 

 페이지를 넘겼다. 

 

 

 

 

 『나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맹인이 될 그녀를 두고 내가 어떻게 죽어야만 하는가.』 

 

 

 

 

 흐린 시야에 눈을 깜빡였다. 또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그녀가 나에게 의지하지 않음에 감사해야 할까.
 그렇게 만든 나를 원망해야 할까.
 
 애초부터 의지하지 못했으니, 내가 죽어도 그녀는 상관없을 것이다.』 

 

 

 

 

 그는 내가 그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나는 그를 맹신한다. 맹목적인 사랑에 목매는 나를 너는 정녕 모르는 것일까.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나는 누군가를 동정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녀를 불쌍하게 만든 건 나였다.
 그녀는 의지할 곳이 없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나는 하필 왜 그녀를 사랑해서.
 그녀는 하필 왜 나를 사랑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불쌍한 그녀.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페이지를 넘겼다. 

 

 

 

 

 『너는 진정한 나의 탄생과 죽음.』 

 

 

 

 

 더 이상 읽을 수 없어 그의 다이어리를 닫았다. 두꺼운 종이들끼리 맞부딪히며 둔탁한 소리가 났다. 읽지 않았던 것처럼 원상태로 돌려놓았다. 내 속에 네가 가득 들어찼다. 다시 작업하던 소파로 걸어갔다. 조용한 타이핑 소리가 그리웠다.  

 

 

 

 

 

 “남준아.” 

 

 

 

 

 

 당연하게도 그의 대답은 없었다. 언제나 그의 대답은 들을 수 없었던 터라, 그의 부재를 느끼기에도 적절하지 못했다. 문득, 느꼈다. 그의 대답이 있었더라면, 나는 그의 부재를 온몸으로 맞았을까? 휘몰아치는 심연 속에 홀로 고요히 서 있던 건 너였나, 나였나. 

 

 

 

 들려오지 않았던 그의 대답에 처음으로 감사해했다. 완전한 그가 없음에도 내 안에는 그가 들어차 있어서, 그를 이해하려 드는 것일까, 추측했다. 혹은, 그가 없어서 내가 완전한 그가 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까. 태양이 뜨고 지듯 수많은 과정 중 하나처럼. 

 

 

 

 비어있는 의자를 보며 그의 뒷모습을 곱씹었다. 더 이상 새어나올 단물도 없도록 반복하여 씹었다. 사실 네가 두드리고 있던 것은 검은 키보드가 아니었다. 내 검은 심장이었다. 네 손가락이 보내는 수신호에 따라 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네 작은 감정의 동요까지도 나는 일말의 죄책감 없이 내 가슴으로 씹어 삼킨다. 이제는 네 것인지, 내 것인지 구별을 할 수조차도 없었다. 그의 숨이 없어, 나는 호흡하지 못했다. 

 

 

 

 돌아와 타이핑을 시작할 너를 생각하며 펜을 잡았다. 그가 내게 선물했던 것과 같은 펜이었다. 그는 자신이 선물했던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만, 그가 선물했던 펜은 사실 서랍장에 곱게 누워있다. 닳아버린 펜촉을 바꾸고 바꾼 이 펜은, 그가 준 물건에 조금의 흠집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내가 구입했던 펜이었다. 

 

 

 

 

 『나는 네 죽음들의 장례를 치룰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니 어서 너의 죽음들이 사망해야만 했다. 내 눈의 장례가 치러지기 전에 말이다.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나는 너를 떠난 죽음들을 향해 절을 할 것이다.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도록 아주 멀리 떠나갈 수 있도록. 

 

 그렇다면, 내 장례식은 누가 치러 줄 것인가? 내가 네 장례식을 치르게 될까, 네가 내 장례식에 상복을 입고 앉아 있게 될까. 그냥, 같이 죽어버리자. 누구도 우리들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우리들의 몸이 맞닿아 함께 썩어가자. 이미 썩어 문드러진 내 가슴처럼.』 

 

 

 

 

 이미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고작 몇 문장에 나는 네게 하고 싶은 말을 담으려 애를 썼으며, 돌아올 너를 그리며 눌러썼다. 압축시킨 내 감정을 그가 팽창시켜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토기가 올라왔다. 쓰던 문장을 마치지도 못한 채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헛구역질을 해댔다. 말아 쥔 주먹으로 가슴을 내리쳤다. 내 안에 들어찬 너를 토해내려는 행동 같았다. 억지로 올라오는 토를 삼켰다. 화장실 바닥에 널브러지듯 주저앉았다. 쿵, 쿵. 가슴을 내려치는 충격에 맞춰 심장이 뛰었다. 내게 사실대로 토해내라 한다면, 나는 분명 이제는 한계일지도 모른다고 할 것 같았다. 그를 향한 한계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한계. 살고 싶어도, 살기 힘들 것 같았다. 그의 죽음이 내게로 옮겨온 것 마냥. 차라리, 그게 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나는 두 손을 모아 빌었다. 너와 나를 향해. 

 

 

 

 삑, 삑, 삑, 삑, 삑. 현관의 번호 키가 눌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그리워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찼다.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잔뜩 냉기를 품고 돌아왔다. 그의 숨도 찼다. 훅, 내쉬는 숨이 나를 얼려버릴 정도였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신발을 벗고 들어온 그가 내 눈을 내려다보더니 밴드를 붙인 내 손가락을 향해 시선을 더 내리깔았다.  

 

 

 

 

 

 “왜 다쳤어.” 


 “그러게.” 


 “왜 다쳤냐고 물었어.” 


 “네가 없어서.” 

 

 

 

 

 

 그에게 무엇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이었다. 내가 모르는 내면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나도 그제야 알았다. 나는 너를 원망할 수 없다고 입이 닳도록 말해왔고, 손이 부르트도록 글로 써왔건만, 정작 나는 너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나.  

 

 

 

 

 

 “…….” 


 “또, …너를 사랑해서.” 

 

 

 

 

 

 너를 너무 사랑해서. 또 다른 자아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원망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내 안에 살던 또 다른 나마저도 너를 사랑했다고. 그가 손가락을 어루만졌다. 내 손목을 들어 올린 그가 내 손가락에 짧게 입을 맞췄다. 

 

 

 

 

 

 “네가 나를 사랑해서….” 

 

 

 

 


 
 그의 눈동자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갔다. 깊고, 광활했으며, 나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그의 손을 밀어냈다. 더 이상 내게 묻지 않았다. 그의 눈을 피해 텅 비어있는 가죽 의자로 시선을 돌렸다. 밀린 일부터 하라는 신호였다. 나는 그를 완강히 밀어낼 수 없을뿐더러, 지금은 마주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우선 씻고 올게.” 


 “그렇게 해, 그럼.”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옷을 챙겨 욕실로 향했다. 맹목적인 사랑, 맹목적인…. 자꾸만 떠오르는 단어를 곱씹으며 펜을 들었다. 타자소리 대신 욕실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적막을 채웠다. 다시 집안이 가득 찬 기분이었다. 

 

 

 

 

 『살려 달라 빌었다.
 너라는 수렁으로부터 나를 구원해 달라 빌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의 네가 내게 손을 뻗었다.
 결국 너는 내 구원일지니.』 

 

 

 

 

 그가 욕실의 문을 열고 나오자 눅눅한 공기가 잔뜩 퍼졌다. 그가 잔뜩 젖어있는 머리를 수건으로 털었다.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으려 집중한 척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더불어 그의 향도 짙게 풍겨졌다. 

 

 

 

 

 

 “아미야, 나 머리 좀 말려줘.” 

 아아, 그는 정말. 자연스레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그의 눈을 보면 나는 무엇도 거부할 수 없다. 안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펜에서 새어나오는 잉크가 종이를 적시고 있는 중인지도 몰랐다. 화장대 앞 의자에 앉은 그가 코드가 연결된 드라이기를 내밀었다. 떨리는 손으로 드라이기를 받아들어 스위치를 올렸다. 드라이기는 큰 소음을 만들어냈다. 나와 그의 침묵도 다 덮어버릴 만큼이나 큰 소음을. 내 손가락 사이사이로 그의 머리칼이 비집고 들어왔다. 부드러운 머리칼이 내 손에서 부스러질 것만 같았다.  

 

 

 

 이대로라면 내 모든 게 무너져 내린대도 좋았다. 그만 이렇게 버티고 있어준다면, 좋았다. 더운 바람이 내 손의 수분까지도 앗아갔다. 그와 동시에 나는 또 다시 시력을 잃었다. 짐짓 모르는 척, 다시 그의 머리칼을 말렸다. 그는 모를 것이었다. 드라이기와 손의 거리조차도 파악할 수 없어 간혹 드라이기에 손가락이 부딪혀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몰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미야.” 


 “…….” 


 “아미야.” 


 “응.” 


 “머리, 다 말랐어. 그만 해도 돼.” 

 

 

 

 

 

 아, 그렇구나. 손을 허공에 띄워둔 채로 있었다. 드라이기의 스위치를 내렸다. 소음이 멈췄다. 가까운 곳에서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드라이기를 어디에 뒀었더라. 네 기억에 파묻힌 내 기억들을 헤집었다. 드라이기가, 화장대 아래 놓여있었던가? 걸음을 옮기려하자 의자다리에 발이 부딪혔다. 순간적으로 쏟아져 나오려는 신음을 입술을 꾹 깨물고 삼켰다. 

 

 

 

 

 

 “남준아, 드라이기 좀 제자리에 가져다 둘래?” 


 “알겠어, 근데.” 

 

 

 

 

 

 드라이기를 내밀고 있는 손을 잘게 떨었다. 보이지 않았는데도 떨림을 느꼈으니, 분명 사시나무 떨 듯 심하게 떨었을 것이었다. 그의 숨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그가 어디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어서. 괜히 눈을 꾹 감았다가 태연한 척 다시 떴다. 

 

 

 

 

 

 “…너 어디 봐?”  

 

 

 

 

 

 그의 말이 들리고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하고 내 심장소리가 귓가를 세게 때렸다. 강한 충격에 몸이 휘청거리는 듯 했다. 바들거리는 입 꼬리를 올렸다. 드라이기도 내리지 않고 허공에 두었다. 온 몸이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평소 시야의 초점을 맞추던 것처럼 눈에 힘을 주어 뜨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손에 들려있던 드라이기가 사라졌다. 그가 채간 모양이었다. 손을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저 너머로 사라졌다. 화장실의 더운 공기가 훅 끼쳐오고, 화장실의 서랍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드라이기를 놓는 듯 소리가 들려오고, 다시 서랍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보이지 않는 내 시야에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검은 시야 속의 그가 다시 내게 다가왔다. 거친 숨을 하고. 

 

 

 

 

 

 “지금 앞, 안 보이지.” 


 “보여.” 


 “거짓말 하지 마. 이거 몇 개야.” 

 

 

 

 

 

 그는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을까. 머릿속에 그려지는 모습으로는 내게 손가락을 들어 흔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게 아닐 지도 몰랐다. 답하기 싫었고, 답하지 않으면 그는 확신할 것이다. 답을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이지도 않는 그것을 맞출 리도 만무했다. 

 

 

 

 

 

 “두 개.” 


 “아니야.” 


 “틀렸네.” 

 

 

 

 

 

 작게 웃었다. 그가 내 웃음에 어깨를 잡아왔다. 강한 힘에 몸을 움츠렸다. 내 몸에 느껴지는 온기로는 그가 나를 안은 모양이었다. 그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의 숨이 내 목에서 느껴졌다. 가만히 그의 등을 토닥였다. 

 

 

 

 

 

 “언제부터 안 보였어.” 


 “잠깐 그러는 거야.” 


 “그럼, 그건 언제부터 그랬는데.” 


 “…….” 

 

 

 

 

 

 온기가 사라졌다. 평소보다도 더 긴 암흑이었다. 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걷는 것 같았다. 특히나 오늘은,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가 내 팔을 세게 쥔 탓에 입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팔에 전해지는 힘이 약해졌다. 시력이 약해지면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내 몸으로 전해지는 그의 작은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랬냐고.” 


 “좀, …됐어. 


 “근데 왜 말 안 했어.” 

 

 

 

 

 

 다시 침묵이었다. 나는 그가 아픈 나를 신경 쓰는 것이 싫었다. 내가 아니라, 눈이 멀어버린 탓에 신경 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것도 눈이 멀어버리면 볼 수 없었다. 그가 천천히 나를 뒤로 밀었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뒤로 했다. 위치를 파악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종아리에 무언가 부딪힌 느낌에 소리를 내며 몸의 중심을 잃었다. 침대였다. 정신을 차리면, 나는 침대에 걸터앉은 채였다. 

 

 

 

 

 

 “왜 말 안 한 거야.” 


 “그냥, 그냥….” 


 “나 사랑한다면서. 근데 그런 건 왜 숨겼어.” 


 “…네가 나랑 상관없는 사람이면 숨기지도 않았어.” 

 

 

 

 

 

 그의 한숨소리가 들렸다. 아아, 평소보다도 더 긴 암흑이다. 이쯤이면 보일 때가 되었는데. 다그치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왜, 너는, 네 죽음을. 허튼 생각을 그만두었다. 긴 터널의 끝이 보였다. 저 멀리서 밝은 빛이 새어 들어오더니, 나는 흐릿하게 돌아오는 시야에 다시 눈을 깜작였다. 

 

 

 

 

 

 “이제 보여. 괜찮아.” 


 “도대체 뭐가 괜찮은데.” 


 “화 내지마. 우리한테 이럴 시간이 있어?”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그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입술 색이 죽어있었다. 거칠어 보이는 그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내 몸에서 손을 뗀 그가 눈을 감았다.  

 

 

 

 

 

 “일부터 해. 곧 작품도 완성되니까.” 


 “…그래.” 

 

 

 

 

 

 그가 돌아섰다. 내게 더 이상 무어라 말하지 않은 이유도, 손을 쓸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다 서랍장의 마지막 칸을 다시 열었다. 곧 볼 수 없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가 컴퓨터를 켜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때와 같은, 평범한 일상이 돌아왔다. 아니,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그의 다이어리를 펼쳤다.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 

 

 

 

 

 페이지를 넘겼다.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있다.』 

 

 

 

 

 페이지를 넘겼다. 

 

 

 

 

 『그녀의 글 속의 그가 죽어가고 있다.
 나 역시도 죽어가고 있다.』 

 

 

 

 

 페이지를 넘겼다.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닫았다. 서랍을 닫고 거실로 나갔다. 그는 옆에 순서대로 번호가 쓰인 내 종이를 놓아둔 채로 열심히 빈 화면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검은 뿔테의 안경을 올렸다. 소파에 앉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이내 한숨이 나왔다. 

 

 

 

 너와 내게 죄가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내 글에서 죽어나간 이들도 사실은 존재하지 않았고, 내가 애정을 쏟았던 내 작품 속의 그 아이 역시도 사실은 실존하지 않았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와 같은 내 삶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 속에 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타이핑하던 문장을 훔쳐보았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여 만들어낸 문장이었다. 분명, 내가 집필했으며 네가 하는 것은 필사에 불과했지만 왜인지 온전한 너의 문장인 양 채워지고 있었다. 

 

 

 

 

 『무심하게도 너는 나를 지양한다.』 

 

 

 

 

 내가 그 문장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던지. 그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썼던 그 문장을, 저 단어들을. 저 단순한 몇 글자의 단어들을 배열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잉크가 잔뜩 번진 종이로 고개를 돌렸다. 펜의 잉크가 자꾸만 새는 것이 교체해야 할 때가 왔다 싶었다.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세상. 너와 나로만 구성되어 있다. 무엇도 없이 오직 둘로만. 죽음이란 단어 역시도 너와 내가 이루고 있다.』 

 

 

 

 

 울컥 쏟아져 나오는 잉크가 글자를 망쳐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다른 종이에 쓰지는 않았다. 그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의 멋대로 집어넣을 문장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남준아, 내 안에 틔운 네 새싹이 나를 양분으로 하여 내 가슴을 야금야금 먹어치운다. 나는 그래도 좋았다. 

 

 

 

 시계가 어느새 다시 직각을 이루고 있었다. 새벽 3시였다. 뻑뻑한 눈을 한 채로 마지막 문장의 점을 찍었다. 'BLIND'의 마지막 문장이 완성되었다. 수북하게 쌓인 그의 종이의 맨 마지막으로 종이를 끼워 넣었다. 근래 들어 그의 작업이 소홀했던 탓에 그는 작업량이 많았다.  

 

 

 

 

 

 “안 잘 거야?” 


 “…조금만 더 하고.” 

 

 

 

 

 

 더 이상 그를 보채지 않고 어두운 방 침대에 누웠다. 새로운 태양을 보려면 쪽잠을 자야할 성 싶었다. 그의 타자소리가 집안을 메웠다. 열린 문으로 빛이 들어왔다.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리곤, 눈을 감았다.  

 

 

 

 울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은 오후를 향해 달리고 있었으나, 잔 것 같지도 않았다. 눈만 깜빡였는데도 새로운 태양이 날 맞이했다. 밖에서는 아직도 타자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급하게 밖으로 뛰어 나갔다. 

 

 

 

 

 

 “안 잤어?” 


 “…잠이 안 와서.” 

 

 

 

 

 

 내가 늦잠을 잤던 어제도 그가 잠을 자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자지 않았다는 것은, 벌써 사흘 째 깨어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의 피부는 거칠었고, 눈 역시도 피곤해 보였으니. 

 

 

 

 

 

 “정말로 안 잔 거야?” 


 “잠깐. 새벽에 네 옆에 누워있다 다시 나왔어.” 

 

 

 

 

 

 눈이 마주치자 그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문득, 시간이 가까워짐을 느꼈다. 눈이 다시 보이지 않았다. 식탁 의자에 무릎을 찧었다. 쿵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이를 악물고 소리를 삼켰다. 자연스럽게 의자를 뒤로 빼고 앉았다. 그가 보고 있을지 몰랐다. 

 

 

 

 

 

 “무슨 일이야. 괜찮아?” 


 “응. 커피 내리려다 부딪혔어.” 


 “그래. …조심 좀 해.” 

 

 

 

 

 

 그의 목소리에 평소 느끼지 못했던 어떤 것이 섞여 흘러나왔다. 눈치 빠른 그가 모를 리 만무했으니, 넘어가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식탁에 머리를 박았다. 감아도, 떠도 같은 형상이었지만 눈을 감았다. 내가 다시 출구를 찾기 바라며. 한참이 흘렀다. 그의 타이핑 소리는 몇 번이나 멈추었었고, 나 역시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리어리한 시야에도 나는 다시 뜨거운 물을 따랐다. 익숙한 향이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듯 했다.  

 

 

 

 

 

 “잠도 안 잤는데, 커피 마셔도 돼?” 


 “어.” 

 

 

 

 

 

 그의 앞에 잔을 올려 두었다. 그는 마지막 장을 타이핑하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잔을 들곤 커피를 한 모금 삼켰다. 김이 올라오는 커피를 뒤로하고 계속하여 글자를 채워나갔다. 가만히 그를 응시하자 그가 나를 흘깃 쳐다봤다. 왜. 그의 물음이 들려왔다. 나는 이럴 때면 눈이 아니라, 귀가 멀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대답이 두려웠다. 네가 곧, 죽어버릴 것 같아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문장의 온점을 찍었다. 그러곤 다시 위로 올라가, 서문의 추가된 마지막 문장까지 완벽하게 완성했다. 

 

 

 

 

 『그와 나의 죽음은 영원한 끝이 아님을.』 

 

 

 

 

 그가 완성된 글을 출판사로 전송했다. 내 마지막 작품은, 그러니까 ‘BLIND’는 완벽히 마침표를 찍은 셈이었다. 그가 남아있던 커피를 모두 들이켰다. 꽤나 뜨거웠을 텐데도 그는 내색하나 하지 않았다. 

 

 

 

 

 

 “밥 줄게.” 

 

 

 

 

 

 식탁으로 향했다. 식어버린 미역국과 닭볶음탕을 다시 불 위에서 뜨겁게 데웠다. 끓는 소리가 시작됨과 함께 그가 의자에 앉았다. 그의 몫만큼의 밥만 퍼낸 뒤 밥솥의 뚜껑을 닫았다. 너는? 그의 물음이 들렸다. 고개를 저었다. 안 먹으려고. 

 

 

 

 닭볶음탕과 미역국을 퍼낸 뒤 그의 앞에 올려두었다. 수저를 꺼내온 그가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의 앞에 앉아 가만히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나버린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에도 뭐했다. 그의 낯빛이 어두웠다. 생기가 부족해 보였다. 

 

 

 

 밥을 다 먹어가는 중인 것 같아 케이크도 한 조각 잘라내어 내밀었다. 그는 나와 케이크를 번갈아보더니 빈 그릇을 개수대에 두고 와선,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다. 놓인 치즈가 그의 젓가락질에 무너져 내렸다.  

 

 

 

 식사를 끝낸 그는 내게 자신의 다이어리를 꺼내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거리자 어서 받으라는 듯 다시 내밀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다이어리를 보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그가 내게 이것을 주는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이건, 왜?” 


 “궁금하면 보고, 생각나면 보고.” 


 “그러니까 왜.” 


 “그냥. 다이어리는 나니까.” 

 

 

 

 

 

 그래, 다이어리는 ‘김남준’ 그 자체였다. 내가 파악하지 못한 그, 이해하지 못한 그를 모두 담고 있는 그의 다이어리는 내가 사랑하는 이의 전부였다. 다이어리를 받아든 나를 보더니 그가 미소 지었다. 화장실에 간 그는 샤워를 시작했다. 다시 나갈 사람처럼. 물이 떨어지는 소리를 음악으로 하여금 다시 다이어리를 펼쳤다. 새로운 글씨가 비어있던 종이를 채우고 있었다. 

 

 

 

 

 『무너져 내리는 나를 피하려다, 너를 파했다.』 

 

 

 

 

 페이지를 넘겼다.  

 

 

 

 

 『나는 너를 지향한다.』 

 

 

 

 

 침을 꿀꺽 삼켰다. 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아득해지는 시야에 급히 페이지를 넘겼다. 

 

 

 

 

 『내 마지막 숨을 그녀에게.』 

 

 

 

 

 아아, 그렇게 나는 내 시력을 잃었다. 암흑의 세계였다. 

 

 

 

 씻고 나온 그가 내게 다가왔다. 발걸음 소리로 다가왔다고 짐작했을 뿐, 그의 얼굴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제는, 고통도 없었다. 

 

 

 

 

 

 “아미야, 나 머리….” 


 “…말려줄까?” 


 “…또 안 보이지.” 

 

 

 

 

 

 그의 확신 가득한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손을 뻗어 그의 손이 위치할 자리쯤을 더듬었다. 그의 손에 들린 드라이기를 빼앗아 들었다. 그가 다시 가져가려고 했으나,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결국 내게서 드라이기를 가져가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해 줄 수 있어.” 


 “그래, 알겠으니까. 코드는 꼽아야지.” 

 

 

 

 

 

 그가 다시 드라이기를 가져갔다. 코드를 꼽는 소리가 들리고, 그가 내 허리를 잡았다. 그가 이끄는 대로 걸었다. 멈춰.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가 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렸다. 내 손에 드라이기를 쥐어준 그가 내 반대쪽 손을 자신의 머리 위에 얹었다. 평소와 같은 모습을 떠올리며 드라이기의 스위치를 올렸다. 내가 들고 있는 것은 평소와 같은 드라이기고, 내 앞에 있는 그는 평소와 같다고 생각하며. 큰 소음과 함께 그의 젖은 머리칼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웅얼거렸다. 드라이기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뭐라고?” 


 “다이어리를 준 이유가 없네.” 

 

 

 

 

 

 처음부터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던 양 다시 그의 머리칼을 말렸다. 손에서 차갑게 있던 머리칼이 따뜻하게 말라갔다. 보이지 않아 그의 머리가 어떤 꼴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비웃음거리를 살 모양새였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도 그는 나를 침대에 앉혀놓고 집안을 정리했다. 어딜 그렇게 다니는지, 시끄러웠다. 가끔씩은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뭐야.” 


 “자려고.” 


 “안 졸리다며.” 


 “졸려.” 

 

 

 

 

 

 그가 침대 위로 올라왔다. 침대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그는 내 왼쪽에 앉은 것 같았다. 왼손으로 그가 있을 자리를 더듬었다. 그의 다부진 등이 만져졌다.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확실히, 눈이 안 보이니 감각이 예민해지는 모양이었다. 그의 심장박동까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의 심장은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남준아.” 


 “왜.” 


 “개수대 옆에 있는 약병 좀 가져다 줘.” 


 “약병?” 

 

 

 

 

 

  그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변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본적도 없는 약일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궁금증이 느껴졌다. 한 번도 보인 적 없으니. 언젠가 맞이할 오늘을 위해 숨겨둔 약이었다.  

 

 

 

 

 

 “응, 진통제. 물도 같이 가져다 줘.” 


 “아파?” 


 “아니, 지금 말고. 뒀다가 나중에 먹을 수 있게 말이야.” 

 

 

 

 

 

 그는 더 묻지 않고 부엌으로 갔다. 한참을 찾다가 다가와 내게 약병을 만지게 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통이 매끈했다. 약병을 잡고 있는 그의 손가락도 같이 만지작거렸다. 그건 내 손이야.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약병을 내려놓은 그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지문부터 뼈까지, 하나하나 촉감을 느끼려 애썼다. 

 

 

 

 

 

 “이 약 맞아?” 


 “응. 맞아.” 


 “서랍장 위에 올려놨어. 바로 옆이야.” 

 

 

 

 

 

 그가 그렇게 말하고는 침대 안 쪽으로 들어갔다. 항상 그가 누워있던 자리라, 찾을 이유도 없이 익숙했다. 그가 누웠을 옆에 따라 누웠다. 그가 나를 껴안고선 입을 맞췄다. 거친 그의 입술이 차가웠다. 

 

 

 

 

 

 “조금만 잘 거지?” 


 “…응.” 


 “그래. 잘 자.” 


 “너도, …잘 자.” 

 

 

 

 

 

 한참을 자고 일어난 터라 잠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내 이마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내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나는 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꿈을 꿨다. 무너져 내리고, 무너져 내리고. 무언가가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있던 건물도, 나도, 너도. 죄다 산산조각이 났다. 부서지는 너를 보며 소리쳤다. 남준아. 내게 미소를 보이던 그가 부서졌다. 

 

 

 

 눈을 떠도 암흑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을 그를 툭툭 건드렸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남준아.” 


 “…….” 


 “남준아.” 


 “…응.” 

 

 

 

 

 

 그의 대답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의 목소리가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내 뺨에 손을 올린 그에게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나는 추웠으나, 춥다고 말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해치우지 못한 것이었다. 

 

 

 

 

 

 “지금이 몇 시야?” 


 “…5시.” 


 “오전, 오후?” 


 “오전.” 

 

 

 

 

 

 그가 다시 내 머리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깊은 숨이 쏟아져 나왔다. 그의 가슴팍에 코를 박았다. 날 껴안은 그가 내 등을 토닥였다. 오랜만에 느끼는 그의 손길이었다. 이제와 너를 원망하자면, 너는 왜 하필 이제야 나를 받아들여 주는지. 결국에는 이렇게 될 거였으면서도. 

 

 

 

 지금이 새벽녘이었으니,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할 것이었다. 나는 빙산의 일각도 채 보지 못했다. 그도 그랬을 것이었다. 나는 그것이 못내 아쉬웠다. 너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로 나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더 자.” 


 “응.” 


 “…사랑해.” 

 

 

 

 

 

 그가 떨리는 손으로 내 뺨에 손을 올렸다. 다시 그때가 되풀이 되는 것만 같았다. 내게 사랑을 고백하고 떨리는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던 그. 그를 더 세게 안았다. 그때의 너를 안아주지 못했던 나를 질책하며. 이제와 곱씹어보면, 왜 그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 날의 네 표정을 아주 생생히 기억하며, 나는 지금의 네 표정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도 사랑해.”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내 꿈속의 네가 내 글을 타이핑하고 있었다. 글은 끝을 향해 달려갔다. 네가 마지막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너와 나의 생존과 죽음을 내걸고 승리의 깃발을 꽂은 이는 바로, 죽음이었다.』 

 

 

 

 

 네가 마지막으로 온점을 찍었다. 검은 색 커서가 여러 번 깜빡이며 움직이지 않았다. 내 작품의 마지막 줄이었다. 너는 내 꿈속에서까지 내 작품을 타이핑했고, 나는 그런 너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한참을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던 네가 두 손에 고개를 파묻었다. 나는 그런 그를 달래지 못했다. 그의 등이 위아래로 움직였으며, 고개를 들지 않았다. …사랑해. 그에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 올린 그가 축축한 눈으로 나와 마주했다. 

 

 

 

 다시 꿈에서 깨어났다. 내가 현실인지, 꿈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그였는데 이제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구별해야 했다. 꿈에서는 시력이 멀쩡했으며, 현실에서는 눈을 감든, 뜨든 어두웠다. 내 옆에 누워있을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차가운 팔이 만져졌다. 

 

 

 

 

 

 “남준아.” 


 “남준아.” 

 

 

 

 

 

 그는 대답이 없었다. 너는 내 작품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그의 죽음들을 해치우겠다는 내 말을 믿었을까? 그게 아니라면, 믿지 않았음에도 믿는 체 했을까. 어느 쪽이든 더 이상 상관은 없었다. 서랍장 위에 놓여있을 약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뚜껑을 여는 데도 꽤나 시간이 걸렸다. 손바닥에 약을 털어놓곤 물 컵을 찾았다. 더듬거리며 만져지는 그의 다이어리 옆에 놓인 컵을 들었다. 입 속으로 약을 밀어 넣은 채로 물을 마셨다.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알약을 느끼며 네 옆에 다시 누웠다.  

 

 

 

 그는 시간을 돌리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와 다르게 시간을 멈추고 싶다고 했다. 그가 내게 시간을 말해주지 않는 이상, 내 시간은 돌아가지도 나아가지도 않는 것이었다. 내 바람과 같이 멈추어 있는 것이었다. 단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그에게 진통제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눈치가 빠른 그였기에 거짓말임을 알았을지도 몰랐다. 진통제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했을지 몰라 하는 걱정이었다. 나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 남준아. 

 

 

 

 미동도 없는 그의 옆에 다시 누웠다. 그의 찬 몸뚱아리를 안았다. 사랑해. 무거워지는 눈꺼풀에 나는 눈을 감았다. 다시는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며. 네 또 다른 암흑의 세계에 함께하길. 

 

 

 

 네가 일어나 시간을 말해주지 않는 이상, 시간은 멈추어 있을 터였다. 오전 5시. 내가 사랑했던 새벽녘. 죽어버린 해를 대체할 새로운 해가 뜰 그 새벽녘이 계속되었다. 너와 나를 대체할 태양이 뜨길 바라며. 우리의 죽음은 영원한 끝이 아님을.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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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 신청 해주신 분들 사랑해요 쪽쪽 ♥3♥
거부는 거부합니다
계속 신청 받아요, 주저 말고 해주세요!!! 

 

 

〈사담>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제는 나 누군지도 까먹었을거야 그렇죠? 

나 잊어버리지마요ㅠㅠㅠ 

미안해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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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28.28
베네딕션이예요 자까님 자주오셔야되요♡♡♡오늘도 이 아름다운 감정선들 여주와 남주의 숨겨진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항상 여운이 길게 남게하시는거같아요 작가님 ㅎㅎ
7년 전
소슬
베네딕션님 오랜만이에요. 자주 오도록 노력할게요. 고마워요!
7년 전
독자1
윤기윤기에요 ㅠㅠㅠ와 대박 ㅠㅠㅠㅠ작가님 돌아오셨네요 ㅠㅠㅠㅠ그것도 이렇게 대단한 작품을 가지고 ㅠㅠㅠ엉엉 대박이에요 ㅠㅠ
7년 전
소슬
윤기윤기님ㅠㅠ 실수로 댓글 삭제하는 바람에 다시 댓글 달아요. 알람 두 번 가게 해드려서 미안해요. 자주 오도록 노력할게요. 고마워요!
7년 전
독자5
감사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7년 전
비회원219.67
와....이번 글은 뭔가 작가님 특유의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글인것 같아요 묘한 우울감이 너무 글에 잘 녹아있어요 음악이 그 느낌을 증폭시켜주네요
작품 잘 봤습니다 죄송하지만 브금이 뭔지 알 수 있을까요?

7년 전
소슬
안녕하세요! 읽으시면서 제 특유의 감성까지 느껴주셨다니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에요. 브금은 adele andre gagnon - adele이에요. 고마워요!
7년 전
독자2
안녕하세요 작가님
남준이와 여주의 뭔가 모를 아련함과 회색빛이 보이는것 같아요 어둠으로 덮자니 밝고 하얀색으로 하자니 어두운 그런 글이었던 것같아요 여주는 어떻게 보면 연한 분홍색으로 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어두운 벨벳색 같았고 남준이는 검정색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연한 초록빛 같기도 했어요 둘이 함께 어우러지니 회색으로 도 보였고 뭔가 보면서 울컥하는 느낌이 든 것도 같아요 결국 둘은 검은색으로 끝이나게 된것도 같지만 둘이 함께있으니 연한 노랑색의 이미지도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글도 너무너무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7년 전
소슬
안녕하세요. 처음에 댓글을 읽었을 때부터 독자님께서 표현해주고자 해주신 부분을 느끼려고 여러 번 곱씹어 읽었어요. 우선 너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제가 쓸 때는 막연한 느낌으로 써내려 간 것 같았는데, 독자님께서 제 글에 색을 입혀주신 느낌이에요. 감사합니다.
7년 전
독자3
10041230

작가님 오랜만이에여ㅠㅠㅠㅠㅠㅠ
저 방금 막 일어나서 작가님 글 봤는데 방이 어두워서 그런가 읽다가 좀 소름돋기도하고ㅠㅠㅠㅠㅠㅠ 무섭기도하고..
아무튼 잘 읽고 가요!

7년 전
소슬
10041230님 오랜만이에요. ㅠㅠ 자주자주 쓰려고는 하는데 그게 제맘대로 잘 안 되네요. 항상 고마워요!
7년 전
비회원0.15
하루종일이에요. 작가님이 쓰시는 글 다 너무 좋아요. 이런 글도 사실 좀 어렵지만 계속 보고싶은 글이에요.아니 작가님 글은 다 그래요. 읽을 때마다 저를 소름돋게 해 주시는 작가님 표현력도 감탄스럽고 이런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감격스러워요. 하ㅠ 뭔가 하고싶은 말은 되게 많은데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요. 작가님 글 써주셔서 감사하고 다음 글도 기다릴게요.
7년 전
소슬
하루종일님 오랜만이에요. 연재 텀이 짧은 것도 아니고, 시리즈물로 오는 것도 아닌데 매번 이렇게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다음 글도 더 노력해서 올게요. 고마워요.
7년 전
독자4
난나누우에요
오늘 이 글은 단편이지만 저에게 장편이상의
감정을 주는 글인거 같아요 너무 감사히 읽고갑니다❤

7년 전
소슬
난나누우님 오랜만이에요. 읽고 감정을 느끼게 해드렸다니, 작가로서 너무 감격스럽네요. 고마워요!
7년 전
독자6
골드빈이예요ㅠㅠㅠㅠ 이 글 진짜 읽는 내내 숨죽이고 봤어요ㅠㅠㅠㅠ 뭐라 댓글달기가 꺼려쟈요ㅠㅠㅠ작가님의 글에 비해 제 댓글 하나는 너무 사소한 것 같아서ㅠㅠㅠ그냥 오늘도 참 감사한 글 읽고 갑니다! 감히 뭐라 표현하기가 힘들어서ㅠㅠㅠㅠㅠ늘 감사해요ㅠㅠㅠㅠ
7년 전
소슬
골드빈님! 댓글 달기 꺼려하실 필요는 조금도 없으세요! 달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ㅠㅠ 사소한 댓글이 어디 있나요. 다 감사하죠. :) 저도 늘 감사합니다!
7년 전
비회원140.173
줄라이
세상에나...단편맞나요?항상 읽을때마다 분량에 감탄하는거 같아요 물론 내용에 더 감탄하지만..ㅋㅋㅋㅋㅋㅋ저는 작가님 특유의 분위기가 참 좋은것 같아요
어두우면서 되게 뭐랄까 몽롱한느낌...?국어가딸려서 이정도로밖에 표현을 못하지만 확실한건 우주최강필력이시라는겁니다!핰!사랑해요

7년 전
소슬
줄라이님! 제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해주신다니, 너무 감사해요. 칭찬도 감사하고 저도 사랑해여!
7년 전
독자7
이 글 미리보기로 보고 왁 이거다 하고 여유로울 때 보려고 아끼다아끼다 지금 보네요 작가님 필체가 깔끔하고 막히지 않고 술술 읽어내려져가요 특유의 분위기도 너무 좋구요 작품 읽는 내내 무채색의 그림을 보는 듯 한 기분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다시 볼 거에요 흑흑 작가님 초면이지만 싸라해요 ♥ 그럼 전 작가님 다른 작품 보러 갈게요 좋은 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7년 전
소슬
독자님, 저도 사랑해요.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7년 전
독자8
세상에. 이런 글이 이 곳에 존재할 줄이야. 엄청 빠져서 읽었어요. 비록 쓰신 지는 시간이 조금 지난 글이지만 이제라도 이 글을 발견했다는 게 좋습니다. 이 글이 만약 책으로 나왔다면 저는 샀을 겁니다. 다시 작가님이 이 사이트에 글을 쓰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다리겠습니다. 정말 잘 읽고 갑니다.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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